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343)화 (344/582)

제343화. 여우와 여우야 (17)

드라마는 쉴 틈 없이 몰아쳐 클라이맥스까지 다다랐다. 주술이 완성되어 여우야의 몸이 구속되고 해아가 비명을 질렀다. 명곡이라고 평가받는 OST가 극적인 분위기를 배가시켰다.

도현과 두 사람은 화면에 온전히 집중한 채였다.

“은인, 은인님! …여우야!”

산 채로 심장이 뜯기는 기분이 이러할까. 두 눈에서 피눈물이 나올 거 같았다. 저 때문에 늘 피를 묻혀 오던 이가 기어이 제 몸까지 포기하고 있었다.

“제발, 그만해요! 이만하면 됐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도망가세요! 이곳을 벗어나시란 말입니다! 제발, 좀!”

목에서 피를 토할 것처럼 외쳐 봐도 여우야는 요지부동이었다. 생리적인 고통에 일그러진 남자의 낯이 망막에 선명히 새겨졌다. 목덜미에 와 닿는 칼날보다 그게 더 그녀를 괴롭게 했다.

“제발, 제발….”

기어이 해아가 무너졌다.

그녀는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감싼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자식만큼은 지키려 했던 아버지의 목이 베인 것도, 남자가 저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이 오래된 인연의 사슬을 끊을 때가 되었구나.”

해아의 귀에 스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이한 일이었다. 그 순간 해아는 평정을 찾았다. 멍한 낯으로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해아는 그제야 이 상황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깨달았다.

나였다.

내 욕심이었다.

내가 당신을 보고 싶어 해서. 내가 당신을 놓아주지 못해서. 내가 당신을 원해서.

내가 당신을 마음에 품어서.

“…은인님.”

화면 속의 해아가 웃었다. 뺨이며 입꼬리며 볼썽사납게 떨렸지만, 그건 분명 미소였다. 마지막으로 연모하는 이에게 어여쁘게 보이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먼저 끊어내지 못하시겠다면.” 

가엾을 정도로 흔들리면서도 단단한 목소리였다.

“제가 하겠습니다.”

둘이서 작은 오두막에 살 때, 산짐승이 집 주변까지 들이닥친 적이 있었다. 그날 남자는 해아에게 작은 단도를 쥐여 주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올 때까지만 버텨 달라면서.

손바닥과 손목이 베이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무작정 저를 구속하던 밧줄을 잘라냈다. 붉은 피가 번져나갔다. 이상을 눈치챈 여우야가 뒤늦게 주술에서 벗어나기 위해 울부짖었다.

그러나 그보다 해아가 더욱 빨랐다. 세 사람의 귀에 익숙한 대사가 들렸다.

“그러니 자유로워지세요.”

쓰러지는 몸을 단단한 손이 다급히 받아들었다. 해아는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보이는 붉은빛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마지막으로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게 살아 있을 때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도현은 몰아치는 강이든의 연기를 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정신을 잃고 죽어가는 해아를 보며 그는 완전히 넋을 놓았다. 괜찮다, 살려주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제 피를 흘려 넣다가 통하지 않자 덜덜 떤다.

육체가 점차 차갑게 식는다. 혼이 떠난 육체는 생기를 잃어간다. 여우야는 도저히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흰자까지 온통 붉어진 채로 피눈물을 흘리던 요괴는 기어이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저지른다.

여우야는 저를 죽이려던 주술 한가운데에 해아를 집어넣고 그녀에게 요기를 쏟아붓는다. 법력과 신력, 그리고 요기까지 휘몰아치며 해아에게 스며들었다. 죽음보다 더한 무게가 실리니 인간의 영혼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인연의 끈에 붙들린다.

스님이 두 눈을 부릅떴다.

“어, 어찌 그런… 그런 짓을 저지른 것이냐!”

진심으로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너로 인하여 그녀는 억겁의 시간 동안 고통받을 것이다. 구천을 떠나지도 못하고 발을 붙이지도 못한 채 떠돌아다니다 악귀가 되어 지옥에 떨어질 거란 말이다!”

여우야는 윤회의 사슬로 들어서려는 해아의 혼백을 저주했다. 영계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영원히 지상을 떠돌도록. 그리하여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제 곁에 머물도록.

오직 죽음에서 기원한 요괴만이 걸 수 있는 저주였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여우야는 그저 침묵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숨이 멎은 해아의 육신에만 고정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에, 주지 스님은 알 수 없는 표정을 하다가 주술을 발동시킨다. 무엇이 그의 마음에 파문을 일게 했는지는 몰랐다. 억겁을 떠돌게 될 해아를 향한 연민인지. 혹은 그들이 절에서 지낸 동안 쌓였던 정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혹인지.

그리하여 죽음에 다다라야 했을 여우야가 죽음 대신 산수화에 봉인되고.

그로부터 오백 년 후.

영혼 상태로 그 오랜 시간 지상을 떠돌며 과거와 자아를 잃어버린 해아의 혼백이 태어나자마자 죽어야 했을 아이의 몸에 깃들게 된다. 그렇게 다시 태어난 해아가 인연의 실에 이끌려 봉인된 절에 발을 딛게 된다.

* * *

[여우야 이 미친놈]

해아 저주해서 몇백 년간 영혼 상태로 떠돌게 했단 거 아님… 진짜 집착 끝판왕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