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316)화 (317/582)

제316화. 운명적 만남? (10)

오늘.

KBN 방송국의 한 스튜디오는 조금 떠들썩했다.

그 이유는.

‘이도현!’

바로 오늘 방문할 게스트 때문이었다. 특히 촬영을 따라다녔던 스태프 몇몇이 이도현에 대해 흘린 말들이 퍼지면서 더 기대감이 높아졌다.

‘화면은 실물을 못 담아낸다.’

그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서 한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해했다. 화면에서도 충분히 비인간적인데, 그게 못 담아낸 거라고?

그리고.

“안녕하세요.”

스튜디오로 들어오는 소년을 보며 스태프들은 깨달았다. 그들이 한 말의 의미를.

“아이고, 잘 왔어요! 힘들진 않았고?”

“매니저님이 데려다주시는걸요. 잘 지내셨어요?”

도정수 감독이 손발 들고 뛰쳐나가 반기는 모습에 이 프로에 2년째 함께하고 있는 한 스태프는 감독님 신나셨네, 생각하다가 그 옆에 있는 소년을 보았다. 건물 안에 뚝 떨어진 별처럼 광채가 나는 듯한 착각에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가.

“!”

눈이 마주쳤다. 그대로 굳어버린 그녀와 다르게 도현은 눈으로 인사를 보냈다. 미국에서 자랐다더니 여유로운 눈인사에서 왠지 모를 아메리칸 바이브가 느껴졌다.

시선이 떨어져 나가고.

“허유….”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이상한 한숨 소리를 내었다. 옆에 있던 동료 스태프가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걸어왔다.

“…진짜, 장난 아니네요.”

“네. 눈 마주쳤는데 깜짝 놀랐잖아요. 무슨 존재감이….”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존재감.

딱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제 ‘화면이 못 담아내는 실물’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했다. 단순히 외양이 어떻고를 말한 게 아니었다.

실제로 본 이도현은 시선을 저에게로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그가 있는 곳만 유독 더 환하고 반짝이는 것같이 느껴지는 무언가가.

여기 있는 이들은 <전지적 참견쟁이들>에 나오면서 온갖 스타들을 본 짬밥이 있었다. 그중에서는 배우나 아이돌, 모델과 같은 연예계 종사자도 있지만, 한 분야에서 탑을 찍은 운동선수나 유명인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런데도 이도현이 나타난 순간의 충격은 꽤 남달랐다. 정상을 찍어본 운동선수들에게서 본 카리스마와도 조금 결이 달랐고, 아이돌이 보이는 별 가루 같은 스타성과도 묘하게 들어맞지 않았다.

그냥 사람 자체의 존재감.

그것이 그녀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였다. 곧이어 도정수 감독과 인사를 나눈 도현은 스튜디오 이곳저곳을 매니저와 함께 돌아다니며 인사와 함께 무언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의 차례가 되었다.

“마들렌인데, 레몬이랑 무화과, 코코아 맛이에요.”

그녀는 예쁘게 포장된 마들렌 세 개를 받아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직접 만드신 건가요?”

어딜 봐도 가게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서 한 질문이었다. 그녀의 말에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베이킹을 자주 하는 편이거든요. 아, 맛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미 여러 번 선물해 봤는데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눈을 마주쳐 오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뭔… 눈에 별을 품었나. 그녀는 떨떠름히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렇구나…. 너무 예뻐서 파는 건 줄 알았지 뭐예요.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좋아해 주셔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소년은 가정교육을 잘 받은 태가 났다. 까만 뒤통수를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떨지 않고 대답한 나. 매우 칭찬해.

얼마 뒤.

“여기야?”

“여기 맞나 봐!”

“맞네! <전지적 참견쟁이들>!”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문이 열리자 훤칠한 청년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Hit on your mark! 안녕하세요! 엑스텐입니다!”

각 잡힌 우렁찬 목소리가 스튜디오 안을 울렸다. 최근에 뜨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장신의 멤버들은 스튜디오 내에서 눈에 확 띄었다.

감독님과 기운차게 인사를 나누고 차례로 눈도장을 찍던 중, 엑스텐 멤버 중에서 막내, 영찬이 곧장 이쪽을 보고 있는 시선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혀, 형! 배우님 계셔!”

그 시선을 받은 도현은 되레 엑스텐 멤버를 신기한 마음으로 보았다. 같이 촬영하게 될 게스트라고 해서 미리 몇 가지 정보를 알아두었다. 그때 무대 영상도 찾아본 도현이었다.

‘무대랑은 다른 느낌이네.’

무대 위에서는 강렬하고 박력 있었다면 무대 밖에서 본 멤버는 그 나이대같이 활기차고 밝아 보였다. 어쩐지 좀 더 앳되어 보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스태프들은 인사를 나누는 엑스텐 멤버와 도현을 훈훈한 눈으로 보았다. 잘생긴 사람 옆에 귀여운 사람. 그야말로 무적의 조합이었다.

한편.

도현은 제게 와 닿는 시선에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저 진짜 영화 잘 봤어요! 아! 그리고 저 <패스파인더>도 진짜 좋아하는데…. 소설 팬이거든요!”

영찬이라고 했던가.

그는 상당히 도현에게 호감이 많은 거 같았다. 사실 그가 주로 떠들고 있긴 하지만, 다른 멤버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건 마찬가지였다.

“감사합니다….”

“영찬아, 씁. 배우님 불편해하시잖아. 진정하자, 진정.”

자신을 엑스텐의 리더라고 소개했던 이가 영찬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쩐지 그 위로 할리의 모습이 겹치는 건… 착각이 아닐 터였다.

“이 친구가 게스트로 배우님이 나오신다는 소리 듣고 엄청 기대했거든요. 평소에 영화 마니아라서요.”

“맞아요! 저 배우님 나온 영화도 다 봤어요!”

도현이 감사하다고 입을 열려던 때였다.

“근데 형, 이 친구라니! 말투 늙어 보이잖아. 배우님이 거리감 느끼시면 어쩌려고!”

“…너만 가만히 있으면 될걸?”

“그럴 리가! 난 지금 배우님이랑 인연을 느꼈어. 그렇죠!”

“어… 네?”

“봐. 그렇다시잖아!”

오 분 만에 오 년은 늙은 낯이 된 리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도현은 조금 긴장이 풀리는 걸 느끼며 작게 웃었다.

한숨을 푹푹 내쉬던 리더가 도현을 보았다.

“아무튼 이런 그룹이지만… 오늘 촬영 같이 잘해봐요.”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아, 그리고… 이거요. 제가 만든 건데, 오늘 나눠 드리려고 가져왔거든요. 마들렌이에요.”

“헐! 저 마들렌 완전 사랑하는데! 감사합니다!”

영찬이 신이 나서 받더니 뒤에 있던 매니저를 경계 어린 눈으로 보았다.

“형… 선물받은 건데, 가져갈 건 아니죠?”

“…이따 돌려줄게. 일단 줘.”

엑스텐 멤버들은 한창 활동기라서 체중을 조절하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눈앞에 드리워진 마들렌은 탐스럽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리더마저 은근한 눈빛을 보내니 결국 패배를 선언한 매니저가 체념 어린 투로 말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일었다.

“아싸! 애들이 부러워하겠다! 자랑해야지~”

이렇게까지 좋아해줄 줄은 몰랐던 도현은 기쁘고도 얼떨떨한 심정으로 괜히 옷깃을 한번 정리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매니저님 것도 준비했어요. 여기요.”

“…어, 가, 감사합니다.”

멤버들을 비글 보듯이 보고 있던 매니저가 놀라서 엉거주춤 포장된 것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푸근한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엑스텐분들이랑 이도현 배우님! 촬영 준비하실게요!”

“앗! 넵! 갑니다!”

오인조 보이 그룹의 첫째와 막내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저들보다 어린 도현에게 깍듯이 대하는 게 어색할 법한데도, 그런 티 하나 내지 않고 예의를 지켜서 행동했다. 물론 리더가 통통 튀려는 막내를 온 힘을 다해 잡고 있는 느낌이긴 했지만….

도현은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촬영장으로 향했다. 멀리서 매니저가 그에게 긴장과 신뢰가 반반 섞인 눈빛을 보내는 게 보였다.

진행자와 도현, 엑스텐 멤버까지 자리에 앉으니 원형 테이블이 남는 자리 하나 없이 빡빡하게 꽉 찼다. 서로서로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에야 자리에 온전히 착석할 수 있었다.

“진행은 미리 설명 들었죠?”

진행자 중 한 명이 그들에게 말을 걸어왔다.

“긴장할 것 없어~ 그냥 화면 보고 적당히 생각나는 거 있으면 말하면 돼!”

예능인으로 유명한 남성이 털털하게 말하자 공기가 좀 더 부드럽게 풀렸다. 기합이 들어가 뻣뻣하게 앉아 있던 엑스텐 멤버들이 조금 웃음기를 머금었다.

“자, 다들 준비 끝나셨죠? 촬영 시작합니다.”

이어, 도정수 피디의 사인을 시작으로.

“여러분의 일요일을 책임져줄 참견쟁이들, <전지적 참견쟁이들>을 시작합니다!”

“우와아!”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자, 오늘은!”

참견쟁이들 중 퉁퉁이를 맡은 진행자가 먼저 서두를 열었다.

“10대 스타 특집입니다. 정말 ‘혜성’처럼 나타난 신인 아이돌! 엑스텐의 우진, 영찬!”

짝짝짝! 박수가 쏟아지자 두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구호를 외친 후 꾸벅꾸벅 인사를 했다. 그들에게 환호를 보내며 도현은 생각했다.

‘전원 미성년자라고 해서 좀 놀랐지.’

엑스텐의 정보를 수집하면서 제일 의외였던 부분이 그거였다. 아직 어린데도 벌써부터 활동을 하네요. 그렇게 중얼거렸다가 매니저의 오묘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아무튼, 제일 연장자이자 우진은 내년에 성인이 되는 나이였고 막내인 영찬은 17살이었다. 그사이, 테이블에 설치된 화면에는 그들의 타이틀곡인 <혜성>의 뮤직비디오와 간략한 소개가 지나갔다.

“와, 뮤직비디오에서 표정이 진짜 인상적이네요.”

“어! 되게 강렬한 표정!”

그런 대화가 오간 후.

“지금 한번 재연해줄 수 있어요?”

“아~ 물론이죠! 음악만 주세요!”

진행자의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영찬은 당황하는 법 없이 능글맞게 말했다. 우진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왔는지 담담한 기색이었다. 다섯 명 중에서 이 두 명을 예능에 내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노래가 흘러나오고.

영찬과 우진은 간단한 팔 동작과 함께 뮤비의 표정을 재연했다. 이글이글 태워버릴 듯한 눈빛에 스튜디오에 한차례 웃음소리가 가득 채워졌다.

분위기가 진정된 후.

“자, 이번에는… 베니스 영화제 최연소 신인상 수상자라는 타이틀로 시작해서 <패스파인더>의 주연을 맡으며 그야말로 월드 클래스임을 증명한 배우죠?”

기다리던 차례가 다가왔다.

“배우 이도현입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도현입니다!”

도현은 사람들을 따라 손뼉을 치며 인사했다. 진행자 중 한 명이 능청스럽게 영어로 인사를 건네길래 짧게 웃으며 영어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이어 화면에 도현의 영상도 지나갔다. …저건, 어디서 구한 거래. 지금보다 젖살이 덜 빠진 도현이 단상 위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나왔다.

“저게 진짜 대단한 일이잖아요. 신인상을 받은 동양인이 손에 꼽는데, 그것도 기록을 깨고 최연소였으니까.”

“완전 난리도 아니었죠.”

두런두런 나누는 목소리를 배경으로 유진과 제이 로빈, 그리고 <패스파인더> 촬영장 사진이 지나갔다.

영상이 끝나고 박수 소리도 천천히 멎어갈 때.

“한국으로 온 지 몇 달 안 됐죠?”

질문이 들어왔다.

“네. 이제 두 달 정도 되었어요.”

“한국어가 너무 익숙해 보여서….”

“아, 은정 씨는! 도현 배우님 한국인이잖아요, 한국인!”

틀린 말은 아니라 도현은 그들을 따라 웃었다. 웃음이 잦아들자 은정 씨라고 불린 진행자가 말을 꺼냈다.

“나는 이도현 씨 하면 약간… 거리감 있는? 뭔가 할리우드에 떠다니는 별 같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영상의 순서는 도현이 먼저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도현이 화두에 올랐다. 도현은 몰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제가 그런 이미지인가요?”

“어어, 맞아요! 저도 뭔지 알 거 같아요! 해내는 일들이 너무 대단하셔서 막 존경심 드는 거 있죠?”

영찬이 이때다 싶어서 칭찬을 쏟아냈다. 이어지는 낯부끄러운 말들에 도현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 일상 보시면 별로 그런 생각 안 드실 거예요. 저도 다른 분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서….”

“말하는 것부터 안 평범해! 이게 어딜 봐서 열세 살이야!”

깐깐이를 맡은 진행자가 걸어온 딴죽에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훈훈해진 분위기 속에서, 첫 진행을 시작했던 진행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 첫 번째 영상은 배우로서의 길을 탄탄하게 밟아가고 있는 이도현 씨, 그리고 만난 지 두 달 된 매니저분이라고 해요.”

“아~ 한국에 온 지 별로 안 돼서!”

“예. 맞습니다. 이도현 배우와 경찬호 매니저 영상 보도록 하겠습니다!”

따라란-

검은 화면이 켜지며 배경음이 울렸다. 도현은 점점 밝아지는 화면에 반쯤 긴장한 채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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