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8화. 운명적 만남? (12)
집에서도 연기 연습에 이에 화보 촬영 준비, 과학 공부까지 하는 도현에 진행자들은 두 손 두 발을 모두 들고 말았다. 특히, 피디를 따돌리고 연습실에 들어갔을 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한 듯 그러려니 하던 사람들이 믿기 어려워한 건 도현이 과학책을 펼쳤을 때였다. 그들의 반응에 내심 배우라는 꿈이 없었다면 과학자나 수학자가 될 생각이었던 도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행자들이 이건 사실일 리 없다고 부정하자 도현을 두둔한 건 엑스텐의 영찬이었다.
“제가 봤을 땐 진짜인 거 같아요. 라디오에서 AMC 시험 만점자였다고 들었거든요.”
다시금 그때의 이야기가 화두로 올라오며, 지금보다 어렸던 나이에 만점을 기록했던 도현에 대한 경탄이 터져 나왔다.
“얼굴도 천재야, 연기도 천재야, 근데 머리까지 천재인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누군가 장난스럽게 던진 말에 여기저기서 그렇다는 동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침이 숫자 열에 가까워지자 도현이 책을 덮고 이불 속에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던 궁금이를 맡은 진행자가 내내 생각했던 걸 입에 담았다.
“난 이제 도현 씨 커리어가 별로 놀랍지 않아. 저렇게 열심히 하잖아. 운이 아니라 다 쌓아 올린 실력이네.”
굉장한 극찬이었다. 누군가 동의하다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래도 걱정이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거라서요. 그리고 저도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하고 뒹굴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친구들이랑 게임을 하기도 해요.”
도현도 매일 빡빡하게 사는 건 아니었다. 하필 월요일 날 촬영이 있어서 저런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만약 수요일이었으면 하루 종일 도롱이 벌레처럼 있는 도현이 방송되었을 터였다.
그날은 게임 클럽이 모이는 날이라서 아침부터 점심까지 게임만 하고, 이후의 시간에는 그림을 끄적이거나 바이올린을 켜면서 보내기 때문이었다.
첫째 날을 지나, 둘째 날이 밝았다.
- 뽀샤시한 무결점 미모❀
기상부터 찍었던 첫째 날과 다르게 첫 장면은 메이크업을 받는 도현이 나왔다. 도현은 머리 끈으로 앞머리를 묶어 올린 채였다.
과거 화보를 찍었을 때처럼 스튜디오 내로 스타일리스트를 불러서 메이크업하는 대신에 소속사에서 보내준 숍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았다. 다만 스튜디오는 이전과 동일한 화양연화 스튜디오였다.
도현이 숍에서 메이크업을 받는 사이, 매니저는 주변에 있는 반미 샌드위치 집에 들어가서 샌드위치를 구매했다. 도현이 미국에서 자주 먹던 샌드위치였다. 맥의 가족이 판매하는 핫도그와 비슷하기도 했고.
“저런 샌드위치 좋아해요?”
“미국에서 자주 먹어서요.”
“아아.”
가벼운 반응과 함께 화면 속 차에 탄 두 사람이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도현은 옆 좌석에 앉아 샌드위치를 베어 물다가.
- ……! 맛있어요.
발을 조금 동당거렸다.
- 케첩 많이 뿌려달라고 했거든요. 거기 봉지 안에 보면 감자튀김도 있어요.
- 저 곧 촬영인데 이거 다 먹어도 돼요?
- 애는 많이 먹어야죠.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으로 매니저가 한 말이었다. 그 말에 스튜디오 사람들이 ‘맞아! 많이 먹어야지!’ 하며 긍정했다.
- 되게 맛있는데, 드셔보세요.
차가 신호에 막혀 멈추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현이 감자튀김을 경찬호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경찬호는 익숙하다는 듯이 그걸 받아먹었다.
- 훈훈한 차 안 풍경!
저 자막 왜 등장 안 하나 했다.
“오오! 원래 저렇게 자주 먹여줘요?”
어감이 좀 이상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저 신경 쓰느라 밥을 안 먹거나 늦게 드시는 거 같길래… 저렇게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건 드리는 편이에요.”
“되게 의외다. 서로 뚝딱이는 사이인 줄 알았는데….”
“뚝딱이는 사익힉!”
한 진행자의 말에 긍정이 진행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문자였으면 말 사이사이에 ‘ㅋㅋㅋ’가 잔뜩 끼어 있을 거 같았다. 도현은 부정하지 못하고 애매한 표정을 했다.
‘처음엔 당황하시긴 했지.’
도현이 먹을 걸 내민 건 거의 무의식에 가까웠다. 오스카와 지내면서 행동하던 방식이 그대로 나와버린 것이다. 이제는 경찬호 매니저도 적응한 것 같지만.
오스카를 생각하니까 그리워졌다. 몇 년간 이어졌던 인연은 그리 쉽게 잊어버릴 수 없었다.
그사이.
도현을 태운 차는 화보 촬영장에 도착했다. 카메라가 다시 도현의 모습을 띄웠을 때 도현은 착장을 비롯한 모든 스타일링을 마친 상태였다.
“뭐야, 왜 이렇게 귀여워!”
“저게 무슨 컨셉이지… 문학 소년?”
“어.”
단조로운 감탄사에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렸다. 그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우진이 입을 열었다.
“저 컨셉… 셜록 홈스 시대에 신문 배달 소년 아닌가요?”
그리고 그가 담담히 던진 말에 사람들이 빵 터졌다.
“비유의 신이다! 와, 배 당겨!”
이어서 셜록 홈스 좋아하냐는 질문이 날아오자 우진이 그렇다며 긍정했다. 그러자 영찬이 온갖 굿즈를 모을 만큼 찐팬이라며 말을 더했다.
첫째는 셜록 홈스 덕후.
막내는 영화 덕후.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엑스텐 멤버들이었다. 적어도 숙소 생활이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아무튼 19세기 영국 우체부 배달 소년…이 아니라 도현이 화면 가득 담기고 있었다. 모자는 회색 한 방울 들어간 청색의 베레모였고 조끼는 모자와 색감이 비슷하지만 좀 더 옅었다.
한 스태프가 다가와서 도현에게 종이를 보여주며 자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인 도현의 모습 다음으로 화보 촬영 장면이 나왔다.
거꾸로 돌려 앉은 의자 등받이에 양팔을 올린 도현이 카메라를 응시했다. 셔터가 반짝임과 동시에 분위기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방금 뭐야? 순식간에 사람이 달라졌는데?”
“허어, 나 지금 소름 돋았어.”
찹쌀떡 같은 볼살이 사랑스러운 것과 별개로 인상을 따지자면 도현은 차가운 편이었다. 날이 갈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이목구비가 더욱 그러한 분위기를 돋보이게끔 했다.
그러나 지금은.
회색과 청색 위주의 옷은 도현의 매끄러울 만큼 흰 피부, 윤기 도는 흑발과 그림처럼 잘 어울렸다. 19세기 명화 속에 등장하는 게 더 현실성 있을 법한 소년이 해사하게, 그리고 어느 정도는 개구진 낯으로 웃고 있었다.
“배우는 배우다, 진짜.”
“너무 좋다. 지금 본인이 예쁜 거 잘 알고 끼 부리고 있어.”
“아니 그건 모를 수가 없지! 도현 씨, 스스로 예쁘고 잘생긴 거 알죠?”
도현은 긴 속눈썹을 팔랑이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어색한 웃음을 매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수줍은 미소에 스튜디오 내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아들 바보의 미소를 지었다.
이어, 스태프가 어떠한 사인을 보내자 도현의 해맑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이번에는 의자를 비스듬히 놓은 채로 등받이에 한쪽 팔을 기댄 도현이 카메라를 보며 입꼬리를 당겼다.
“이야….”
의미 모를 감탄사만이 스튜디오에 울렸다.
장난기 많은 우체부 소년이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까칠하고 짓궂은 우체부 소년으로 변했다. 눈썹과 눈매, 뺨, 입가의 근육만으로 이루어낸 변화는 놀라움을 선사했다.
“내가 사진작가면 찍을 맛 나겠다.”
“이게 월드 클래스인가.”
진심 어린 감탄이 한차례 지나가고.
도현은 두 번째 착장으로 갈아입었다. 알이 없는 안경을 액세서리로 착용하고 스트라이프 무늬가 굵게 들어간 니트를 입은 채였다.
촬영 장소는 아까와 달랐다. 목재로 된 책장엔 책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고, 바닥에도 책이 쌓여 있거나 널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정감이 가는 서재의 모습이었다.
도현은 쌓아 올린 책 옆에 가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촬영이 시작되자 손으로 턱을 괴기도 하고 책을 보는 척을 하기도 하고 바닥에 누운 후 책장에 다리를 올리는 자세로 책을 펼치거나 카메라를 바라보기도 했다.
“자세가 휙휙 바뀌네.”
“전날에 잡지 본 게 도움이 됐나 보다.”
진행자들은 이런저런 평을 남겼다.
이후로도 A컷의 연속이 이어졌다. 화면에 화보 촬영 날 나왔던 A컷이 삽입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내가 도현 씨 엄마라면 너무 행복할 거 같아.”
“그러고 보니 오늘 촬영한 것도….”
“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브랜드예요.”
“아, 아까 소속사로 연락했다고 그랬지!”
다시금 떠오른 사실에 스튜디오가 술렁였다. 그러다가 Marine 주니어의 뮤즈가 도현이라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의외였던 건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부분이었다.
화보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도현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 ❀ 열정적인 촬영을 마치고~
도로 위를 내달리는 차를 마지막으로.
- 일상부터 본업까지 천재 배우 도현의 하루 마무리❀
<전지적 참견쟁이들> 이도현 편이 끝이 났다.
“이야아!”
짝짝짝!
스튜디오에 박수가 쏟아졌다. 도현도 한시름 놨다는 생각에 한결 편해진 낯으로 박수 쳤다. 마찬가지로 박수 치던 궁금이 진행자가 말했다.
“아~ 사람이 너무 성실하면 안 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영신 씨는 좀 더 성실해지셔도 괜찮아요.”
“아니, 내가 뭐. 나 정도면 성실하죠!”
퉁퉁이와 궁금이의 티키타카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난 약간 외계인 탐구 생활, 그런 거 본 기분이야.”
깐깐이의 말에 도현이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건전한데 굉장히 인상적인 영상이었어요.”
“네~ 재밌네요.”
“자, 그럼 이제 두 번째 영상도 봐야겠죠. 화제의 중심, 시선 집중 괴물 신인 엑스텐의 리더 우진 씨와 막내 영찬 씨, 그리고 매니저 김두준 씨의 영상입니다!”
“우와아!”
다시금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현은 입가에 미소를 매단 채로 두 번째 영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일주일 뒤.
<전지적 참견쟁이들>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방영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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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는 도현의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