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0화. 소슬하니 부는 바람에 (2)
[‘인성 논란’ 배우 이도현, 진실 공방 “사실 아냐”]
[배우 이도현을 향한 의혹 증폭… 지인들이 대신 입 열었다]
[할리우드 배우 이도현, 까도 까도 미담만 나와… 반전 사실에 놀란 네티즌]
[배우 정희운 ‘이도현 갑질 논란’에 직접 해명…“그런 적 없어”]
[정희운 SNS서 글 게시 “이도현은 친구이자 배울 게 많은 배우”]
[가연 예중 학생들 뿔났다? 단체로 해명 글 올려 화제…]
[이도현, 인성 논란 침묵… 그러나 줄줄이 나오는 해명 (반박글 전문 첨부)]
SBC 사극 드라마 ‘왕의 길’ 촬영 시작 후 본인이 현장 스태프라고 밝힌 한 네티즌의 폭로를 시작으로 배우 이도현의 인성 논란, 갑질 의혹이 번진 가운데 그에 대한 반박글이 올라와서 화제다.
지난 24일, 배우 정희운(14)은 본인의 SNS에 “현재 불거진 모든 논란은 사실이 아닙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배우 정희운은 “같은 학교 친구이자 동료 배우로서, 그리고 사건의 관계된 입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글을 올립니다.”라는 말로 운을 뗐다.
이어서 “본론부터 말하자면 도현이는 저를 따돌린 적도, 무시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힘들 때 곁에 있어 준 유일한 친구입니다.”라고 해명했다. 또한 “왜 도현이에게 이런 의혹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은 그 모든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뿐입니다.”라고 말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해당 게시글이 올라오고 30분 뒤, 메이트판에는 새로운 게시글이 올라왔다. 바로 ‘가연예중 1학년 2반 대표로 글 올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해당 게시글에서 스스로 부반장이라고 밝힌 학생 B군은 “터무니없는 오해가 번지고 있다. 일 년 가까이 같은 반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안다. 이도현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거.”라고 말하며 논란에 대한 해명을….
(중략)
또한 ‘왕의 길’에 참여한 스태프를 비롯한 이도현과 일한 적 있는 관계자들이 정희운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면서 스스로 스태프라 밝힌 첫 번째 폭로글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Best)
- 전부 다 주작이었다는 것도 놀라운데 제일 놀라운 건 본인이 가만히 있는데 주변인이 나서서 해명해 준다는 거다… 대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저렇게 사방팔방에서 나서냐
└ 이거 진짜 ㅇㅇ 본인은 입 다물고 있다는 게 찐 간지임
└ 왜 해명 안 하나 했는데 여유 부리는 거였네 ㅋㅋㅋㅋ
- 옆동네 가수는 까도까도 괴담만 나오던데 여긴 미담만… ㄷㄷㄷ
- 우리 엄마가 이도현 처음 봤을 때 애가 참 착하고 야물딱지게 생겼다고 했음. 딱 봐도 크게 될 애라고. 이번에 논란 터졌을 때도 아니라고 하심. 역시 엄마들은 보는 눈이 있는가…?
└ ㄴㄴ 그렇다기 보단 이도현이 좀 부모님 세대가 좋아할 상임ㅋㅋㅋㅋㅋ
└ 아님 엄빠들은 더 착하게 생긴 얼굴 좋아함 이도현은 그냥 잘생겨서 좋아하는 거
└ 이도현도 착하게 생겼지 않아요??
└ 착한데… 착한데 안 착한…? 그게 양아치처럼 생긴 건 절대 아닌데 그렇다고 댕댕이 같이 순해 보이진 않은…?
└ 기 쎄 보이게 생김
└ 생긴 건 모르겠고 기 쎈 거 ㅇㅈ 일단 사실 아닌데 입 다물고 있었던 것부터 존나 남다름
- 진짜 개한민국 환멸 난다 물타기 오지게 하면서 욕할 땐 언제고 지금은 싹 사라짐… 한두 번 있는 일 아니긴 한데 어째 겪을 때마다 개같냐
└ 나아지는 게 1도 없음 ㄹㅇㅋㅋㅋㅋ
└ 지는 안 그런 척
└ 사람들이 다 너처럼 할 일 없이 악플 쓰고 다니는 줄 아냐;
└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럴 줄 알았다며 궁예질하던 놈들 다 어디 감? 아 그럴 줄 알았다매~
└ 눈매가 어쩌구 입꼬리가 어쩌구 관상 볼 줄 안다던 사이비ㅅㄲ들 다 어디 갔냐고~ ㅋㅋ
도현의 입장문은 올라오지 않았지만, 사실상 논란이 거짓이었다고 확실시하는 분위기였다.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부인했을뿐더러 시간이 지날수록 그 해명글을 뒷받침하는 소식만 쏟아지니 당연했다.
그러나 거기에 기뻐할 수 없는 사람이 존재했다.
지독히도 떨어지지 않는 발을 이끌어 학교에 온 윤창석은 내내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디선가 이도현의 이름이 들릴 때면 지레 찔려서 숨을 죽였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던 윤창석의 머릿속에 오늘 아침에 엄마가 했던 말이 재생되었다.
- 아들, 요즘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그 순간 윤창석은 모든 걸 털어놓고 울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는 실제로 닥쳐올 현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아직은 모르는 거 아닌가.
게시글도 삭제했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런 윤창석의 기대가 산산조각난 건 오후에 접어들었을 때였다.
강박적으로 확인하던 인터넷에는 그가 보고 싶지 않았던 게시글이 올라왔다.
[새솔 엔터 이도현 논란 관련해서 입 열어 “본격적인 법정 대응 들어갈 것”]
[새솔 엔터테인먼트 “모든 논란은 사실무근.”, 강경 대응 입장 밝혀…]
[새솔, “선처는 없을 것”… 루머 유포자 및 악성 댓글에 대한 전쟁 선포해]
쿵.
발밑이 훅 꺼지는 기분이 들었다.
심장은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는데 반대로 손발을 서늘하게 식었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야, 창석아. 아까부터 뭐 하냐?”
아, 아니겠지. 아닐 거야.
“법정 대응…? 오, 새솔에서 법정 대응 한대? 하긴, 이도현 걔는 뭔가 말이 많아서….”
“…너는, 이거 진짜일 거 같냐?”
“뭐가?”
“고소 말이야. 진짜 할까?”
“하겠지? 한다고 기사 냈잖아.”
윤창석은 의미 없는 일임을 알면서도 다급히 부정했다.
“보, 보통 한다고 해 놓고 안 하는 곳 많잖아.”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근데 내가 보기엔 할 듯? 기사 보니까 패파 때부터 법정 대응 준비했고 이번에 들어갈 거라는데?”
“시발! 아니라고!”
“뭐야, 왜 갑자기 나한테 욕을 하고 지랄….”
윤창석은 그 말을 더 듣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작정 반을 빠져나와 복도를 걸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수상하게 보고 있는 거 같았다. 시선이 느껴질 때마다 입 안이 바짝 말랐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하지.
게시글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평소에 마음에 안 들던 애였으니까, 분위기가 그렇게 된 김에 저도 한마디 얹은 것뿐이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니잖아. 그냥 원래 있던 논란을 조금 부추긴 것뿐인데. …하지만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줄까?
그럼… 이대로 고소당하는 건가?
윤창석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엄마가 알게 되면 어떡하지? 아니,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엄마나 아빠가 아니었다. 당장에 고등학교 진학부터 문제였다. 만약 정말로 고소당해서 빨간 줄이 그어지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윤창석은 더욱 희게 질려갔다. 이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은 거대한 공포가 밀려왔다. 복도에 망연히 선 채로, 그는 불현듯이 깨달았다.
후회하기엔 많이 늦었단 것을.
* * *
같은 시각.
도현은 5반 앞에 서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몇 주 전만 해도 이렇게 기다리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이가 나타났다.
“음, 안녕…?”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얼굴이 도현이 아는 그 얼굴 그대로이다. 도현은 입을 여는 대신 상대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고요한 시선에 정희운이 당혹스러운 낯을 할 때였다.
“고마워.”
“내 맘대로 올려서 미안… 어, 잠깐. 뭐라고?”
“고맙다고.”
“어?”
어리바리하게 굴던 정희운은 그제야 이해했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스스로 들은 걸 믿을 수 없단 표정이라 도현은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내가 고맙다고 말한 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이야?”
“어… 그건 아닌데. 사실 놀라운 것 같기도 하고….”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 건지 알 만했다. 도현은 한숨을 삼키고선 말했다.
“도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일이 쉽게 해결될 거 같아.”
“으응! 내가 도움이 됐다니 다행….”
“물론 바란 적 없지만.”
“…아, 아하하. 맞아, 그랬지.”
덧붙인 말에 어째선지 정희운이 더욱 편안한 얼굴을 해서 도현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왜 여기서 안심을 하는 건데?
궁금했지만, 돌아올 대답이 평범치 않을 것 같아서 도현은 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감사 인사를 하러 온 거지 취조하러 온 것도 아니고 말이다.
‘바란 적 없는 건 진짜지만.’
그렇다고 도와준 사람을 다그치는 건 정말 못 할 짓 아닌가. 도현은 그런 파렴치한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그 말 하려고 왔어. 고맙다고. 그리고….”
다음 말을 내뱉기 전에 도현은 망설였다. 그러나 결국 묻고 말았다.
“너는 괜찮아?”
“나?”
이번 일로 피해를 본 건 도현뿐만이 아니었다. 사실상 정희운은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었단 사실이 원치 않게 퍼진 상태였다.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그게 얼마나 불편한 일일지 알 수 있었다.
의외의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던 정희운이 활짝 웃었다. 눈꼬리가 휘어지며 순한 인상이 도드라졌다.
“나는 괜찮아.”
근심 한 점 없는 깨끗한 미소였다. 그것을 마주한 도현이 순간 흠칫할 만큼이나.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고.”
“응!”
뭔가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얘기할까, 고민하다가 해맑은 낯을 보니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말인 것 같아서 삼켰다.
“그럼 나 가볼게.”
“아, 응! 잘 가!”
왜 이리 선선하지.
평소에도 정희운은 적극적으로 도현을 붙잡고 그러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티를 풀풀 냈었다. 그러나 지금의 정희운은 미련 한 톨 없이 깔끔한 태도였다.
도현은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럼 안녕.”
빠르게 자리를 뜨려는데, 정희운의 목소리가 도현을 붙잡았다. 뒤를 돌아본 도현은 정희운의 얼굴에 떠오른 멋쩍음에 의아함을 품었다.
“나도 고마워. 그리고 미안했어.”
“…네가 왜?”
“그냥. 이제 가도 돼!”
얼른 가라는 듯이 손까지 흔든다.
그 모습이 퍽 친근해서 복도를 지나가던 아이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역시 그 루머는 다 거짓말이 맞았구나, 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리고 도현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 결국 상당히 기묘해진 기분으로 어정쩡하게 발걸음을 돌렸다.
‘찝찝한데….’
그렇다고 되돌아가서 왜 이렇게 쿨해졌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현은 나중에 촬영 때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뗐고.
“자, 잠깐만.”
누군가에게 팔이 붙잡혔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반사적으로 미간이 좁아졌다. 과거와 너무 달라진 인상에 반 박자 늦게 상대가 누군지 기억해낸 도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선배?”
수척해진 낯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남자는 지난 학기에 도현과 갈등이 있었던 3학년 선배, 윤창석이었다.
* * *
도현은 이 상황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이 논란이 일어나기 전까진 존재조차 잊고 살던 상대인데.
불쑥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잠깐이면 되니까 시간 좀 내줘.”
이런 거라니.
“갑자기….”
“제발, 어? 제발.”
도현이 요지부동이자 초조한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이내 도현의 팔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도현은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작태가 어이없어서 웃음도 나지 않았다.
세 발자국쯤 끌려가다가 우뚝 멈춰 섰다. 단호하게 팔을 떨어트리자 윤창석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도현은 피로한 낯으로 한숨을 내쉰 후 눈짓했다.
“앞장서요. 따라갈 테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