제235화. Xmas Movie (13)
산타 모니카 초등학교 강당.
잔잔하고 우아한 합주가 울려 퍼졌다.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의자에 앉은 오케스트라 부원들은 각각 악기를 들고 연주하고 있었고, 무대 아래의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은은한 미소로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앞쪽.
“초등학교 오케스트라부인데, 놀라울 만큼 수준이 높군요. 역시, 도 대회 우승 학교다워요.”
“호호, 우리 학교의 자랑이죠.”
옆 학교의 교장, 윌리엄의 말에 산타 모니카의 교감이 미소를 숨기지 않으며 대답했다.
그때.
강당 뒤쪽에서 슬그머니 들어오는 작은 인영들이 있었다.
“헉, 허억… 안 늦었나?”
“아니, 늦었어. 다 끝났나 봐.”
제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길게 내려앉는 바이올린 소리를 마지막으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캐시가 불만스레 발을 굴렀다.
“네가 홍보를 너무 늦게 해서 그렇잖아!”
“…캐시 와일드. 혹시 내가 나눠준 게 포스터가 아니라 네 양심은 아니겠지?”
아연한 목소리의 주인은 제이였….
…제이 맞나?
관객들이 의심과 놀라움을 담아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황당한 표정으로 캐시를 보는 소년은 분명 제이 같은데, 상당히, 매우, 몹시, 낯설었다.
영화 내내 더벅머리에 두꺼운 안경을 끼고 다니던 애가 갑자기 알록달록한 하트 머리띠로 얼굴을 훤히 드러낸 데다가, 안경조차 어디 버려두고 왔는지 완전히 맨 얼굴이었다.
뭐야, 뭔데?
왜 갑자기 저런 모습으로 나타난 건지도 궁금했고,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이들이 저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지도 의아했으며, 대체 저 얼굴을 왜 내내 가리고 있었는지가 최고의 미스터리였다.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줘.
한 관객이 어이없는 눈으로 스크린을 보았다.
“오… 걱정하지 마. 그건 잃어버릴까 봐 학교 올 때마다 집에 두고 오거든.”
캐시의 발언에 제이가 떫은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조지가 ‘그 인성의 비결을 이렇게 알게 됐네!’라고 말하며 쓸데없이 쾌활하게 웃었다.
서서히 박수 소리가 멎고.
무대 위가 어두워졌다. 진행자가 알리는 휴식 시간에, 강당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제각각 떠들거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얘들아! 가서 준비하자!”
아이들을 발견한 페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밴드부원들은 페니의 뒤를 어미 오리를 따르는 새끼 오리처럼 졸졸 따라갔다.
무대 뒤편으로 향하니 필연적으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오케스트라부, 정확히는 마테오 휴스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무대에서 내려오던 마테오가 푸른 눈과 마주치고는 픽, 비웃음을 지었다. 제이가 옆에서 ‘저 비열해 보이는 표정은 디폴트인가’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제 발로 창피를 당하러 왔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캐시가 여유롭게 맞받아쳤다.
이미 연습 때보다 더욱 훌륭하게 공연을 끝낸 마테오는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밴드부를 훑어보고는, 거만한 걸음걸이로 지나쳤다.
“웩, 재수 없어.”
아니사의 중얼거림에 조지가 빵 터졌다.
“얘들아, 얼른 와.”
먼저 앞서간 페니가 아이들을 불렀다. 밴드부원과 담당 선생님은 사이좋게 무대 준비를 시작했다.
삼십 분.
부지런히 준비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여기, 정리 끝났으니까 확인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타자 소리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이 가득한 사무실 안.
“오늘 캐시가 공연한다고 했죠? 얼른 가보세요.”
“고마워요, 레이.”
“천만에요. 저번에 제가 도움을 받았잖아요. 갚는 거라고 생각해요.”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한 멜라니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고는, 급하게 의자에 걸친 외투와 핸드백을 들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탁.
차에 올라탄 멜라니가 시동을 걸었다. 다시금 시간을 확인한 멜라니가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검은 차가 빠져나오고.
“What the….”
오늘따라 도로에 가득한 차량에 멜라니가 한숨을 삼켰다.
* * *
“준비는 다 끝났는데….”
페니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거의 좀비가 친구하자고 어깨동무할 것 같은 아이들이 있었다. 엘비는 원래 하얗던 피부를 더욱 창백하게 물들이고 있었고, 조지는 그 등을 토닥여주고 있었는데 힘 조절을 못 해서 엘비가 어지러워하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홍보가 너무 잘됐나 봐….”
아니사는 강박적으로 다리를 떨어댔고….
‘심지어 캐시까지.’
캐시의 담임 선생님이자, 밴드부 담당 선생님의 눈에는 캐시가 안절부절못하는 게 훤히 보였다. 설마하니 캐시까지 불안해할 줄이야.
마지막으로 페니의 시선이 제이에게로 닿았다.
제이는….
“지금은 강당 뒤편의 화장실이 여유로울 거야.”
“아니거든?”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니 부정할 필요 없….”
“꺼져.”
음, 걱정할 필요 없겠군.
관객들은 페니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캐시가 저 오인방 중에서 제일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볼수록 제이 로빈이 제일 이상했다.
앞머리만 까면 사람이 달라지는 주제에 너드처럼 하고 다니질 않나, 겁은 많으면서 계속 캐시한테 기어오르질 않나, 게임 폐인 주제에 드럼 천재이질 않나, 게다가 무대 체질인지 모두가 변비 걸린 것처럼 하얗게 뜬 얼굴을 하고 있을 때 홀로 멀뚱멀뚱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오혜은이 생각했다.
‘제이 로빈이 신스틸러라더니.’
진성 잼잼이인 그녀는 이미 팬 카페를 통해 영화의 평론을 확인한 후였다. 확실히, 홀로 4차원의 세계에 가 있는 제이는 신스틸러가 맞았다.
안경을 썼을 때도 그랬는데, 벗으니까 더했다. 오혜은은 안경을 씌운 게 사실 캐릭터성 때문이 아니라 너무 존재감이 강해서가 아닌가 하는 합당한 의심이 들었다.
“이제 곧이야.”
아니사가 속삭이듯이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강당은 잠시 밖에 휴식을 취하거나 축제를 즐기러 갔던 사람들이 돌아와 빽빽하게 채워지고 있었다. 록 밴드라는 게 흥미를 자극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홍보가 잘된 건지, 오케스트라부의 관객보다 더 많은 인원이 모인 거 같았다.
페니가 마지막으로 점검을 마치고 내려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걱정 어린 눈빛이 아이들에게 닿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시간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격려의 응원 정도가 전부였다.
- 아, 아.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곧 공연이….
진행자가 나와서 관객들을 조용히 시키기 시작했다. 시끌벅적하던 강당은 점차 조용해져 갔다.
카메라가 복작복작한 객석을 향했다. 객석 끝, 한 남자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오, 실례합니다.”
몇 번이고 사과하며 틈새를 파고 들어가, 적당한 자리를 잡은 벤튼이 벽에 기대어 섰다. 무대와 가깝지는 않지만, 이쪽 방향에서 볼 때 장애물이 없어서 무대가 잘 보였다.
그때, 앞에 있던 사람이 실수로 팔꿈치로 벤튼을 쳤다. 그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사람이 참 많군요.”
“그렇죠? 딸이 이걸 꼭 보러 오자고 했는데, 이렇게 복잡할 줄은 몰랐네요.”
“오, 굉장히 사랑스러운 아가씨네요. 안녕, 이름이 뭐니?”
“에밀리요.”
“반가워, 에밀리.”
아빠의 다리 뒤에 숨는 에밀리를 흐뭇하게 보고 있는데, 남자가 물었다.
“혼자 보러 오신 건가요?”
“아, 제 딸은….”
- 산타 모니카 초등학교 밴드부, 괴짜들입니다. 연주할 곡의 제목은 , 작곡 캐시 와일드, 작사 괴짜들입니다!
괴짜라는 말이 연속으로 세 번 등장하자 강당의 객석에서 다발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제 나와요.”
벤튼의 시선이 무대로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 남자도 무대를 바라보았다.
“제 딸이, 보컬이거든요.”
그렇게 말한 벤튼의 미소를 마지막으로 강당의 불이 꺼졌다.
* * *
커튼이 열리는 짧은 찰나.
푸른 눈이 무대 아래를 샅샅이 훑었다. 그럼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원하는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왔을까, 오지 않았을까.
캐시가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이번에는 푸른 눈이 뒤쪽을 향했다. 아이들이 모두 캐시를 보고 있었다. 잠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던 캐시가, 이내 자신만만한 특유의 미소를 걸치곤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그 순간.
치잉-!
드럼의 심벌 소리가 울렸다.
나는 언제나 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했다.
타앗.
무대 위로 푸른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스탠드 마이크를 앞에 두고 선 캐시, 양옆의 조지와 엘비, 조금 더 뒤쪽에 있는 아니사와 제이까지. 카메라가 점점 뒤로 물러나며 무대 전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반주가 흘러나왔다.
사실 아직도 궁금하긴 해.
카메라가 관객석을 비추며 고개나 발을 까딱이며 리듬을 타는 관중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닫혀 있던 강당 문이 조심스레 열리며, 한 여성이 강당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모든 영화의 주인공이 정답을 찾고 이야기가 완벽한 엔딩을 맞이하는 건 아니다.
작은 손이 마이크를 쥐었다.
푸른 조명 아래서도 유난하게 선명한 색채를 자랑하는, 맑은 날의 바다 같은 눈동자가 즐거움으로 반짝였다.
고개를 기울이고, 마이크에 입을 가까이 댄 캐시가 시작을 알리듯이 눈을 한번 깜빡였다.
Look around, the world is upside down.
주위를 둘러봐, 세상이 거꾸로잖아.
첫 마디를 듣는 순간 지윤정은 소리 없이 감탄했다. 보편적인 미성은 아니었으나, 살짝 긁는 듯한 허스키한 소녀의 목소리는 독특했고,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캐시가 관객석을 응시했다.
Shining stars fall to the ground.
빛나던 별들이 땅에 떨어지고.
Walkin on the streets is just corpses.
거리를 걷는 건 온통 시체뿐.
카메라가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비췄다.
풍성한 머리카락을 풀어 헤친 채 키보드를 치는 아니사, 하얀 뺨을 붉게 물들이고 기타를 치는 엘비, 넥타이를 뒤로 맨 채 박자를 타는 조지, 푸른 조명 아래 하트 머리띠가 유독 눈에 띄는 제이까지.
I feel like I’ve become a dolt.
내가 멍청이가 된 기분이야.
카메라가 관객석으로 향했다.
조금 더 앞에 가서 보기 위해 이동하던 멜라니가 누군가와 부딪히고 넘어질 뻔한 순간, 팔을 잡아채는 손이 있었다.
“아, 감사합….”
멜라니의 눈이 커졌다.
“벤튼?”
They say, “Lower your head when you walk on the street.”
그들은 말해, 길을 걸을 땐 고개를 숙여.
“If not, you’ll fall.”
아니면 넌 넘어질 거야.
“…멜라니.”
두 사람이 어둠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벤튼이 머뭇거리다가,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평온하게 인사했다.
“오랜만이네.”
Can’t I fall or stumble?
넘어지고 비틀거리면 안 돼?
So tell me.
그러니 말해봐.
천천히 쌓아 올라가던 음악 소리가 고조되었다.
What are you gonna say?
너는 뭐라고 할 거야?
두 사람이 무대를 응시했다. 카메라가 위에서 아래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드럽게 이동하며 무대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타 소리가 폭발적으로 크게 울렸다.
Do I look weird?
내가 이상해 보여?
캐시가 고음을 내지르자마자,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나왔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힘을 품고 강당을 가득 채울 기세로 뻗어 나갔다.
Do I look like a freak?
내가 괴짜 같아?
Think whatever you want.
마음대로 생각해.
After all
어차피
캐시가 장난스레 웃었다.
Love, music, and dreams are all trash.
사랑, 음악, 꿈은 모두 쓰레기거든.
휘유!
관객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이미 의자에서 일어난 지 오래였다.
“…키티가, 당신을 많이 닮았네.”
벤튼이 애매한 얼굴로 흐리게 말했다.
멜라니가 침묵했다.
캐시가 마이크를 버리고 기타를 들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화려한 일렉 기타의 독주가 이어졌다.
환호하는 객석 사이.
금발을 뒤로 넘긴 마테오가 얼굴을 있는 대로 구겼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소년의 옆에는 얼빠진 얼굴을 한 교감 선생님이 있었다.
“저 아이들 정말 멋진데요? 이렇게 멋진 공연은 처음이에요!”
옆 학교 교장의 말에 교감의 얼굴이 파삭, 굳어버렸다. 그녀가 웃는 건지, 뺨을 떠는 건지 모르는 표정으로 말했다.
“오… 너무 띄워주실 필요 없어요.”
“띄워주다니! 이건 백 퍼센트의 진심입니다.”
그리 말한 교장이 호우! 하는 소리를 내며 리듬을 탔다. 그의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도 박자에 맞춰 흔들렸다.
하하… 어색하게 웃던 교감의 얼굴이 이내 썩어 들어갔다.
화려하게 무대를 휘어잡던 캐시가 마이크를 다시 거칠게 잡아챘다.
Look here, We’re totally upside down.
여기를 봐, 우린 완전히 거꾸로잖아.
노래를 부르던 캐시가 엘비에게 다가갔다. 엘비에게 어깨동무를 한 캐시가 노래를 불렀다.
Don’t call me fatty or crybaby.
날 뚱뚱보나 울보라고 부르지 마.
I’m just a nutty freak.
난 그냥 조금 정신 나간 괴짜일 뿐.
If you think I’ve become stupid, that’s true.
내가 멍청해진 것 같다면, 그건 사실이야.
가사가 끝나기 전, 주먹을 들어 올려 엘비와 마주친 캐시가 이번에는 드럼 쪽으로 향했다.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가사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Rock is dizzy like a whirlpool of entropy.
록은 엔트로피의 소용돌이처럼 어지럽지만.
But this moment won’t be bad.
이 순간은 나쁘지 않을 거야.
휘익.
제이가 허공으로 스틱을 날렸다.
카메라 화면이 스틱을 따라갔다가, 스틱과 같이 하강했다. 이내 멋지게 스틱을 잡아챈 제이가 강하게 베이스 드럼을 내리쳤다. 화려한 기술에 관중들이 반응을 보였다.
산책하듯 무대 위를 걸어 다니던 캐시가 이번에는 키보드 앞에 멈춰 섰다.
They say, “Get good grades and be a good girl.”
그들은 말해, 좋은 성적을 받고 착하게 굴어.
“If not, you’ll fall.”
아니면 넌 넘어질 거야.
키보드를 치던 아니사가 가볍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웃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조지가 파고들었다. 불쑥 끼어든 조지가 캐시의 마이크에 대고 같이 노래를 불렀다.
Can’t we just go crazy on the stage?
그냥 무대 위에서 날뛰면 안 되는 거야?
웃으며 두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한 캐시가 중앙으로 돌아왔다.
So tell me.
그러니 말해봐.
그때.
캐시의 푸른 눈이 커졌다.
이내, 지금껏 본 적 없을 정도로 기쁨에 찬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What are you gonna say?
너는 뭐라고 할 거야?
캐시는 오랫동안 찾던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행복해 보였다. 캐시가 흥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가, 다시금 객석을 보았다.
팔을 들어 올리며 열광하는 사람들을 본 캐시가 특유의 짓궂은 미소를 씨익 지었다.
그리고 반주 소리가 멎었다.
정적 속에서 캐시가 친구에게 말하듯이 태연한 어조로 가사를 내뱉었다.
To be honest, don’t care what the hell you say.
사실은, 네가 뭐라든 상관없어.
말하는 듯한 태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캐시의 말이 끝나는 순간, 터질 듯이 한꺼번에 모든 악기의 소리가 섞여들었다.
와아! 휘익!
유쾌한 낯을 한 관중들이 터질 듯한 음악에 환호했다.
“…내가 아니라 당신을 닮은 거 같은데?”
“…….”
멜라니가 이마를 짚고 벤튼이 침묵했다.
그러다 두 사람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Do I look weird?
내가 이상해 보여?
Do I look like a freak?
내가 괴짜 같아?
Think whatever you want.
마음대로 생각해.
After all
어차피
Love, music, and dreams are all trash.
사랑, 음악, 꿈은 모두 쓰레기거든.
‘All trash!’ 관객들이 쓰레기를 부르짖었다. 잔뜩 신난 얼굴로 제일 크게 쓰레기를 외치는 딸의 부모는 골치 아프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반응을 알 리 없는 캐시가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이제 멜라니와 벤튼은 완전히 풀린 낯으로 무대를 보았다.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도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Do I look weird?
내가 이상해 보여?
Do I look like a freak?
내가 괴짜 같아?
이젠 거의 열광이었다.
관중들이 방방 뛰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중독성 있는 후렴구는 음이 많이 높지도 않고 리듬도 간단해서, 따라 부르기가 어렵지 않았다.
마테오 주변의 친구들마저 마테오를 잊고 방방 뛰며 노래 부르기 시작했다. 삼류 악당처럼 씩씩거리던 마테오가 등을 돌려 무대로부터 멀어졌다.
Think whatever you want.
마음대로 생각해.
“오늘 캐시랑 외식할 건데.”
멜라니가 꺼낸 서두에 벤튼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멜라니가 고개를 들어 벤튼을 응시했다.
“당신도 올래?”
벤튼이 말문이 막힌 듯 멍한 눈으로 멜라니를 보았다가, 혹여라도 말을 무를까 두려워 다급히 말했다.
“…무조건 갈게. 무조건!”
“…그래.”
After all
어차피
Love, music, and dreams are all trash.
사랑, 음악, 꿈은 모두 쓰레기거든.
“새로운 직장 얘기도 좀 궁금하고.”
멜라니가 말했다.
그들은 오늘 나눠야 할 말이 매우 많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가벼웠다.
카메라가 관객석을 멀리서 비추다가, 무대를 클로즈업했다. 웃음을 터트리는 캐시가 화면에 가득 찼다. 푸른 눈동자가 조명을 받아 반짝이며 빛났다.
그러니까.
노래 부를 때와는 다른, 장난기가 담긴 목소리였다.
괴짜인 것도 나쁘지 않잖아?
탁.
소리가 끊기며, 화면이 점멸했다.
* * *
순식간에 조용해진 극장이 영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화면에 흰 글씨가 떠올랐다. 느릿하게 올라가는 글자들은 엔딩 스크롤이었다.
조금씩, 상영관 내부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쉽사리 자리를 뜨는 사람은 없었다.
오혜은과 지윤정도 영화가 끝났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그렇다고 입을 열지도 않은 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건 오혜은이었다.
“영화 끝났나 봐.”
“그러게.”
침묵이 이어지고.
“이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또다시 침묵.
이번에 먼저 입을 연 건 지윤정이었다.
“미쳤나 봐.”
오혜은이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방금까지 무슨 록 페스티벌 현장에 있었다가 축제가 끝난 느낌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봤을 뿐인데, 콘서트 가서 몇 시간 동안 뛰어다닌 것처럼 탈력감이 들었다.
나름 깔끔한 엔딩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여운이 안 가셨다. 자꾸 아쉬워서 엉덩이가 의자에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그때, 오혜은이 아! 하는 소리를 내었다.
“이거, 쿠키 영상 있어!”
“보고 가자.”
단호할 정도로 즉답이 돌아왔다.
역시 내 친구.
지윤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오혜은이 편안한 영화관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다시 관람 모드가 된 두 사람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