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236)화 (237/582)

제236화. Xmas Movie (14)

화면이 도로 밝아졌다.

잡동사니가 가득한 밴드부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탓에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는 먼지들이 눈에 보였다. 그 가운데, 심각한 얼굴을 하고 둥글게 둘러앉은 아이들이 보였다.

“일단 공연할 장소는 구했어.”

끄덕.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캐시가 날카롭게 눈을 번뜩였다.

“작년에 가장 관객이 많았던 동아리가 어디지?”

“오케스트라부야.”

아니사가 곧장 대답했다.

“오케스트라부는 워낙 유명하다 보니 언제나 관객이 많았어. 하지만 밴드부는 이번에 새로 만들어졌으니까, 다들 잘 모를 거야.”

“관건은 관객 확보라는 소리군….”

제이가 진지한 낯으로 말했고.

“구경하러 오게 하려면 우리가 이런 공연을 할 거란 걸 알려야 하잖아?”

“호, 홍보 말하는 거지?”

차례대로 조지, 엘비였다.

짝!

“그래, 홍보!”

캐시가 좋은 생각이라고 박수를 치자, 아이들은 홍보 계획에 대해 저마다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지윤정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았다. 본 상영 때에도 푸슬푸슬한 분위기가 좋았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니 왠지 모르게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캐시가 손을 들어 올려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핵심을 요약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관심을 끌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소리잖아.”

“그렇지. 사실 오케스트라부는 별로 홍보할 필요가 없긴 하지만, 작년에는 마테오가 홍보지를 돌려서 여자애들이 많이 왔었어.”

“뭐라고? 왜?”

진심으로 의아한 표정에 아니사가 뭘 묻냐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수 없지만 잘생겼잖아.”

“아, 맞아. 걔가 우리 학년에서 제일 인기 많아. 인기투표에서 매번 일등 하던데.”

“뭐어? 우웩.”

조지가 거들자, 캐시가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캐시의 반응이 재밌었는지, 조지가 실실 웃으며 인기투표에 대해 줄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인기투표라고 하니까 무슨 하이틴 로맨스 같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한 지윤정이 자신이 한 생각이 웃겨서 피식 웃었다. 영화 내용을 생각해보면 절대 생길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지윤정은 웃을 수 없었다.

캐시가 탐색의 눈길로 제이를 샅샅이 훑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안경 한번….”

멈칫.

의미심장한 투로 말하던 캐시가 말끝을 흐리다가, 이내 혼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저었다.

설마.

관객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됐다, 내가 무슨 생각을…?”

“…어, 안경 벗어보라는 줄 알고 벗었는데… 다시 쓸까?”

그 ‘설마’는 사실이 되었다.

흐억, 옆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렸다. 보나 마나 오혜은이겠지. 지윤정은 굳이 고개를 돌리는 대신, 화면에 집중했다.

아이들의 경악 어린 얼굴이 아주 느릿하게 슬로 모션으로 보였다. 동시에, 쓸데없이 청춘스러운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살짝 숙였던 제이가 눈을 찡그리며 한 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햇살 위를 둥둥 떠다니던 먼지가 마치 반짝이는 별 가루처럼 주변을 수놓았고 제이의 이마가 햇살을 정면으로 맞아 매끄럽게 빛났다.

사르륵.

머리카락이 다시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며, 긴 속눈썹이 드리워졌다가 위로 올라갔다. 흩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검은 눈동자 위로 햇빛의 색이 덧입혀졌다.

아, 나 이런 거 본 적 있는데.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시감에 눈매를 찡그리며 끙끙대던 지윤정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맞아! 포0리 스웨트 CF!’

제이가 눈을 내리떴다.

살짝 내리깔아 반쯤 보이는 검은 눈은 배경 음악과 어우러져 우수에 차 보였다.

정작 본인은 전날 클리어하지 못한 스테이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따위를 떠올리고 있더라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근심 어린 미소년이었다.

“Oh my god….”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린 아니사가, 약간은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겼는데?”

눈을 의심하는 듯, 얼이 나간 아니사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화면이 어두워졌다.

* * *

그래서 이게 뭐지.

멍한 표정을 짓는 건 비단 지윤정뿐이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 이거 뭔데.

분명 장르는 코미디, 드라마 이쪽이었다. 실제로 영화도 그런 느낌이 가득했고. 그런데 갑자기 하이틴 로맨스로 장르가 변경되었다. 대충 제목은 ‘안경을 벗었더니 내가 미소년?’, ‘너드가 미모를 숨김’ 이런 느낌으로….

아주 강렬한 쿠키 영상에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사이.

화면이 다시 밝아지며 끝난 줄 알았던 쿠키 영상이 이어졌다.

* * *

“이, 이이….”

마테오가 분한 듯 얼굴을 붉히고 콧김을 씩씩 내뿜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복도, 게시판 앞.

한 남성이 스티커를 게시판에 붙였다. 마테오의 얼굴이 좀 밝아졌다가, 남성이 ‘오, 이런 삐져 나갔군.’이라고 말하며 스티커를 떼어내 그 옆으로 옮기자 구정물을 삼킨 사람처럼 일그러졌다.

캐시가 마테오를 응시하며 보란 듯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거만한 미소를 장착한 엘비가 있었다. 마테오가 기가 차 노려보자, 엘비가 양쪽 눈썹을 올렸다가 내리며 어깨를 쫙 폈다.

“…엘피그 주제에!”

“과거의 나는 잊어. 이젠 괴짜 엘비라고 불러줘.”

좋은 걸까, 애 성격을 버린 걸까?

제이는 참 오묘한 낯으로 엘비와 캐시를 번갈아 보다가, 결국 어깨를 으쓱하고는 주머니에서 게임기를 꺼냈다. 하트 머리띠는 여전하지만, 어느새 동글이 안경은 다시 장착한 후였다.

그리고.

탁.

의 OST가 흘러나왔다.

* * *

화면에는 색색의 선들이 거친 붓질처럼 움직이며, 일렉 기타, 키보드, 드럼 같은 그림들을 그려내었다. 동시에 들리는 OST는 이제 쿠키 영상까지 완벽하게 끝이 났음을 의미했다.

관객들은 멍하니 있던 것도 잠시.

곧 얼굴에 유쾌한 미소를 띠거나, 만족스러움을 가득 담은 표정을 지었다.

상영관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일반적으로 영화 상영이 끝났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떠들썩했다. 저마다 쿠키 영상에 대해 떠드는 탓이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지윤정과 오혜은도 있었다.

“진짜 쿠키 대박이야. 아까 영화 끝났을 때는 뭔가 아쉬웠는데 지금은 완전 개운해.”

캐시의 독백을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났을 때, 지윤정은 아쉬움이 끈덕지게 남아 자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이라면 여운을 좀 곱씹더라도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그건 쿠키 영상의 영향이었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대담한 장르 드리프트를 선보이며 혼을 쏙 빼놓더니, 두 번째 쿠키 영상에서 축제의 결과를 암시-사실상 완전히 보여줬다-해서 이야기의 결말을 마무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영화 내내 소심하게 나왔던 엘비의 태세 전환도 굉장히 웃겨서 유쾌했다.

“나도, 나도.”

지윤정의 의견에 오혜은이 동의했다. 두 사람은 기분 좋게 웃음을 터트리며 사이좋게 상영관을 나왔다.

“보러 오길 잘했다.”

지윤정의 말에 오혜은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치? 앞으로 이 언니 말을 잘 들으란 말이야.”

“언니는 무슨.”

지윤정이 팔을 툭 치자, 오혜은도 똑같이 툭 쳤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별일 아닌 일로도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다가, 포스터가 든 진열대를 발견하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포스터를 챙겼다.

이미 하나가 있었지만, 그건 소장용이고 언제나 그렇듯 전시용은 따로 필요한 법이었다.

* * *

[ 올 겨울 최고의 영화!]

[쿠키 영상 화제?! 제작진의 유쾌한 시도!]

[‘Freak!’ 12월 둘째 주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국내 성적은?]

[오랜만에 탄생한 명작! 줄거리 및 평점!]

[극장을 휩쓴 천재 아역들… ‘Freak!’ 연일 화제]

[코미디? 하이틴? 쿠키 영상, 제이 로빈의 꽃미모 화제!]

[국내 네티즌 반응… ‘역시 이도현’]

* * *

[Utube]

[이도현 출연! 괴짜들이 모였다! (Freak!) *영화 리뷰]

이 국내에서 개봉하고 일주일. 

유튜브에서는 연일 알고리즘에 ‘ 리뷰’ 혹은 ‘ 명장면’을 띄웠고, 이걸 본 사람들은 다시 영화를 보러 가는 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도현 출연, 'Freak!' 흥행 성적은?]

지난주에 국내에서 개봉한 이 극장을 휩쓸었다. 은 코미디, 음악 장르의 영화로, 캐시 와일드(주연, 루카 하퍼 출연)를 중심으로 모인 밴드부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북미 지역에서 해당 영화는 비록 12월 셋째 주에 개봉한 페어리사의 히어로 영화, <어스 오브 히어로>에 밀려 순위가 한 칸 내려갔지만, 개봉 주인 12월 첫째 주에는 북미 박스오피스 1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국내에서는 이도현 배우의 인기에 힘입어 <어스 오브 히어로>에 밀리지 않는 흥행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총 3,700만 불의 투자로 촬영한 은 북미에서 8,200만 불의 매출액을 달성,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는 1억 5천만….

- 북미 박스오피스 1위 ㅎㄷㄷ

⌞진짜 미친 듯

⌞아직 어린데 정말 대단하네요

⌞마음이 웅장해진다 ㅠㅠ 도현아 네가 최고야

- 이도현 영화 망할 거라던 사람들 어디 감? ㅋㅋㅋ

⌞ㅋㅋㅋㅋㅋ다들 방구석에서 부들부들 떠는 중입니다^^

⌞속 시원^^

⌞이게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

⌞개봉하기 전에 이도현 한국인이라고 추켜세우는 것도 이제 끝났다고 거품 걷힐 거라고 개소리하던 사람들이 있었음 ㅇㅇ

⌞ㄹㅇ 열등감 덩어리들

⌞헐 미친 몰랐네 알려줘서 ㄱㅅㄱㅅ

⌞한국인이든 뭐든 어린애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굳이 아득바득 까 내리려는 사람들 진짜 추하다…

⌞원래 어스 오브 히어로에 비비지도 못할 거 국뽕 덕분에 꿀 빠네 ㅋ

⌞난독 있으세요? 북미 박스오피스 1위 했다는 거 혹시 안 보이세요?

⌞선택적 난독인 듯;

⌞쓰레기 생산할 시간에 부모님께 효도나 하세요^^

- 엄마랑 영화 진짜 재밌게 봤는데 성적도 좋네요!

- 클래식 전공인데 록은 못 참지

⌞ㅇㅈㅋㅋㅋㅋㅋㅋ 나돜ㅋㅋㅋ 나 같은 사람 또 있을 줄 몰랐네

- 도현아 진짜 수고했어 ㅠㅠ 너무 자랑스럽다

은 여러 방면에서 화제가 되었다.

하나는 상영관에서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쿠키 장면이었다.

[(Movie Clip) ‘Freak!’ 전설의 그 장면]

- 순식간에 장르 변경 완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이거 원래 하이틴 로맨스물 아니었나요?

⌞맞아요^^

⌞ㅇㅇ 물구나무서서 봐도 로맨스 맞죠

⌞저 이 영화 아직 안 봤는데 진짜 그런 내용인가요?

⌞ㅇㅇ

⌞네 도현이가 맡은 배역이 제이인데, 안경 쓰고 너드같이 다니는 거 캐시가 꾸며줘서 학교 인기스타 되는 내용이에요!

⌞마테오라고 잘생긴 애 있는데 걔랑 캐시랑 제이랑 해서 삼각관계로 나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아니 이 사람들잌ㅋㅋㅋㅋㅋㅋㅋ

⌞순진한 사람 속여먹지 맙시다ㅋㅋㅋㅋㅋ

- 진짜 10번째 돌려 보는 중… 감독님 이런다고 제가 좋아할 줄 알았다면 오예입니다

⌞난 12번째…

⌞2222

⌞더 달라구요! 부족하다고요!!

- 거짓말 안 치고 이거 나오기 전에 쿠키 영상 있는지 모르고 나가는 사람들이랑 떠드는 사람들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나오는 순간 상영관 개조용해짐ㅋㅋㅋㅋㅋㅋㅋ

⌞엌ㅋㅋㅋㅋ 나도 그랬음

⌞혹시 저랑 같은 상영관에 계셨나욬ㅋㅋㅋㅋㅋㅋ 개똑같네

⌞개봉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 도현이가 신스틸러라고 했는데 진짜 적절한 비유였음

⌞ㅇㅈㅇㅈ

그리고 다른 하나는.

[괴짜들! Freak! - Freak]

마지막 공연 장면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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