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3화. 가족의 의미 (3)
예상했다.
감이라는 게 있으니 대충 이런 얘기가 나오리라곤 짐작했다. 예상과 다를 바 없었고, 그러니 당황하지 않는 게 맞다.
“…동생, 이요?”
냉철한 이성과 달리 말이 버벅거렸다. 몸과 뇌가 따로 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응. 동생.”
도현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제 무릎 위에서 꼼질거리는 손가락이 보였다.
동생. 동생. 동생.
막연히 짐작만 했던 게 확신으로 변한다. 도현은 제게 다가온 현실을 제대로 인지했다. 공항에서 처음으로 작은 빛 덩이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몽롱함이 깨어져 나간다.
앞에 있는 건 현실이었다.
“제게 동생이 생겼나요?”
“어?”
두 사람의 얼굴에 당혹이 떠올랐다. 곧장 알아챌 줄은 몰랐나? 사실 말을 꺼내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굳이 말하진 않았다.
“제게 동생이 생겼어요?”
도현은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시선은 여전히 무릎에 고정된 채였다.
세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맞아.”
그 긍정에도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얼마나 됐어요?”
“석 달 정도….”
석 달.
생각보다 길기도 하고, 짧기도 하다. 잘 조형된 입매가 단단히 일자로 다물렸다.
“도현아, 그게….”
“…축하드려요.”
무슨 기분인지 알 수 없다는 건 위험한 일이다. 무슨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뜻이니까.
마구잡이로 날뛰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대신 해야 하는 말을 했다. 나름 잘 대처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째 부모님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왜요?”
“아니….”
이장혁이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가 말을 흐렸다.
왜 타인의 일처럼 말하는 거야.
도현은 마치 이미 모든 걸 알던 사람처럼 차분했고, 냉철했다. 그런 평이함이 그에게 불안감을 심어주었다.
상관없는 건가? 동생이 생기든, 새로운 가족이 생기든. 아무것도?
미간을 좁힌 이장혁이 찻잔을 내려다보는 도현을 응시했다. 차분한 얼굴은 여느 때처럼 잔잔하다.
도현은 아주 어릴 적부터 남달랐던 아이였다. 쉽사리 우는 법이 없었고 눈치가 비상해서 거부 의사도 곧잘 알아들었다.
그런데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못난 부모에게 먼저 다가와 손을 뻗었다. 그들의 의도적인 외면을 그 똑똑한 아이가 모르지 않을 텐데도 몇 번이고.
그의 기억 속 어린 도현은 늘 제게 손을 뻗고 있었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그것이 당연해져 버린 게.
그들의 행위가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란 걸 알면서도 원망 없이 그들을 받아들인 도현을 보고 내심 안도했다.
그래, 저 애는 원래 착하니까. 이해심이 뛰어난 애니까. 그렇게 부모를 사랑했던 애니까….
‘멍청한 놈.’
선득한 통증이 속을 후벼 팠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게 착해서일 리가, 이해심이 뛰어나서일 리가,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던 어린아이여서일 리가 없는데.
언젠가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줄 거라고, 멍청하게 웃던 얼굴이 생각날 때면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내려치고 싶었다. 아니, 그래도 속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후회는 습관처럼 떠올랐다.
그때 한 번만 그 손을 잡아 줄걸. 그렇게 뒤돌지 말걸. 한 번이라도 아이를 보러 갈걸. 괜찮다는 말에 안주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말걸.
…어떻게 해야.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지?
엉켜가는 생각 속에서 이장혁은 다시금 버릇처럼 뒷걸음질쳤다. 더 나아갔다가 손쓸 도리도 없을 만큼 망쳐버릴까 봐. 흡, 숨을 들이켠 그가 어느새 이 상황을 무마할 방안을 떠올릴 때였다.
“네 동생이야.”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속이 단단하게 꽉 차서 조금의 외면이나 도망도 허용하지 않는 목소리.
그녀는 분명 도현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이장혁은 제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네 동생이고, 가족이야.”
그러니 도망치지 말라고. 뒤에서 단단히 받쳐 선 아내가 그를 앞으로 떠밀었다. 이장혁은 자연스레 과거의 어느 날을 상기했다.
도현이 진의 집에 가 있는 한 달.
티를 내진 않았지만, 두 사람에게 그 한 달은 벌과 같았다. 그들은 도현에게 전화가 올 시간이면 늘 불안하게 핸드폰을 응시했다.
성실한 아이가 약속을 어길 리 없을 텐데도, 그들은 도현이 언제고 그들을 잊어버리고, 혹은 성가시게 느끼고 완전히 선 밖으로 밀어낼 것 같았다.
그러다 깨닫는 것이다.
그 아이가 그동안 정말 많이 참아주었구나.
초등학교 졸업 기점으로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변하긴 했으나, 도현은 도현이었다. 늘 시야 안에 있었고, 가끔 불안함이 새어나갈 때면 기민하게 알아채어 곁에 와 있었다. 나는 여기 있으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지.
자괴감이 치솟아 머리를 싸맸다.
그가 자책하고 있자, 옆에 다가온 아내가 팔목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얼음 같던 침묵을 깨곤 느닷없이 말했다.
- 생각해봤어. 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그 말에 그는 조금 더 괴로워졌다. 그럴 린 없지만, 그녀가 저를 원망하는 것처럼 들려서.
그러나 그 생각은 곧 깨어졌다.
- 우리 솔직해지자.
- 솔직해지자고?
갑작스러운 말에 멀거니 쳐다보니 그녀가 담담히 말했다. 여보. 그 애는 거기서 정말 잘 지낸대. 우리 없이도 잘 지내고, 힘들어하던 바이올린도 잘 켜고 있대. 침착한 말이 살갗을 쿡쿡 찔렀다.
- 우리가 그 애를 너무 약하게 봤던 거야.
- 하지만….
그렇다면 그 애가 무얼 하든 허락해주고 관망만 해야 하는 건가? 그게 정말 부모와 자식 사이가 맞는 걸까? 잇따라 떠오른 의문에 혼란스러워하다가, 문득 방금 그녀가 한 말이 생각났다.
솔직해지자고 했지.
때맞춰, 서혜나가 입을 열었다.
- 여보. 도현은 굉장히 똑똑한 아이야. 강하기도 하고.
그도 모르지 않는 이야기였다.
왜 그 당연한 사실을 지금 언급하는가?
- 그러니까 우리가 판단하고 나서 결정한 결론을 아이에게 쥐여 주지 말고 그 아이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하자.
그 애는 너무 똑똑해서, 행간이 비면 그 사이를 생각과 논리로 채워 넣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논리적인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그녀가 가벼운 농담처럼 장난스레 말을 끝맺었다.
하지만 이장혁은 그녀를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귀했다. 잃었을 수도 있었던 소중한 아이가 너무 애틋하고 또 귀해서. 마음에 작은 생채기라도 남을까 한마디를 걸 때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랬는데….
“저도 그건 알아요.”
황당한 목소리에 현실로 끄집어 올려진다. 도현은 눈썹 끝이 살짝 내려가 어리둥절해 보였다.
서혜나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아니. 지금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잖아.”
“…….”
도현은 차마 부정할 수 없었다.
방금 그렇게 생각했던 게 맞았으므로.
“우리 가족이야, 도현아.”
단언하는 투에 도현의 시선이 저절로 그녀의 배로 향했다. 그녀의 왼손이 배 위에 얹어져 있었고, 그 아래로 벚꽃잎처럼 살랑이는 영혼이 보였다.
저 조그만 게 내 동생이라고…?
도현은 그간 수많은 영혼을 봐 왔다.
오로라처럼 아름다운 영혼도, 도현만큼은 아니어도 거대한 흐름을 가진 영혼도, 그리고 바람 앞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영혼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처럼 작고 한없이 약해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보다 보면 저대로 흩어져 버릴까 봐 조마조마하기까지 했다. 섬세한 눈매가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아닌 거 같은데, 내 동생….
저런 작디작고 작은 존재가 내 동생일 리가 없다. 이성적인 생각과 멀리 떨어진 논리가 머리를 지배했다.
“도현아.”
“네?”
“엄마 좀 봐줘.”
배에 고정되었던 시선이 가까스로 위로 끌어 올려졌다. 벚꽃색 잔상이 눈앞에 채 가시기도 전에 폭탄 같은 말이 떨어졌다.
“늦게 말해서 미안해.”
“…….”
“원래 네가 미국에 가기 전에 말하려고 했는데, 그사이 일들이 좀 있었고.”
거기에 대해선 도현도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막상 미국에 도착해보니 꼭 지금이어야 하나 싶더라고.”
“왜요?”
“너무 즐거워 보여서.”
즐거워 보여서 말하지 않았다고?
순간적으로 어이없음이 치고 올라왔다. 그건 하얀 낯에 고스란히 떠올랐지만, 서혜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냥 즐겁게 지내다 돌아오면 좋을 것 같았어.”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이 소식을 알면 내가 더는 즐거워하지 않을 것 같았냐고.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그리 말할 수 없는 건, 그게 사실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때 알았다면… 음반에 집중하지 못했겠지.’
어쩌면 프리키 차일드를 거절했을 수 있었을 거다. 복잡한 와중에 밴드부와 음반을 동시에 진행하는 건 솔직히 무모하니까.
도현은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근데 그건 그거고.
“그럼 그전에는요?”
분명, 미국에 가기 전에도 말할 기회는 있었다.
“그전에는 왜 말하지 않았어요?”
“…그건.”
묻고 나선 아차 했다.
‘알면 뭐 어떻게 할 건데?’
알아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 그들이 먼저 사실을 밝힌 지금에 와서야, 큰 의미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왜 물은 걸까.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워 인상을 찌푸릴 때였다.
“미안해.”
난데없는 사과에 도현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당혹스러운 검은 눈에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조금은 기가 죽은, 그러나 소심하지는 않은, 어딘가 비장한 낯빛의.
“그건 아빠 잘못이야.”
도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두 분 다 뭘 잘못 드셨나?
아니, 아침이랑 점심은 나도 같이 먹었는데…. 줄줄이 나오는 사과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아니면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 욕구를 반영하듯 손끝이 움찔거렸다.
그사이, 이장혁의 고백은 이어졌다.
“이 소식을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서 말을 못 꺼냈어.”
“제가 싫어하면 곤란하니까요?”
“아니. 네가 상처받을까 봐.”
허. 어이없는 숨이 튀어나왔다.
사실 도현은 미국 가출행을 결정한 순간부터 조금 고삐가 풀린 상태였다. 황당하단 투를 숨기지 않은 소년이 툭, 내뱉는다.
“제가 왜 상처를 받아요.”
밀어낸다면 밀어내는 거라고 이해할 수 있는 말과 태도. 그에 이장혁은 더더욱 죄책감 어린 낯이 되었다.
이어진 말은 무척 작고 여렸지만,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억울할 거 같았어. 우리가 너한테 못 해준 게 너무 많아서….”
“…….”
이건, 너무 솔직한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