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242)화 (243/582)

제242화. Xmas Movie (20)

NMC 방송국에 방문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불량경찰>을 찍을 당시가 2학년 여름 방학이었으니, 거의 2년 만이기도 했다.

도현은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방송국에 들어갔다. 도현의 방문에 놀란 듯하던 직원은 금방 표정을 관리하고는 스튜디오로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스튜디오.

방은 방 안에 또 방이 있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가운데에 통유리가 달려 안의 모습을 훤히 볼 수 있었다. 안쪽에 있는 방은 둥근 테이블 위에 몇 개인지 궁금할 정도로 마이크가 잔뜩 늘어져 있었고, 뒤에는 까만 커튼이 쳐져 있었다. 촬영하는 공간 같았다.

도현은 빠르게 훑던 것을 멈추곤 저를 보는 사람들을 향해 웃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이도현입니다.”

“잘 왔어요!”

벌떡 일어난 김윤성이 도현의 앞으로 걸어갔다.

“라디오 진행자 김윤성이에요. 이렇게 와줘서 정말정말 고마워요. 내가 출연 확정되고 얼마나 기쁜지 춤까지 췄다니까요. 이거 순도 백 프로 진심이에요.”

“아하하, 네. 저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와. 손잡았어, 대박.”

“저도 악수할래요!”

“어허, 김 작가. 순서를 지켜야지.”

변준호 프로듀서가 스윽, 손을 내밀었다. 도현은 얼떨결에 그 손을 마주 잡았다. 한 번 힘 있게 손을 흔든 변준호 프로듀서가 복덩이를 보는 흐뭇한 눈으로 도현을 보며 말했다.

“가족이랑 영화관에서 봤어요. 아주 멋진 영화였어요. 특히 마지막에 연주 정말 멋지더라고. 내 아들이 그거 보고 요즘 드럼 치겠다고 난리도 아니야.”

“아, 고맙습니다.”

“프로듀서님. 혼자만 독차지하면 어떡해요. 저도 인사할래요.”

도현은 이어서 세 명의 작가와 줄줄이 인사를 나눴다. 어지러워하는 도현의 모습에 김윤성이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좀 정신없죠? 우리 라디오가 그래요. 사람이 적어서 그런가, 다들 친해서 이런 분위기죠.”

“다들 유쾌하시네요.”

스태프하고도 인사를 나눈 후에야 길고 긴 인사 나누기가 끝이 났다. 도현은 아직 라디오는 시작도 안 했는데 지친 기분이었다.

“대본은 미리 받았죠? 거기에 있는 질문들 위주로 물어볼 거예요. 혹시 궁금한 거 있어요?”

김윤성의 질문에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김윤성이 알아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도현은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알다시피 라디오는 생방송으로 진행하니까. 혹시 중간에 당황하거나 할 말 없으면 자리 앞에 컴퓨터 있거든요. 그 화면 봐요. 거기에 김 작가가 대본 띄워줄 거예요.”

기본적으로 미리 받은 질문에 대답하지만, 생방송으로 진행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생기는 법이었다. 그런 방송 사고를 막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아, 그리고 화면에 라디오 시청자들 댓글도 올라오거든요. 걸러내기는 할 테지만 혹시라도 안 좋은 말이 올라와도 반응하면 안 돼요. 그런 건 다 소수의 의견이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도 말고요.”

주의 사항을 들으며 스태프가 건네는 물을 받았다. 목이 건조하지 않게 목을 축인 후, 오늘의 음악 코너 및 시청자 사연 코너가 지난 후 인터뷰 코너가 시작될 거란 이야길 들었다.

필요한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김윤성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 라디오를 골랐어요? 물론, 우리 라디오가 좀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긴 한데, 다른 곳에서도 연락이 많이 갔을 거 아니에요.”

“뭘 그런 걸 묻고 그래요! 출연해주면 좋은 거지!”

“아, 당연히 나도 좋지. 김 작가도 내가 춤추는 거 봤잖아.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우리 프로 말고는 출연 안 한다니까.”

정말 별 이유 없었던 도현이 손으로 뺨을 쓸었다. 습관이었다.

“토크쇼는 출연해본 적이 있어서요. 섭외도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다 보니….”

말을 끝까지 잇지는 않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충 다 알아들은 거 같았다.

“아무튼 출연해줘서 고마워요. 아, 이 소리 아까도 했던가? 우리가 워낙 기뻐했어야 말이지.”

변준호 프로듀서의 넉살 좋은 말에 도현이 살짝 웃었다. 그들은 타깃을 도현에게서 이장혁으로 바꾸고선 말을 걸기 시작했다. 예의상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정말 그에게 호기심을 갖는 거 같기도 했다.

“이런 아들 있으셔서 정말 자랑스러우시겠어요.”

“그럼요. 제 인생 최대의 행운이죠.”

잠시 이야기가 오간 후.

“이제 슬슬 준비해야 해요.”

스태프의 말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차츰 정리되었다. 김윤성은 먼저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도현이 나오는 코너 말고도 두 개의 코너가 있기 때문이었다.

김윤성이 자리를 잡고.

바깥쪽 방에 있던 프로듀서가 신호를 보냈다. 도현과 이장혁은 나란히 소파에 앉아 신기한 눈으로 그 모습을 구경했다.

가장 먼저 최근 유행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어요. 김윤성의 휴식 시간입니다.”

라디오가 시작되었다.

김윤성은 능수능란하게 라디오를 진행했다.

도현은 라디오의 출연자로서는 자격 미달일지 모르겠지만, 라디오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딱히 접할 기회도 없었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왜 듣는지 알 것 같아.’

물 흐르듯 흘러가는 진행이 혼을 쏙 빼놓았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밤에 듣기에 적당한 방송이었다.

어느새 청취자 모드가 되어서 라디오에 집중하고 있는 도현을 본 이장혁이 픽 웃었다. 한번 집중하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성격은 서혜나를 꼭 닮았다.

지금도 스태프랑 작가들이 도현을 흘끔대고 있는데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었다.

“네. 아까부터 시청자분들 반응이 격렬한데요. 오래 기다리셨죠. 노래 세 곡만 듣고 다음 코너로 넘어가겠습니다. 여러분이 애타게 기다리셨던, 스타와의 인터뷰 코너입니다. 오늘 나올 게스트가 누구인지는 아시죠? 모르는 분들도 있을 거 같으니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드럼을 잘 쳐요. 음… 그리고 안경이 아주 잘 어울리는 그분이요. 안경도 잘 어울리지만 벗으면 더 잘생겼죠?”

저거 내 소개인가.

“오, 반응이 엄청난데요. 어렵게 모신 보람이 있네요. 하하, 여기서 끊으면 원성이 자자할 거 같은데… 이런. 잠깐 노래 감상 후 다시 뵙겠습니다. 이번에 나올 노래는 레인의 <푸른 하늘>입니다.”

김윤성의 말이 끝나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윤성이 헤드셋을 벗고 방 밖으로 나왔다.

자연스레 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오래 기다렸죠.”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에이, 기다리다 지루했다고 해도 넘어가려고 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기분 좋은 기색이었다. 김윤성이 즐거운 얼굴로 변준호 프로듀서한테 말을 걸었다.

“시청자 반응 봤어요? 그렇게 댓글 빨리 넘어가는 거 강이든 배우 이후 거의 처음인데.”

“강이든 선배님이요?”

익숙한 이름에 도현이 반응했다.

“아, 둘이 드라마 촬영 때 본 적 있죠? 저번에 게스트가 강이든 씨였거든요. 그때 반응이 엄청났는데… 지금도 못지않네요. 매번 이렇게 반응 좋으면 얼마나 좋아.”

장난스럽게 덧붙인 말에 사람들이 웃었다.

도현은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이름이 떠오르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강이든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그에게 처음으로 연기로 충격을 준 사람이었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이도현 씨가 우리 프로 복덩이예요, 복덩이.”

도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라디오 출연 소식이 확정되자마자 기사가 크게 났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반응이 그렇게 좋은가. 한국에서의 인기를 잘 모르는 도현은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 이제 들어갑시다. 세 곡 금방 끝나니까 이리로 와요.”

도현은 김윤성을 따라,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통유리 너머 아빠가 주먹을 들어 올리며 응원하는 게 보였다. 도현은 대답 대신 웃어 보였다.

“책상이 좀 지저분하죠. 마이크가 많아서….”

“괜찮아요.”

도현이 자리에 앉았다. 말한 대로 바로 앞에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저쪽에서 카메라가 돌아갈 거거든요. 좀 바쁘겠지만 카메라도 틈틈이 봐주고, 제가 질문할 땐 제 쪽도 봐주고, 말이 생각 안 날 때나 시청자 반응 볼 때는 컴퓨터 화면을 봐주세요. 하하, 이렇게 말하니까 뭐가 많네.”

컴퓨터는 약간 비스듬히 놓여 있어서 고개를 돌릴 필요도 없이 시선만 올리면 카메라와 정면인 구도였다.

도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세 번째 곡이 끝났다.

“오래 기다리셨죠? 김윤성의 휴식 시간, 스타와의 인터뷰 코너입니다. 오늘의 게스트는… 배우 이도현입니다! 도현 씨, 카메라 보고 한 번만 인사해 주세요.”

도현이 유려하게 입술을 끌어 올리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도현입니다.”

* * *

나왔다, 방송 모드 이도현.

이장혁이 그런 생각을 하며 웃었다. 도현이 방송이 시작하기 전에는 아닌 척 덜덜 떨다가, 카메라만 돌아가면 갑자기 능숙해지고 여유로워져서 서혜나와 이장혁이 붙인 이름이었다.

“지금이 방학이죠? 겨울 방학?”

“네, 맞아요.”

“한국에는 방학을 맞이해서 놀러 온 건가요?”

“네. 정확히는 쉬러 왔어요. 집에서 잠만 자는 중이에요.”

“그렇게 쉬는 와중에 우리 라디오에 출연해 주셨네요.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하하, 네. 저도 감사합니다.”

“잠깐, 댓글이 엄청 올라오네요. 김아영 님, ‘도현이 너무 예뻐요. 인사하는데 화면이 너무 밝아져서 조명 켠 줄 알았어요.’ 화면조차 밝게 만드는 미모, 인정합니다. 도현아이모야 님, ‘도현아 네가 내 빛이야. 하늘에 별이 사라져도 네가 빛나니까 괜찮아.’ 아~ 열렬한 팬이시네요.”

“어… 가, 감사합니다.”

그러나 방송 모드 이도현도 이런 직접적인 애정 표현을 견뎌내긴 어려웠나 보다. 도현의 눈이 떨렸다. 스태프들이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아, 우리 도현 씨가 너무 당황하네요. 혹시 이런 댓글 본 적 없어요?”

“제가 인터넷을 잘 안 해서요….”

“오, 그러면 인터넷 안 하면 평소에 뭐 하면서 지내요?”

이건 미리 준비했던 질문이었다. 도현은 여유를 되찾고선 차분히 대답했다.

“주로 책을 많이 읽어요. 가끔 엄마랑 간단한 베이킹을 하기도 하고요.”

“베이킹! 베이킹 전 어렵던데.”

“엄마 취미가 베이킹이라서요. 옆에서 조금 거드는 정도예요.”

“오, 어머니 취미가 멋지시네요. 도현 씨는 책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가장 좋아하는 책이 뭐예요?”

이건 이장혁과 상의했던 부분이었다. 도현은 과거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제일 좋아했으며, 지금도 의미 있는 책이라고 말했으나 그가 보기에 인터뷰용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그야 도현이 얼마나 똑똑한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를 테니까. 혹여나 어떠한 부정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책은 다 좋아해서요. 딱히 더 좋아하는 책은 없고, 최근에 <엔트로피>를 읽고 있어요.”

“<엔트로피>요…?”

물론, 그렇다고 바꾼 선택지가 정상적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혜나와 이장혁의 우려 섞인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도현은 유명한 고전이면 되리라 생각했는지 <순수의 시대>, <죄와 벌>, <위대한 유산> 따위를 늘어놓다가 모두 퇴짜 맞자 결국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을 말했다.

두 사람은 잠깐 고민하다가 통과시켰다. 과학에 관심을 가진 아이가 호기심에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니까.

그들의 기준도 좀 잘못되었다는 걸 느끼지 못한 채였다.

“<엔트로피>면, 과학 서적 맞죠? 그, 500페이지는 넘는….”

“다행히 500페이지는 안 넘어요. 352페이지거든요.”

“어… 그건 몰랐네요. 과학을 좋아하나 봐요.”

“과학도 흥미롭지만… <엔트로피>는 영화에서 제가 맡은 배역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단어라서 흥미가 생겼어요.”

“아하! 그러고 보니 가사에도 있었죠. 저도 기억나요.”

납득할 만한 이유가 나와서인지 김윤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역시 천생 배우인가 봐요. 배역의 대사 때문에 관심이 생겨서 과학 서적까지 읽다니. 저 이렇게 열정적인 친구 굉장히 오랜만에 봐요.”

김윤성이 띄워주자 도현이 쑥스럽다는 듯이 옅게 웃었다.

그 얼굴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워 보여서, 이장혁은 유리창을 내려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어야 했다. 다행히도 그런 충동을 느낀 게 그뿐만이 아닌지 옆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김 작가였다.

그리고 같은 기분을 느끼는 이가 있었으니.

“미쳤나 봐! 지구 부셔!”

한창 라디오를 시청 중이던 오혜은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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