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3화. 여우와 여우야 (7)
방영은 끝났지만, 드라마 팀은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였다. 오히려 방영 전보다 더욱 긴장한 분위기였다.
모두의 주목 속에서 정가현이 손을 덜덜 떨었다.
‘저게 무슨 의미지?’
사람들이 제각각 머리를 굴릴 때였다. 입을 뻐끔거리던 정가현이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십ㅍ….”
“시팔?”
설마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욕설을 뱉은 것인가. 카메라 감독이 그녀를 황망히 쳐다볼 때였다.
“시, 십팔 점 구요!”
“예?”
“18.9%래요!”
“…헐.”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온다던가.
깜짝 놀란 사람들이 저마다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 그나마 이성을 유지한 정동연이 점잖게 물어왔다.
“최고 시청률 말인가?”
최고 시청률 18.9%라니.
그야말로 기함할 성적이었다. 근 몇 년 사이 첫 화부터 그런 성적을 낸 드라마가 있었던가?
그가 알기론 없었다!
그러나 정가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닙니다. 최고 시청률이 아니라 평균 시청률이 18.9%고 최고 시청률은….”
설마.
사람들이 설마, 하면서도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이윽고.
“21%랍니다!”
“으아아악!”
비명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 진짜로요? 20퍼센트 대를 넘었다고요?”
현실을 믿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곧 그녀가 보여주는 수치에 납득하고 말았다.
이후로는 흥분의 현장이었다.
“잘 나올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잘 나올 줄이야.
모두의 시선이 도현에게 쏠렸다. 시선을 받은 도현이 의아한 눈을 깜빡였다.
최고 시청률 21%.
말도 안 되는 시청률이었다. 평균 시청률이 18.9%라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드라마는 용두사미의 망작이 아닌 이상 첫 화의 시청률이 가장 낮았다. 작년에 가장 인기 있었던 드라마의 출발이 7%였으니 말 다 했다. 그 드라마도 인지도 높은 배우들을 불러 모아 만들었던 기대작이었다.
그리고 7%를 기록한 드라마는 기사에 ‘순조로운 출발’, ‘첫 화부터 호조’라는 제목을 달고 나갔다. 아주 높은 시청률은 아니지만, 그게 첫 시작이라면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인 것이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첫 화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는 드라마가 있긴 했다. 바로 강이든이 출연했던 <불량경찰 2>가 그랬다.
이처럼 시즌작인 경우에, 이전 시즌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그게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로 이어져 높은 시청률을 보이곤 했다. 혹은 먼저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다.
그러나 <구미호뎐 : 인과 연>은 그 두 개의 경우 모두에 해당하지 않았다.
그건….
‘배우의 화제성만으로 그만큼 시청률을 올린 거야.’
정가현이 어리둥절한 낯으로 예쁨 받고 있는 도현을 보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여기서 시청률의 일등 공신은 이도현이었다.
강이든? 좋다. 따라올 자가 없는 배우니까. 하지만 강이든은 작품을 자주 찍는 배우였다. 희소성 부분에서 화제를 끌지 못한다는 소리였다.
신휘민? 희소성이라면 이쪽도 만만치 않지만, 그에게는 대중성이 없었다. 아이돌 팬들에게는 관심의 대상이지만,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니었다. ‘그 그룹 멤버가 나온다고? 신기하네’ 정도로 넘어갈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 두 개를 꽉 잡은 사람이 바로 저기 있었다.
“아이고, 예뻐죽겠네!”
“뭐 시켜줄까. 다 먹어, 다 먹어. 뭐? 배부르다고? 고기가 잘못했네!”
몇몇 이들이 주책을 떨고 있었다. 정가현은 그 광경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출발은 내 힘이 아니야.’
그녀가 만약 이도현을 데려오지 못했더라면 이만큼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이도현을 섭외한 것도 그녀의 능력이긴 하지만, 지금 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감독으로서 역량은 다음 화부터 증명될 것이다.
이대로 용두사미를 할 것이냐.
고공 행진의 길을 걸을 것이냐.
정가현이 씨익 웃었다.
‘거야, 당연히 후자지!’
누가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줄 알고? 그녀가 벌떡 일어나 잔을 높게 들어 올렸다.
“다들! 기분 좋게 한 잔씩 해야죠!”
“우와아아아!”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쁜 밤이었다.
* * *
2화는 낡은 반지하 방에서 시작했다.
전 화에서 긴장감 넘치는 엔딩을 맞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틀었던 사람들은 조금은 황당하고, 조금은 웃긴 심정으로 그걸 보았다.
“야… 너 편해 보인다?”
매트리스에 누워 라면을 와작이며 리모컨을 띡띡거리는 모습은 폐인, 아니, 현대인 그 자체였다. 와작, 와작. 부순 라면을 신명 나게 씹어 먹던 소년이 불만을 내뱉었다.
“그런데 이것 참 요사스러운 맛이다. 오백 년 뒤의 인간들은 이런 것을 좋다고 먹는구나. 영 자극적이어서 원….”
쯧. 혀를 찬 여우야가 봉지 안에서 손을 휘적거리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더 없어?”
“…닥치고 먹든지, 말든지 한 가지만 해, 한 가지만!”
열불이 난 한이련이 왁왁대자 여우야가 시끄럽다는 듯이 귀를 막고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속이 터져 나가는 건 한이련이었다.
“참자, 재물 운만 생각해… 재물 운만…!”
아득, 이를 가는 한이련 뒤로 과거 회상이 나왔다.
“은인께 그리 손해는 아닐 것이야.”
붉은 눈이 해사하게 휘었다. 방긋 웃는 낯이 앳됨에도 절색이건만, 그걸 보는 이는 배 속에 달군 돌을 넣어둔 기분이었다.
“손해가 아니긴 무슨…! 이 나이에 애를 돌보게 생겼는데!”
흐음. 가볍게 신음한 소년이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은인. 왜 인간들이 구미호를 탐내는지 알아?”
또. 또다.
얄미운 어린애 같았다가 금방 초연한 기색을 풍긴다. 요사스러운 붉은 눈만 아니었다면 요괴가 아니라 도사가 아닐까 싶은 기운이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나 고정된 천지의 기운이 사주팔자라면, 후천적이고 변화하는 게 운(運)이지. 이 운에 의해 일생의 길흉화복이 달라진다.”
이어진 건 요괴를 넘어 거의 악마의 속살거림이었다. 소년이 안타깝다는 듯 긴 눈매를 늘어트렸다.
“내 보아 하니 은인의 사주에 재운이 없구나.”
그 말이 나오자 한이련의 머릿속에 고단했던 지난날들이 파바밧 흘러갔다.
엄마라는 인간이 할머니 댁에 그녀를 맡기고는 돈이란 돈은 다 가지고 가버린 것.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친척이 승냥이 떼처럼 모여 그나마 남은 밑천을 다 털어간 것. 간신히 돈을 모았더니 도둑질을 당한 것. 처참한 인생에 대해 말하려면 밤을 새울 수도 있었다.
“허나. 구미호 된 도리로서 은인의 슬픈 사정을 지나칠 수야 있나.”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가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다.
“그, 그럼…?”
마구니다. 저건 마구니야. 속으로 생각하지만 혹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눈치 빠른 요괴는 이미 그 흔들림을 알아챈 후였다.
“영단.”
탁. 흔들거리던 부채를 접은 소년이 눈매를 휘었다.
“내 영단을 줄게. 영단에는 딱 한 번, 주어진 대운을 바꾸는 힘이 있거든. 백 년의 정기를 통해 한 개 만들 수 있는 것을, 은인께 주겠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 저 말에 혹하지 않을 이가 얼마나 있단 말인가?
누군가는 있겠지.
누군가는.
그러나.
덥썩!
“아이고. 이러지 말고 계약서부터 씁시다.”
그게 한이련은 아니었다.
부채를 접은 손을 부여잡은 한이련이 세상 온화함과 자애로움을 담아 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아니, 한 사람과 요괴 한 마리의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2화 방영이 끝나자 커뮤니티에는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 2화 개웃김ㅋㅋㅋㅋ
- 나 1화 보고 진지할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음? ㅋㅋㅋㅋ
- 나도 같은 선택할 듯
- 아 ㅋㅋ 재물 운 그거 누가 참냐고요
감상부터 시작해서.
[이도현 능글맞은 연기 잘하는 듯?]
[이건 구미호가 아니라 아이돌이 될 상이다]
[여우야 진짜 폭스 그 자체다]
1. 경계심 Max인 여주 재물 운으로 꼬셔버리기
2. 여주 알바하는 곳 찾아가서 귀여운 척 다른 사람들 정기 뺏어 가기
3. 강의 시간에 불쑥 나타나서 화나게 해놓고선 가련한 척으로 신체 접촉 (포옹) 허락받기
이게 폭스지 뭐가 폭스냐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