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6화. 여정의 시작 (11)
[Utube]
[Lille, La Grand-Place Street Performance – Strange Trio (Full version)]
(17,368,780 views 8 Aug)
- That girl is the most talented person I've ever seen!! I got goosebumps!!!
- ПРосто класс,очень талантливая девочка)))
- Wow, que talento ♥
- Oh my god!!! Who is that Princess???
- Such mature expression, phrasing and musicality! So freaking clean too XD
- Wonderful, beautiful and technically brilliant. Princess Peony is a maestro.
“반응 엄청나네….”
도현의 옆에 누워 있던 진이 조금은 질린 듯이 말했다. 도현도 폭발적으로 늘어난 조회 수에 말을 잇지 못했다.
영상은 가스파르가 직접 촬영하고 올린 것이었다. 일종의 거래였다. 이쪽에서는 영상의 저작권을 넘겨주고, 그쪽에서는 도현과 니콜라스의 신상을 지켜주는. 공연을 마친 가스파르는 영상이 가져올 화제성을 짐작한 건지, 맹세까지 해가며 비밀로 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는 자신의 세례명까지 언급하며 맹세했는데, 그가 얼마나 신실한지 알 수 없는 도현으로서는 별로 와닿지 않았다. 도현도, 가스파르도 성인이 아니라서 계약서는 그다지 효력이 없을 테니, 도현은 니콜라스의 부모님이 로펌에서 일한다는 사실만 가볍게 일러주었다.
다만, 가스파르의 신상까지는 비밀이 아니었다. 가스파르는 그 기회를 놓칠 마음이 없는지, 이 영상을 계기로 유튜브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계정에는 버스킹 영상을 제외하고도 그의 개인 연주 영상도 새로 업로드되어 있었다.
그의 기타 영상은 소소한 반응을 불러오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미친 것처럼 반응이 오고 있는 건 버스킹 영상이었다. 가장 조회 수가 높은 건 풀 버전이었고, 그다음으로 높은 건 차르다시와 치간느, 사랑의 인사 영상이었다.
그 세 영상도 풀 버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조회 수가 낮다 뿐, 계속해서 조회 수가 올라가고 있었다. 예전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화제가 되었을 때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었다.
조회 수는 여전히 낯설지만, 그래도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미지의 인물, 어린 천재, 독특하고 재밌는 콘셉트. 어쩌다 보니 세 가지 모두 충족해버린 영상이 아닌가.
화제가 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진이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짚으며 말했다.
“보여?”
도현이 의아한 표정을 하자, 진이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다 네가 여자인 줄 알아.”
“의도했으니까.”
이렇게까지 잘 먹힐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도현은 잠시 진이 내민 화면의 댓글들을 훑어보았다. 소녀, 공주… 다들 한 치의 의심 없이 도현을 여자애라고 믿고 있었다.
남자애가 아닌지 의심하는 댓글도 보였지만, ‘저 사랑스러운 손을 봐!’ 하는 댓글들에 밀렸다. 도현은 제 손이 사랑스럽게 생긴 줄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댓글을 읽던 진이 키득거렸다.
“이것 봐, 네 영혼에 헝가리인이 있는 게 틀림없대.”
도현은 진이 가리킨 댓글을 보았다.
- Princess Peony, you have partly Hungarian soul inside. Your performance makes me proud to be Hungarian and I feel big respect towards you :) So, When is your debut in Hungary?
헝가리에서 언제 데뷔할 거냐니.
“…엄청난 찬사네.”
도현은 그 댓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다른 댓글들도 눈에 담았다. 하나같이 도현의 연주에 감탄과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댓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진이 짓궂게 눈을 빛냈다. 도현은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느라 그 눈빛을 보지 못했다.
“좋아?”
“…음, 그런 거 같아.”
“그래, 좋다는 거지?”
“…진?”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옆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진이 몸을 일으켜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배신하고 외지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놓고, 좋다는 거잖아.”
“저기, 진? 그건 어감이 조금….”
“DJ-N조를 잊지 못한 건 나뿐인가 봐. 너희는 벌써 새 사람을 찾았는데, 나만….”
“…….”
“왜. 팀명도 DG-N조로 하지 그랬어? 응?”
니콜라스를 말려서 다행이다.
“그럴 리가 없잖아. 가스파르는 그냥… 아는 게 많아서 도움을 받았을 뿐이야.”
쭈그러든 도현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 보았지만, 진은 철옹성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래. 내가 밴드 같이하자고 할 때는 그렇게 거절하더니!”
“그, 네가 제안한 포지션은 드럼이었잖아.”
“바이올린이었으면 수락하려고 했어?”
“…아니.”
“그거 봐.”
도현은 변명거리를 잃었다. ‘나 화났어요’를 미간에 써 붙인 듯한 진을 보다가 어깨를 늘어트렸다.
“미안.”
“흠.”
“정말 미안.”
여전히 요지부동인 모습에 도현은 그녀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꺼냈다.
“다음에, 같이 연주할까?”
“밴드는 싫다며?”
새침한 물음에 도현이 답했다.
“꼭 밴드 멤버가 아니더라도 협연자라든가, 그런 건 할 수 있잖아. 그러고 보니 진, 너 유튜브 개설할 거라고 했지? 그때 내가 도와줘도 돼?”
“…큼, 흠. 뭐,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정답인 모양이었다. 화난 척을 그만두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도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진이 카펫 위를 데굴데굴 굴러 다시 옆에 자리 잡았다.
“보던 거나 마저 보자. 와, 이 사람들 싸우는데?”
“싸운다고?”
무슨 소린가 해서 보니, 싸움이라기보단 논쟁이었다. 원 댓글은 ‘저 소녀는 공주가 아니라 집시가 틀림없어’라고 말하고 있었고, 그 아래에 사람들의 의견이 길게 달렸다.
‘저 모습을 봐, 누가 봐도 공주잖아!’, ‘오, 나도 동의해.’ ‘그녀는 집시의 영혼을 가진 공주가 아닐까?’, ‘집시든 공주든 그녀가 대단하게 재능 있는 천재란 건 분명해.’ 등등….
일단 소녀인 건 확정인 거구나.
보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피오니 공주 그림에, 묶은 머리카락까지 신상 보호를 위해 의도한 거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여자애라고 믿을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고.
“진.”
“응?”
“내가 여자애 같아?”
묻고 나서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싶었다. 도현은 곧바로 정정했다.
“아냐, 대답 안 해도 돼.”
“왜, 신경 쓰여?”
“아니야.”
“걱정하지 마. 너한테 성별은 의미 없어. 넌 조각상 볼 때 성별을 따지니?”
“…….”
물을 사람을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단 생각이 들었다. 도현은 그 뒤로도 한참이나 진의 주접과 찬양을 견뎌내야 했다.
잠시 후. 성에 찰 만큼 찬양을 늘어놓은 건지, 진이 입을 다물었다. 그에 도현이 진심으로 안도할 때였다.
진이 툭, 말을 뱉었다.
“다행이다.”
갑작스러운 말에 도현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늘 총명하게 빛나는 금갈색 눈동자는 더 없는 친애로 반짝이고 있었다.
“네가 후회하지 않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
도현은 입술을 달싹였다. 사실, 처음 길거리 공연 소식을 전할 때만 해도 도현은 긴장했다. 진이 화내거나 속상해할까 봐. 하지만 진의 반응은 둘 다 아니었다.
- 이제 괜찮은 거야?
사려 깊게 빛나는 그 눈동자에 자신이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녀는 제 속상함보다 도현의 감정을 우선시했다.
무엇 때문에 연주를 기피하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준다. 진도, 니콜라스도 그랬다. 그래서 도현은 도저히 친구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즐거워?”
“무척이나.”
아마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들이 옆에 있는 한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고.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똑똑.
다락방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문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서혜나였다.
“또 거기서 놀고 있었어?”
다락방에 깔린 카펫 위에 드러누운 두 사람을 본 서혜나가 웃음 지었다. 샌디에이고에서 머무를 때 자주 봤던 광경이었는데, 중학생이 되고서도 똑같은 아이들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내려와. 저녁 준비 끝났어.”
“어? 정말요?”
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잔뜩 신이 난 얼굴로 도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빨리 내려가자. 나 나나 음식 먹고 싶었단 말이야.”
도현은 진의 성화에 못 이겨 손에 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재잘대며 서혜나의 뒤를 따르는 진을 보다가, 그 환한 미소에 전염된 것처럼 따라 웃었다.
* * *
[Utube]
[Lille, La Grand-Place Street Performance – Strange Trio (Czardas, V. Monti)]
(4,238,990 views 8 Aug)
- I cried when I heard this performance…. It reminded me of the most perfect Virtuoso. I will never forget him as long as I live.
⌞ Oh, you didn't forget him either. I thought of him, too
* * *
“세상에, 오스카.”
도현은 감격스러운 재회를 했다.
오스카는 단숨에 도현을 껴안았다. 도현도 그를 거부하지 않고 마주 안아주었다. 잠깐의 포옹 후,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간 도현이 걱정스러운 낯을 했다.
“오스카. 살이 빠졌네요?”
괜히 꺼낸 말이 아니라, 그는 정말로 홀쭉해져 있었다. 원래도 광대뼈가 도드라진 얼굴이었는데 살이 빠지니 일견 퀭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 보여?”
“네…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무슨 일이야.”
씩씩하게 대답한 오스카의 말끝이 처졌다. 도현은 당혹스러운 낯으로 그를 보았다.
“아니야… 괜찮아.”
도현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심해 보다가, 이내 약속했던 청첩장이 도착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너무 바빠서 잊고 살았는데….
헤어진 건가. 뭔진 모르겠지만 이상이 생긴 건 분명했다. 도현은 충분히 마음고생 중인 거 같은 오스카를 더 이상 들쑤시지 않기로 했다.
“그나저나, 쑥쑥 크네. 역시 성장기인가.”
오스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도현을 보았다. 사실, 처음 집에 도착했을 땐 속으로 놀라기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많이 자라서 말이다.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던데.”
“원래 본인은 몰라.”
그들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꽤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도현은 오스카가 한동안 도현의 전담처럼 붙어 다닐 거란 소리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부모님과도 대화를 나누던 오스카가 시간을 한 번 확인한 후 말했다.
“더 얘기하고 싶지만, 이동해야 할 시간이라서.”
“오스카. 일정 끝나면 같이 저녁이라도 먹어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오스카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걸요.”
서혜나의 말에 오스카가 기분 좋게 웃었다. 곧 도현은 오스카와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긴장은 안 돼?”
“글쎄요….”
도현이 웃으며 말했다.
“친구들을 만나는 건 기대되네요.”
오늘은 인터뷰를 위한 날이었다.
번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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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le, La Grand-Place Street Performance – Strange Trio (Full version)]
(17,368,780 views 8 Aug)
-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재능 있는 소녀야! 소름 돋아!!!
- 정말 재능 있는 소녀입니다)))
- 와우, 정말 놀라워 ♥
- 맙소사!!! 저 공주는 대체 누구야???
- 놀라운 표현력, 프레이징, 그리고 음악성! 소름 끼칠 만큼 깨끗해 XD
- 완벽하고, 아름답고 기술적으로 훌륭해. 피오니 공주는 마에스트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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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오니 공주, 당신의 영혼의 일부는 헝가리인일 거예요. 당신의 연주는 제가 헝가리인인 걸 자랑스럽게 하고, 저는 당신에게 큰 존경심을 느낍니다 :) 그래서, 헝가리에서 당신의 데뷔는 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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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le, La Grand-Place Street Performance – Strange Trio (Czardas, V. Monti)]
(4,238,990 views 8 Aug)
- 이 연주를 듣고 울었어…. 이건 내게 가장 완벽했던 비르투오소를 떠올리게 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절대 잊지 못할 거야.
⌞ 오, 너도 그를 잊지 못했구나. 나도 그를 떠올렸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