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3화. 운명적 만남? (7)
NMC는 비장의 카드를 숨기는 것처럼 도현의 캐스팅을 숨기고, 숨기고, 숨겼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다던가. 관계자들의 입을 타고 소문이 조금 흘러가기 시작했다. 알음알음 퍼진 이야기는 인터넷에도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혹시?’ 하던 사람들도 딱히 공식적인 발표가 없자 시들해졌다. 그렇게 드라마에 관한 관심이 피크를 찍었다가 조금 사그라들었을 때.
[(단독) 배우 이도현, <구미호뎐 :인과 연> 출연 확정!]
- …? 진짜로?
- ??? 이도현이 나온다고?
- 한국 방송에서 보는 거야 이제?
- 여기서 중학교 다닐 거란 말 있던데 진짠가 봄 ㄷㄷㄷ
- 헐… 기분 이상해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노렸던 대로, 조금 사그라들려고 했던 관심은 장작을 더한 불씨처럼 커다랗게 타올랐다.
[직진밖에 모르는 대학생과 오백 년 만에 봉인에서 풀려난 구미호의 로맨스! ‘구미호뎐’의 줄거리는?]
[최초 남자 구미호가 온다! 강이든·이도현의 새로운 도전]
[‘구미호급 미모’ 강이든·이도현 비주얼 폭발]
[“강이든·서지민부터 이도현까지···”, ‘구미호뎐’ 특급 라인업 완성]
[<불량경찰>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난 강이든·이도현! 두 사람의 케미 기대]
[강이든과 이도현의 드라마 복귀작, NMC ‘구미호뎐’은 어떤 드라마?]
[정동연도 합류한다, “이번 드라마 무척 기대돼” SNS에 기대감 올려···]
[화제의 드라마 <구미호뎐> 내년 1월 편성!]
* * *
그리고 도현은.
“이건 어때요? ‘워킹맨.’”
매니저, 경찬호가 도현에게 물었다. 그는 그사이 도현에게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도현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 건지 한결 편안한 낯으로 말을 걸고 있었다.
“음···.”
도현이 화면을 보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진이나 니콜라스와도 잡기 놀이는 한 적이 없는데.
“다른 건 없을까요?”
“많죠. 봐요, ‘도전! 퀴즈쇼’랑 ‘초면인 형님’이랑···.”
퀴즈쇼는 나쁘지 않았지만, 목적이 ‘친근감’에 있는 만큼 적당한 프로그램은 아닌 거 같았다. ‘초면인 형님’은··· 도현은 초면인 어른과 반말하며 터울 없이 굴 자신이 없었다.
‘너무 약한 소리인가.’
물론 연기라고 생각하면 못 할 건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연기하는 도현이 아니었다. 보여줘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실컷 예능까지 나가서 연기를 하고 있으면 본래 의도가 무색해졌다.
이것도 좀 그렇고 저것도···.
이것저것 제외하기 시작하는 도현을 본 경찬호는 갈등했다. 이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는 결국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었던 걸 꺼내 들었다.
“그럼··· 이건 어때요?”
“‘전지적 참견쟁이들’?”
도현이 그가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따라 읽었다.
“네. 게스트의 일과를 따라다니면서 찍고, 프로그램 진행자들, 그러니까 참견쟁이들이 그걸 보면서 참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참견쟁이들은 퉁퉁이, 깐깐이, 긍정이, 궁금이가 있었다. 각자 포지션이 있는 모양이었다. 프로그램 소개를 보던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매니저님도··· 나오네요?”
“음, 그렇죠. 저 같은 경우에는 배우님이랑 오랫동안 일한 게 아니라 할 말이 많지는 않겠지만··· 게스트마다 매니저의 비중이 다른 편이거든요. 배우님 같은 경우에는 배우님의 일상을 중심으로 촬영하겠죠.”
“이거 괜찮네요.”
도현은 다시 한번 프로그램 구성을 확인했다. 제 일상에 특별한 부분이랄 게 없어서 사람들이 만족할지는 모르겠지만,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그럼 이 프로그램으로 하실 건가요?”
“일단 부모님께 여쭤보고요. 저만 등장하지는 않을 거 같아서요. 그보다, 매니저님은 괜찮으세요?”
“저는 뭐··· 괜찮죠.”
아닌 거 같은데.
영 시원하지 않은 대답에 도현이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프로그램 좀 더 찾아봐요.”
“아닙니다. 진짜 괜찮아요. 제가 언제 또 이런 데에 나가 보겠어요. 다 재밌는 경험이죠, 뭐. 이게 제일 괜찮으면 이걸로 전달하겠습니다.”
편안해졌다는 건 도현의 착각이었나 보다.
···우리 이런 사이로 나가도 되는 걸까. 도현은 이게 정말 잘한 선택인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 * *
도현이 걱정이 되든 말든,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소속사 측에서 <전지적 참견쟁이들>에 도현의 출연 의사를 밝히자 그쪽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했던 것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도현에게 괜찮은 날짜를 묻고 원하는 날에 배정해줄 정도였다. <전지적 참견쟁이들>이 인기 프로그램인 걸 감안하면 꽤 파격적인 대우였다.
도현을 향한 환대는 방송국 간의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 때문이기도 했다. 도현은 지금까지 NMC 방송국과 유독 연이 깊었다. <불량경찰>부터 시작해서 <김윤성의 휴식 시간>에 이어 이제는 <구미호뎐 : 인과 연>까지.
지금도 충분히 화제성 있는 스타이지만 미래의 성장 가능성을 보았을 때, 도현을 NMC가 독점하고 있는 거 같은 현재 상황은 다른 방송국에겐 상당히 뼈아팠다.
‘미리 인연을 맺어둬야 했는데!’
KBN 입장에서는 NMC 측이 운 좋게 <불량경찰>로 도현과 인연이 닿아 얌체같이 독점하고 있는 걸로 보였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불량경찰>의 박민호 감독이 <김윤성의 휴식 시간>에 도현을 이어주었고, 정가현 AD가 과거의 인연으로 발 빠르게 소식을 접하고 연락을 취해 캐스팅에 성공했으니. 이래서 인맥이 중요한 거였다.
도현의 촬영에 앞서 매니저 경찬호가 인터뷰를 위해 <전지적 참견쟁이들> 스튜디오, 그러니까 KBN 방송국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이구, 잘 왔어요! 어휴, 날이 덥죠? 시원한 물 좀 마시겠어요?”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껄껄, 사람 좋은 얼굴로 웃는 <전지적 참견쟁이들> 피디에 경찬호는 잠깐 당황스러운 심정이 되었다.
“아, 예··· 감사합니다. 이도현 배우 매니저 경찬호입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예능 피디 도정수입니다. 인물이 좋으셔서 화면 잘 받겠네. 촬영해보신 적 있어요?”
“아니요. 촬영은···.”
“긴장할 필요 없어요. 그냥 편하게 인터뷰하면 됩니다.”
그 말에 눈치를 보던 경찬호가 입을 열었다.
“저··· 감독님. 미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편하게 말해요, 편하게.”
“제가 이도현 배우님을 담당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아직 그렇게 잘 알지 못합니다.”
경찬호의 고백에 감독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그는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렴, 처음부터 잘 아는 사이가 어디 있어요. 그냥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서로 편하다 못해 가족 같은 사이인 매니저와 스타들의 모습이 이 프로그램의 재미 포인트이긴 했지만, 어색한 것도 그 나름의 재미 포인트가 될 수 있었다. 영 쓰기 어렵다면 적당히 잘라내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주인공은 스타들이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이 경우에는 첫인상 같은 걸 물어보기 괜찮겠네.’
만난 지 별로 안 된 사이니까 시청자들에게 더 생생하게 느껴질 것이다.
“자, 저기 의자에 앉으시면 됩니다. 간단하게 찍을 거니까 너무 걱정 마시고.”
경찬호는 그 말에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며 마련된 자리에 가 앉았다. 카메라가 저를 향해 있었다.
‘···내가 별걸 다 해보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카메라를 응시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 * *
그리고.
도현의 팬 카페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요즘 내 생일이냐ㅠㅜㅠ]
우리 도리토스 한국에 온 것도 모자라서 드라마 찍는다고 해서 현실인가 아닌가 싶었는데 이제 전참쟁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