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6화. 겨우내 웅크린 (4)
허공을 헤매던 눈동자가 누군가와 딱 마주쳤다.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경찬호였다. 순식간에 찬물 세례를 받은 것처럼 감각이 곤두섰다. 이곳에 두 사람을 제외한 타인이 존재한다는 건 정신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끄웁….”
여전히 정희운은 울고 있었다. 나름대로 울음을 삼키려 노력하는 것 같은데, 토막 나며 흘러나오는 소리는 도리어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차라리 대놓고 울었으면 저보다는 덜 불쌍해 보였으리라.
본래 생긴 것도 연하고 순한 애가 울기까지 하니까 한없이 물렁해 보였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툭 치면 푹 하고 들어갈 것 같았다.
여기까지는 경찬호의 시선이었고, 도현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그의 눈에는 일렁이는 영혼이 보였으니까. 비바람을 맞은 개나리꽃도 아니고, 일그러졌다가 펴졌다가 반짝였다가 쭈그러들었다가 하는 통에 도현의 정신이 다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렇게 요동쳐?
도현은 거기에 눈길이 가는 것을 애써 참아내며 간신히 해야 할 일을 추려냈다.
“형.”
“어, 어?”
“바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경찬호는 한가했다. 휴게실에 와서 시간을 보내도 될 만큼이나 한가했다. 그러나 매니저 짬밥은 날로 먹은 게 아니었다.
“아, 맞아. 그랬지. 나 먼저 가볼게. 이따가 연락해.”
국어책 읽기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의 연기였다. 경찬호의 귓불이 조금 붉어졌다.
그런 그에게는 다행히도, 두 소년은 그의 안타까운 연기 실력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도현이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
“네, 그럴게요. 먼저 가보세요.”
간단하게 경찬호를 휴게실에서 쫓아낸 도현은 그를 배웅한 후 자연스럽게 문을 잠갔다. 휴게실을 찾았다가 영문도 모르고 돌아갈 사람들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희운이 우는 걸 동네방네 소문낼 수는 없잖아.’
물론 안다고 큰일이 나거나 하진 않겠지만… 정희운 본인이 신경 쓸 게 뻔했다. 이런 일로 눈치 보며 쩔쩔매는 걸 볼 바에는, 아무도 모르게 하는 편이 깔끔했다.
그래서…. 문이 잠긴 걸 확인한 도현이 뒤를 돌아보았다. 서러운 얼굴을 한 소년이 옷소매로 눈가를 벅벅 닦고 있었다.
저걸 어쩌지.
도현은 한숨이 나오려는 걸 삼키며 테이블에 놓인 휴지를 통째로 정희운 품에 안겨주었다. 정희운은 머뭇거리면서 그것을 받아 들었다.
“고마워….”
“그래.”
도현이 희운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자,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간간이 들리는 훌쩍이는 소리만이 전부였다.
그 어색한 시간이 마냥 헛되지는 않았는지, 정희운의 울음은 점점 그쳐갔다. 조금 진정된 듯, 가슴께를 크게 부풀린 정희운이 돌연히 고개를 들었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내가 무슨 말을 해?”
“그렇네….”
맥 빠지는 대답에 도현이 어이없는 눈을 했다. 정희운도 멋쩍긴 했는지 눈물을 닦는 척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도현을 그것을 지적하는 대신 입을 열었다.
“물어보면 좋겠어?”
생략된 주어를 알아들은 건지, 정희운이 멈칫했다. 도현은 때를 놓치지 않고 경고하듯이 말을 덧붙였다.
“이건 알아둬. 나 위로 잘 못 해.”
특유의 무심한 투에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한마디로 으름장을 놓는 것 같았다. 그 말투나 눈빛이 한없이 진지해서 정희운은 입술을 오므렸다.
“푸흡.”
오므렸다고 생각했다.
주인의 의사를 배반하고 튀어 나간 웃음에 정희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에 놀란 건 정희운뿐만이 아니었다.
“…웃어?”
도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갑자기 울더니, 이젠 또 웃는다고. 대체 제 말의 어디가 정희운을 웃겼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웃기려고 한 말도 아니었다. 도현은 복잡한 표정을 하다가 이내 가늘게 숨을 내쉬었다. 아까부터 도무지 정희운의 생각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 이유가 어찌 되었건 우는 것보단 웃는 게 낫다. 그리 생각할 찰나였다.
“우, 웃은 건 미안. 네 말을 무시한 건 아니야….”
그건 진즉 알고 있었다. 정희운은 누군가의 말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반 애들이 하는 말도 마음에 꼭꼭 담아두고선, 성실하게도 곯아 갔지 않는가. 그 인간 같지 않은 매니저의 말도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두었을 터다. 그걸 생각하니 두통이 일었다.
목적성을 잃은 분노였다.
“그리고 안 물어봐도 괜찮아.”
그러나 불씨가 타오르기 전에 식어버렸다. 도현은 조금 커진 눈으로 정희운을 보았다.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그가 다시금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위로도 안 해줘도 돼.”
일순 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분명 그가 경고했던 일이다. 정희운은 그의 경고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뿐이고. 그런데 왜 반발심이 드는 걸까.
“왜?”
“어?”
“왜 안 해도 돼?”
이번에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정희운이 도현을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입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있었다. 나보고 무슨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거야, 라는 표정이었다.
그런 얼굴로 쳐다봐도 소용없었다. 그는 언제나,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안 적이 드물었으므로.
도현은 자아비판은 미뤄두고 일단은 충동에 따르기로 결심했다.
“왜 운 건데?”
“…나 방금 괜찮다고 했는데?”
“소속사가 마음에 안 들어?”
정희운의 항변은 도현의 말에 가볍게 무시당했다. 정희운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다가, 느릿하게 부정했다.
“그럴 리가. 오히려 과분해.”
“과분한 게 어디 있어. 그냥 소속사인데.”
“하하….”
정희운은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도현은 특별했다.
비단 그의 이력이나 배경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특별했다.
그에겐 또래에서 볼 수 없는 초탈함이 존재했다. 가끔은 어떤 선 너머에 있는 것 같았다. 종종 도현의 시선이 닿을 때면 본질을 꿰뚫리는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게 신적인 존재와 맞닿아 있는 신도 같다가도… 때로는 죽음의 강에 손을 담근 사람 같았다.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모든 것을 초탈해버린 시한부처럼. 그런 신비롭고도 음울한 공기가 도현이라는 존재를 형성했다.
그렇기에 도현은 현실의 기준이나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한없이 자유로워 보인다. 정희운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설프게 대답을 뭉갰음에도 도현은 전혀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다.
“그럼 왜.”
툭 내던져진 질문은 무심하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검은 두 눈은 휴게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멀어지지 않고 정희운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으니까.
그러면서도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아니면 알고도 당연히 여기든가.
이것도 도현의 친절함일까.
그의 친절함에 여러 번 수혜를 입었던 정희운의 생각은 그렇게 흐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저 시선은 다른 애들에게도 향하겠지.
희운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넌 너무 착한 거 같아….”
“뭐?”
말을 뱉고서 아차 했지만, 다시 번복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번복하는 게 아니라 한술 더 떠서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도현은 말문이 막혔다.
착하다고? 내가?
그는 해늘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인지함에도 공론화를 피하고 정희운만 빼내었다.
거기서 다른 아이들이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으리란 걸 짐작했다. 그럼에도 외면하는 길을 택했다. 어떻게 봐도 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이기적이면 이기적이었지.
“내가 착하다고.”
질문보다는 탄식에 가까웠는데 정희운은 성실하게 대답했다.
“응, 나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렇게 신경 써주잖아.”
“그건….”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었다.
그가 정희운을 신경 쓰는 복잡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전에도 말한 거 같은데, 나 너 안 싫어해.”
이 말이 현재 도현이 꺼낼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정희운은 그다지 신뢰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응, 그랬지….”
그 미지근한 목소리에 도현이 다시금 강하게 말하려던 때였다. 눈물이 마른 뺨을 조금 문지르던 정희운이 시선을 내렸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가끔 네가 날… 이상한 눈으로 봐서.”
듣는 사람이 다 찝찝해지는 발언이었다. 내가 쟤를 대체 무슨 눈으로 봤길래?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며 무언가 실수한 게 있었나 되짚었다.
그러나 잇따른 말에 더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꼭 형처럼.”
작은 목소리가 천둥처럼 귀를 파고들었다. 도현은 벼락 맞은 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사고가 완전히 정지된 채 크게 뜬 눈으로 멍하니 정희운을 바라볼 뿐이었다.
시선을 무릎에 고정하고 있던 정희운은 그런 도현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경악 섞인 침묵을 경청으로 받아들이고 작게 심호흡을 했다.
“나한테 형이 한 명 있거든.”
“…….”
“어렸을 때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근데 이건 기억해. 형이 나를 되게 예뻐했어.”
나이 차가 많이 나서 그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도현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형이랑 나랑 스무 살 차이거든. 조금 신기하지. …음, 사실 이건 별로 안 좋은 일 같아. 그때 내가 형을 많이 무서워했거든.”
“…무서워, 했다고?”
“으응, 너무 커서 무서워 보였나 봐. 사실 이것도 잘 모르겠어. 형이 다가오기만 하면 내가 울었다는데 기억이 잘 안 나서.”
몇 차례 큰일이 지나가고 한바탕 울고 나니 경계심이 흐려진 소년은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을 했다. 형의 이야기를 늘어놓던 정희운이 별안간 웃음을 흘렸다.
“나 그때 왜 울었지. 바보같이….”
웃음으로 시작된 문장은 씁쓸하게 끝났다. 정희운의 눈빛이 어둑하게 가라앉았다. 생각에 잠긴 갈색 눈동자가 짙은 빛을 띄웠다.
“그래서 형이 날 멀리서만 봤어. 내가 우니까….”
정희운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어떤 무거운 것을 견뎌내는 사람 같았다. 도현은 저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적어도 그만큼은 모를 수 없는 것이었다.
넋이 나가 있던 정희운이 문득 현실 감각이 되돌아왔는지 고개를 들었다. 그가 어색한 미소를 매달았다.
“그, 좀 바보 같지?”
후회였다.
도현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정희운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점차 흐려졌다. 그는 결국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떨구었다.
“내 말은, 그냥…. 음, 가끔 네 눈빛이 형이 멀리서 날 쳐다볼 때랑 비슷해서…. 으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미안해, 그냥 방금 한 말 다 잊으면….”
횡설수설한 변명이 쏟아졌다.
정희운은 스스로도 왜 이런 말을 꺼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도현은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형을….”
형을, 뭐?
다음으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싱겁게 입을 다무는 편이 가장 좋은 결말일 것 같았다. 아니, 그게 가장 좋은 결말일 터다.
도현은 제 입술이 움직이는 순간이 아주 느리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인지했다. 이 말을 꺼내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도현을 이끌었다.
“형을 좋아했어?”
“…….”
맑은 갈색 눈동자가 도현을 투명하게 비추었다. 저 속에 존재하는 게 도현인지, 혹은 다른 누군가인지 알 수 없었다. 도현은 축축하게 젖은 손을 말아 쥐었다.
도망치고 싶다.
동시에, 도망쳐도 결국은 피할 수 없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예지에 가까운 확신이었다. 도현은 사형 날짜를 받는 죄수처럼 옥죄어 오는 공포 속에서 입 안의 살을 깨물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