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4화. 이방인, 그리고 우리 (21)
아침부터 촬영장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성진수 감독의 미간에는 깊은 골이 파여 있었고, 스태프들도 평소보다 숨을 죽인 채 제 할 일을 했다.
대체로 쉬쉬하며 말을 삼가는 분위기였지만, 모든 이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예를 들어 촬영 공간과 조금 떨어진, 보조 출연자들이 휴식하는 곳이 대표적이었다.
“촬영장이 아니라 초상집이네, 초상집이야.”
벤치 위에 걸터앉아 있던 한 중년인이 혀를 차자, 몇몇 이들이 거들었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주제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립을 제외하고는 두 편으로 나뉘었다. 안 그렇게 생긴 놈이 더 한다며 은근히 비난하는 쪽과 그럴 리 없다며 두둔하는 쪽.
어제까지만 해도 후자가 압도적이었다. 게시글에 올라온 갑질을 그대로 믿기엔, 촬영장에서 보였던 행보가 눈에 밟혀서였다. 그러나 그것도 같은 학교 학생의 인증 글이 올라오자 반반으로 갈라섰다.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난다고. 뭔가 걸리는 게 있으니까 여기저기서 말 나오는 거 아니겠어? 안 그래?”
“맞지, 맞지.”
전자를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는 대개 이러했다. 괜히 소문이 날 리 없으니까. 어디 찝찝한 구석이 있으니까 말이 나오겠지.
그리고,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분통을 터트리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굴뚝은 무슨. 굴뚝은 굴뚝이고 사람은 사람이지. 굴뚝에서 연기 난다고 사람한테서도 연기 나요?”
“아이고, 그게 그 소리가 아니잖아. 거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아니라고는 제가 계속 말했잖아요. 그 친구 그럴 애 아니라고요.”
“아직 젊어서 모르나 본데, 사람은 한 번 봐서 모르는 거야. 나는 내 마누라 맨날 봐도 몰라요, 이 사람아.”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에 김민혁이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께를 쳤다.
역시 내가 맞았지.
그 주변에 앉아 있던 이재준이 입안을 꽉 깨물었다. 그렇지 않으면 폭소가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는 전날 저녁부터 즐거워서 미칠 것 같았다. 엊그제 경찰이 들이닥칠까 봐 두려워하면서 벌벌 떨었던 게 벌써 옛일처럼 느껴졌다.
이재준이 위로 올라간 입꼬리를 손으로 슬쩍 가렸다.
‘괜히 쫄았네.’
며칠 전, 이재준이 올린 글은 생각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조차도 놀랄 정도로.
처음에는 새로 고침을 누를 때마다 달리는 추천과 좋아요가 마냥 재밌었다. 그 즐거움이 불안으로 변한 건 기사가 뜬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일이 너무 커지는 거 아닌가?
적당히 관심을 받고, 적당히 어그로를 끌며 끝날 줄 알았는데 그가 던진 불씨가 생각보다 더 크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재준은 감당할 수 없이 커지는 일을 보면서 초조하게 입술을 뜯어댔다.
이러다 고소당하는 건 아니겠지?
그는 애써 부정했다.
아닐 거야. 실명도 언급 안 했고, 욕을 박은 것도 아닌데 나를 뭐로 고소하겠어. 게다가 그 새끼들 저번에도 대응하겠다 해놓고 아무것도 안 했잖아.
아니겠지. 그리 생각하면서도 이재준은 초조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손톱이 뜯어져 나간 손끝이 붉은 속살을 내비쳤다. 그는 몇 초에 한 번씩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 때면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기도 했다.
그렇게 불안이 극에 달했을 때, 그를 건져 올린 건 한 게시글이었다.
[나 가연예중 학생인데, 지금 유명한 논란 글 사실임 (인증 있음)]
허겁지겁 게시글을 누른 이재준은 몇 번이고 글을 확인했다. 그리고 아래에 있는 인증까지도 여러 번 눈에 새겼다. 얼굴과 이름은 가려져 있었지만, 틀림없는 학생증이었다. 순식간에 온몸의 힘이 빠졌다.
깊은 안도 다음으로 찾아온 건 희열이었다.
봐, 내가 맞았잖아.
그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던 건 폭로 글에 추가한 몇 가지의 과장이었다. 어찌나 가식을 잘 떨었는지, 글이 화제가 된 후 촬영장의 스태프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런 일을 당한 적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건 쓰지 말 걸 그랬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이제 와 보니 그거야말로 멍청한 생각이었다. 결국 결과가 이렇게 보여주지 않는가. 그의 판단이 옳았다고!
“아니, 진짜 답답하네. 한 번 대화해서 알 수 없는 거, 맞죠. 맞는데! 여기서 저 말고 한 번이라도 대화 나눠본 사람 있어요?”
“아이고, 진정해, 진정. 뭘 그렇게 흥분하고 그러나.”
“제가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어요? 다들 대화 한 번도 안 해봤으면서 인터넷 글만 믿으니까 그렇죠. 정말 그럴 애가 아닌데….”
“김씨. 그렇게 열불 내지 마. 어차피 여기서 우리끼리 떠들면 뭐 해.”
“그래, 그 말이 맞지. 인터넷이 그 난린 걸 우리보고 어떡하라고?”
김민혁은 할 말을 잃은 듯 탄식만 내뱉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그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자 한 사람이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김민혁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 다들 걱정돼서 이러는 거야. 여기서 진짜 나쁘게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없어.”
“네….”
“그리고, 이건 내가 접한 얘긴데….”
은근슬쩍 그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이재준이 눈을 크게 떴다. 마찬가지로 놀란 김민혁이 되물었다.
“촤, 촬영을 미룬다고요?”
“아직 확실하겐 몰라. 그런데, 이 상황에서 촬영할 수도 없으니까 이도현 분량만 일단….”
이야기를 들을수록 김민혁의 낯빛이 착잡해졌다. 그 애는 괜찮을까. 그런 걱정이 훅 끼쳐 올랐다. 답답한 심정에 주위를 둘러본 김민혁은 우연히 이재준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조용하네.
이런 논란이 터지면 제일 먼저 달려들어 물어뜯을 것 같았던 남자가 제일 조용하게 있었다. 김민혁은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이재준을 흘긋거리다가, 귓가를 매만졌다.
…내가 너무 나쁘게 봤나. 김민혁은 미약한 미안함을 느끼며 시선을 치웠다.
그래서 김민혁은 보지 못했다. 액정에 비친 입매가 위로 죽 찢어져 있는 것을.
* * *
[이도현 논란 글 진짜일까?]
사실 나 처음에 안 믿었는데… 자꾸 여기저기서 말 나오니까 조금 헷갈려. 뭐가 뭔지 모르겠고… 너희들 생각은 어때?
- 나도 모르겠어 ㅠㅠ
- 진짜면 너무 실망스러울 듯…
- 학생증 인증까지 나왔는데 진짜겠지
- 일단 난 입장문 기다려보려고
└ 솔직히 진짜여도 인정하려고 할까? 내가 보기엔 맞아도 아니라고 잡아뗄 것 같은데
└ 맞아 소속사를 어떻게 믿음… 지금도 학교 찾아가서 2차 가해하는 줄 누가 알아
└ 학생증이 대체 뭐가 증거라는 거야? 적어도 학폭위 통지서라도 가지고 오든가;;
[ㅇㄷㅎ 논란 정리]
[또 ‘그’ 배우ㅋㅋㅋ]
뭐 있으니까 자꾸 말 나오는 거 아님? ㅋㅋㅋ 딱 봐도 각 나오는데 빠들만 이 악물고 아니라고 쉴드 치네
- ㅇㅈ 뭔가 이상한 구석 있으니까 자꾸 이슈 생기는 듯
- 또 쟤냐 질린다 ㄹㅇ
└ 솔직히 사건 사고 많은 건 ㅇㅈ
[정희운 개 불쌍하네 ㅠ]
제2의 이도현 언플한다고 조리돌림 오지게 당하더니 실은 괴롭힘 당하는 거였누
- 얘가 진짜 최대 피해자ㅋㅋ
- 내가 정희운이면 인생 더러울 듯 ㅋㅋㅅㅂ
- 이도현 버스 탄다던 댓글 다 어디감?
└ 싹 사라짐ㅋㅋㅋㅋ
- ㅈㅎㅇ 얘 나는 잘됐으면 좋겠음ㅠㅠ 너무 짠함
└ ㅇㄷㅎ 빠들이 ㄹㅇ 극성이었음 ㅈㅎㅇ을 어디다 갖다 대냐면서 ㄷㄷ;;
└ 팬들이 다 잼민이 뿐이라 그럼ㅋㅋㅋ
└ ? 얜 또 뭔 소리냐 ㅇㄷㅎ 아지매들 픽인데
└ 정정함 ㅇㅇ 잼민이랑 맘충 ㅇㅋ?
└ ㅇㅋㅋㅋㅋ
[ㅈㅎㅇ 의외의 떡상ㅋㅋㅋ]
[한 명 나락가는 거냐]
[근데 왕의 길은 어떻게 되는 거?]
이도현 논란 터졌는데 촬영 그대로 함?
- 그러겠지ㅋㅋ 스비씨 병신들이 이도현을 버리겠냐
- 원래 배우들은 논란 터져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활동함
└ ㅅㅂ 개더러움
- 어차피 논란 일어도 이도현 빠는 사람 넘쳐나서…
└ 걜 진짜 왜 빠는 건지 노이해
- 지금 소속사 발에 땀 날 듯ㅋㅋㅋ 피해자들 입막음하느라 그러고선 사실무근이라 하고 드라마 찍는다에 한 표
└ 나도 한 표
└ 점집 차려도 될 듯 ㄷㄷ
* * *
“가세요, 가세요. 훠이~”
“아씹, 말로 하지 왜 밀치고 그래?”
“미안, 미안. 안 밀 테니까 알아서 뒤로 갑시다! 남의 반 기웃거리면 안 되잖아요~ 가서 공부나 합시다, 우리 학우님들아.”
지가 뭐길래 저래. 불만 어린 목소리에 서일준이 얼굴을 쑥 내밀었다. 놀라 뒷걸음치는 상대에게 씩 웃어주었다.
“나? 2반 부반장.”
“…아, 가면 되잖아.”
할 말을 잃은 상대가 투덜거리며 자리를 떴다. 후문 정리를 마친 서일준이 앞문을 쳐다보았다. 거기도 정리가 끝났는지, 아이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창문은 이미 공책을 잔뜩 세워놓아 밖에서 보지 못하게 막은 후였다.
꼼꼼히 문을 닫은 서일준이 뒤를 돌아보았다. 기꺼이 광대가 되길 자처한 친구들이 단 한 명을 위한 무대를 펼치고 있었다. 예술 중학교에 입학한 실력이라 그런지 쓸데없이 퀄리티가 높았다.
처음에는 그들의 기행을 휘둥그런 눈으로 보던 도현은 춤을 추는 아이를 한 번, 도망가지 못하게 제 어깨를 누르는 아이를 한 번, 천장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도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애들아, 나 괜찮다니까…?”
“누가 뭐래? 나는 지금 리듬에 몸을 맡기고 싶은 것뿐이야.”
뮤지컬 꿈나무이자, 현재 현란한 춤사위를 보여주고 있던 김병철이 새침하게 받아쳤다.
“진짜….”
도현은 상당히 할 말이 많은 눈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입술을 몇 번 달싹이던 소년은 결국 말하기를 포기한 채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보았다. 미세하게 바들거리는 입꼬리를.
성공했다. 김병철이 뿌듯한 낯으로 가슴을 쫙 폈다. 그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던 서일준이 한설아를 돌아보았다.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 ㅇㅇ 지금.
대충 그런 눈빛이 오가고, 작전을 개시한 한설아가 자연스레 자리에 앉았다.
“이거 봤어?”
“응?”
“네 팬 카페 들어갔는데, 이 글이 인기더라.”
“…팬 카페?”
도현이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난 내가 아는 도현이를 믿어]
나는 내가 사랑하고, 또 아끼는 배우를 믿으려고. 내가 봐왔던 도현이는 그런 애가 절대로 아니니까. 이 글을 보고 있는 잼잼이들아, 힘들 때면 너희들도 그냥 너희가 봐왔던 도현이를 믿어 봐. 언제 도현이가 우리 실망스럽게 한 적 있었어?
그리고 도현아, 네가 너무 찬란하게 빛나서 그림자가 잠깐 짙어진 거뿐이야. 우리는 빛나는 너를 믿어.
- 고마워 잼잼아, 힘이 된다 ㅠㅠ
- 맞아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단단하게 뭉쳐야 해
- 다들 알잖아 도현이가 어떤 애인지 솔직히 난 이 상황이 너무 이해가 안 가 그걸 믿는 사람들도….
└ 오해는 곧 풀릴 거야 힘내, 쨈아ㅠㅠ 나도 힘낼게
- 우리는 빛나는 너를 믿어 이 말 너무 좋다… 맞아 잠깐 그림자가 짙어진 거뿐이야 ㅠㅠ
- 우리는 빛나는 너를 믿어!!
- 22 우리는…
그 뒤로 같은 문장이 수없이 많이 달렸다. 뒤로 가기를 누른 도현은 게시판 풍경에 멈칫했다.
[우리는 빛나는 너를 믿어]
[☆우리는 빛나는 너를 믿어]
[우리는 빛나는 너를 믿어!]
그 게시글의 문장이 일종의 슬로건이 되었는지, 같은 제목의 글이 줄줄이 펼쳐져 있었다. 한참 그것을 보던 도현이 한설아에게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고마워.”
숨을 죽인 채 도현의 반응을 기다리던 한설아는 평탄한 모습에 안심하면서도, 동시에 약간의 실망감을 느꼈다.
조금 더 감격할 줄 알았는데.
한설아의 눈이 도현의 옆얼굴에 닿았다.
…뭐 얘가 감동해서 울어도 이상하긴 하지. 그녀는 그리 생각하고 가볍게 넘겼다. 도현의 상태가 예상보다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리고.
도현은 시선을 내리 깐 채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들면 저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친구들과 눈이 마주칠 것이다. 도현은 그래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
믿겠다는 팬들, 제 기분을 맞춰주려 노력하는 친구들, 소식을 접하고 일조차 팽개치고 달려온 부모님, 틈만 나면 소속사에서 걸려 오는 전화, 학교 끝나고 데리러 오겠다던 매니저….
“피곤하겠네.”
“응?”
“아니야. 그냥 혼잣말.”
“…그래?”
한설아가 모호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음에도 도현은 한 번 웃고 말았다. 부드럽게 닫힌 입술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