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5화. Winter Break (9)
홍보대사 발탁이 공식화되어서인지, 서울의 한 유명 호텔 앞은 기자들로 가득했다. 저마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한 검은 차가 호텔 앞에 멈춰 서자 혹여나 질세라 셔터를 눌러댔다.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 물러서세요!”
경찬호는 도현을 보호하며 호텔 앞까지 다른 이의 접근을 차단했다. 한국 청소년 연맹에서 배치한 직원들도 교통정리를 도와주었다.
간신히 호텔 안에 들어간 경찬호는 질린 듯 중얼거렸다.
“이렇게 기자가 많을 줄이야….”
아무리 그래도, 드라마 공식 발표회 날도 아닌데 이만큼 몰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도현도 비슷한 심정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관계자가 도현을 대기실로 안내했다. 그러면서 오늘 있을 위촉식 절차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이미 서면으로 안내받은 사항이지만, 도현은 흘려듣지 않고 집중했다. 마침내 대기실에 도착했을 때, 도현은 테이블 위에 길게 늘어진 것을 발견했다.
흰 천에는 한국 청소년 홍보대사라는 글씨와 협회의 마크가 프린트되어 있었는데, 관계자는 그것을 들고 와 도현에게 둘러 주었다. 한쪽 어깨서부터 반대쪽 허리로 이어지는 매듭이었다.
“이것도 받아요.”
협회 마크가 고급스럽게 음각된 상자였다. 도현이 열어봐도 되냐고 묻자 그가 흔쾌히 수긍했다.
상자 안에 있는 건 두 개의 배지와 협회의 대표적인 캐릭터 모형이었다. 주문 제작한 듯 제법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협회에서 주는 선물이에요.”
기념품 같은 거구나.
“감사합니다.”
“뭘요. 우리 쪽에서 더 감사하죠. 이번에 구호 물품을 기부해 주셨잖아요. 그에 관해 감사패도 드릴 예정이에요.”
위촉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협회에서 진행 중인 기부 프로젝트를 보았다. 도현은 별다른 고민 없이 매니저에게 자신도 참여하겠단 의사를 전달했다.
“도움이 된다면 기쁜 일이죠.”
도현은 정말 별생각 없이 한 일이었다. 최근 광고를 많이 찍은 탓에 돈은 충분했고, 다른 이가 들으면 재수 없다고 비난하겠지만, 애초에 도현은 돈에 미련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도현이 원했던 건 모두 돈으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 물론 이 또한 물질적으로 부족한 적 없기에 가지는 오만일지도 몰랐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결핍된 것은 갈구하고, 충만한 것은 쉽게 간과하고 마니까.
그러니 도현에게는 쉬운 일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협회 측에 익명을 부탁하지 않아서인지, 기부한 다음 날부터 인터넷에 기사가 속속들이 올라왔다.
‘소식 참 빨랐지.’
그렇게 금방 퍼질 줄도 몰랐고, 그 정도로 큰 관심을 받을 줄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연예 뉴스에서 자신의 기부 소식을 들었을 땐 먹던 코코아를 뱉을 뻔했다.
파문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현의 기부 소식을 접한 잼잼이들이 갑자기 질 수 없다며 모금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목표 금액이 도현이 기부한 금액보다 100원 더 높다는 걸 전해 듣고 나자, 멍청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왜…?’
왜 그런 걸로 나와 대결하려는 건데….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모호한 기분이 되었다. 그 모금에 부모님이 동참했다는 걸 안 후로는 더 그랬다. 좋은 게 좋은 거긴 한데, 뭔가 떨떠름했다.
단장을 마치고 대기실에서 나왔을 때였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온 도현은 이쪽으로 오고 있는 듯한 중년의 남성을 발견했다. 협회 특유의 제복을 입은 남성은 도현을 보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반갑습니다. 총재 이선호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두 사람은 짧게 악수했다. 손을 한번 쥐었다가 놓는 힘이 제법 단단했다.
“이렇게 보니 더 훤칠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홍보대사로 임명해주신 것도 감사하고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허허, 우리 협회에서도 기대가 큽니다. 이도현 군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줬으면 좋겠네요. 자,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들어갑시다. 저쪽에서 행사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는 청소년 협회의 총재란 자리에 맞게 친절하면서도, 동시에 빈틈이 없어 보였다. 도현은 그게 꾸며낸 친절함임을 금방 눈치챘지만, 그에 부정적인 감상을 갖진 않았다. 페르소나를 쓰는 건 도현도 마찬가지니까.
위촉식은 청소년 협회를 후원하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행사장 앞과 안에는 미리 초대한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도현이 나타난 순간부터 집중해서 사진을 찍었다.
행사장에 들어선 도현은 무대에 시선을 빼앗겼다. 무대 뒤편의 벽에는 커다란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는데, ‘배우 이도현 한국 청소년 협회 홍보대사 위촉식’이라는 글자가 굵게 쓰여 있었다.
도현은 안내받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주변에는 협회의 중요 인사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행사 중이라 일일이 인사하기는 어려워 간단한 묵례로 예의를 표했다.
첫 순서는 변호사이자 사회 운동가인 초대 인물의 축사였다. 그 후로도 위촉식은 안내받은 순서대로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도현의 차례는 세 번째 순서였다.
“네, 감사합니다. 위촉패는 청소년 협회 회장님께서 수여하시겠습니다.”
도현은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 위로 올라갔다. 회장은 모발이 희게 물들었고, 눈가에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지만, 연륜에서 비롯된 여유와 느긋함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위촉패. 제31회, 이도현.”
회장이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
“귀하를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고,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꿈을 가져다주는 한국 청소년 협회 홍보대사로 위촉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행사에 익숙한 협회 관계자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도현은 회장과 마주 보며 악수했다.
“이어서 기념사진 촬영이 있겠습니다.”
이쯤에서 도현은 살짝 곤란해졌다. 몸통 크기보다 큰 종이판을 들고 나니, 위촉패를 들 손이 없었다. 그러나 도현과 같이 종이판을 받친 회장은 위촉패를 받아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결국 도현은 한 손으로는 종이판을 받치고, 한 손으로는 위촉패를 들었다. 조금만 흔들려도 위촉패가 떨어질 것 같았지만, 그런 불안함은 능숙하게 숨겼다.
여기서 떨어트리면 대참사다.
그런 생각이 도현의 균형 감각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그 와중에 오른쪽을 봐 달라는 기자가 있어서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럼 ‘한국 청소년 협회 파이팅’이라고 한번 외치겠습니다.”
분명 위촉받는 날인데, 어째서 이토록 시련처럼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도현은 진동에 의해 위촉패가 손바닥에서 굴러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파이팅’을 외치는 데 간신히 성공했다.
“하아.”
한 직원이 종이판을 가져가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도현이,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도현의 고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감사패와 축하의 꽃다발을 수여하겠습니다. 수여 후에는 직원분들과 다 같이 기념사진 촬영이 있을 예정입니다.”
왜인지, 쉽지 않은 날이었다.
* * *
[위촉식 영상 떴다!!]
(스크린샷 첨부)
정장 입은 도현이 ㄱㅇㅇ,,,
- 귀여운데 멋있음
⌞ ㅇㅈ
- 우리 애 잘난 거 알려지니까 좋다… 더더 알려지면 좋겠음!!!
[미국인이 무슨 홍보대사냐고 ㅂㄷㅂㄷ하던 것들]
기부 기사 뜨고 입 싹 닫은 거ㅋㅋㅋ 존나 통쾌함
-ㄹㅇ 아직 중학생한테 열폭 오짐
⌞ ‘그’ 커뮤니티 애들이 특히…
⌞ 우리 도현이 머리채가 공공재인 줄 아나;
⌞ 근데 소송한 지 얼마 안 됐잖아 뇌가 있으면 적당히 사릴 때 아님?
⌞ 뇌가 있으면 그런 글을 썼겠어?
⌞ 아
⌞ ㅋㅋㅋㅋㅋㅋㅋ짧고 굵은 깨달음ㅋㅋㅋㅋㅋㅋ
- 역시 내 배우ㅎ 자본으로 보여주네
⌞ (무릎 털썩)
⌞ 그저 빛
⌞ 안 돼 ㅠㅠ 질 수 없어
⌞ 나도 모금하러 가야지~
[기사에 나온 호텔 내가 머무는 호텔임 ㄱㅇㄷ]
발치에서나마 봐서 좋았다 도현아… ㅎ 물론 털끝밖에 못 봤지만….
- 본 게 어디야 ㅠㅠㅠㅠ
- 와 성덕 ㄷㄷㄷ
- 왜 털끝밖에 못 봤어?? 경비 삼엄해??
⌞ 아니 그건 아닌데 그냥 분위기 자체가 혼란스럽기도 하고 우리 도리토스 놀라면 안 되니까?
⌞ 와… 쓰니 착하다
⌞ 나 잼잼이들 이런 분위기 너무 좋음 ㅠㅠ 피해 안 끼치려는 거
[도현아 제발 정장 자주 입어줘]
(기사 사진)
포브스 선정 정장이 제일 잘 어울리는 중학생 1위
- 옷태 실화냐
- 지금 머릿속에서 재벌 3세물 뚝딱 그려졌음
⌞ 뭐야 왜 쨈이만 아냐 공유 좀
- 갓도현… 그저 지상에 내려온 God 그 잡채
- 도리토스 정장+덮머 실화냐 지구 뒤집히는 중 ㅠㅠㅠㅠ
- 도현이 미모 사방팔방 드러낼 때마다 잼잼이인 게 너무 자랑스러움 이 천사가 내 배우라고요~~!!!
[말랑토끼도리 vs 바삭스파이시토스]
(흰 스웨터 차림의 도현)
(웃고 있는 도현)
.
(정장 입고 레드카펫 걷는 도현)
(무표정하게 핸드폰 보는 도현)
~~~~~~~~
잼잼이들 한 번씩 투표해주고 가!
- 오 생각보다 후자가 많네
⌞ 그러겡
⌞ 우리 도현이는 겉바속촉이 매력임ㅇㅇ
⌞ 도리토스는 겉바속바 아니야?
⌞ 착한 잼잼이는 쉿^^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왜 둘 다는 없어? ㅠㅠㅠ
⌞ 진짜 못 고르겠다;;
- 난 전자!! 우리 말랭토끼 못 잃어
⌞ 흰찹쌀떡 못잃어22222
[영상 이겈ㅋㅋㅋㅋ 도현이 왜 빼빼로 됨?]
(움짤)
갑자기 뻣뻣해짐ㅋㅋㅋ 긴장한 건가??
- 도현이가 긴장을?
⌞ 사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진 않았음
- 저거 떨어트릴까 봐 그러는 거 아니야?
⌞ 오 진짜인 듯
⌞ 맞는 것 같아 보면 눈동자가 미묘하게 손바닥 위로 향해 있음!!!
⌞ 그럼 떨어트릴까 봐 저러는 거야? ㅠㅠㅠㅠ완전 귀엽다 와라랄랄라랄호로록 해버리고 싶음
⌞ 히익 식인종
[“청소년들의 꿈과 미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어이없지 않아?; 그냥 네가 꿈이고 미랜데 무슨;;
- ㅇㅇㅇㅇ마즘
- 존재 자체로 빛과 소금이자 꿈과 미래… 그게 바로 갓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