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4화. 가족의 의미 (4)
가족. 그건 이장혁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단어였다. 아픈 아들을 오래도록 타지에 홀로 두고선 뻔뻔하게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니까.
동시에 그를 가장 불안하게 만드는 단어기도 했다. 단어에 얽힌 힘이 사라지는 순간 모든 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갈 테니.
- 그렇게 해서 싫다고 하면?
어리석은 질문에 명료한 답이 돌아온다.
- 감당해야지.
내가 할 수 있을까.
오랜 과오와 실패는 그를 갉아먹었다. 어린 아들을 상처 주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갉아 먹혀 남은 건 용기도, 패기도 없는 초라한 인간뿐이었다.
- 그리고 그렇게 되기 전에 최대한 노력해야지. 그게 우리가 할 일이잖아. 해야 했던 일이고. 여보.
그러니까 도현이 내어준 공간에서 안주하는 건 그만하자. 그 말이 환청처럼 귓가에 울린다. 이장혁은 눈을 길게 감았다 뜨며 입을 열었다.
“나도 모르겠어. 도현아.”
“네?”
“대체 왜 그랬던 건지…. 왜 너를 병원에 혼자 두고 그렇게 매정하게 군 건지 나도 모르겠어. 이런 말 들으면 화나겠지만, 무언가에 홀려 있었던 기분이야.”
차라리 악귀에 홀린 거라면 다행이었겠지. 실제로 매달릴 구석을 찾다 못해 굿이라도 하려고 무당을 찾아간 적도 있었다. 미신을 믿지 않는데도 그랬다.
- 쯧쯧, 알맹이가 무녀리로 태어나서 그래. 원래 무녀리는 제 부모에게 버려지기 마련이거든.
용한 무당이래서 부산까지 갔더니 헛소리만 잔뜩 해서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퇴원 이전의 과거. 그에 관해서 세 사람은 암묵적인 약속을 나눈 것처럼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도현이 침묵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이장혁의 경우에는 회피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간절히 알고 싶었다.
그러나, 모르겠다.
행동의 이유라도 알아야 반성하고 사과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조차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어느 날 문득 네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유도 없이 미움받은 아이의 심정을 차마 헤아릴 수조차 없어서….
정말 모르겠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고뇌를 날것 그대로 토해낸다. 띄엄띄엄 나오는 단어마다 깊은 감정이 눌러 담겨 있었다.
오랜 의문을 마주한 도현은 형용하기 어려운 얼굴로 그를 멀거니 바라봤다.
몰랐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서 그들이 아직도 그것으로 괴로워하는 줄 몰랐다. 평범한 영혼은 결코 알 수 없는 이유를 찾아내려 매달린 것도 몰랐다.
아니, 정말 몰랐나?
“어차피 상처 준 건 변하지 않으니 이유가 무엇이든 별로 중요하지 않겠지.”
자조처럼 중얼거린 남자가 천천히 도현을 응시했다. 까만 눈에 얼어붙은 소년이 담긴다.
“지금 너한테 용서를 구할 생각은 없어. 그건 너무 염치없는 행동이잖니. 내가 하려던 말은, 네가 어렸을 땐 그렇게 못되게 굴었으면서 동생이 생겼다고 하면 화나잖아. 화나고 억울하고, 배신감 들 것 같았어.”
“…딱히 그러진 않았는데요.”
왜인지 대답이 꽤 퉁명스럽게 나갔다. 지레 놀라 움찔했는데, 이장혁은 도리어 옅게 웃었다.
“혹여나 동생이 생기면 네게 소홀해질 걸 걱정할 수도 있고. 물론 절대로 그러지 않을 거지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네게는 너무 당황스러운 일이 될 거 같아서….”
무척 당황스럽다.
비탈길에서 멈추는 것을 잊어버린 스케이트보드처럼 좌르륵 쏟아내는 이장혁도, 누가 봐도 과속하고 있는데 말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서혜나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랬는데….”
그가 말끝을 흐림과 동시에 애매하게 찾아온 침묵은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았지만, 의외로 이장혁에 의해서 금방 깨졌다.
“다 핑계지. 그냥 아빠 잘못이야.”
“네?”
“뭐든. 늦게 말해서건, 아니면 그냥 동생이 생겼단 사실 자체건 간에. 네가 속상했다면 다 아빠 잘못이야.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도현아.”
도현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속상한 적 없다, 그리 말해야 하는데 정작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건 희미한 바람 소리뿐이었다.
무언가 가로막힌 듯 나오지 않는 언어에 느릿한 깨달음이 소년을 관통한다.
속상한 거였구나, 나.
도현은 멍청하지 않았다. 미숙한 부분이 많을 뿐 두뇌 자체는 똑똑했다. 그러니 속상해했다는 사실 안에 교묘히 숨은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건. 그러니까.
…기대하고 있었나?
언제부터?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다.
그건 병원에서 소년이 배운 가장 진리에 가까운 명제였다. 병원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며 그런 냉소적인 생각에서 조금 벗어났지만, 근원까지 달라지진 못했다.
순식간에 퍼즐이 맞춰져 간다.
미국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왜 그토록 그를 실망스럽게 했는지.
왜냐면, 기대했으니까.
내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무엇을 원하든 최선을 다해 도와줄 것이라고 무의식중에 기대하고 또 기대고 있었으니까.
“도현아.”
느릿하게 시선을 돌리자 서혜나의 얼굴이 보인다.
예전엔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어서, 음영 진 얼굴로만 기억되었던 그 얼굴이 이젠 그림자 없이 선명하다. 흰 얼굴을 한 소년은 입 안으로 의문을 굴렸다.
언제부터 자연스레 기대를 품었지?
“미국에 가기 전에, 엄마가 네 방에 찾아갔던 때 기억나?”
“네.”
“그때 말하려 했던 게 이거였어. 엄마가 임신했다는 것도 말하고, 미국에 가는 걸 반대한 이유도 이것 때문이었다고 말하려고 갔던 거였거든.”
“…….”
“너한테도, 네 동생한테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네가 미국에 가겠다는 걸 반대했어. 가족 다 같이 있었으면 하는 욕심에. 왜냐면 우리가 너무….”
서혜나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내내 차분하게 굴었던 그녀에게서 흘러나온 동요는 묘하게 시선을 잡아끌어서, 도현은 외면하지도 왜곡하지도 못한 채 그들을 마주 보았다.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잖아.”
그 말에 담긴 무게를 재단할 수가 없었다.
퇴원하던 날 이후로 늘 도현의 앞에서 어른스럽게, 여유롭게 굴던 부모님이 내비치는 초조함, 길을 잃은 아이같이 방황하는 눈동자, 얕게 떨리는 입술. 그러한 것들을 보다 생각한다.
나를 낳았을 때 그들이 몇 살이었더라.
계산은 빠르게 끝났다. 나온 숫자는 무척 익숙했다. 스물여덟. 동갑내기였던 젊은 부부는 스물여덟 살에 도현을 가졌다.
아마 기뻐하며 배를 매만졌겠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그 후로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받을지 상상도 못 하고선….
항상 머릿속으로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 또한 섭리에 휘말린 희생양이라고. 거대한 흐름을 거부할 수 없었으리라고 이해하면서도 심장 한구석은 냉소했다.
그래, 알겠는데. 그래서?
소년의 구조는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었다. 온전한 납득이 없다면 온전한 이해 또한 없다. 머릿속으로 백날 생각한들, 차갑게 식은 심장은 늘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입력값을 넣으면 출력하는 기계처럼 최대한 감정은 배제하고, 그들도 피해자이니 원망하지 말자고. 그편이 내게도 이득일 테니 쓸데없는 분란이나 갈등을 일으키지 말고, 그냥…. 유독, 부모님과 관련된 일이면 그렇게 감정을 죽이고 이성을 우선했다.
까만 눈이 서서히 커졌다.
아, 나는.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마주하려 한 적이 없었어.
쿵, 심장이 아래로 떨어졌다.
받아줄 생각도 없으면서 받아주는 척했다. 그러려고 노력하는 척했다. 나는 진심으로 부모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다고, 자기 자신조차 속여가면서. 그렇게 연기해왔다.
어쩌면 영원토록, 그조차도 모른 채 그렇게 살 수 있었을 텐데. 눈치채지 못한 사이 스며든 기대감은 매끄럽던 석고 표면에 균열을 만들어내었다. 알아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천천히. 거미줄 같은 금이 점점 번져가다가.
쩌적, 퇴원하는 순간부터 얼굴을 감싸던 가면이 깨어져 나간다. 석고 조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 오랜 시간이 지나 드러난 맨 얼굴에 맞닿는 건 불편하고 어색한 공기였다.
“그래서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았어. 이기적이지. 두렵다는 이유로 네 의사를 무시했으니까.”
“…아니.”
처음엔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두 번째로 입이 열렸을 땐, 두 사람의 귀에 선명히 들릴 만큼 또렷해졌다.
“아뇨. 아니에요.”
두서없는 부정에 두 사람의 얼굴이 의아해진다. 도현은 가림막 없이 와닿는 시선을 어색하게 느끼며 입술을 달싹였다.
“전 한 번도….”
그만둘까.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입술이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어냈다.
“한 번도 두 분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기만투성이.
“한 번도 용서하고자 한 적도, 이해하고자 한 적도 없어요. 그냥 그게 편하니까, 머리 아픈 일 없이 지낼 수 있으니까 그랬던 거지.”
이제 전부 알겠다.
“저는 그랬어요. 두 분이 저를 위해 노력하는 내내, 한 번도 그걸 가족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아니, 가족이란 단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가족이란 단어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다. 그건 외로운 소년에게 아무런 위안도, 온기도 나눠주지 못했으니까.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만큼도 못한 단어인데, 그 단어로 인해 조건 없는 호의와 애정이 쏟아진다.
이상했다. 무서웠다. 그래서 미국을 떠나길 바랐다. 자꾸 나한테 무언갈 해주려고 하지 마. 나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테니까.
두꺼운 가면 아래, 소년조차 몰랐던 본심이었다.
모든 게 깨어져 나간 흰 낯은 어느 날의 어린 소년처럼 무표정했다.
친구를 만나고, 카메라 앞에 서서 점점 다채로워진 소년이 아니라 그 이전. 책으로 놀이를 할 때를 제외하고선 늘 감흥 없는 표정과 눈빛을 하던 아이처럼.
“제 동생이고 가족이라고요.”
담담히 곱씹은 소년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제 동생을 싫어할 생각은 없어요. 싫어하기엔, 그 애는 그저 존재할 뿐이잖아요. 어쩌면… 어쩌면 아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두 분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가족으로서요.”
개나리 빛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 버렸다는 형의 심정을 나도 이해하게 될지 모른다. 도현이면서 희성인 그가, 한번 사랑에 빠졌던 걸 두 번은 못 할까.
“그런데 가족이라는 단어가 동생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엮는 단어면… 그건 잘 모르겠어요. 어떤 풍경을 그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게 이상적이라는 것도 알겠는데.”
그렇게, 처음으로.
“제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불순물 없는 진심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