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392화 (393/582)

제392화. 패스파인더 : 얼어붙은 숲 (10)

19일, 전국 300여 개 스크린에서 동시 개봉한 <패스파인더 : 얼어붙은 숲>은 그 이름값을 증명하듯이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갔다.

개봉 첫 주 만에 전국 누계 백만 명을 돌파하는 기함을 토하며, 역대 흥행기록을 무서운 기세로 갈아치웠다. 또한, 19일과 20일에 서울에서 22만 명을 동원하며 그 저력을 증명해냈다.

그로 인해 난리 난 건 당연, 도현의 팬 카페였다.

[하 가슴이 웅장해진다.]

보이냐 이게 우리 배우라고!!!! (쩌렁쩌렁)

- 내가 잼잼이인 게 너무 자랑스러워 ㅠㅠ

- 동서남북 소리치고 싶은 거 참는 중

- 평생 받을 효도 도현이가 다 해줬네… 이 할미는 이제 여한 없다

⌞ 패파 남은 시즌 안 보려고요?

⌞ 방금 다시 생겼네요 ^^;;

[등장 씬 또 도리해버렷다]

[영화사에 길이길이 남겨야 할 장면임 ㅠㅠ]

[루머 가지고 어쩌구저쩌구 떠들던 ㅅㄲ들]

입 싹 다문 거 너무 통쾌 ㅋㅋㅋ

- 왜 이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음… 그래봤자 도리토스는 언제나 갓벽한데

⌞ 진짜 정병들 너무 많아;;

- 오랜만에 두 발 뻗고 잔다 ㅠ

[해외에서 잼잼이 생기고 있는 거 실화냐]

[경☆잼잼이 글로벌 진출☆축]

[유튜브 클립에 도리 누구냐는 외쿸인 개마늠]

[도혀니 별명ㅋ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 외국 잼잼이들 도현이 별명 실화냐곸ㅋㅋㅋㅋㅋㅋ (사진)

- 아이스 프린슼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제 반휘혈 나오면 됨

⌞ 받고 귀여운 놈과 바람둥이, 그리고 과묵한 놈 등장하면 끝남ㅋㅋㅋ

⌞ 아… 내 남자 친구는 서열 0위 블러드 포커스 그거?

⌞ 제목은 왜 기억하는 건데 ㅠㅠㅠ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ㅁㅊ

[왜 한국에서는 시사회 안 해]

우리도 도혀니 보고 싶은데ㅠ

- 애초에 무대 인사 가는 나라가 되게 적은 듯

- 그래도 나중에는 오지 않을까? (행복회로 돌리는 중)

⌞ 행복회로 22

⌞ ㄹㅇ 가능성 있을 듯???

여느 때처럼 팬 카페에서 놀고 있던 5년 차 고인물 잼잼이, 은서는 게시물을 보고 낄낄대다가 한 게시글을 발견했다.

[전하리 평론가님 글 뜸!!!]

ㅈㄱㄴ

(링크)

다들 한 번씩 보구가!!

- 헐 이분 ㄷㄷ

- 방랑자 써주셨던 그분 맞아??

⌞ ㅇㅇ맞아

- 와 바로 읽는다!!

- 정보 고마워!

“어!”

은서의 눈이 동그래졌다. 전하리라면, 그녀도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읽은 영화 평론이 그녀의 것이었으니까.

- 이 영화의 결말을 결정하는 건, 다름 아닌 당신(You)이기 때문이다.

그때 읽었던 평론의 마지막 문장은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뛰었다. 은서는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오래전에 보았던, 무비데일리 사이트가 화면에 떠올랐다. 은서는 차분히 숨을 고른 후, 침착하고도 경건한 심정으로 글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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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와 얼어붙은 숲>, 그 신비로운 세계 속으로 (청소년 문학 기획 특집)]

글 : 전하리

|여정의 시작

영화 속에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진정한 신호탄을 고르자면, 바로 이 대사일 것이다.

“의심하지 말아라, 아서. 너는 옳은 길을 찾아갈 거다. 늘 그랬어.”

산골짜기, 작은 부족이 세계의 전부였던 소년에게, 그런 일이 닥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그렇게 소년은 갑자기 불어닥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고, 동시에 관객들의 여정 또한 시작되었다.

우리가 이토록,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대체 우주의 세계에 매혹되고, 이야기를 쉬이 받아들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패스파인더>가 우리에게 익숙한, 전형적인 영웅신화의 서사 구조를 따르기 때문이다.

캠벨은 영웅의 모험을 ‘출발(분리), 입문(통과), 귀환’의 3단계로 압축했다. 다른 신화나 전설 속 영웅이나 동화 속 왕자님이 으레 그러하듯, 아서의 모험 또한 이 구조를 따른다.

첫 번째로, ‘출발, 분리’ 단계에서 아서는 욘다드의 죽음을 겪고 마을을 떠나 얼어붙은 숲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기존 세계와의 분리를 겪는다. 또한, 마을을 떠나 시험의 장소로 향하며 여정의 시작(출발)을 알린다.

두 번째로, ‘입문, 통과’ 단계를 살펴보면, 영웅들은 1) 시련을 겪고 2) 조력자나 방해자를 만나며 3) 어떤 신화적인 것에 의해 도움을 받기도 한다.

아서도 마찬가지다.

아서는 1) 자격의 증명이라는 시련을 겪고 2) 이그린이라는 조력자를 만나고 호르헤라는 강력한 방해자로 인해 위험을 겪다가 3) 픽시의 도움으로 인해 부상을 회복한다.

마지막, ‘귀환’ 단계는 마침내 시험이 끝나고, 얼어붙은 숲에서 본래의 세계, 가족의 품으로 되돌아온 아서의 모습에서 드러난다.

(…)

|원작 vs 영화

<패스파인더와 얼어붙은 숲>은 고지식할 정도로 원작을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 우더 마을의 지붕 모양부터 시작해서, 각 인물의 눈동자 색까지. 모두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할 정도다.

왜 이렇게 원작에 충실했을까?

<패스파인더> 시리즈는 그 인기와 탄탄한 팬층으로 유명하다. 이 사실은 페어리 픽처스에게 있어 양날의 검과도 같다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원작의 열렬한 팬들은 영화의 소비자가 되어주겠지만, 동시에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가장 날카로운 적대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어리 픽처스는 조심스러운 첫 시작을 택했다. 겸손한 자세로 원작을 존중해, 원작의 팬들을 포섭한 것이다. 이 사업 전략은 앞으로 4번째 시리즈까지 이어질 긴 레이스를 대비한, 일종의 ‘토지 다지기’로 보인다.

또한, <패스파인더>의 인기 요인 중 하나가, 세세하고도 신비로운 디테일이란 점도 주목해야 한다. 독자들이 그 환상적인 세계에 푹 빠졌다면,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

|노바우드와 현실 세계

|패스파인더 속 신화적 요소

|비극의 객관화

<패스파인더>가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와 차별되는 점이 있다면, 바로 비극성의 절제일 것이다. 우리는 영화에서 아서의 슬픔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아서는 영화 속에서 단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친부인 욘다드의 죽음에서도 그의 심장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고, 그 후에도 카메라 앞에서 오열하기보다는 숲속을 헤매고 다녔다.

기어이 아버지를 죽인 곰을 찾아내고 복수하려던 때, 새끼 곰을 발견해 좌절된 순간. 관객들은 분명 아서의 눈물과 고조되는 비극을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 장면을 과감하게 잘라내었다. 그리고선 곧장 주어진 숙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아서의 모습을 등장시켰다. 감정의 편린은 붉어진 눈가가 고작이었다.

이 연출은 효과적이었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아서의 심정을 직접 받아들이는 대신 유추하거나 헤아리게 되고. 절제된 슬픔과 객관적 비극이라는 감정에 직면하게 된다. 관객들이 감상주의에 빠지는 걸 경계한 이 연출은 기존의 할리우드 문법을 탈피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어른들의 시각으로 보았던 관습을 벗어나….

|패스파인더는 왜 특별한가?

선악의 경계에서 시련을 극복해야 할 주인공, 아서는 단순히 선하고 올바른 동화 속 왕자님이 아니다. 오히려 증오와 복수에 눈이 벌게진 채로 원수를 찾아다니기까지 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행보는 그를 보다 입체적이고, 다채롭게 만든다. 우리는 그에게서 끊임없이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가 복수를 포기하고, 본인의 숙명을 받아들였을 때. “이게 정말 축복이라면, 제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려주겠죠.”라고 말한 순간.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어둠과 그럼에도 빛나는 광채, 그리고 영웅을 향한 사람들의 맹목을 본 순간. 관객들은 소년의 밑바닥, 가장 낮은 곳에 자리한 차가운 품위와 어두운 운명을 상상하게 된다. 이 얼마나 매혹적인가.

“아라한 저자는 그런 지배자 같은 게 아니야. 그저 파괴밖에 모르는 정복자지.” 아서의 삼촌, 롤랑의 대사다. 그러나, 그 말을 부정하듯 아라한을 포함한 누바라 일족은 온통 순결하리만치 하얗고 아름답기만 하다. 이처럼 이미지의 불일치. 상충하는 빛과 어둠 속에서 우리는 이 신비로운 세계에 속절없이 매혹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 진짜.”

너무 좋다.

지난번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좋았다. 사실 <방랑자>는 해석의 여지가 많은 예술 영화인 반면, <패스파인더>는 청소년 판타지 문학에서 기반한 상업 영화라서 평론이 나올 수 있는 건가 싶었는데… 모두 그녀의 섣부른 생각이었다.

그때와 평론의 성질이 조금 다르긴 해도, 이해의 범위와 시야가 넓혀진다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그녀는 평론을 한 번 더 곱씹은 후, 링크를 올려주었던 게시글에 가서 감사 인사를 달았다.

- 고마워 잼잼아!

- 와 덕분에 알았다 ㄱㅅㄱㅅ

- 이번에도 대박 조음 ㅠㅠ

그녀처럼 평론을 읽었는지 고맙다는 댓글이 좌르륵 달려 있었다.

그 훈훈한 광경을 흐뭇한 눈으로 보던 은서는 핸드폰 상단의 스크롤을 내려 날짜를 확인했다.

‘우리 도현이는 언제 오려나.’

영화도 좋지만 얼른 귀국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방송 여기저기에 얼굴도 비춰 주고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은서는 편안하고도 개운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자신의 배우가 실력으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콧대를 눌러주었고, 가시적인 성과에 국내에서 돌던 말도 안 되는 루머도 다 사그라드는 중이었다. 개봉 이후로는 계속 순항이었다.

그녀는 핸드폰을 끄고 행복하게 잠을 청했다.

새벽에 일어날 난리를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 * *

도현이 찌뿌둥한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한 세계 투어는 시사회에 참석하고, 각 나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관광지를 놀러 다니고, 쉬고 하다 보니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은 다시 뉴욕 공항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입국 절차를 받으며, 도현은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했다. 이제 인터뷰 몇 개만 더 하고 나면… 한국에 갈 수 있으려나.

미국에서 개봉한 지도 삼 주 가까이 흘렀다. 인기가 좋아 추가 상영을 했다지만, 슬슬 끝물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하게 개봉했으니, 다 비슷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밖으로 나올 때였다. 곧장 플래시가 터졌다. 거기까지는 시사회를 다니면서 여러 번 겪은 일이라 익숙했지만….

‘뭔가 다른데.’

느낌이 달랐다.

그다지 좋지는 않은 예감에 도현이 입매를 굳혔다.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간 영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영상 봤어요?”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습니까?”

제게서 대답을 얻어내려고 혈안이 된 기자들이 질문을 쏟아냈다. 잠잠히 그 질문을 듣던 도현은 다급한 낯으로 고개를 숙이는 오스카에게 귀를 대주었고.

“레드카펫 영상!”

레드카펫?

의아해하자 그가 무언갈 보여주었다. 한 시간쯤 전에 올라온 새로운 동영상이었다. 거기엔 낯설지 않은 인물이 있었다.

“그 남자 말이야! 망할 티셔츠 입은 그놈! 그 영상이 올라갔어! 지금 인기 급상승 영상이야!”

놀랍기도 하고, 안 놀랍기도 한 소식이었다.

언젠가 화제가 될 거라고 예상하긴 했다. 거기엔 기자를 포함해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도현과 헤레이즈 말고도 그 장면을 본 사람은 꽤 있었다.

그래도….

도현은 쏟아지는 관심 속에서 차마 한숨을 뱉지 못하고 도로 삼켰다.

왠지 바람 잘 날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인데… 착각이려나. 착각이었으면 좋겠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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