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 (363)화 (364/582)

제363화. 종영, 그리고 (18)

이도현은 소년의 십 년하고도 삼 년 정도 더한 삶에서 만난 이들 중 가장 이상한 존재였다. 어떤 식으로 이상하냐면, 이도현은 꼭 불가사의한 문제처럼 보였다. 난제 같은 거 말이다.

그래. 난제. 적절한 표현을 찾아내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정희운에게 이도현은 난제였다.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는, 답이 존재하기는 한 건지 의문인 난제 말이다.

어떤 부분 때문에 그렇냐고 묻는다면, 희운은 버벅댈 것이다. 말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콕 집어 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게 문제처럼 보여서.

최근 희운은 조심스럽게 의심을 제기하는 중이었다. 이도현은 혹시 다중인격 장애나, 혹은 미약한 조울증을 앓는 환자가 아닐까. 멀쩡한 소년을 정신 이상자로 만들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오랜 고민 끝에 도달한 의구심이었다.

여기엔 나름대로 적절한 근거가 있었다. 바로 희운을 대하는 소년의 태도였다.

희운은 그 이상한, 아니, 불가사의한 태도가 시작된 게 그가 처음으로 이동 수업에 온 날부터였음을 상기했다. 그날 이도현은 희운과 드라마 연기를 맞춰보더니 굉장히 복잡 미묘하면서도 후련한 얼굴을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연기의 여운에 잠겨 있던 희운은 앞으로 시작될 일들을 전혀 예상치 못하고 있었다. 그가 처음 이상한 점을 깨달은 건 다음 날 점심시간이었다.

어디선가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름대로 시선에 익숙한 희운조차도 의아해질 만큼 따가운 시선이었다. 그 시선의 주인을 알아챈 순간 희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이도현이기 때문이었다.

기묘한 시선 교환을 먼저 끝낸 건 저쪽이었다. 그는 그런 적 없다는 듯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지극히 태평했다.

내 착각인가?

분명 눈까지 마주쳤건만 희운은 스스로를 의심했다. 조금 멍청해 보이리란 건 안다. 하지만 상대의 태도가 너무 태연했을뿐더러, 희운은 이미 이도현에 관해서 자신감을 어느 정도 상실한 후였다. 결국 희운은 그게 착각이리라 여겼다.

다시금 그 시선을 느낀 건 체육 시간이었다. 체육이 겹친 두 반은 같이 피구를 하게 되었고, 별 의욕이 없는지 느긋하게 굴던 이도현은 금방 탈락했다.

그리고 그 뒤로 희운은 정확히 세 턴 만에 탈락했다. 

말하자면, 그건 꽤 드문 일이었다. 희운은 순발력이 좋은 편이라 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남았으니까. 사실 이 탈락은 조금 억울한 구석이 있었다.

시선.

저 시선. 음울하게 노려보는 저 시선. 누군들 저런 시선을, 심지어 그 이도현에게 받으면 희운처럼 뻣뻣하게 굳어 탈락할 게 분명했다. 세 턴이나 버틴 게 오히려 기적이었다.

희운은 심각하게,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혹시 내가 던진 공에 맞았나? 그게 아니고서야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다. 희운은 머릿속에서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 내가 공을 던진 모양이지. 탈락시킨 건 다른 애였단 건 까맣게 지워버린 채였다.

그래서 희운은 사과했다.

그리고.

- 지금 사과한 거야?

의문, 당혹, 황당함이 섞인 시선을 받았다. 이도현은 기이한 것을 보듯 그를 보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선 친절하게 ‘나는 너한테 공을 맞은 적이 없고, 만약 그렇다고 해도 피구 시간에 공 맞은 걸로 화가 나진 않는다’며 해명했다. 말하면서도 이걸 왜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그건 꽤 창피한 일이었다. 당시 희운은 허둥지둥 자리를 떴지만, 결과적으로 그 일은 마냥 최악만은 아니었다. 그 후로 희운을 보는 이도현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기 때문이었다. 그건 누그러졌다기보단 황당함이 섞인 것이지만 희운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희운은 용기를 내보았다.

- 책을 추천해 달라고?

이도현이 책을 좋아한다는 건 이미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책을 읽고 종종 도서관에서 발견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응. 독후감 숙제를 해야 해서….

- 그 정도는 알아서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추천 도서 목록을 참고해도 좋을 거 같은데. 마침 내가 가지고 있거든. 필요하니?

목소리는 친절한데 내용에는 묘하게 뼈가 있다. 하지만 희운도 그동안 도현에게 적응했다. 그 정도의 거부에는 흔들리지 않는 잡초 같은 꿋꿋함을 가졌단 뜻이었다.

-네가 더 잘 알 거 같아.

- …오, 그래. SAT 추천 도서보다 나의 주관을 더 신뢰한다니. 참 고마운 일이네.

이도현의 대화 방식은 항상 이랬다. 막상 앞에 두고 보면 부드럽게 웃는 눈매와 깃털 같은 목소리 탓에 알아챌 수 없는데 상황을 벗어나 생각해보면 ‘그거 화낸 거였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다른 애들한테는 그러지 않는 거 같은데… 아냐. 이 생각은 그만. 생각하면 할수록 우울해지는 문제라 다시금 고이 덮어두었다.

희운이 생각에 빠졌다 나온 사이 이도현은 공책 한 면에 무언갈 적어 내려간 후였다. 자세만큼이나 반듯하게 써진 글씨는 책의 제목이었다.

- 추천 도서 중에서 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것들이야. 여기 있는 것 중에서 읽은 거 있어?

- 어, 아니….

- …하나도?

- 응….

- …….

이도현은 침묵했다.

- 그래…, 이건 물론 반절이지만 SAT 목록을 참고한 거고, 여긴 한국이니까.

나름대로 무언가 합리화한 거 같은 이도현이 공책 한 면을 뜯어내 제게 주었다.

- 네 취향에 맞는 책을 골라 읽어.

소중히 그 종이를 가지고 돌아온 희운은, 이도현이 골라준 다섯 개의 도서가 생각보다 재밌으며, 제 취향에 맞는단 걸 깨달았다.

- 네가 추천해준 책 읽었어.

- 그래. 보고할 필요까진 없었지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

- 다 재밌더라. 고마워.

이도현은 멈칫했다. 희운이 추천해준 목록을 모두 읽었다는 걸 짐작해낸 얼굴이었다. 그는 굉장히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웃었다. 그건 분명 웃음이었다.

물론 평소에도 곧잘 웃는 낯이긴 한데 그것과는 조금 결이 달랐다. 희운이 눈이 조금 크게 뜨였다. 

지금 혹시… 친해진 건가? 

그 생각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를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그리 생각하니 그동안 서운했던 마음이 녹아내렸다.

다음 날.

- 안녕!

희운은 이른 아침, 복도에서 만난 이에게 힘차게 인사했다. 밝게 상기된 얼굴이나 반짝거리는 눈동자가 부정할 수 없는 기대감을 담고 있었다.

선생님과 대화하며 웃음기가 올라왔던 검은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그리고 두 눈에 맺힌 웃음이 잦아들었다.

- …안녕.

단조로운 인사는 언뜻 차갑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도현은 그대로 희운을 지나쳐갔다. 마치, 처음 교무실 앞에서 만난 그날처럼.

왜?

하룻밤 지났을 뿐인데, 다시 과거로 돌아간 관계를 희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친해진 거 아니었나? 분명 그랬는데… 왜?

그 후로도 몇 번이고 희운은 이도현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단답, 혹은 미약한 거부가 전부였다. 때때로 모호하고도 미묘한 눈빛을 보낼 때도 있었다.

희운은 정말로, 그들의 관계가 진전은커녕 다시 되감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건 절망스러운 일이었고, 또한 열넷의 소년이 이해하기엔 너무 기이한 일이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젠 반대로 희운이 소년을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전처럼 친근하게 굴었다가 안 받아주면? 받아줘도, 다음 날 모르는 척하면?

희운이 먼저 피하기 시작하자 두 사람 사이의 접점은 빠르게 사라졌다.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희운이 일방적으로 다가가는 관계였으니까 당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운은 보았다.

복도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소년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희운이 도망쳐 버리자 검은 눈동자에 깃들었던 순간의 감정을. 약간 일그러지는 눈매와 깊게 가라앉은 검은 눈. 그건 분명… 상처받은 얼굴이었다.

왜?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온통 의문이었고 해갈될 길 없는 궁금증이었다. 이젠 희운도 알기 때문이었다. 묻는다고 해서 상대가 순순히 대답해줄 일은, 아마 영영 없으리란 걸.

희운은 도무지 이도현의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 사고 회로를 따라갈 수도 없었다. 그저 태풍을 만난 사람처럼 속절없이 휘둘릴 뿐이었다.

이후로도 변덕은 계속되었다.

불쾌감을 담은 시선을 보내다가도 묘한 눈빛을 했다. 그를 무시하다가도 막상 희운이 시무룩해지면 자기가 상처받은 표정을 했다. 정말로 평생에 걸쳐 가장 불가사의한 문제를 직면한 기분이었다.

눈앞에서 도깨비불이 일렁이면 이런 느낌일까. 그만큼 이도현은 기이했다. 그러니까 희운이 그를 다중인격자나, 조울증으로 의심하는 게 나름대로 합리적인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가장 기이한 건.

희운이 한숨을 거꾸로 삼켰다. 제일 불가사의한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이쯤 되면 포기할 법한데도, 새까만 머리카락만 보이면 자동반사적으로 어깨를 들썩이는 자신이.

솔직히 서운하다. 

서운함뿐인가. 화도 난다. 

대체 나랑 뭐 하자는 거지 싶기도 하다. 

이젠 영혼의 단짝은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고 그냥 다른 애들과 지내는 것처럼 지내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울컥 화가 치솟다가도 체념이 어린다.

정희운은 스스로를 사막의 조난자로 비유했다. 닿을 듯 닿지 않는 신기루에 매달려 황량한 사막을 걷는 조난자. 아니면 도깨비불에 홀려 어두운 숲속에 겁도 없이 발을 디딘 나그네.

꽤 문학적인 비유였다고 스스로 감상평을 내놓은 그 순간.

드르륵!

“야, 야! 대박!”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반에 뛰어 들어온 아이가 말했다.

“이도현 삼 학년 선배랑 싸웠대!”

싸웠대-!

싸웠대-

웠대-

대-

희운의 뺨이 저도 모르게 움찔 떨리다가 이내 입이 헤 벌어졌다. 그 순간 그는 굉장히 멍청한 표정이었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정말로, 좀, 과하게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 * *

끼리끼리.

조금 다른 말로는 유유상종.

혹은….

근묵자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던가. 

물론 도현의 지인들이 먹은 아니었고, 색깔로 따지자면 제일 검은 건 도현이었지만. 어쨌든 도현이 집중하는 바는 그게 아니었다.

진, 니키, 맥.

도현과 가장 친하다면 가장 친한 이들에겐-한 명 정도는 애매한 포지션이지만 넘어간다- 공통점이 존재했다.

원시 시대, 어쩌면 인류에게 사냥을 위해 주어졌을지도 모르는 직진 본능을 고이 간직한 이들이라는 것.

영혼마저 한곳에 오래 있으면 주변과 동화가 되는데 사람의 성질이라고 다를까. 특히 쉽게 주변 환경에 동화되는 어린 나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구구절절 말하긴 했지만, 결론은.

“다음 시간에-”

“아.”

“응? 뭐 말하려고 했어?”

“네.”

도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음 시간에는 안 오시면 좋겠어요.”

“어? 왜? 체육이야?”

“아니요.”

부정하는 음성이 차분하다. 그럼 왜? 그리 묻는 시선에 도현이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체육 시간인 건 아닌데….”

그리고 이어진 말에 반에 있던 모두가 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옅은 미소를 띤 낯으로, 예의 바르게 대답하던 때와 한 치의 다름없는 목소리로.

“제가 불편한 거로는 부족할까요?”

폭탄을 터트렸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그거였다.

DJ-N조가 괜히 죽이 잘 맞는 게 아니라는 것.

결국엔 끼리끼리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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