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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부터 월드스타-517화 (518/582)

제517화. Debut as a ?? (6)

사늘한 눈매, 귀티가 흐르는 두 뺨, 무표정하게 다물린 입술. 반듯이 선 소년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해 보였다.

그 완벽함이 이질감을 부추겼다.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잠깐의 상황 파악.

그리고.

“흐핫, 흐하하학!”

다비드가 제일 먼저 쓰러졌다.

그는 복도 바닥에 거의 드러누운 채 온몸을 떨어댔다. 그 옆에 있던 브라운이나 클라인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으니.

덜덜덜덜덜.

도현은 진동 세기를 10으로 설정해둔 거 같은 조니를 보고 깊이 침묵했다.

“…그냥 웃어.”

“…푸흑! 아니, 이게… 큽, 큼! 흠!”

거칠게 헛기침한 조니가 급히 수습했다.

“그으, 제가 웃으려던 게 아니라…, 아니, 아닌데…, 흐흑.”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

왜 쟤가 제일 얄밉지.

도현은 표정을 관리했다.

창피할 일이 아니다. 그는 배우고, 이건 연기였다. 연기에 적절히 들어간 애드리브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

“흐하하학, 진짜 미치겠네!”

없을….

굼벵이처럼 바닥을 기어 온 다비드가 도현의 바짓가랑이를 잡았다.

“한, 한 번만. 한 번만 더 해줘!”

“……후.”

도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가린 손바닥 옆, 살짝 드러난 귀는 토마토처럼 붉어져 있었다. 그걸 알아챈 아이들이 또다시 한바탕 건수를 잡은 듯 신나게 놀려댔다.

아이들이 진정된 건 잠시 후였다.

“거기서 그럴 줄 누가 알았겠어?”

“조용히 해.”

“뭐야, 삐졌어?”

브라운이 능글맞게 도현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물었다. 도현은 아니란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브라운이 걸친 팔을 치워내는 행동엔 앙금이 남아 있었다.

브라운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야, 너무 그러지 마. 내가 조금…. 큼, 조금 많이 웃긴 했는데, 너 좀 멋졌어.”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인가? 실컷 웃고 나서?

“진짜라니까!”

“그렇다고 쳐.”

덤덤한 목소리는 어딘가 까칠함이 묻어 있었다. 브라운이 눈가를 찡그렸다.

“아니,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웃긴 했지만 이건 진심이었다.

브라운이 다시금 진짜라고 말하려던 때.

“이렇게 춤춰본 게 얼마 만이었는지….”

유쾌한 웃음을 터트린 메릴다가 도현에게 다가왔다. 도현을 내려다보는 시선은 한층 더 다정해져 있었다.

“정말, 소싯적 내 남편을 보는 기분이었단다. 그이도 춤을 정말 잘 췄거든.”

“…네?”

“나이가 드니 움직이기 귀찮다고만 하고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춤춘 게 굉장히 오랜만이구나. 즐거운 기분이야.”

도현은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함부로 손을 잡고 춤을 추었으니 불쾌해할 수 있겠단 생각은 했어도, 이렇게 감사 인사를 받을 줄은….

“제가 갑자기 그래서 싫진 않으셨어요?”

“놀라긴 했지. 하지만 아주 재밌었어. 춤도 멋졌고 말이야. 발레를 배운 거니? 꽤 오랫동안 배운 것처럼 보여서.”

“아, 네. 맞아요.”

내가 발레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더라.

마누엘한테 배운 게 처음이었고 그때 발레 공연을 보러 간 걸 계기로 에 캐스팅되었으니까…. 그녀의 말대로 꽤 오래된 일이었다.

“전공할 정도로는 아니고 취미 삼아 배우고 있어요.”

“그렇다기엔 실력이 무척 대단하던데.”

메릴다의 말에 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학원 아이들이 공감했다.

그들은 처음엔 얼이 나갔다가, 밴드부 멤버들이 폭소할 때 현실감이 돌아왔고, 지금은 완전히 정신을 차린 후였다.

“그런 정도는….”

“얘는. 내가 음악 학원 원장이지만, 무용하는 애들도 얼마나 많이 보는 줄 아니?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에, 문을 노크했던 소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머리에 나사가 몇 개 빠진 거 같긴 했어도….

‘날아다니는 거 같았지?’

가만히 서 있을 때도 낭창하게 보였던 몸이 마치 깃털처럼 움직였다. 휙휙 턴을 돌 때면 바람 소리가 날 것 같았고, 공중에 뛰어올라 두 바퀴를 돌았을 땐 절로 입이 떡 벌어졌다.

마지막 마무리 자세도 그랬다. 만약 그것을 발레 공연 무대에서 봤더라면 왕자님 같다고 탄성을 내뱉었을 터였다.

우아하게 다리를 치켜들고 퇴장할 땐 어이없다 못해 황망했지만, 그래도 그 턱과 상체, 다리와 무릎, 그리고 발끝의 각도가 무척 유려했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소녀의 눈에 메릴다와 대화하는 소년이 비쳤다.

아까는 그냥 미친 애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그렇게까지 미친 건 아닌 거 같았다.

아니, 미치긴 했는데 이제 좀 멋있게 미친….

…그럼 그냥 미친 거 아닌가?

소녀가 혼란에 젖어 든 사이.

브라운이 도현의 어깨를 툭 쳤다.

“내 말 진짜지?”

거들먹거리는 모습에 도현은 기가 찼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어이없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 도현조차 모르게 응어리졌던 작은 알갱이들이 싸아아,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도현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리고.

“넌 진짜 최고야.”

한쪽에서 끅끅대던 진이 엄지를 치켜올렸다.

대체 얼마나 웃은 건지, 두 눈과 코끝이 불그스름하게 물든 채였다.

그 상태로 도현에게 칭찬을 쏟아붓던 진은 아무런 예고도, 개연성도 없이 다시금 쓰러졌다.

도현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체념의 미소였다.

* * *

촬영은 시끌벅적하게 끝이 났다.

“오늘 즐거웠어!”

“영화 찍으면 꼭 볼게!”

그 짧은 사이에 친밀해진 학원 아이들이 손을 흔들었다. 도현은 그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준 후, 건물을 나섰다.

뒤통수로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게 느껴졌다. 도현은 헛웃음을 뱉었다. 도현은 자신이 그리 다가가기 쉬운 타입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한국의 발레 학원에서도 그랬고 말이다.

그런데 저 아이들은 도현을 무척 친밀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마도 그 춤 때문에….

“나머지 촬영은 언제 찍지?”

“지금 찍는 게 낫지 않겠어?”

“역시 그렇지?”

밴드부는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도현은 그 옆에서 얌전히 걸으며 아이들이 결론 내리길 기다렸다.

“그럼 찍으러 가자!”

나온 결과는 도현의 예상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정신력이 많이 소모됐나. 좀 피곤하긴 한데….’

“도리야! 빨리 와!”

저 멀리 먼저 간 진이 크게 손짓했다. 그녀의 옆에 불규칙하게 선 아이들의 머리 위로 노을이 불그스름하게 내려앉았다.

문득, 어쩌면 마지막이란 게 떠올랐다.

녹음도, 라이브 영상도, 뮤비 촬영도 모두 마쳤다.

이 아이들과 이렇게 하루 내내 어울리고, 같이 웃고, 장난치는 날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만약 모일 일이 생기더라도, 이처럼 오랜 시간을 내지는 못할 거다.

도현은 도현의 할 일이 있으니까.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도현을 덮쳤다.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 만들어진 곡에 내가 끼어들다니.

객원 연주자라는 자리도 적극적으로 거부하려 들었다.

그때의 나는 알고 있었을까?

“알았어. 갈게.”

이렇게 아쉬워지리란 걸.

도현은 덤덤히 발을 뗐다.

그리고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이별은 언제나 그를 버겁게 만들지만, 그래도 도현은 이별에 지지 않는 법을 알았다.

“다 찍으면 피자 먹으러 갈까?”

“오, 난 찬성!”

“나도, 나도!”

이 순간에 충실하는 거였다.

* * *

이번에는 바지가 멀쩡한 다비드와 땀을 흘리지 않은 캐서린도 피자 파티에 합류했다.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어대며 저마다 피자를 왑냠, 찹찹 먹어 치웠다.

“그럼 다음 모임은 언제지?”

“일단 브라운이랑 나는 계속 만나야 해. 뮤직비디오를 수정해야 하니까.”

클라인이 던진 질문에 앞니로 치즈를 끊은 진이 말했다. 브라운이 나는 당연히 하는 거냐고 반항했지만 묵살되었다.

“이번 주는 뮤비 때문에 조금 바쁠 거 같고… 다음 주 어때?”

“그럼 다음 주에 다 모이는 거지?”

진에게 묻는 척하고 있지만, 질문의 화살은 도현을 향해 있다. 눈치챈 몇몇 아이들도 그를 쳐다보았다.

도현은 냅킨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 구겨진 냅킨을 조용히 내려놓은 후, 특유의 차분한 투로 말했다.

“난 아니야.”

조금 더 정확히 말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은 못 써. 애초에 내가 하기로 한 일은 여기까지였으니까.”

“…뭐?”

브라운이 당혹한 낯으로 되물었다.

아, 그는 모르지.

도현에게 끌려온 브라운은 도현이 이 밴드부의 일원인 줄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갑자기 이런 선언을 하면 당황할 법했다.

도현은 그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냈다.

“원래 정식 멤버가 아니었어. 객원 연주자로 이번 곡에만 참여하는 거였거든.”

“그럼 나는?”

“브라운, 너도 그만하고 싶다면 그래도 되지만….”

도현이 웃었다.

“이제 너도 정식 멤버 아니야?”

“악기 하나 못 다루는데 무슨….”

“그래도 관리자는 필요하니까.”

브라운이 유능하니 골수까지 빼 먹으려고 이러는 건 아니었다. 도현은 브라운이 ‘Freaky Child’와 어울리면서 즐거워하는 걸 여러 차례 목격했다.

인상을 찡그린 브라운이 항변했다.

“뭐가 좀 앞뒤가 안 맞지 않아? 나보고는 정식 멤버라면서 너는 아닌 건 이상하지 않아?”

“브라운, 나는 돌아가.”

브라운은 아차 한 표정이 되었다.

도현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여기 있을 테지만, 나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 멀지 않았어. 다음 달이 되는 날 떠날 거니까. 그래서 안 되는 거야.”

“…….”

브라운은 더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자길 여기에 던져놓고 혼자 도망간다고 화내지 않아서.

‘솔직히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정이 더 많이 들었나 보지.

제가 주선한 만남이 좋은 인연으로 발전하는 건 꽤 뿌듯한 경험이었다. 도현은 미련을 조금 더 털어낼 수 있었다.

“아무튼, 그동안 즐거웠어.”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도현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처음부터 예고된 일이었으니까.

그때, 포크로 접시를 툭툭, 두드리던 다비드가 말했다.

“뭐, 원래부터 그렇게 얘기된 거니까 별로 상관은 없는데.”

그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정식 멤버 아니라는 건 다른 애들 의견부터 들어봐야 할걸.”

도현은 그제야 아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볼에 불만이 가득 차 있는 조니,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는 캐서린, 눈을 부릅뜬 클라인, 그리고 팔짱을 낀 진.

탁, 탁탁. 누군가 불만스레 다리를 떠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왔다.

…나, 말 잘못했나?

도현은 위기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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