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352)화 (353/582)

제352화. 종영, 그리고 (7)

강이든은 1조, 서지민은 3조였기 때문에 두 사람과 헤어진 신휘민과 도현은 뒷산으로 향했다. 그들에겐 두 명의 스태프가 따라붙었다.

“나물 캐본 적 있어?”

“아니요. 형은요?”

“나도.”

말을 한 신휘민이 스태프를 흘긋 쳐다봤다. 시선을 받은 스태프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힌트 같은 건 없는 모양이었다.

“형. 그러게 옥수수 드시지 그랬어요.”

도현의 말에 신휘민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미션 장소로 향했다. 주로 종영 후 어떻게 지냈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랜만에 만난 기분은 안 드네.”

그러다 나온 이야기에 도현은 곧장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텔레비전을 켜면 높은 확률로 셋 중 한 명은 꼭 보였다. 한창 드라마 붐이 가시지 않은 시기라 더 그런 거 같았다.

“제 CF도 봤어요?”

“당연하지.”

로하이에서는 퍽 공격적으로 광고를 내보내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제 광고가 나올 때마다 채널을 돌렸던 도현은 이젠 무념무상의 경지에 올랐다.

CF를 찍을 당시.

광고사 측에서는 드라마와 연관시키는 건 강이든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는지, 도현에게 여우야가 연상될 무언가를 시키지 않았다. 대신에 독특한 요구를 해 왔다.

춤을 춰 줄 수 있겠냐는 게 그것이었다. 그 요구를 듣고 도현은 당황했다.

춤이라니.

그러면 적어도 며칠 전에 연습할 시간은 줘야 할 텐데.

그 걱정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스태프가 시범을 보여준 춤이 굉장히 단순했던 것이다. 춤이라기보단 리듬을 탄다, 라는 표현이 더 정확했다.

흰 대리석 바닥이 유독 깔끔해 보이는 공간. 연한 하늘색 셔츠와 흰 바지를 입은 도현은 노래에 맞춰 흥겹게 춤을 추며 식탁에 있는 정수기로 향하고, 배경으로 녹음해둔 나레이션이 울린다.

- 로하이가 로하이인 이유.

그래도 드라마의 인기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었는지 미묘한 패러디를 하긴 했다. ‘요괴가 왜 요괴인 줄 아느냐’에서 따온 멘트였다. 사실 너무 미묘해서 패러디라기에도 애매했다.

이후로 정수기를 어필하는 멘트가 이어지며 광고가 끝이 난다.

“춤 잘 추더라. 우리 메댄 형이 너보고 재능 있댔어.”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도현은 허허롭게 대답했지만, 신휘민은 진심이었다. 그가 보기에도 도현의 춤사위는 예사롭지 않았다.

그냥 막춤을 추는 거 같긴 한데 춤 선이 하늘하늘했다. 아직 덜 자란 소년의 몸이라 더욱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지만… 어딘가 시선을 사로잡는 우아함이 있었다.

‘발레를 배운다고 했나.’

신휘민이 도현을 흘긋 쳐다보았다. 무용하는 사람 특유의 곧음이 느껴졌다. 이제 보니 자세나 체형이 반듯해서 춤 선이 유독 예뻐 보이는 거 같았다.

그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광고가 공개된 날 실시간 검색어는 ‘이도현 로하이’, ‘이도현 춤’이 장악했다.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미션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다. 나무, 풀, 그리고 돌멩이….

그냥 다 잡초 같은데?

“…찾아봐야죠.”

“…그래. 그래야지.”

한숨을 삼킨 신휘민이 바짓단을 접어 올렸다. 일단 뭐든 뽑아서 가져가면 되겠지.

카메라맨은 웃음을 참으면서 두 사람을 찍었다.

‘기막히게 먹을 수 있는 것만 피해가네.’

신휘민은 바로 옆에 미나리가 있는데 몰라보고 그 옆의 잡초를 뽑고 있었다.

도현이라고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어어… 저거 칡인데.’

대왕 칡을 무심히 지나쳐간 도현이 알 수 없는 풀을 뜯었다. 쓸모없는 풀을 뜯으면서 표정만큼은 진지했다.

두 도시 출신 남자가 삽질하는 걸 즐거운 마음으로 찍을 때였다.

“어.”

신휘민이 작게 탄식했다. 그에 카메라맨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신휘민은 어딘갈 보고 있었다. 도현도 그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다람쥐?”

도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바위 위.

다람쥐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메라맨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시골 동네고, 산이다 보니 다람쥐가 사는 모양이었다. 저러다 금방 사라지겠지만, 일단 모양새는 좋으니까 찍어두고….

“…응?”

“어?”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신휘민이 드물게 놀라 뒷걸음질쳤다. 놀란 건 카메라맨도 마찬가지였다.

도도도!

금방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던 다람쥐가 사라지기는 무슨, 어찌 된 영문인지 이쪽으로 도도도 달려왔다가 멈춰서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도도도 달려왔다가 멈춰 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쟤 왜 이리로 와?”

당황한 신휘민이 뒷걸음질치며 말했다.

산짐승, 그것도 다람쥐는 경계심 많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사람을 보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다가오다니?

심지어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세상에.”

옆에 있던 스태프가 놀람을 참아내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 늘 싱글싱글 웃던 신휘민의 눈도 놀라움으로 인해 커진 지 오래였다. 카메라맨은 들썩이는 어깨를 진정시키며 간신히 카메라를 잡았다.

‘이건… 대박이다!’

갈색 털을 가진 복슬복슬 조그만 다람쥐가 곤란한 얼굴을 한 도현의 어깨 위에 올라가 있었다. 놓치면 안 돼! 집념에 의해 카메라맨은 그 장면을 열심히 담아냈다.

도현은 당혹이 깃든 눈으로 제 어깨에 올라탄 다람쥐를 쳐다보다가, 어떡하냐는 듯이 신휘민을 보았다.

“…뭐야. 디즈니야?”

아주 오랜만에, 필터를 거치지 않은 심정이 튀어나왔다. 놀라움 반과 어이없음 반이 절묘하게 섞인 목소리였다.

한편.

‘귀엽… 아니, 이게 아니라.’

잠깐 다람쥐의 살인적인 귀여움에 홀릴 뻔했던 도현은 정신을 차렸다.

‘그걸 잊고 있었네.’

한동안 동물을 접할 일이 별로 없어서 까먹고 있었다.

그는 본래 동물한테 인기가 많았다. 심지어 바다사자한테 쫓긴 적도 있지 않았던가. 산 다람쥐라고 다르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러면 미션 수행이 어려울 텐데.’

도현은 심각한 눈빛으로 다람쥐를 쳐다보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털에 까만 눈동자, 갈색 코와 핑크빛 입가, 조그마한 손….

“…….”

과도한 귀여움에 잠시 정신이 아찔해졌다. 집 나간 정신을 되찾아준 건 옆에서 들린 목소리었다.

“원래 다람쥐가… 사람을 따르던가?”

어느새 옆에 다가온 신휘민이 물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도현은 다람쥐를 만난 건 처음이지만,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휘릭!

신휘민이 가까이 오자 다람쥐가 반대편 어깨로 옮겨 갔다. 다시 슬금거리며 가까이 오자 이번엔 옆구리로 숨어든다. 명백하게 싫어하는 태도였다.

신휘민이 떫게 말했다.

“조그만 게 사람 차별하네?”

난데없이 차별당한 신휘민이 살랑거리는 꼬리를 노려보았다. 도현은 다람쥐가 혹여 떨어질까 싶어 옆구리에 달라붙은 몸을 손바닥으로 받쳐주며 말했다.

“형이 싫은 건 아닐 거예요. 그냥 동물들이 저를 좋아하더라고요.”

여전히 납득하지 못한 눈치에 친절하게 덧붙여 주기까지 했다.

“예전부터 그랬어요.”

손바닥에 올라탄 다람쥐를 양손으로 받쳐 올린 도현이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말하자, 세 사람은 동시에 생각했다.

이게… 그걸로 설명 가능한 일이던가?

궁금증을 참지 못한 스태프가 입을 열었다.

“혹시 기르던 다람쥐예요?”

“네? 아니요?”

“아, 안면이 있다거나?”

“저 여기 처음 와봐요.”

그럼 대체 뭔데.

뭔데 자연스러운 건데?

얼떨떨한 세 사람과 달리 정작 본인은 처음에 어깨에 올라탈 때만 놀랐지, 딱히 새삼스러워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다. 도현이 장난스레 다람쥐의 코를 툭, 건들자 다람쥐가 손가락을 피해 팔을 타고 올라가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 그러면서 절대 몸에서 떨어지지는 않는다.

도현이 정수리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곤란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물 캐야 해서 너랑 못 놀아줘. 이제 내려가.”

내려가라면서 눈과 목소리엔 꿀이 뚝뚝 떨어졌다. 내려가라는 건지, 평생 붙어 있으란 건지 알 수 없었다. 몇 번 더 말하던 도현이 난감한 표정으로 신휘민을 바라보았다.

“어떡하죠. 미션해야 하는데 얘가 안 내려가네요.”

네가 보내줄 생각이 없는 건 아니고? 신휘민은 마음의 소리를 내뱉는 대신에 ‘그러게….’ 하며 영혼 없이 대답했다.

“음, 잠깐만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던 도현이 정수리에 올라탄 다람쥐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다람쥐가 자연스럽게 그 위로 올라갔다.

“네가 머리 위에 있으면 내가 미션을 하기 힘들어.”

지금 말을 거는 건가?

“얌전히 있겠다고? 정말 그럴 거야?”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저게 진심인지, 장난인지 구분이 안 됐다. 그 와중에 도현은 다람쥐와 극적인 타협을 본 모양이었다. 소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얌전히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야 해. 알겠지?”

도현이 다람쥐를 도로 어깨 위에 올렸다. 다람쥐는 제 지정석이라는 듯이 정수리로 기어 올라갔다. 도현이 그들을 돌아보며 상쾌하게 웃었다.

“나물 캘 때까지만 같이 있고, 돌아갈 때 보내기로 했어요. 얌전히 있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

뭔가 많이 이상한데,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신휘민이 침묵하자 긍정의 의미로 알아들은 도현이 다시 쪼그려 앉아 나물을 캐기 시작했다. 물론 정수리에 다람쥐를 올린 채였다.

“뭐….”

떨떠름한 낯의 신휘민이 스태프를 돌아보자, 그들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이 상황을 모르겠어요. 대충 그런 대답이었다. 신휘민은 침착하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한적한 시골 숲속 풍경.

햇빛 아래서 유독 하얗게 빛나는 소년과 어깨에 올라탄 다람쥐….

“무슨 백설 공주도 아니고.”

신휘민의 입에서 정확히 두 스태프의 심정이 흘러나왔다.

돌아갈 때가 되어서는 거의 눈물겨운 이별이 이어졌다. 낮은 나뭇가지에 다람쥐를 조심스레 올려놓은 도현은 양봉장 차린 눈으로 아련하게 다람쥐와 시선을 교환하고 있었다.

“응. 나도 보고 싶을 거야.”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이다. 외모가 깡패라고,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나 얼굴에 떠오른 수심이 무슨 슬픈 사연이 있는 사람 같아 보였다.

“안녕….”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떼어낸 도현이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돌렸다.

“형, 가요.”

“…그래.”

드라마 찍을 때보다 더한 멜로 눈깔을 장착한 쪽이 문제일까. 아니면 산짐승 주제에 미련이라도 남은 것처럼 이쪽을 응시하는 다람쥐가 문제일까. 더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 마치 이쪽이 사이를 갈라놓은 악당이 된 기분이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우울하던 낯이 조금 걷힌 걸 보던 신휘민은 수많은 물음 중에서 간신히 한 가지를 골라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뭐가요?”

여전히 조금은 우울한 낯의 도현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신휘민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다람쥐랑 말이 통하는 거야?”

신휘민의 물음에 두 스태프가 가려운 부분을 긁어줬다는 듯이 두 눈을 빛냈다.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이 도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하하, 형. 농담도 재밌게 하시네요.”

명랑한 웃음소리였다. 아, 덕분에 우울한 게 조금 나아졌어요. 도현의 말에 신휘민은 떨떠름해졌다.

“…농담 아닌데?”

“아?”

진심을 읽었는지 도현이 웃음을 멈췄다. 얼굴에 황당함이 떠올랐다가, 이내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를 본다.

“형…. 사람이 어떻게 동물이랑 대화를 해요.”

상식적인 대답이었다. 그래. 평소의 신휘민이라면 동의했을 상식적인 대답. 오히려 그라면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 놈을 경멸했겠지. 그는 정신세계가 동화 속 꽃밭인 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근데 그걸 네가 말하면 안 되지.’

신휘민은 굉장히 억울해졌다.

* * *

이미 촬영지에는 다른 팀들이 도착해 있었다. 강이든이 속한 1조는 낚시에 실패했는지 맨손으로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반면 서지민의 발아래에는 무언가 바리바리 많았다.

도현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저 팀은 부재료만 가져오는 거 아니었나?’

어째 뭔가 많아 보였다. 그때 신휘민과 도현을 발견한 서지민이 알은체하며 다가왔다.

“뭐야, 뭐 가져왔어? 어? 냉이네?”

바구니에 가득 담긴 그것은 냉이였다. 내내 이상한 잡초만 뜯던 신휘민이 마지막에 기적적으로 발견한 것이기도 했다.

신휘민이 그 생김새를 알아본 건 전적으로 리더 덕분이었다. 그가 심심하면 냉이된장국을 끓이는 탓에 그 모양새가 기억난 것이다.

“와! 된장국 끓이면 되겠다! 잘했어, 휘민 씨!”

“하하… 네.”

“응?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글쎄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웃자 의아한 눈을 하던 서지민이 물었다.

“근데 이게 다야? 나물 한 종류밖에 없어?”

그 질문에 두 사람은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한쪽에서 그 광경을 찍고 있던 감독이 도현과 함께 돌아온 카메라맨한테 말을 걸었다.

“잘 찍었어?”

“어, 네….”

영 떨떠름한 대답이다. 감독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분량 쓸 만한 거 없었어?”

감독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아무리 쓸 만한 장면이 없더라도 신휘민과 이도현이 나오는 부분을 잘라낼 수는 없다. 편집에 공을 들여서 어떻게든 살려 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뜸을 들이던 카메라맨이 입을 열었다.

“아뇨, 그건 아닌데….”

“왜 이리 뜸을 들여? 팍팍 말해 봐. 내 속 터트리려고 그래?”

결국 카메라맨은 솔직히 말했다.

“이도현은 요정이 아니라 백설 공주였어요.”

이 미친놈은 뭔 개소리야?

감독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게… 이 소리였냐?”

“네.”

감독이 눈을 끔뻑였다. 이상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