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321)화 (322/582)

제321화. 운명적 만남? (15)

영화 <악령>.

탄탄하다고 평가받는 중견 배우와 신인 배우를 내세워 만든 공포 영화였다.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 윤성의 아버지가 재혼하면서 시작된다.

친절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귀여운 남동생은 윤성이 그리던 가족이었다. 사고로 어머니를 잃은 후 지쳐 보이던 아버지가 행복해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첫 만남 때 새어머니가 그의 새로운 남동생, 희수의 이야길 꺼내며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말한 게 좀 걸리긴 했으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희수는 고집이 심할 뿐 사랑스러운 동생이었다. 어머니가 희수를 어려워하는 게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그러던 어느 날, 윤성은 밤마다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를 목격하고 만다. 똑같은 시간만 되면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에 의아해하다가 아침 식사 시간에 묻지만.

- 무슨 소리야? 네 엄마는 밤새 내내 방에서 자고 있었어.

그러나 아버지의 말과 다르게 윤성의 눈에는 여전히 밤마다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가 보인다. …이상해. 뭔가 꺼림칙함을 느낀 윤성이 따라가려던 때였다.

시선.

시선이 느껴졌다.

쿵.

윤성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집 안에 그 말고 깨어 있는 다른 이가 있었다.

- 형, 어디 가요?

- …아, 하아. 희수였구나.

윤성은 제 동생, 희수란 것을 깨닫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엇에 안도한 것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 나 잠이 안 와요. 같이 자 줘.

그 후로도 그런 날들이 반복되었다. 윤성이 거절하면 희수는 패악을 부려댔다. 결국 윤성은 희수가 잠들면 나가 보려고 자는 척을 한다. 방 안이 고요해지자 이젠 잠들었겠지, 생각한 윤성은 눈을 떴고.

- !!

- 혀엉, 나가려고 했지?

제 머리맡에 앉아 헤죽 웃는 희수와 마주치고 그대로 얼어붙고 만다. 윤성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그날 이후로 희수가 꺼림칙해졌다. 아버지에게 말해 봐도 동생이 어리광 좀 부린 것 가지고 왜 그러냐는 소리만 돌아왔다.

윤성은 점점 새 가족들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게 터진 건, 윤성이 늦잠을 잔 날이었다. 가족 모두가 외출해서 집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난 윤성은 졸음이 덜 깬 눈으로 걷다가 책장에 부딪혀 넘어지고 만다. 그런 윤성의 머리 위로 무언가 후두둑 떨어졌다. 사고 쳤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던 윤성은 떨어진 것을 주우려다가 창백하게 질리고 만다.

찢어진 곤충의 사체. 사람의 손톱, 머리카락, 배가 갈린 작은 들쥐, 구겨지고 탄 부적….

윤성은 떨리는 손으로 그것들을 모아 다시 상자에 넣는다. 제자리에 두고 못 보았던 것처럼 굴자, 마음먹었지만 결국 돌아와 그것들을 바깥에 있는 쓰레기장에 버리고 만다.

그 뒤로 이상한 일들이 생겨났다.

온화하고 자상했던 아버지가 갈수록 성질이 급해지셨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굴었고 익히지 않은 고기만 찾아댔다. 정신과에선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어느 날.

집에 들어온 윤성은 기이한 냄새를 맡았다. 첩첩, 하는 소리가 들린 쪽은 아버지가 계신 방이었다. 또 뭐 이상한 걸 드시나. 그리 생각하며 방에 들어간 윤성은.

- 형! 아빠가 정말 잘 먹어요.

- 유, 윤성아….

바닥이 피범벅이었다. 길고양이 사체가 바닥에 널려 있었고, 그 길고양이를 뜯어 먹고 있는 건 그의 아버지였다. 기겁한 윤성이 정신을 차리고 그가 먹던 것을 빼앗으려 했지만, 아버지가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었다. 옆에서 희수가 박장대소하며 웃어댔다.

그러다가 뚝.

기척 없이 윤성의 앞에 와 선다. 그에 놀란 윤성이 뒤로 넘어지자 희수가 웃음기 없는 낯으로 말했다.

- 아빠 먹으라고 힘들게 가져왔는데 빼앗으면 안 돼요.

희수의 손에 들린 칼에서 붉은 피가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극은 아역 배우인 정희운이 이끌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자칫 공포가 아니라 우습게 느껴질 수 있는 연출과 이야기였는데, 그걸 무겁게 만든 건 아역 배우의 맛이 간 연기였다.

이 이후에 윤성은 장을 보고 돌아와 비명을 지르는 어머니를 추스르고, 아버지를 입원시킨 후 희수를 방에 가둔다. 윤성은 이제 이 집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홀로 남을 어머니가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이 집에 남게 된다.

- 형, 혼자 자기 싫어요.

- 밖에 있잖아요. 근데 왜 아닌 척해요? 희수 무서운데….

방 안에서 조잘대는 희수의 목소리가 미친 듯이 소름 끼쳤다. 분명 방에 가두고 나왔는데 돌아와 보자 현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 고함을 내지르며 안으로 들어가라고 미친 사람처럼 굴기도 했다. 윤성은 점점 제정신이 아니어져 가는 기분이었다.

- 그럼 형… 거기서 계속 저랑 같이 있을 거죠?

그 말이 기폭제가 되었다.

윤성은 집을 나왔다. 도저히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숨 쉴 자신이 없었다. 집을 나온 윤성은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하룻밤 그곳에서 몸을 웅크리고 잔 윤성은 집에 있을 어머니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결국, 어머니도 데리고 나오기로 결심한 윤성은 집으로 다시 향하고.

- …아, 아.

충혈된 눈을 부릅뜬 채 천장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를 발견한다. 배가 갈라져 벌어진 상태로. 그 앞에 웅크려 있던 희수가 윤성을 보고 활짝 웃었다.

- 형, 돌아왔구나!

주춤, 윤성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도현이 자유연기로 고른 장면이었다.

- 근데….

얼굴과 손에 피를 잔뜩 묻히고.

- 왜… 왜 그런 눈으로 봐요?

불쾌하다는 듯이 제 팔다리를 긁어댄다. 긁어짐이 점차 심해지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쉬던 희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 그러니까… 짜, 짜증나잖아. 나를 두고 간 건,

“형이면서.”

고개를 든 도현의 낯은 기이하도록 하얬다. 그저 도자기로 빚은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도저히 사람 같지 않았다.

그때.

헤. 도현이 별안간 히죽 웃었다. 윤성이 예뻐하던 미소 그대로. 천진한 얼굴 뒤로 피비린내가 풍기는 거 같았다. 분명 면접을 보던 옷차림 그대로 단정한 상태인데, 어째서인지 붉은색으로 얼룩진 환영이 보이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같이 자줄 거지, 형?”

* * *

“…와.”

도현이 나가고 한참 후에 누군가 뱉은 말이었다. 그 감탄사에 면접관들이 차례로 정신을 차렸다.

한 면접관이 어쩐지 오싹한 팔뚝을 쓸어내렸다.

“아직 으스스한 기분이네요.”

“저도요… 아니, 자유연기에 공포 연기를 가져올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당연했다.

그 어떤 용자가 중학교 입학시험에 공포 연기를 가져오겠는가. 공포 영화 오디션이 아닌 이상 그런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건 공포 연기가 가지는 특성 때문이었다. 공포 연기는 말 그대로 보는 사람으로부터 하여금 ‘공포심’을 끌어내야만 했다. 그렇지 못한다면, 죽도 밥도 안 되는 연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공포심을 이끌어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 환한 면접장에서, 대낮에. 영화에서도 편집과 사운드가 가미되어서 그만큼 공포스러운 연출이 가능한 거지, 아무것도 없었다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그걸 해내네.’

정확히는 공포보다는… 오싹함이랄까. 사람이 아니라 기이한 무언가를 마주하는 기분이라 거부감과 꺼림칙함이 치솟아 올랐다.

“연기만으로 분위기를 휘어잡는 게 가능하단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걸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죠.”

이어받는 말에 면접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제가 그 영화 봤는데 영화에서 정희운이도 연기를 굉장히 잘했거든요. 근데 역시…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도현은 이도현이네요.”

이도현은 이도현이다.

그 말에 다른 면접관들이 동감했다. 너무 강렬한 연기를 봐서 다음 수험생의 연기가 눈에 들어올지나 모르겠다.

그때 누군가 말을 꺼냈다.

“저 영화에서 진짜 악령은 따로 있었죠?”

“네. 애가 아니라 그 엄마가 악령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랬다.

영화 내내 희수가 악령의 숙주처럼 등장하지만, 실은 악령이 차지한 몸은 그 어머니였다. 희수는 오래전, 악령으로 인해 온 가족을 잃고 악령에게 어머니의 육신마저 빼앗겨 미쳐버린 아이였다.

악령이 아름다운 어머니의 외양을 이용해 재혼하고, 그럼 또 그 집에 들어가 새로운 가족을 천천히 잡아먹었다. 의심받을 일이 생기면 희수를 범인으로 내세우면서. 희수는 그 과정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악령이 활동하는 시간은 새벽 세 시.

희수는 악령이 집 안에 있는 이들을 쉽게 찾아낼 수 없도록 온갖 사체와 죽어가는 것들을 모아두었다. 그러한 것들이 집에 있으면 악령은 인간의 냄새를 맡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따라가려는 윤성을 막은 것도, 아버지에게 길고양이를 먹이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었다. 악령은 길고양이의 살과 피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어머니가 유독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장면이 있기도 했다.

희수는 저를 예뻐해 주는 윤성의 애정을 알아봤다. 그래서 윤성을 지키고 싶어 했다. 윤성이 떠나자 엄마를 찌른 것도, 아무리 악령이 깃들었다 해도 엄마의 육신인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윤성이 돌아오길 바라서였다. 악령이 사라진다면 윤성이 다시 저를 예뻐해 줄까 봐서.

그러나 희수의 생각은 틀렸다.

영화 결말에서 윤성은 희수를 의심하고 끝내는 정신 병동에 입원시켜 나올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고 회복한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이사 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정말요? 세상에.”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은 한 면접관이 감탄사를 내더니 말했다.

“왠지…! 연기 보면서 되게 소름 끼치는데 동시에 뭔가 이상하게… 안쓰럽다?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아, 맞아요. 웃거나 무표정한 얼굴이었는데 꼭 우는 거 같았죠.”

그 부분이 정희운의 연기와 비교해서 이도현은 이도현이다, 라고 평가한 이유였다. 정희운의 연기는 분명 소름 끼쳤다. 그러나 이도현의 연기는 그러면서도 어딘가 슬프게 느껴졌다.

그런 이중되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연기라니.

이도현은 이도현이다.

그 말밖에 수식할 게 없었다.

* * *

“…휴.”

희운이 깊이 숨을 내쉬며 가져왔던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처음 면접 때 조금 떨긴 했지만, 실기 시험은 나름대로 잘 치른 거 같았다.

‘결과가… 언제 나온다더라.’

희운이 다시금 팸플릿을 꺼내 꼼지락거리며 발표일을 확인했다. …아직 많이 남았네. 빨리 결과 발표되었으면 좋겠다! 도로 팸플릿을 접으며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웅성웅성.

“응?”

왜 저렇게 모여 있지?

희운은 호기심에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순한 눈매를 동그랗게 떴다.

“어… 어?”

주변에 인파가 몰린 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냥 한 명밖에 안 보였다. 혼자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거 같았다.

“저기… 너 괜찮아?”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희운이 고개를 돌렸다. 같은 대기실을 썼던, 희운을 응원해 줬던 소녀였다. 그녀도 시험이 끝나 나온 모양이었다.

“응? 나 괜찮아! 근데 왜?”

“음… 자, 이거 받아.”

소녀는 망설이다가 휴지를 건네주었다. 희운은 멀뚱히 건네받은 휴지를 내려다보다가.

“비 오나?”

휴지가 점점이 젖어 들어가는 걸 보고 고개를 기울였다. 그게 제 뺨을 타고 흐른 것이란 걸 깨달은 건 몇 초 후였다. 희운이 입을 벌렸다.

“나, 나 울고 있었어!?”

“응, 아까부터. 얘,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래. 힘내.”

“어, 고마워….”

그 안쓰러운 응원에 희운은 어리둥절한 낯으로 얼굴을 축축히 적신 물기를 닦아냈다. 근데 닦아내고 닦아내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 나 왜 이러지.”

사실 시험 스트레스가 심했나? 물론 걱정은 됐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혼란스러워하던 희운이 다시금 소년이 있는 쪽을 보았다. 기자까지 등장한 모양인지 이제는 완전히 인파로 몸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희운은 갈등 어린 낯으로 그쪽을 한참이나 응시했다.

말 걸고 싶다. 혹시 우리 만난 적 있냐고, 날 알고 있냐고 묻고 싶은 기이한 충동이 들었다. 왠지 그도 자신을 알아볼 거란 비논리적인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희운이 제 뺨을 쓸었다. 축축한 물기가 묻어났다.

…이런 모습은 꼴불견이잖아. 시험 망해서 우는 애로 알 거 아니야.

도리도리! 희운이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건 싫었다. 너무 바보 같은 첫인상이었다. 결국 희운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채 떨어지지 않는 미련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본 건, 딱히 비밀은 아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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