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515화 (516/582)

제515화. Debut as a ?? (4)

촬영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마무리되었다.

“안녕, 시에나. 즐거웠어!”

왕왕!

오늘 치 촬영이 끝나기도 했고, 엠마도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시에나와 작별했다. 떼를 쓸 것 같았던 시에나는 의외로 의젓하게 엠마를 따라갔다.

가다가 도현이 있는 곳을 슬쩍슬쩍 돌아보는 것으로 보아 미련이 없는 건 아니고, 그저 엠마가 많이 봐주었다는 걸 본능적인 감으로 느낀 것 같았다.

도현은 멀어지는 시에나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언젠가 또 만날 수 있었으면 했다.

돌아가는 길.

클라인이 아쉬운 투로 말했다.

“오늘 촬영 끝내면 좋을 텐데.”

“어쩔 수 없지. 학원 일정이 안 되는 거니까.”

캐서린의 대답대로였다.

원래 두 번째 벌스, 그러니까 도현이 주인공인 장면은 시내에 있는 길거리에서 촬영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것에 반대하고 나선 사람은 도현이었다.

- 거기가 촬영해도 되는 장소인지 아닌지 모르잖아.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이 원치 않게 찍힐 수도 있고.

오늘 촬영한 장소는 말 그대로 주택가라서, 주변 몇몇 집에 양해를 구해놓았다. 시간대도 부러 한적한 시간대를 골라 행인이 의도적으로 카메라 앞을 지나가지만 않는다면 의도와 상관없이 찍힐 일은 없었다.

하지만 시내는 달랐다.

이곳보다 훨씬 유동 인구가 많은 시내는 통행에 방해될 수 있으며 초상권을 침해하게 될 수도 있었다. 도현은 그 상황을 우려스러워했다.

그에 진이 해결책을 내었다.

- 그럼 우리 학원에서 찍자!

그대로 진은 학원 원장님께 연락해서 빈 교실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일사천리였다.

여기까지가 학원을 대관하기까지의 이야기였다.

대관이라 말했지만, 돈을 내고 빌리는 게 아니라 원장님이 흔쾌히 빌려주시는 거라서, 밴드부는 전적으로 학원 일정에 맞춰야 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해산인가?”

“아마도….”

그때, 아이들의 눈에 한 피자 가게가 보였다.

꼬르륵.

누구의 배에서 난 소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모든 아이가 한참 성장기이며, 눈앞에 온갖 토핑이 화려하게 그려진 간판이 있다는 게 중요할 뿐.

“먹고 갈 사람?”

아이들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도현의 하얀 손도 함께였다.

다비드는 씻고 싶다는 이유로 먼저 가 버렸다. 캐서린도 땀을 너무 흘려 불쾌하다면서 손을 한번 흔들곤 사라졌다.

남은 아이들은 피자를 배부르게 먹고 헤어졌다.

진과 도현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수고했어. 푹 쉬어.”

“응, 너도.”

두 사람은 계단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진은 침대에 늘어지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계단을 올랐고, 도현은 일 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끝나는 듯싶었다.

‘……?’

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 층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러니까 꼭 나가는 거 같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은 착실하게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그리고 바이올린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는 도현과 딱 마주쳤다.

“…너 가려고?”

“진? 언제…. 아, 응.”

“지금?”

“응.”

“안 피곤해?”

그들은 아침부터 모였다.

아침부터 온갖 난리를 치며 촬영하고, 나가서도 촬영하고 돌아온 참이었다. 게다가 도현은 내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기도 했다.

“이 정도는 괜찮아.”

진은 도현의 ‘괜찮아’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도현의 괜찮음은 다른 사람과 기준이 달라도 한참 다르니까.

그리고 도현이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끼리끼리는 과학인 건지, 진 그녀도, 니콜라스도 모두 마찬가지였으니.

한숨을 삼킨 진이 말했다.

“갈 거면 같이 가.”

“너도? 그 도와달라고 했던 말 때문이면 이제 안 도와줘도 괜찮아. 저번에 충분히 도움 받았….”

“같이 안 가면 안 보내줄 거야.”

“…….”

“한번 해볼래?”

“…아니.”

도현은 쓸데없는 데 힘 빼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질 걸, 뭐 하러….

진이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다며 이 층에 올라간 사이, 그냥 지금 빠르게 도망치면 어떨까 하는 유혹이 도현을 흔들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다고 포기할 진이 아니었다.

대신 도현은 계획을 수정했다.

애매한 시간에 먹은 피자 때문에 저녁 식사는 못 하게 생겼으니, 평소보다 늦게, 열 한시 즈음에 돌아가자는 걸 열 시로 앞당긴 것이다.

‘이걸 노린 건가.’

그렇다면 상당히 똑똑했다….

도현의 생각은 멈추지 않고 이어져 다음 날까지 닿았다.

다음 촬영이 예정된 건 내일.

도현이 얕은 숨을 내쉬었다.

‘이제 내 차례네.’

다른 아이들이 보기에 도현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터다. 하지만 도현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능수능란하진 않았다.

뮤직비디오라는 형식의 촬영도 처음이고…. 그리고, 따지고 보면 도현은 온실 속 화초였다.

늘 수많은 스태프와 조명, 고품질의 카메라와 함께 촬영했다. 심지어 예술 영화를 찍었던 때도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촬영 환경만큼은 좋았다.

로미오와 줄리엣 연극을 할 땐 촬영 장비가 조금 빈약하긴 했지만, 애초에 공간이 한정된 무대인데다가 조명도 무대 자체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한 걸 다 제치고서, 애초에 연극은 그 순간의 예술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기록하기 위한 예술이 아니라. 목적 자체가 달랐다.

그러니까 이렇게 날 것 그대로의 촬영은 처음이었다.

기본적으로 음악도, 연기도 섬세한 예술이었다. 공기가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빛이 어느 방향에서 내리는지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져 버리니까.

그래서 걱정되느냐 하면….

붉은 입술이 유려하게 휘었다.

<구미호뎐>의 팬이 이곳에 있다면 여기 여우야가 있다고 오열했을 법한 표정이었다.

‘재밌겠네.’

새로운 도전은 늘 환영이었다.

“다 챙겼어. 가자!”

…일단은, 진의 눈치를 보며 음반 준비부터 해야겠지만 말이다.

* * *

촬영 시작 후, 둘째 날.

아이들은 어김없이 진의 아지트에서 모였다.

“촬영한다고 푹 잤나 보다? 안색이 좋네?”

클라인의 말에 도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 푹 자긴 했지….

- 진, 졸리면 먼저 가는 게….

- 괜찮아. 어떻게 너만 두고 먼저 가! 하암, 그런데 약간 피곤하기도 하고….

- 그럼 먼저….

- 에이, 아냐. 어떻게 널 두고 가.

그 상황에서 연습을 속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도현은 박수를 보낼 의사가 있었다. 결국 도현은 열 시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진의 집으로 돌아왔고, 이렇게 된 김에 악보 분석이나 하자며 침대에 누워 펜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잠들었다.

…이건 뭐, 진을 원망하거나 탓할 입장도 아니었다.

도현은 한숨을 푹 내쉬며 팔 이곳저곳을 주물렀다.

‘컨디션이 좋긴 하네.’

어제는 솔직히 카메라를 들고 다녔던 팔이 욱신거려서 연주가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다시 연주하라고 하면 어제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현이 캐서린과 수다를 떠는 진을 보았다.

‘내가 무리한 걸 알고 있었던 건가.’

속이 좀 간질거렸다.

아이들은 다 같이 진의 음악학원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규모에 한 차례 놀라고 말았다.

“학원이라며?”

“학원 맞잖아?”

“이건….”

그들은 눈앞에 드리워진 위풍당당한 거대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통창으로 된 벽이 햇볕을 반사하며 반짝거렸다.

아니, 우리가 생각한 건 소박한 동네 학원이었는데….

“종합 학원이라서 그래.”

“…그래 보인다.”

클라인의 떫은 기색에 어깨를 한번 으쓱한 진은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곧장 원장실로 향했다.

원장 선생님은 진을 반겨주었다.

“촬영한다는 게 뒤에 있는 친구들이니? 오, 다비드도 있구나.”

“네! 얘들이에요. 제 밴드부 멤버기도 하고요.”

아이들은 또다시 의문에 빠졌다.

이렇게 커다란 학원의 원장님과 진은 어떻게 이렇게 친밀하게 지내는 걸까? 거의 오랜만에 본 조카 대하듯이 예뻐하고 있었다.

브라운의 의문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너 여기 다녀?”

“엉.”

“근데 왜 처음 오는 것처럼 굴었어?”

“내가 언제?”

다비드가 도리어 이상하다는 눈으로 브라운을 쳐다보았다.

브라운은 조금 억울해졌다.

잠시 후.

그들은 비어 있는 교실을 안내받았다.

이론 수업을 할 때 쓰는 교실인지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는 게 꼭 학교 교실 같았다.

“와, 넓다!”

조니가 감탄했다.

실제로 교실 크기는 그냥 평범한 학원 교실 크기였다. 그러나 기대를 내려놓았던 조니였기에 무척 크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저마다 한쪽에 짐을 풀었다. 진과 브라운은 교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장 완벽한 자리에 대해 토론했다.

도현도 한 손에 들었던 카메라를 책상 위에 내려놓을 때였다.

“……?”

창문 밖.

복도에 옹기종기 모여 이쪽을 바라보는 여러 쌍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도현이 가만히 멈춰 있자 다비드가 어깨를 툭 쳤다.

“뭐야, 왜?”

“아니. 밖에….”

도현은 말끝을 흐렸다.

아닌가.

별생각 없이 쳐다본 건데 내가 괜히 신경 쓴 건가?

“밖? 밖에 뭐가…, 오.”

다비드가 탄식했다.

그는 성큼성큼 문쪽으로 걸어가더니 곧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마찰음과 함께 아이들이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다비드가 어이없단 투로 말했다.

“너희 여기서 뭐 하냐?”

“어, 다비드. 안녕?”

아이 중 한 명이 어색하게 인사해왔다.

“그래서 왜 거기서 구경 중인데?”

“아니, 그게 원장 선생님이….”

원장 선생님?

아까 보았던 인상 좋은 중년의 여성을 떠올린 도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에 제이 로빈이 왔다고….”

“…아.”

그거였나.

도현은 이제야 이 관심의 이유를 깨달았다. 도현이 있던 델마 아카데미가 유독 유난이긴 했지만, 사실 영화 자체가 굉장한 흥행작이었다. 그것도 해마다 돌아오는 클래식이 되어가는.

그 영화의 배우가 나타났단 소식에 이렇게 구경하러 올 정도의 화젯거리는 되는 것이다.

특히나 이런 음악학원에서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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