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433화 (434/582)

제433화. 소슬하니 부는 바람에 (15)

- 설마 이렇게 끝…?

- ?? 이렇게 끝낸다고??

예고편 송출이 끝나자마자 반응이 쏟아졌다.

- 어떻게 기다리라고!!!

- 신주하랑 이도현 진짜 개미쳤다

└ 둘 다 명불허전

└ 생긴 건 안 닮았는데 모자지간 같음;;

- 이도현 장발 도랏

- 캐릭터가 조금 껄렁해서 그런가 유 생각나ㅠㅠㅠ

└ 헐 나도

└ ㅁㅊ 뭔가 익숙하다 했더니;;;

반응은 다양했다.

방영을 기다리는 댓글이 주를 이루었고, 신주하와 이도현의 연기력에 감탄하는 댓글과 과거 작품 언급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한 가지 더 화제가 된 것은.

- 근데 예상했던 성격이랑 조금 달라서 놀람

- 대본 리딩 때는 분명 처연피폐캐 였는데!!!

- 재수 없는 도현? 오히려 좋아

- 완전 로코 재질인데 ㅋㅋㅋ?

└ ㅇㅈ 약간 여우야 생각도 나고

사전에 공개했던 영상에서의 무거웠던 분위기와 달리, 껄렁하고 불량한 비담이었다.

그러나 최초로 공개한 예고편에 대한 반응이 마냥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 예고편 잘 뽑힌 건 맞는데, 너무 미실이랑 비담 위주 아님? 주인공 덕만인데….

- 누가 주인공인지 모를 예고편ㅋㅋㅋㅋ

└ 사실 미실이 덕만 몰아내고 왕이 되는 드라마였던 것임

└ 아아 그것이 바로 ‘왕의 길’!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도현 진짜 대단하네 ㅋㅋ 초반 등장 아역이면서 주인공 밀어내고 주인공 대접 ㅋㅋㅋㅋ

└ 그렇게 치면 주인공은 신주하 아니냐

└ 먹금하셈 저런 애들한테는 논리가 통하지 않음

- 솔직히 예고편 재밌긴 한데 덕만이 주인공 아닌 것 같은 건 ㅇㅈ 해야 하는 부분 같음

└ 제작진이 이도현 묵히기 싫었나 보지

└ 이게 맞다.

공개된 예고편 영상이 실제 주인공인 덕만이 아니라, 미실과 비담에게 포커스가 맞춰진 탓이었다.

예고편 자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과 별개로, 주인공인 덕만을 소홀히 한다는 부분에서는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

특히, 가장 반발이 심한 이들은 덕만 역할의 배우를 응원하는 팬이었다.

- 우리 언니 취급 왜 이래 ㅠㅠ

- 주인공인데 예고편에 얼굴 한 번 안 보인 거 실화냐….

- 개비씨가 개비씨 했네.

- 고작 몇 화 얼굴 들이미는 배우는 포커스 잡아주고 주인공은 팽개치고?

└ 할많하않;;

예고편에 덕만은 상당히 짧게 등장했는데, 그조차도 아역 배우의 등장이었다. 제 배우가 등장하기를 손꼽아 기다린 이들은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이 상황에 억울해진 이들이 있었으니.

- 우리 도리토스가 강요한 것도 아니고 제작진들이 결정한 일인데, 왜 우리 애 머리채 못 잡아서 또….

└ 진짜 네버엔딩 스토리도 아니고… 네버엔딩 열폭러들…ㅠㅠ

- 우리 애가 너무 잘난 걸 어떻게 해. 너무 잘나서 스비씨에서 놓치기 싫어하는 걸 어떡하라구;;;

바로, 잼잼이들이었다.

- 스비씨 눈치 없냐 아무래도 우리 애 구설수에 올라서 힘들었는데 또?

- 진짜 개빡치네 현장 관리도 제대로 못 하더니 이젠 엿까지 줘? ㅋㅋㅋㅋㅋㅋㅋㅋ 하, 나 불 지르러 갈 거니까 말리지 마

└ 내가 기름 챙겨갈게

그간, 여러 고초를 겪으며 변화한 건 도현뿐만이 아니었다.

도현의 팬덤인 잼잼 또한 변했다.

- 도현이 절.대.지.켜

- 또 우리 애 건들려고? 어림도 없지

하나는 도현을 바라보는 시각.

기존에는 도현이 하는 양을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며 박수 쳤다면, 지금은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운 채 그 주변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또 음습한 놈들이 들러붙을까 경계하면서 말이다.

외부에서 봤을 땐 약간 과보호였지만, 그들은 과보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팬카페 내 분위기.

도현의 팬덤, 잼잼은 본래 배우의 성격을 닮아 차분하고 온화했다. 시비가 걸려도 싸우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정황 파악을 해서 침착하게 대응하는 게 전반적인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사건’을 겪은 후, 잼잼이들은 달라졌다.

평소에는 예전처럼 훈훈하고 따뜻했지만, 도현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이 생기면 돌변해서 공격성을 드러냈다. 여러 번 화상을 입어본 사람이 조금만 뜨거운 온도에도 반응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런데 아직 그 트라우마가 낫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불길한 말이 나돈다.

잼잼이들이 환장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건들기만 해봐 아주 물어뜯어 주려니까

마치 터지기 전의 시한폭탄 같았다.

그러나, 폭탄이 터지기 전.

[<왕의 길> 메인 예고편 |SBC]

새로운 예고편이 떴다.

‘뭐지…?’

팬들은 경계심을 놓지 않으면서도 예고편을 확인했다.

새로운 예고편은 홍매화가 아니라 흰 모란꽃이 피면서 시작되었다. 기존의 예고편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청초하고 고결한 느낌의 모란꽃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가,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으로 화하여 사라졌다.

이윽고 드러난 넓은 꽃밭.

그곳에 한 여인이 서 있었다.

‘!’

잼잼이들은 크게 놀랐다.

모란꽃이 흐드러지게 핀 꽃밭 앞에 선 여인은 덕만이었다. 아역이 아니라 성인 배우이자 드라마의 주인공!

덕만은 긴 머리카락을 바람결에 휘날리며 제 앞에 무릎 꿇은 이를 보았다.

사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저는 왕이 될 것입니다.”

그녀는 한참을 울어 눈이 짓무른 채였다.

제 형제의 죽음이, 그리고 천명과 자신이 겪었던 모든 위협이 미실로부터 나온 것이었음을 깨달은 덕만이 다짐하듯 말했다.

“왕이 되어,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하겠습니다.”

바람이 불었다.

휘날리는 꽃잎과 함께 화면은 희게 물들었다.

예고편이 모두 송출되고.

- 예고편이 두 개였어?

- ??? 나 지금 기름 내려놨다.

└ 나도 라이터 내려놓음;;

잼잼이들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방금까지 잔뜩 날을 세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런 난리를 칠 이유가 없던 것이다.

잠깐의 혼란과 머쓱함이 지나간 후.

- 휴… 또 난리 나는 줄 알고 심장 떨렸네.

└ 나두 ㅋㅋㅋㅋㅋ

- 스비씨가 생각이 있어서 다행이다 ㄹㅇ

- 이 갈고 있었는데… 머쓱;;

└ 머쓱 22

└ 괜히 화냈네 ㅎ

분노는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 그래… 내가 졌다 제작진 놈들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왕의 길 제작진들 도혀니 골수까지 뽑아 먹으려고 작정한 듯ㅋㅋㅋㅋㅋㅋ

└ 이거 아니야? 도현이를 내세우고는 싶은데 + 욕은 먹을 것 같으니까 = 예고편을 두 개 만들어 버리자 ㅋㅋㅋㅋㅋㅋㅋ

└ 맞는 듯 ㅋㅋㅋㅋ 개웃기네.

두 개의 예고편은 잼잼이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 진짜 레전드….

- 와… 와… 아니, 말이 안 나옴….

- 제작진들 미쳤냐… 어떻게 이걸 따로 낼 생각을 하지?

- 방영 날 일어나게 누가 기절 좀 시켜줘 ㅠㅠㅠㅠ

극 중 악역과 주인공이 각각 주축이 된 예고편이라는 시도가 상당히 새로웠을뿐더러,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왕의 길>에 대한 기대로 한창 달아올랐을 때.

“…예?”

새솔 대표, 정한결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용인에서 돌아온 후.

도현은 매니저를 통해 정한결과 약속을 잡았다.

지난 일로 인해서 도현의 눈치를 보고 있던 정한결은 그것을 덥석 수락했다. 이참에 잃은 신뢰를 완전히 되찾아 보자, 하면서.

그러나.

도현은 대표실에 오자마자 간단한 안부 인사만 나눈 후 곧장 이상한 이야기를 꺼냈다.

- 형, 저번에 말씀해 주신 거요.

- 어?

- 그, 정희운 배우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해 주셨잖아요. 다시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경찬호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때 했던 말을 더듬더듬 되짚었다. 그의 말이 모두 끝나고, 도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결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게 뭔 상황인데?

- 그렇대요. 연기도 잘하고, 가능성도 있는데, 성실하기까지 한 배우라네요.

친구를 자랑하려고 나를 부른 건가?

물론 정한결은 도현이 앞에서 냅다 춤을 춘대도 박수를 보낼 자신이 있었다. 아니, 그 옆에서 음악을 틀어줄 수도 있었다.

다만, 이건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그때였다.

- 그러니까, 정희운도 새솔에 오면 좋지 않을까요?

도현이 본론을 꺼냈고.

- 예…?

그는 멍청하게 반문했다.

그리하여 지금이었다.

정한결의 머리가 팽팽 돌았다.

“그으러니까. 여기에 놀러 오면 좋겠다고요?”

말하고 나니 설득력 있었다.

지난번에 그 논란을 해결해 준 뒤 아직 감사 인사를 제대로 못 한 상태였으니까. 이참에 불러서 감사하다고 인사도 하고 뭣 좀 쥐여서 보내야….

“아니요.”

검은 눈동자가 진지하게 빛났다.

“소속사 이적이요. 정희운, 여기로 데려오는 거 어때요?”

“…….”

정한결은 입을 꾹 다물었다. 도현은 그의 반응을 살피다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대표님도, 매니저님도 모두 정희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계시잖아요. 저희가 실제로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요. 나쁠 건 없지 않나요?”

“그건… 그런데.”

정한결이 콧잔등을 찡그렸다.

“친구를 좋아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요. 생각해 볼 것도 많고….”

“친구라서가 아니에요.”

“네…?”

“친구라서가 아니라, 배우로서 말하는 거예요. 정희운, 몇 년만 지나도 꽤 유명해질걸요. 지금도 유명하지만요.”

줄줄이 말하던 도현은 쓴웃음과 함께 말을 흐렸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제가 말해도 믿기진 않겠지만….”

“아, 아니요! 믿죠!”

‘믿음’은 그들 사이에서 트리거나 다름없었다. 그걸 알고 저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정한결은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처연하게 시선을 내리깔았던 도현이 아련하게 눈매를 접었다.

“믿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저러니까 아니라고 말도 못 하겠다.

‘왜 커갈수록 여우가 되는 거 같지. 여우 요괴 배역을 맡았던 게 문제인 건가?’

정한결이 심각하게 고민했다.

“정희운, 제가 봤을 때도 장래성이 충분한 배우예요. 그러니까 진지하게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저를 믿어 주신다면요. 물론 아주 작은 문제가 하나 있긴 한데….”

“작은 문제?”

“네, 작은 문제.”

정한결은 불길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 계약 기간이 덜 끝난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매니저가 5년 일했다고 했으니까… 거의 끝나지 않았을까요?”

그게 어떻게 작은 문제라는 말인가.

만약 이쪽에서 데려온다손 쳐도, 저쪽에서 계약 기간을 이유로 안 놔주면 답이 없었다. 운 없으면 소송이 걸리거나. 위약금이 억대로 치달릴 수도 있었다.

“그럼 계약 기간이 끝나면 그때 생각해 봅시다. 어때요?”

정한결에게는 이게 최선이었다.

아무리 도현의 말이라고는 하나 갑자기 아무나 데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게 계약 기간이 덜 끝난 아티스트면 더더욱 어려웠다.

그때였다.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도현이 무언가 생각난 사람처럼 아, 하는 탄성을 뱉었다. 그리고 무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저희 재계약이 아마… 내년이었죠?”

도현이 화사하게 웃었다.

“와, 얼마 안 남았네요.”

“…….”

여우는 무슨, 백 년 묵은 능구렁이가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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