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7화. 겨우내 웅크린 (5)
알기 쉽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단번에 낯설어진다. 저 투명한 낯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생각하니 숨이 가빠왔다.
말하지 마.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비겁한 애원이 목에서 들끓었다.
당장 자리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욕구가 도현을 충동질했다.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는 한계에 부닥쳤다. 짙은 현기증이 일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마음이 두 갈래로 갈라져 산란했다. 이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면 하다가도 무엇이라도 좋으니 말해줬으면 싶었다.
침묵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아까부터 울리는 심장 고동이 머리를 혼몽하게 만들었다. 검푸른 심해에 갇혀 고래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추락하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느리게.
그러나 도현이 완전히 바닥에 가라앉기 전, 정희운이 침묵을 밀어냈다.
“내가 형 무서워했다고 했잖아.”
흰 손이 움찔 떨렸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랐으면서, 정작 그가 말문을 떼니 당장 벗어나고 싶어졌다. 그것을 참을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쌓아 올린 인내가 몸에 새겨진 덕이었다.
“형이 집에 온 날이면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어.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형이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나도 알아.
그저 네 웃는 얼굴 한 번 보고 싶어서 갔는데 털끝 하나 비쳐 주지 않았잖아. 방문 앞에서 서성이는 걸 알면서도 한 번도 열어준 적 없잖아.
“그렇게 형을 쫓아내고 나면 한참 뒤에 방문을 열었어. 그럼 항상 그 자리에 무언가 놓여 있었어.”
이번엔 도현도 모르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형이 집을 떠난 후의 이야기. 도현이 정희성인 이상 절대로 알 수 없는, 이미 끝난 이야기의 외전.
“선물은 매번 바뀌었어. 어느 날은 물감이었다가 어느 날은 축구공, 어느 날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이 그려진 가방…. 나 그 주인공 안 좋아했는데.”
…제일 인기 많은 캐릭터랬는데.
가게 점원이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 도현은 그 와중에도 미약한 아쉬움을 느꼈다.
안 좋아하는 줄 알았으면 다른 거 샀을 텐데.
입 안이 간지러웠다. 해서는 안 될 말이 입 속에서 자꾸 맴돌았다. 말해 주지 그랬어. 그럼 네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샀을 거야. 요동치는 문장들을 억지로 잡아다가 꿀꺽 삼켜버렸다.
“근데, 당연하잖아. 나랑 대화도 해본 적 없는데 내가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겠어.”
순간 수많은 변명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니야. 네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어. 네가 단 걸 싫어한다는 것도, 갑각류를 못 먹는다는 것도. 이젠 네가 그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
“그 가방, 여전히 내 방에 있어.”
“…안 좋아한다며.”
“가방뿐만 아니라 형이 사준 것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어.”
섬세한 눈매가 조금 크게 뜨였다. 도현은 경직된 채로 정희운을 바라보았다.
쿵, 쿵…. 심장이 주체할 길 없이 날뛰었다. 그게 그저 놀라움이라면 좋을 텐데. 그러나 한층 빨라진 심장은 명백히 기대를 담고 있었다. 도현은 멍청한 심장한테 제발 닥치라고 하고 싶었다.
“…왜.”
도현의 입술이 달싹였다.
“왜 안 버려?”
“뭐?”
“형 무섭다며. 선물도 마음에 안 든다며. 왜 안 버려? 왜 가지고 있냐고.”
저도 모르게 쏘아붙이듯 말이 터져 나왔다. 도현의 날카로운 말에 정희운의 눈이 미세하게 커졌다. 그는 당혹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도현은 차마 그 표정을 계속 마주할 수가 없어 시선을 미끄러트렸다.
“어떻게 버려?”
이상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버리냐니. 그냥 버리면 되잖아.
대충 들고 가서 아무 쓰레기통에나 던져 놔. 쉽잖아.
“그럼 쓰레기를 계속 방에 두겠다고?”
이번에는 다갈색 눈동자가 완전히 충격에 물들었다. 그는 도현이 한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몇 번이고 도현의 얼굴을 훑었다.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놀란 모습을 보자 과열되었던 머리가 천천히 식어갔다. 도현은 스스로 이성을 되찾았다고 판단했다. 깊이 심호흡을 한 후 다정한 말씨를 꾸며냈다. 끝이 날렵하게 빠진 눈매가 능선을 그렸다.
“버려. 지저분하게 두지 말고.”
아이를 타이르듯이 부드러운 음성에는 차가운 강요가 섞여 있었다.
이제 정희운의 동요는 얼굴 전체에 뻗어 있었다. 그의 눈매며 뺨이 파르르 떨렸다. 도현은 그 모든 것을 눈에 가득 담았다.
그건 조금 기이한 행위였다. 교수형에 처하기 전에 사형수가 제 목을 조를 매듭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과 같았으니까.
기묘한 침묵이 둘 사이를 갈라놓았다. 조금 전까지 부유하던 몽롱한 공기가 바깥에서 들어온 찬바람에 단숨에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눈물을 흘린 만큼이나 축축하게 젖어 들었던 희운의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방금까지 눅눅한 공기 속에 있어서 지금 더 춥게 느껴지는 건지도 몰랐다. 희운은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애써 내색하지 않으며 둥근 눈매를 뾰족하게 세웠다.
“싫어.”
도현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말과 문장만이 대답이 되는 건 아니었다. 저 엄정한 눈동자가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고집부리지 말라고.
저 눈앞에 서면 바보가 된 것만 같았다. 내가 틀리고 그가 전부 맞는 것 같았다. 소년은 종종 디케의 화신이 된 것처럼, 아주 엄격하고 냉엄하게 보였다. 하지만 희운은 움츠러들면서도 물러서지는 않았다.
네가 뭔데 그렇게 말해?
왜 그렇게 함부로 말하는데.
눈가에 열기가 몰렸다. 희운은 부러 눈을 부릅떠 힘을 주었다. 이 상황에서 울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울면 저 애는 나를 달래줄 테니까.
그 후는 상상하기 쉬웠다. 지금까지 나눴던 이야기는 허공에 흩어질 것이다. 저 애는 누구보다 이성적이니까, 모든 걸 없었던 일인 것처럼 굴겠지. 뛰어난 연기자이니 아주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이전처럼 돌아갈 거야. 기묘하고도 평범한 관계로. 남들에겐 그저 좋은 친구 사이인 척…. 희운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도현은 아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희운은 그가 무척 가까워졌다가, 한순간에 멀리 떠나가 버린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상실감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손에 쥐었다.
그냥 이대로 알겠다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나약한 본성이 아우성쳤다. 희운은 실 같은 숨을 입술 사이로 흘려보냈다.
“안 버릴 거야.”
늘 나약하게 기댔다. 저번에도, 이번에도. 또다시 도현이 모든 상황을 정리해주길 바라며 숨죽이고 있긴 싫었다.
“아까 물었지? 형을 좋아하냐고.”
입 밖에 내어본 적 없는 말이다.
부모님의 앞에서도, 그 혼자서도.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득한 죄책감과 죄악감이 희운을 뒤덮었다. 제 감정을 입에 담는 것 자체가 형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토록 외면해 놓고선, 감히.
입원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리사이틀 중에 쓰러졌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실 찾아가고 싶었다. 어차피 가서 한마디도 못 하고 돌아올 게 뻔한데도 찾아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과 달리 가로막는 현실이 너무 많았다. 형의 이야기만 나와도 불편해하는 부모님과 홀로 찾아가기엔 너무 어린 나이. 그것들은 핑곗거리로 참 적절했다.
어쩔 수 없었어.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텅 빈 방문 앞이 낯설었지만, 곧 익숙해졌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섰을 땐 어땠더라.
…처음엔, 거짓말 같았다. 나중에는 괜찮아졌다. 어차피 형이 입원한 뒤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까. 장례식 전이나 후나.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희운은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방문을 보았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문고리를 돌려 보았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젠 이걸 열 기회가 영영 없으리란 걸.
모든 게 바뀌어 버렸음을 깨달았을 땐… 모든 게 끝난 후였다. 세상에서 제일 늦은 깨달음이었다.
희운은 울지 않았다. 울 자격이 없다는 걸 아니까. 그에겐 수많은 기회가 있었고, 그걸 차버린 건 언제나 희운, 자신이었다.
숨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희운은 방향을 놓친 조각배처럼 흔들리는 눈으로 도현을 보았다. 검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심장이 선뜩하게 내려앉았다.
“어떻게….”
장례식 이후로 달라진 부모님 대신 희운의 옆에 남아준 건 그가 남긴 것들뿐이었다. 희운은 그제야 그것들을 돌아보았다. 뒤늦은 궁금증이 차올랐다.
이건 무슨 생각으로 골랐을까. 이건 왜 준 걸까. 저거는 왜?
희운은 시간이 아주 많았다. 그날 이후로 그는 늘 혼자였으니까. 탐정 놀이는 시간을 죽이기 꽤 괜찮았으니, 자연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나둘씩, 작은 조각이 모여갔다.
처음에는 아리송했던 것이 갈수록 뚜렷해졌다. 그것이 하나의 그림이 되었을 땐, 아무리 멍청해도 답을 알 수밖에 없었다.
나를 사랑해서.
희운은 고개를 들었다. 그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는지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햇빛에 의존하던 휴게실은 무채색으로 번져 있었다. 그 공간의 한켠을 장식하는 도현은 정물화 같았다.
그날의 기억만큼은 또렷했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날. 형은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서서 다음에 또 선물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오지 않아도 된다는 엄마의 핀잔에도 형은 웃기만 했다.
이젠 알 수 없다. 형이 무엇을 주고자 했는지. 방문 앞에 놓여 있을 선물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게 희운이 짊어져야 할 죄였다.
희운은 신 앞에서 죄를 고하는 신도처럼, 남은 언어를 흘려보냈다.
“어떻게 안 좋아하겠어….”
* * *
귓가가 먹먹하다. 누군가 뇌를 꺼내서 물에 담근 것 같았다. 도현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눈을 찔러오는 강한 빛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빠앙!
뒤이어 찾아온 경적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도현은 제가 밟고 선 게 인도가 아니란 걸 한 박자 느리게 깨달았다. 도현이 숨을 길게 들이켰다. 순식간에 도로의 모든 소음이 몰아쳤다.
창문을 연 운전자가 벌게진 낯으로 삿대질을 했다.
“너, 이 새끼야. 미쳤어? 지금 누구 골로 보내려고 도로에 뛰어들어!?”
“…죄송합니다.”
“씨팔, 이거 일부러 이런 거 아니야? 어? 나이도 어린 게 벌써 발랑 까져서….”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연락해 주시면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어린놈이 무슨 명함을….”
일단 한번 보자는 심정으로 명함을 낚아챈 남자는 멈칫했다. 장난치는 거면 호되게 혼을 내겠다는 생각은 맥없이 흩어졌다.
남자는 명함에 써진 이름을 보다가 대조하듯이 도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커졌다.
“어, 어….”
“거기 적힌 번호로 전화하시면 돼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어, 아, 아니… 괜찮….”
“혹시 모르니 연락은 주세요. 그럼 먼저 가 봐도 될까요?”
“네, 네… 가보셔야죠. 예.”
넋이 나간 운전자를 뒤로한 채 도현은 등을 돌렸다. 웅성대는 목소리와 시선이 느껴졌지만, 모른 척하며 발을 재촉했다. 다행히도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무작정 걷다 보니 도착한 곳은 공원이었다. 무의식중에 익숙한 곳으로 향한 모양이었다. 도현은 공원을 정신없이 배회하다가 인적이 드문 숲길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도로의 소음이 멀어졌다. 차가운 바람이 뺨과 목덜미를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다.
인적이 드물다고는 하나, 누구나 오갈 수 있는 산책로였다. 여기서 멍하니 서 있으면 안 된다는 자각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 나와 여기까지 온 게, 정말로 그의 최선이었다.
도현은 눈꺼풀을 내리며 몸을 할퀴고 지나가는 바람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그 선득한 감각이 현실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찔러왔다.
“아….”
배 속을 휘젓던 찬 공기가 탄식이 되어 흘러나왔다. 미지근한 호흡이 형체 없이 스러진 자리를 채우는 건 뜻 모를 중얼거림이었다.
그랬구나. 좋아했구나….
흐리터분한 음성이 겨울 속에 녹아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