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309)화 (310/582)

제309화. 운명적 만남? (3)

지난 5월.

한국에는 한창 찌라시가 돌았다.

‘이도현이 초등학교 졸업 후 한국으로 온다’라는 내용의 찌라시였다. 장본인이 몇 년 전에 진행했던 라디오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그에 관해 정확한 대답을 내어놓지 않아서 찌라시는 그저 찌라시로만 남는 듯했으나….

어느 날부터 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이도현이 소속사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엔터 업계와 가까운 이들은 점차 그 찌라시를 진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솔 엔터테인먼트 서울 본사.

“…오늘 온다고 했죠?”

“네. 대표님, 진정하세요.”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새솔 엔터 대표 이사, 정한결이 버럭 소리쳤다. 그가 아침부터 곱게 다린 정장이 어디 구겨진 곳은 없나 세심히 살폈다.

새솔 엔터테인먼트 대표 정한결.

아역부터 시작해 젊었을 때는 안방극장에 출연하다가 후에 예능으로 대박이 났다. 예능인으로 성공했지만, 정한결은 여전히 배우의 꿈을 놓지 못했다. 그는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하는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저에게 있는 재능이 연기가 아니라 다른 것임을 깨달았다.

바로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는 것.

그 후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비록 배우로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제 손으로 빛나는 스타를 발굴하고 키워내고 싶다는 목표였다. 새솔은 그렇게 마음이 맞는 이들과 함께 설립한 배우 매니지먼트이자 크리에이티브 그룹이었다.

새솔에는 성인 배우도 있긴 했지만, 주로 아역 배우 양성에 힘을 썼다. 정한결 그가 아역 배우 시절 기회를 잡기 힘들어 고생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리고 7년 전만 해도 아역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가 흔치 않아 블루 오션이기도 했고.

새솔은 설립한 지 7년째에 접어들어 가니 아예 신생 회사는 아니었다. 하나, 다른 쟁쟁한, 이름만 들어도 아는 천만 관객 영화 주연들이 줄줄이 있는 대형 매니지먼트에 비해서 조금 부실한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처음 영어로 가득한 메일을 봤을 땐 스팸 메일인 줄 알았다. 그게 미국 에이전시, 그것도 미국 3대 에이전시에 속하는 CLA에서 온 것이고, 이도현의 한국 활동과 관련한 계약 협상 메일이라는 걸 깨달았을 땐 거의 기절하는 줄 알았다.

“아니, 왜 우리 엔터에?”

정한결이 중얼거리는 말에 실장이 그를 한심하단 눈으로 보았다.

“아니! 물론 우리 엔터 좋긴 하지…. 좋긴 한데… 근데 이도현 배우님 눈에도 좋을까?”

“좋으니까 오겠죠.”

“그렇지만….”

아직도 얼떨떨한 정한결이었다. 그에 호들갑스러운 대표와 달리 침착, 차분을 그대로 사람화시켜 놓은 거 같은 실장이 말했다.

“이도현 정도 되는 배우가 엔터가 어딘지가 중요하겠어요? 가만히 있어도 대본이 쏟아질 텐데. 아마 그쪽에서는 우리 계약 조건이나 일 처리만 괜찮으면 다른 건 별로 신경 안 쓸걸요. 그리고 우리 엔터가 아역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 중에서는 계약 조건도 그렇고 대우도 제일 좋은 편이잖아요.”

힘 있고 커다란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길 원하는 이유로는 대체로 한 가지가 강력히 작용했다.

바로, 기회였다.

인맥이 넓고 유능한 엔터일수록 소속된 아티스트에게 일거리를 잘 물어다 줬다. 그러니까 유명한 엔터에 들어가고 싶어서 그렇게 다들 안달이 나 있는 거고.

하지만 소위 말하는 ‘급이 높은 배우’의 이야기는 좀 달랐다. 그 정도 되는 배우들은 작품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그들을 캐스팅하길 원하는 작품은 넘쳐 나니까. 이도현도 후자였다.

실제로 이도현이 새솔과 한솥밥을 먹게 될 예정이라는 기사가 뜨자, 여기저기서 연락이 쏟아졌다. 이미 공중파 방송국에서 진행 중인 드라마부터 시작해서, ‘혹시’라는 기대를 품고 품에 끼고 있던 시나리오를 내민 작가들까지.

딱 봐도 망할 거 같은 몇몇 개만 쳐내고 다 이도현 측으로 보내주었다. 그러자 며칠 뒤, 배우 쪽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왔다. 정한결도 눈여겨보고 있던 드라마였다.

아직 확정은 아니었다. 계약도 완전히 마친 상태가 아니니까. 하나, 오늘 계약을 마치고 나면 캐스팅에 관해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었다.

정한결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10시 30분. 이제 30분 후면 그가 기다렸던, 그리고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배우가 이곳에 도착한다.

‘입국은 조용하게 한다고 했지.’

이도현은 그 유명세에 비해 조용한 편이었다. 본인도 SNS 계정을 제외하면 딱히 별다른 활동을 안 하는 거 같고. 그 SNS조차 작년인가, 어느 시점부터 올리는 주기가 뜸해졌다.

정한결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기사는 준비해놨지?”

“네. 계약 완료하면 곧장 기사 올라갈 거예요.”

[할리우드 배우 이도현, 새솔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체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할 거라고 밝혀]

캬.

벌써부터 기사 헤드라인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난리 날 인터넷을 비롯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십 분 뒤.

그의 복덩이가 찾아왔다.

* * *

“안녕하세요. 만나 봬서 기쁘네요. 그러니까… 대표님이라고 불러드리면 될까요?”

놀랍게도 이 말을 한 사람은 이도현의 보호자가 아니라 당사자였다.

정한결은 이도현을 마중 나간 순간 어째서 그가 그렇게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지 깨달았다. 가만히 서 있어도 그냥 시선을 빼앗았다. 강조하지만, 잡아끄는 게 아니라 제멋대로 빼앗았다.

항상 그런 아이들을 데려와 지원하기는 하지만… 이도현은 정말로 이 길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 아이가 커서 뭐가 될 거 같냐고 하면 백이면 백 연예인이라고 할 관상이었다.

그리고… 막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도현이 입을 여는 순간 정한결은 과장해서 동년배랑 대화하는 줄 알았다. 막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탓에 피곤해 보이는 낯이 그런 성숙한 분위기를 더 돋보이게 하는 거 같았다.

“대표님이라고 불러도 되고 그냥 아저씨라고 해도 되고 편한 대로 불러요. 앞으로 한솥밥 먹을 사인데 눈치 같은 건 보지 말고요.”

“네, 그럴게요.”

“근데 이거 배우님을 빨리 뵙고 싶은 마음에 너무 피곤하게 한 거 아닌가 싶네요. 공항에서 바로 오신 거죠?”

“괜찮아요. 제가 그러고 싶다고 한 거니까요. 저도 빨리 계약하고 싶었거든요.”

빨리 계약하고 싶단다.

어쩜 말도 저렇게 예쁘게 하는지. 사실 정한결은 지금 이도현이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워도 박수 쳐줄 의향이 있었다.

“…아, 그리고 계약서는 다 살펴보긴 했는데, 필요한 부분은 직접 설명 듣고 싶어서요.”

계약서도 살펴봤니…?

오늘 미팅을 정성스레 준비하긴 했으나, 정한결은 어디까지나 이도현의 보호자, 그러니까 지금 이도현의 양옆에 앉아 있는 부모님과 이야기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첫 몇 마디–그것도 인사였다-를 제외하고 두 사람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오히려 이 테이블을 이끌어가는 건 이도현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그, 아메리칸식 교육인가…?

내 딸도 이렇게 키워야 하나 고민하며 정한결이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대부분 이미 이야기가 오간 내용이었지만, 도현은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집중했다. 그러다 어떤 이야기에 닿자 도현이 양해를 구하고 질문했다.

“아, 저를 맡아주실 매니저분은 오늘 뵐 수 있나요?”

“그럼요. 금방 이리로 올 거예요.”

정한결의 말에 실장이 눈치 좋게 매니저를 불렀다. 아무래도 눈앞의 어린 배우님은 상당히 꼼꼼한 성격인 거 같았다.

계약과 관련된 내용뿐만 아니라, 그가 긍정적인 답신을 보냈던 드라마 출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외에도 이도현은 제가 원하는 방향과 지원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정말 똑 부러진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정한결도 이도현이 처음 유명해졌을 때, 그러니까 베니스 시상식 장면을 뉴스로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주목 속에서 떠는 법이 없었던 아이는 직접 마주하니 더 했다.

이도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았다. 그는 어째선지 아주 중요한 면접에 통과한 기분이 들어 속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제가 더 잘 부탁드리죠. 우리와 함께해 줘서 영광입니다.”

계약서에 서혜나가 사인을 한 후, 정한결과 세 사람이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그사이 매니저가 도착했는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자 도현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능숙하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이도현이에요.”

“…바, 반갑습니다.”

연차 꽤나 쌓인, 유능한 매니저가 소년 앞에서 버벅댔다. 그래. 저 심정 이해하지. 정한결은 속으로 고개를 주억였다. 원래부터 만만하게 볼 생각은 없었는데 어린 배우님은 정말로… 만만치 않았다.

* * *

[배우 이도현, 새솔 엔터테인먼트와 전속 계약 체결! (공식)]

[새솔 엔터테인먼트의 새 식구는… 할리우드 스타 이도현?]

[새솔 측, ‘이도현 배우의 본격적인 한국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 향후 행방에 관심 모여]

[할리우드 스타 영입, 새솔 엔터 ‘몸값’ 수직 상승]

[배우 이도현이 선택한 ‘새솔 엔터테인먼트’는 어디? (지식용어)]

[이도현, CLA와 여전히 계약 유지, 새솔과는 한국 활동에서 함께할 것. 앞으로의 계획 밝혀…]

[<패스파인더>의 이도현, 본격적인 한국 활동 시작한다… 한국 연예계에 당도한 폭풍?]

[새솔 엔터테인먼트 은아람, 과거 <불량경찰>에서 이도현과의 인연 재조명!]

[배우 이도현, 한국에서의 두 번째 작품은 과연? ‘시선 집중’]

[이도현, 한국 소속사와 계약 체결 완료 소식… 중학교 진학은 어디로?]

* * *

“…관심 엄청 모이네.”

기사를 읽고 있던 한 여성, 서승아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니라 도현이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던 드라마 시나리오, <구미호뎐 : 인과 연>의 원작가였다.

<구미호뎐 : 인과 연>.

네이버 화요 웹툰에서 6년 전 인기몰이를 했던 작품이었다. 상여자라는 별명이 붙은 여자 주인공 ‘한이련.’ 그리고 능글맞은 척하지만 실은 겁 많은 구미호의 로맨스는 센세이션한 충격으로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그때 <구미호뎐 : 인과 연>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드라마 계약까지 체결했다. 그녀는 정말이지, 계약만 하면 모든 게 쑥쑥 진행될 줄 알았다.

그랬던 드라마가 6년이나 미뤄졌다.

문제라 함은 그거였다. <구미호뎐 : 인과 연>은 현대 배경의 로맨스 코미디 작품. 그러나 남자 주인공의 취향이 어린 모습이라 –취향이라곤 하지만, 그 모습이 가장 움직이기에도 편하면서 정기 낭비를 안 해서 선호하는 거였다- 원작에서 심심하면 십 대 초반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웹툰을 연재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해두었던 설정이 드라마화를 하려니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바로 그 역할을 소화할 만한 아역 배우가 없다는 것 때문에.

차라리 사극이나 시리어스한 분위기의 사건물이라면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로맨스 코미디’였다. 그만큼 사람을 설레게 해야 하는데… 어린아이를 데려다 놓자니 설레긴 무슨, 현실과 만화는 다르다는 사실만 절절히 깨달았을 뿐이었다.

적당히 능글맞고, 적당히 박력 있고, 적당히 여유롭고, 적당히 애틋하고, 적당히 유쾌하고, 적당히 진지한! 그 적당한 연기를 해내는 배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드라마 제작을 위한 각색 과정에서 그러면 이런 둔갑 요소를 제외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렇게 하면 작품의 정체성이 사라졌다. ‘로맨스 코미디’에서 ‘코미디’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나름 원작자로서 자부심이 있었다. 잘된 작품이기도 하고. 그렇게 수정을 하지도 못하고 마땅한 배우를 찾지도 못하다 보니 드라마 제작은 하염없이 미뤄지기만 했다.

원작자이자 드라마 작가인 그녀조차 이제는 희망을 버려야 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정가현 피디한테 연락이 왔다. 그녀는 아주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서승아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렸다.

- 이도현 배우가 한국으로 온대요. …우리 작품, 이제 꺼낼 때 되지 않았어요?

- ……!!

그때 느꼈던 전율이란.

내 작품이 6년간 빛을 보지 못한 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말을 듣자 남자 주인공의 아역은 이도현 말고는 아무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건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날리면 드라마화를 포기하거나, 원작의 정체성을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 배우 측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합니다.

그녀의 작품은 아마도… 빛을 볼 모양인 거 같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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