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440화 (441/582)

제440화. 소슬하니 부는 바람에 (21)

[‘왕의 길’ 이도현-정희운, 불 튀기는 사랑 대결 시작?]

[‘왕의 길’ 이도현·정희운, 첫 만남부터 ‘기 싸움 팽팽’]

배우 이도현과 정희운이 첫 만남부터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지난 금요일에 방송된 SBC 금·토 드라마 ‘왕의 길’ (극본 윤정아/연출 성진수) 3회에서 용춘 (정희운 분)은 덕만 (진윤아 분)이 숨은 곳을 찾아내었다. 비담 (이도현 분)을 납치범으로 오해한 용춘은 그를 위협해….

(중략)

궁에 도착해서도 용춘과 비담 사이의 갈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궁인들의 평판 또한 극과 극을 달리며, 평행선을 달리는 두 사람의 대립과 갈등을 예고했다.

한편, 이어진 토요일 방송분 예고편에서는 아들(비담)을 버렸던 미실 (신주하 분)과 어머니에게 버려졌음에도 다시 궁으로 돌아온 비담의 재회가 그려지며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았다.

- 어떻게 이 부분에서 끊어!!!

- 덕만이 부럽다 ㅠㅠ 완전 양손의 꽃…

- 김비담 성격 너무 좋음ㅋㅋㅋㅋ노빠꿐ㅋㅋㅋㅋㅋㅋ

└ ? 비담 성씨가 김씨임?

└ ㄴㄴ그냥 부르는 거 ㅋㅋㅋㅋ

- 냉까칠고영 비담 vs 온햇살댕댕 용춘

당신의 선택은???

└ 이걸 어떻게 골라;;

└ 난 고양이파!! 고양이가 세상을 구한다!!!

└ 용춘도 끌리지 않냐…? 밖에선 유능한데 나한테는 댕댕이 같은 앨리트 화랑? 음 야미

- 고증 오류 싫어해서 왕의 길 안 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10시만 기다림 ㅠㅠ

- 미실이랑 비담 재회 너무 설렌다… 기존쎄 vs 기존쎄

└ ㄹㅇ자강두천이다

└ 나도 넘 설렘 ㅠㅠㅠ 빨리 10시 됐으면!!!

└ 근데 비담ㅋㅋㅋㅋ 어디 붙여놔도 +가 아니라 vs인 게 개웃김ㅋㅋㅋㅋㅋㅋ

ㄴ 아 진짜넼ㅋㅋㅋㅋㅋㅋㅋㅋ

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 *

오랜만에 여유로운 주말이었다.

도현은 오전부터 양궁장에 들른 후, 오후에는 발레 학원에 갔다. 거의 두 달만의 방문에 원장님은 그를 무척이나 반겨주었다.

“집에서 스트레칭 꾸준히 해줬지? 많이 안 굳었네. 이 정도면 금방 감 찾겠다.”

도현이 바 옆에서 몸을 푸는 걸 보던 원장 선생님이 말했다.

확실히, 생각보다 몸이 유연했다.

틈틈이 스트레칭을 해준 게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몸을 푼 후에 들어간 건 바 워크(Bar Work)였다. 한쪽 손으로 바를 붙잡고, 바뜨망 데가제, 바뜨망 프라페, 아다지오 순서대로 했다.

아다지오-Adagio, 천천히, 매우 느리게-라는 명칭답게 슬로우 템포에 맞춰 움직이는 동작은 도현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아다지오는 다리를 90도 이상 올리면서도 몸의 균형을 완벽하게 유지해야 했는데, 천천히 연속적인 동작을 취하다 보니 뛰어난 근력과 균형 감각, 그리고 집중력을 요구했고… 무엇보다 다른 동작보다 고통의 시간이 길었다.

도현은 그러한 고통을 인내하는 데에 능숙했고 말이다.

바 워크가 끝나자 도현의 둥근 이마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오랜만에 와서인지 평소의 배로 힘든 것 같았다. 잠깐 주어진 휴식 시간에 도현은 다리를 쭉쭉 찢으며 숨을 골랐다.

“아, 다섯! 아쉽다!”

한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도현이 고개를 들었다. 발레 학원 수강생들 몇몇이 한쪽에 모여서 내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뭐 해?”

도현이 호기심을 보이자, 가까이 있던 아이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거기 서 있는 게 도현이라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어? 아… 피루엣 대결. 꼴찌 하는 사람이 아이스크림 쏘기로 했어. 너도 할래?”

한 명이 말하기 무섭게 다른 한 명이 끼어들어서 핀잔을 주었다.

“야, 쟤는 오랜만에 왔잖아. 쟤한테는 불공평하지.”

“맞아. 아니면 턴 수에 한 개 정도 더하든가.”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들 나름의 배려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도현의 승부욕을 자극했다는 거였다.

“안 봐줘도 돼.”

“정말? 굳이 안 그래도….”

“최고 기록이 몇이야?”

“일곱!”

“야, 너 엉망진창으로 했잖아! 네 건 카운트 무효야!”

“아무튼 돌긴 돌았잖아!”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라 그런지 금방 투닥거렸다. 도현은 아이들을 말리는 대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했다.

오랜만이긴 하지만… 몸은 얼추 다 풀렸으니 괜찮을 것이다.

“나 준비됐어.”

“진짜 괜찮아?”

“응.”

“마지막 포즈까지 해야지 인정이야.”

“앙드당? 앙디올?”

“그건 마음대로!”

앙드당(en dedans)은 시계 반대 방향, 앙디올(en dehors)는 시계 방향이었다.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포즈를 잡았다.

“한 바퀴부터 도는 거야. 일단 한 바퀴.”

그건 무난히 성공했다. 거기까진 당연한 터라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표정에 경각심이 떠오른 건 이어서 두 바퀴, 세 바퀴까지도 별 어려움 없이 성공해냈을 때였다.

“네 바퀴!”

네 바퀴도 성공했다.

이젠 아이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흘렀다. 새로운 다크호스의 등장을 느껴서였다.

꼴찌만 벌칙이 있지, 일등은 아무런 혜택도 없거늘, 아이들의 경쟁 심리는 대단했다. 엉망진창으로 한 일곱 바퀴를 제외하고 제일 높은 점수를 기록한 아이가 활활 불타는 눈으로 외쳤다.

남 말 하듯 말했지만… 도현의 얼굴에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도 지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다섯 바퀴!”

뜨거운 주목 속에서 도현의 뒷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우렁차게 인사한 아이들은 우르르 학원을 나왔다. 도현이 속한 반은 중학생 반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가 별로 없었다.

“이도현! 너는 뭐 먹어?”

“뭐가 맛있어?”

같은 건물 일 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간 아이들이 아이스크림 가판대에 다닥다닥 붙어 섰다. 도현은 평소 아이스크림을 즐겨 먹는 편은 아니던 터라 생소하기만 했다.

“그럼 이거 먹어. 내 최애임.”

여섯 바퀴로 일 등을 먹은 아이가 도현에게 초코 아이스크림을 하나 내밀었다. 도현은 순순히 그걸 받아 들었다.

결과적으로, 도현의 최고 기록은 네 바퀴였다.

아이들 사이에선 중상위권이지만, 두 달 동안이나 쉬고서 기록했다기엔 높은 숫자였다. 도현은 그 기록에 나름대로 만족했다.

“용돈 다 털리겠네….”

두 바퀴로 꼴찌를 한 애가 지갑을 들고 투덜거렸다. 도현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

“내가 사줄까?”

“진짜?”

“응, 내가 사줄….”

“안 되지! 내기잖아!”

그렇게 도현의 수작은 막혔다.

‘내가 사도 괜찮은데.’

용돈으로 생활하는 친구의 지갑을 털어먹으려니 벌써 소득이 있는 도현으로서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나 다른 애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어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다. 도현은 얌전히 아이스크림을 얻어먹었다.

각자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아이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며 수다를 떨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화제는 오늘 저녁에 있을 왕의 길 4화였다.

“우리 엄마 아빠 그거 엄청 재밌게 보더라.”

“정말? 감사한 일이네.”

“넌 내용 다 알고 있지?”

“아니, 나도 내용을 다 알고 있진 않아. 내가 출연한 부분만 알지.”

“애들이 너랑 같은 발레 학원 다니는 거 알고 싸인 받아 달라고….”

“싸인? 몇 장?”

도현은 그들의 질문에 부러 성심껏 답해주었다. 2반 애들과는 다르게 발레 학원 아이들이 저를 내심 어려워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자주 안 나와서 그런가.’

확실히, 2반 애들과는 다르게 유대를 쌓기 어려울 상황이었다. 학원이다 보니 아이들이 종종 사라지기도 하고, 또 반대로 새로 유입되기도 하니 말이다.

그중에서 새로 유입된 애들은 유독 도현에게서 거리감을 느꼈다. 아무래도 텔레비전으로 보던 사람을 실물로 보니 낯선 거 같았다.

‘이렇게 어울리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가볍게 생각한 도현은 아이들과 어울려 노닥거리다가, 삼십 분쯤 지났을 때 자리를 떴다. 곧 있으면 저녁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잘 가! 드라마 꼭 볼게!”

가는 방향이 같아서 같이 걸어왔던 아이가 손을 크게 흔들었다. 도현도 그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준 후에 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몸을 써서 그런가. 시원하기는 했지만, 팔다리가 후끈거렸다.

‘내일은 근육통 확정이네.’

별 감흥 없이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 * *

토요일 10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과 소파에 앉은 도현처럼, 수많은 사람이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 길게도 나오는 광고에 전국에 포진한 잼잼이들은 입술을 뜯었다.

‘광고 언제 끝나!’

얼른 우리 애 얼굴이 보고 싶단 말이다!

그들의 애타는 심정을 들었을까.

길고 길었던 광고가 끝나고, ‘왕의 길’ 오프닝 영상이 흘러나왔다. 새카만 먹물이 부어진 건 화면인데, 사람들은 제 얼굴에 뿌려진 양 입을 꾹 다물었다.

화면이 미실이 기거하는 궁을 비추었다. 오프닝과는 달리 어떠한 배경음도 없이 그저 고요했다. 오직 그곳에 존재하는 두 사람의 숨소리만 들려왔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비담을 이곳에 데려온 궁인은 이미 조용히 나간 후였다. 깊은 밤, 육 년 만에 재회한 모자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미실이었다.

“버릇이 없어졌구나.”

육 년이 흘렀는데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서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미 앞에서 지저분한 거적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고.”

하, 토하듯 숨결을 뱉어낸 비담이 제 얼굴을 가린 면포를 풀어냈다. 지저분한 거적이라 칭해진 것이 손안에서 구겨졌다.

비담은 잠시 턱을 악물었다. 치솟아 오르는 무언가를 억지로 삼켜내는 사람처럼. 창백한 목덜미에 푸른 핏줄이 도드라졌다.

비담은 끝내 여인을 닮은 비소를 입가에 다는 데에 성공했다.

“놀랐습니다.”

소년은 놀랍도록 여인을 닮아 있었다. 덕만의 궁에서 포악을 부리던 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차분한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낯설게 다가왔다.

“그리 버리실 땐 언제고, 이제 와 어미라 칭하시다니요.”

마른 음성이 뾰족한 창날이 되어 피부에 박혀 들었다.

창날의 방향은 비담, 자신이었다.

비담은 제가 내뱉은 말이 제게 돌아와 박히는 것을 가만히 관망했다. 그날 이후로부터 그에게 이 정도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그래, 차라리.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버려졌던 때에 비하면 지금 상황은 달기까지 했다.

이미 버린 것을 한 번 더 버릴 수는 없을 테니.

둘 사이에 감도는 공기에 시청자들이 숨을 죽였다.

분명 한마디씩 주고받았는데, 너덜너덜해진 건 비담뿐인 것 같았다. 소년이 저토록 태연한 낯을 하고 있음에도 그렇게 보였다.

어쩐지 그들이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너를 버렸지.”

“…….”

“그런데 어찌 돌아왔느냐?”

그리고 누구보다 가장 비참할 소년이, 심줄이 불거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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