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340)화 (341/582)

제340화. 여우와 여우야 (14)

“밀지 좀 마, 아! 누가 나 쳤어!”

“봤어? 보여?”

“어디 있어? 어디라고?”

복도는 아수라장이었다.

조례가 끝난 후부터 쉬는 시간마다 계속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윗학년들까지 와서 기웃대는 통에 선생님들조차 말리는 걸 포기했다. 이건 말린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이 잔뜩 부풀어 오른 풍선이 가라앉아야 해결되는 일이지.

3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가던 선생님이 생각했다.

‘폭풍이네, 폭풍이야.’

기이한 것은 무슨 투명한 벽이라도 쳐진 것처럼 교실 밖만 아수라장이고 안은 고요하다는 거였다. 문이며 벽이며 창문이며 빈 공간 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서도 무언의 합의라도 이루어진 것처럼 반 안에 발을 딛는 아이들은 없었다. 한 발짝 차이로 다른 공간에 온 거 같았다.

그리고 폭풍의 핵에서 벗어나는 순간 선생님도 안전하지 못했다.

“선생님! 혹시 이도현 봤어요?”

“어때요? 네?”

“얘기 좀 풀어주세요!”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이 달라붙어서 질문을 퍼부어댔다. 그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깨달았다.

‘송 쌤… 현명한 선택을 하셨군요.’

전날의 입학식은 4교시까지 이어졌다. 이후에는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과의 친분 다지기 및 학교 커리큘럼 설명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도현의 담임 선생님인 송 하나는 그 시간을 빠르게 끝내 1학년 2반 아이들을 다른 반 아이들보다 이십 분 먼저 집에 돌려보냈다.

‘송 쌤은 다 계획이 있구나.’

이 교통 체증을 예상한 게 틀림없었다.

물론 그것도 입학식 날에나 부릴 수 있는 요행이라서 오늘부터는 꼼짝없이 폭풍에 휘말려야 하겠지만 말이다.

“애들 되게 신기한가 봐.”

“그러게.”

1학년 2반 아이들이 복도를 흘깃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떠들었다.

“너무 유난인 거 아니야?”

심드렁한 척 말하는 아이는 어제 도현에게 사인과 사진을 요구한 뒤 함께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 아이였다.

“생각보다 평범하던데, 뭐.”

다른 아이가 맞장구쳤다. 그러면서 은근히 의식은 창가 뒤쪽 자리로 향해 있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관심 없는 척하려고 해도 눈동자는 바빴다.

그걸 보고 있던 한설아는 생각했다.

‘애들아, 다 티 나….’

복도 쪽을 보면서는 우월감에 어깨를 으쓱거리고 창가 쪽을 보면서는 어떻게든 시선을 끌고 싶어서 흘깃거린다.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하니 그게 다 보였다.

‘다행이다. 짝이라서.’

그녀도 이도현과 짝이 아니었다면 비슷했을 거 같았다. 이 여유는 옆자리라는 특권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게 틀림없었다.

한설아는 시선을 돌려 도현이 자리한 쪽을 보았다. 용기 있는 남자애가 말을 걸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단편적인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반에서 남자 무리는 이도현을 중심으로 만들어지겠다.

‘안 그렇기도 어렵겠지.’

적당히 대단해야 어떻게 비벼보기라도 하지 않겠는가. 상대가 이도현이면 맞먹어 보려는 의지도 사라지는 법이었다. 그리고 다들 드라마 애청자이다 보니까 그 드라마에 나온 배우에 대한 호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다.

‘아, 그거구나.’

한설아는 깨달았다. 저 풍경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의 정체를. 그건 또래 친구들이 친해지는 모습이 아니라 팬미팅 현장에 가까웠다.

팬심이 안 생기기도 어려운 얼굴이기는 했다. 얼굴뿐인가. 자세나 말투, 두르고 있는 분위기까지 뭔가 또래 애들이랑 달랐다. 현실 속 인물이라기보단 드라마 속 인물이 툭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다라라란-

선배들이 녹음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재생되었다.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한설아는 아이들의 시선을 받으며 도현의 옆자리에 가서 앉았다.

“이거 먹을래?”

“응? …마이쭈?”

“은혁이가 나눠줬는데 좀 많아서. 괜찮으면 나눠 먹자.”

“앗, 고마워.”

한설아는 포도 맛을 받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확실히. 평범하단 말에는 동의하지 못했지만, 착하긴 했다. 한설아가 질문 공격을 받는 걸 알았는지 자꾸 미안한 기색으로 주전부리를 챙겨주려고 하기도 하고.

“너희들! 교실 안 들어가고 뭐 해!”

“앗, 가, 갈게요!”

“하여간에.”

처음 보는 선생님이-사실 담임 선생님을 제외하고 오늘 본 모든 선생님이 초면이었다- 혀를 차며 교실 안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 곳을 보더니 활짝 웃었다.

“어, 그래. 여기가 이도현이 있는 반이지?”

제 옆자리에 관심이 지대한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저 레퍼토리도 지금 네 번째였다.

문득 한설아는 생각했다.

얘도 참 피곤하겠다고.

점심시간에는 자연스럽게 반 아이들이 다 같이 우르르 모여 이동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다들 한 명과 같이 밥을 먹길 원하니까. 어쩌다 보니 반 단합이 이루어진 상황이었다.

물론 그 부가적인 것에 목적이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흠, 흠.”

저를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괜히 도도한 척 턱을 치켜드는 반 친구를 보며 한설아는 웃을 수 없었다.

‘내가 지금 허리 반듯이 폈나?’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라서였다.

애초에 그녀는 연기과를 지원했다. 연기에 뜻이 있는 사람 중에 주목받는 게 싫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게 호가호위더라도 말이다.

급식실에 도착한 한설아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 설아야!”

“다정아!”

그녀의 단짝 친구였다.

“어디 앉아서 먹을 거야? 같이 앉으면 좋을 텐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반 애들 다 같이 먹기로 해서….”

한설아가 1학년 2반 무리를 흘깃 눈짓하자 배다정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테이블만이라도 가까운 데서 먹자!”

“너희 테이블 어딘데?”

“저쪽.”

“그 뒤에 우리가 앉으면 되겠다.”

애들한테 저기 앉자고 말해야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그런데 너희 반 이도현 진짜 인기 많다. 우리 반도 마찬가지긴 한데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

“응? 너희 반도?”

“아. 말 안 해줬어? 우리 반에 걔 있어. 정희운.”

“…진짜?”

“응. 쉬는 시간마다 애들이 달라붙어서 질문하고 장난 아니야. 어떻냐면… 아니다. 지금 저기 봐봐. 저기.”

급식을 받는 아이들 사이에서 얼핏 정희운이 보인 것도 같았다. 

“그치?”

“그러게.” 

수긍한 한설아가 말했다.

“다정아, 먼저 가 있어. 나 애들 데리고 저쪽으로 갈게.”

“좋아!”

한설아는 배다정을 보낸 뒤 맨 앞줄에 선 아이에게 가서 저 테이블에 앉자고 말을 전했다. 아무래도 상관없던 아이는 선선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이는 일 초도 지나지 않아서 붙잡혔다.

“어디 가?”

“물 가져오려고.”

“서운하게 혼자 가냐. 같이 가자, 그럼!”

빠르게 선수 친 남자아이에 다른 아이들이 아쉽다는 표정을 했다. 붙잡힌 아이가 웃으며 그러자고 말했다.

그러나 속내는 조금 달랐다.

‘불편해….’

어제부터 오늘까지.

어딜 가든 시선이 따라붙었다. 공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쳐다보는 얼굴들에 거리낌이 하나도 없었다. 대놓고 감상하듯 보는 애도 있고 눈빛으로 품평하는 애들도 있었다.

연기에 뜻이 있는 사람 중에 주목받는 게 싫은 사람. 그 소수에 속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정희운이었다.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껴 연기를 시작한 것과는 모순되게도 그는 관심의 대상이 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있는 듯 아닌 듯. 바람인 듯 공기인 듯 존재하는 게 적성에 맞았다.

‘울렁거려.’

표정 하나, 말 하나에 지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그대로 있다가는 체할 거 같아서 잠시 자리를 피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단순히 따라 나온 친구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저기 걔 아니야?”

“어, 맞네!”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리 유명한 배우는 아닌 거 같은데 이상하게 이 학교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한둘쯤은 모르겠지만 희운에게는 그거나 그거나 비슷하게 느껴졌다.

“오. 우리 앞자리에 2반 앉나 봐. 어, 대박. 이도현이다.”

띵.

정수기를 누르던 손에서 힘이 풀렸다. 물은 채 반절도 차지 않은 채였다.

“다 됐어?”

“어, 응.”

“가자, 그럼! 배고프다.”

“으응, 가야지….”

희운의 팔다리가 기름칠이 안 된 로봇처럼 삐걱거렸다. 괜히 시선을 물컵에 고정한 희운은 생각했다. 어느 방향에 있을까? 궁금했지만, 왠지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

시선을 땅에 박은 채로 급식판이 있는 자리까지 돌아온 희운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와 체념이 섞인 한숨이었다.

‘진짜 겁쟁이다, 나.’

다른 애들이 쉬는 시간마다 2반으로 구경 갈 동안 희운은 한 번도 발걸음하지 않았다.

신입생 대표로서 강당에서 보았던 소년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멀었다.

‘멋있었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도 주눅 드는 기색 없이 침착했다. 자리로 가는 길에 모두가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을 텐데도 그저 당당했다. 자신이라면 머릿속이 새하얘졌을 텐데.

희운은 그날 소년을 조금 더 동경하게 되었고 딱 그만큼 더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탁. 그대로 물컵을 내려놓은 희운이 자리에 앉기 위해 푹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얼어붙었다.

새벽 밤보다 더 어두운 검은 눈이 그를 옭아매는 거 같았다. 희운은 작살에 꿰인 물고기처럼 꼼짝하지 못하고 시선을 마주쳤다.

몇 초. 고작 몇 초였다. 그 몇 초가 희운에게는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당혹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안도와 반가움으로 변질되었다.

이 기분을 느끼는 게 나 혼자가 아니다.

이건 착각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에서 기인한 안도감이었다.

점점 확신이 차오를 때였다.

“…어?”

희운은 바보 같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검은 눈동자가 그에게서 미련 없이 떨어졌다. 그가 방금 느낀 게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듯이 한없이 냉담했다. 검은 눈동자는 지나가는 돌조각을 눈에 담았던 사람처럼 희운을 스쳐 지나가 옆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의 주인은 입가에는 옅은 미소를 띤 채로 제게 말을 걸어오는 이들에게 대답해 준다. 일련의 과정이 잘 짜인 극의 한 장면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동시에 희운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가정 하나를 떠올렸다.

학교에 있을, 그를 모르는 한두 명이 바로 도현일지도 모르겠다는, 최악의 가정을.

* * *

“요! 도리도리!”

발랄하게 어깨를 탁 친 사람은 새로 사귄 친구들이 아니라 서지민이었다. 도현은 어째 반 애들보다 촬영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자신을 더 편하게 여기는 거 같다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지민 누나.”

“치킨은 쐈어? 중학교는 어때?”

“치킨은 아직이요.”

“왜? 그거 하나면 인기 최고일 텐데.”

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게 문제예요.”

“뭐? 아하하! 애들이 너한테 관심이 많아?”

빵 터진 서지민이 웃으며 묻자 도현이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갈 때마다 몰래, 아니 대놓고 따라와서 물 마시러도 못 가요.”

“그게 뭐야. 피리 부는 사나이도 아니고.”

이것도 얌전하게 표현한 거였다. 그냥 따라만 오는 게 아니라 사진을 찍고, 제 이름을 불러대고, 저를 주제로 떠들었다. 사람인 이상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만, 지금은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다. 어느새 촬영장에 도착한 신휘민이 도현의 이야길 듣곤 공감의 눈빛을 했다.

“고생이네.”

짧은 문장에서 경험자의 바이브가 느껴졌다. 도현은 새삼 신휘민이 새롭게 보였다. 그에게는 이게 일상이라는 거 아닌가.

“익숙해질지 모르겠어요. 미국에 있을 때랑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약한 소리를 하는 도현을 신휘민이 신기한 것을 보듯이 쳐다보았다. 얘가 어려워하는 것도 있었네. 딱 그런 표정이었다.

“내가 보기에 넌 금방 적응할 거 같은데.”

“네? 절 너무 대단하게 보는 거 아니에요?”

“글쎄….”

그야 내가 고개 숙이고 들어간 앤데. 당연히 안 대단해도 대단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신휘민은 속마음을 감추고 의뭉스러운 대답만 흘렸다. 도현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대답이 돌아올 거 같지 않자 시선을 뗐다.

“친구는?”

“악! 뭐야! 언제 왔어!”

갑자기 툭 튀어나온 목소리에 서지민이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처음부터 여기 있었어요.”

친절하게 대답해 준 사람은 도현이었다. 그 옆에서 쭈그려 있던 몸을 편 강이든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있으면 있는 척이라도 하든가….”

덩치가 그렇게 큰데 눈에 안 띄는 것도 재주다 싶었다. 서지민이 고개를 젓는 사이, 도현이 강이든에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반 애들이랑 인사는 나눴어요.”

서지민은 그 광경을 신기한 기분으로 보았다. 저 선배가 상대의 개인사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는구나. 연기에만 미쳐 사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래도 연기 우선.”

“아, 물론이죠.”

…그럼 그렇지.

뭘 기대했나 싶어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쟨 또 저기서 뭘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고 있는 건지. 그 꼴을 더 봐줄 수 없었던 서지민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단짝은 생겼어?”

“누나.”

도현이 침착하게 서지민을 보았다.

“그런 건 보통 두 사람이 같이 있을 시간이 주어져야만 생기는 거 아닌가요?”

“아….”

그녀는 조금 숙연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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