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458화 (459/582)

제458화. 겨우내 웅크린 (16)

[아니 이렇게 냅다 화장품 CF를 찍어버리면]

너무 감사합니다….

- 정말 감사합니다 ㅠㅠㅠㅠ

- 이상하다… 영상이 3시간째 안 끝나요

└ 어라 5시간짜리 아니었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건 진짜 나노 단위로 핥아야 함 할짝할짝 츄르릅

└ 이 잼 상했네

└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 잼잼이 상한 거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리 박력 봐]

(닥터 디 광고 움짤)

떨어진 게 화장품이 아니라 내 심장인 줄

- 사고치고 웃는 거 ㄱㅇㅇ,,

└ 우리 집 고양이랑 똑같음ㅋㅋㅋㅋㅋㅋ

- 내가 저러면 등짝 스매시 맞을 텐데ㅠ

└ ㅋㅋㅋㅋㅋㅋ나도 근데 한 번쯤 해보고 싶긴 해

[우리 애는 광고를 찍으라고 내보내면]

(창문 앞에서 카메라를 보고 웃는 도현 사진)

화보 찍고 돌아오네

- 난 영화인 줄 ㅠㅠ

└ 맞아 영상미 개쩌는 영화!

- 완전 첫사랑 재질 아니야?

└ 이거 진짜 우리가 사랑했던 그때 그 소년임ㅇㅇㅇㅇㅇㅇ

└ 도현아 기억나? 우리 같은 반이었잖아… 나 당번이라서 네가 남아서 도와줬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 비 와서 같이 겉옷 펼쳐서 뛰어갔잖아….

└ 벌써 기억 조작 당했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도현의 로션 CF는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남자 아역 배우라는 특이성과 이도현이라는 배우 자체의 화제성이 합쳐져 만들어진 현상이었다.

그 영향력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딸랑-

“환영합니다~ 올리브데이입니다.”

오늘도 벽에 붙은 세일 광고에 홀려 올리브데이에 들어온 고등학생 소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딱히 뭘 생각하고 온 건 아니었지만, 막상 들어오니까 필요한 것들이 생각났다.

‘립스틱도 다 써 가고…. 마스카라도 좀 굳었던데. 아, 로션도 거의 다 써 가나?’

살 거 많았네!

그녀는 익숙하게 매장 내 진열 상품들을 구경했다. 마스카라는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을 고르고, 립스틱은 평소 발라보고 싶었던 색을 골랐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선 곳은 기초 케어 코너였다.

그때, 그녀의 눈에 한 포스터가 들어왔다. 그녀의 눈이 조금 동그래졌다.

“뭐야… 이도현?”

설마 이도현을 올리브데이에서 볼 줄이야. 상상치 못한 만남에 호기심이 인 그녀는 포스터를 빤히 쳐다보았다.

닥터 디, 에브리데이 로션?

‘마침 로션도 사야 했는데, 이거 살까?’

소녀는 잠깐 갈등했다. 닥터 디라는 브랜드를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었다. 평소라면 신생 브랜드 제품은 안 샀을 텐데….

‘나쁘진 않아 보이네.’

닥터라는 이름이 붙어서일까. 아니면 포스터에서 광고하는 게 이도현이라서일까. 왠지 이상하게 믿음이 갔다. 결국 소녀는 일단 사고 보기로 결심했다.

“여기요!”

“네~ 잠시만요, 고객님.”

주변에서 제품을 정리하고 있던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얼굴에는 친절한 서비스 미소를 장착한 채였다.

“이거, 이 로션 하나 꺼내주실 수 있을까요?”

소녀의 손가락 끝에는 닥터 디 에브리데이 로션 샘플이 있었다. 생글생글 웃던 직원은 그 샘플을 확인하고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해당 제품은 지금 재고가 없어요.”

“네? 하나도요?”

“네, 죄송합니다.”

꼭 사려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살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막상 매진되었다니까 아쉬움이 일었다.

“어… 그럼 언제 들어오는데요?”

소녀의 질문에 직원은 그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아본 사람처럼 머뭇거림도 없이 술술 말했다.

“아직 입고 일정이 안 잡혀 있어요. 지금 닥터 디 제품이 인터넷에서도 품절 상태라서요. 아마 다른 매장 가도 비슷할 거예요.”

그 정도라고?

소녀는 떨떠름한 얼굴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직원이 가고 나서 다시금 기초 케어 라인을 둘러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차는 게 없었다. 결국 소녀는 미리 담아두었던 립스틱과 마스카라만 계산하고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쉬움을 버리지 못한 소녀는 인터넷에 아까 보았던 상품명을 검색해보았다. 공식 몰에 가니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품절 상태인 게 보였다.

소녀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인기 미쳤네….”

이도현이 인기가 많은 건 알고 있었다. 뭐 하나 할 때마다 인기 검색어며, 유튜브며, 커뮤니티며, 네이버 기사란이 그 이야기로 도배되니까. 거의 이도현의 움직임에 한국이 떠들썩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실감하는 건 역시 느낌이 다르다. 그녀는 품절 상태의 구매 페이지를 미련 어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문의 게시판으로 넘어갔다.

[상품 Q&A]

▶ 제품 재입고 예정일이 언제인가요?

- 미답변.

그렇게 문의 행렬에 새로운 문의가 추가되는 시각.

“…아, 심심해.”

침대에 퍼져 있던 대학생 A군은 멍하니 화면을 이것저것 눌러대었다. 오늘 공강인 건 좋은데, 할 일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웹소설이나 볼까.’

그는 익숙하게 카카오페이지로 들어갔다. 즐겨보던 작품을 누른 A군은 곧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 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굵은 글씨가 눈에 들어온 탓이었다.

[휴재 공지]

휴재라니!

갑작스러운 휴재 공지에 입 안이 썼다. 그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조금 더 기웃거리다가 결국 카카오페이지를 종료했다.

그래, 유튜브나 보자….

관성적으로 유튜브에 들어가니 알고리즘이 영상들을 추천해 주었다. 영상을 휙휙 넘기던 A군은 한 쇼츠에서 멈칫했다.

[딱 걸려버린 이도현 #스타 라디오 #왕의 길 #아역 특집]

언제 스타 라디오에 나갔대. 그는 가벼운 호기심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그러자 그가 익히 하는 예능인 김두진의 괄괄한 목소리와 함께 자막이 떠올랐다.

- 그럼 이도현 씨의 어떤 부분이 서운했어요? 보니까 촬영장에서 졸졸 따라다녔던 거 같은데.

- 저 오빠는 선이 엄청 뚜렷해요. 친해지고 싶은데 틈을 안 주는 느낌?

- 왠지 그럴 것 같은 분위기긴 해. 딱 봐도 까칠하고, 뭔가 우리 같은 사람은 상대 안 해줄 거같이 생겼잖아.

- 네?

이도현의 황당한 얼굴이 화면에 나오자 A군도 웃음이 나왔다. 이후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던 이도현은 반항을 시도했고, ‘비즈니스다’vs‘아니다’로 나뉘어 토론이 일었다.

이도현은 워낙 다른 세계 사람 이미지가 강해서 이런 비하인드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때, 한 진행자의 위로 고대 이스라엘 복장과 후광이 덧입혀지며 ‘솔로몬 등장’이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 비즈니스인지, 친구인지 구분하려면 이게 딱이지. 그래서 두 사람, 밖에서 만나서 논 적 있어요? 피자나 햄버거 같은 거 먹으면서?

말문이 막힌 이도현이 눈을 굴리자 사방에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 이도현도 스타 라디오에 나오면 몰이를 당하는구나. 새롭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그는 쇼츠의 댓글을 확인했다.

- 이도현 빠져나가려다 딱 걸림?

- 이거 뒤가 개웃김 진윤아가 자기가 맞았다고 좋아하다가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 지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아 애기 귀엽다 진짴ㅋㅋㅋ

- 김두진 말할 때 이도현 진짜 황당해 보이지 않냐

└ 약간 뭔 개소리야 하는 속마음이 들리는 거 같음.

└ ㅇㅈ 은근히 단호해 ㅋㅋㅋㅋㅋ

- 아역 배우들끼리 친한 줄 알았는데 별로 안 친한가 봄?

다양한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그는 댓글을 구경하다가 쇼츠 몇 개를 더 보았다. ‘시험지가 답지인 배우?’, ‘셋 중에 연애 경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니까 서로 쳐다보는 정희운-이도현’ 등등….

아역 특집이 인기 있었는지 쇼츠가 꽤 많았다. A군은 자연스럽게 다른 영상도 클릭했다. 그렇게 A군의 알고리즘 데이터에는 ‘이도현’이 차츰차츰 쌓여갔다.

* * *

닥터 디 CF 방영과 스타 라디오 방영 이후 시간이 흘렀다. 한설아는 수학 선생님의 부름을 받았다가 돌아온 도현을 보며 안됐다는 듯이 말했다.

“이번엔 어떤 선생님이야?”

“수학 선생님.”

“선생님들이 너를 너무 괴롭히는 거 같아. 물론 무슨 마음인지 이해는 가지만.”

본업 잘해, 공부 잘해, 머리 좋아, 예의 발라, 심지어 야무져서 뭘 시키면 착착 해낸다. 한설아 자신이더라도 도현을 입이 닳도록 불러댈 것 같았다.

“너무 유능해도 문제네.”

사회생활에서는 적당히 묻어가는 게 좋다는 말의 뜻을 얼핏 알 것도 같았다. 그렇게 이른 나이에 깨달음을 얻은 한설아가 책상에 엎어지며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심부름?”

“아니. 수학 경시대회 나갈 생각 있냐고 하시더라.”

의자에 앉으면서 하는 도현의 말에 한설아가 상체를 도로 세웠다. 눈에서 흥미가 반짝거렸다.

“나갈 거야?”

“안 하겠다고 했어.”

“왜?”

도현의 AMC 성적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솔직히 그녀가 보기에 수학 경시대회가 도현에게 부담이 될 것 같진 않았다.

“하면 좋잖아. 우승은 기록에도 남고.”

얜 내가 우승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도현의 주변인들은 도현을 과도하게 똑똑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그냥 몇 년 앞섰을 뿐이지 그렇게까지 특별한 편은 아니었다. 적어도 도현은 그리 생각했다.

“그냥.”

담백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다른 거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

그 간단한 대답에 한설아는 의외로 납득한 기색이었다.

“하긴. 넌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되긴 하겠네. 아직 1학년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너무 대단하게 본다니까.

도현은 복잡한 낯을 숨긴 채 작게 웃었다. 한설아는 곧 다른 이야기를 꺼내 떠들기 시작했다. 시시콜콜한 얘기가 이어졌다. 누가 복도에서 사고를 쳤느니, 누가 간식을 가지고 왔다느니, 하는 정말 사소한 이야기들이었다.

도현은 한설아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하면서도 주의는 다른 곳에 쏠려 있었다. 삼 일 후면 12월 8일이다. 모든 게 뒤바뀐 날이자, 죽음과 탄생이 뒤엉켜 상실이 된 날.

속이 기묘하게 일렁였다.

이게 슬픔인지, 그리움인지, 기대감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도현은 정말이지, 남들이 보는 것만큼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항상 제 문제에 매몰되어 덜덜 떠는 사람이었다.

삼 일 뒤에 정말 아무렇지도 않으면. 전날과 똑같은 기분으로 눈을 뜨게 되면. 그러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기쁠까.

아니면 슬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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