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7화. 가족의 의미 (7)
“…뭐?”
“제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다고요.”
도현의 눈에 굳은 부모님의 얼굴이 보였다.
부채감이니, 죄책감이니 잘 포장해 놓았어도 친구들을 떠나면서까지 한국에 오길 바란 건 결국 한 가지 이유였다.
더 기대하고 싶지 않아.
오래전에 버려졌던 감정을 되찾는 건 너무 고된 일인 반면 있던 곳에서 도망치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불현듯 한국에 가는 걸 지지해 주었던 메리가 떠오른다. 그녀는 알았던 걸까. 그래서 한국에 가서 직접 마주하길 바란 걸까.
더 도망칠 곳 없는 이곳에서.
“솔직히 저, 진이랑 지내면서 정말 편했어요. 타인의 집이니 불편해야 맞는데도, 허락만 해준다면 몇 날 며칠, 얼마고 그곳에 머무르고 싶을 만큼이요.”
아쉬워하는 친구들 앞에서도 늘 의젓했던 소년은 말문을 잃은 부모를 바라보다가 충동적으로 손을 들었다.
저 시선을 가리고 싶다.
‘알고 있어.’
내가 유별난 거. 이상한 거.
불안정한 영혼으로 태어난 영향인지는 몰라도 세상의 모든 자극에 남들보다 더 예민했다. 처음엔 다른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커가면서 알았다. 내가 유별나다는 것을.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더 또렷하게 느낀다. 그게 감정이든 육체든.
어쩌면, 어릴 적 간절히 바란 소원이 이루어진 건지도 모른다. 그 어린 날 아이는 타인의 감정을 부러워했으니까. 부러워하고 부러워하다가, 결국엔 누구보다 감정을 선명히 느끼게 된 거야.
-이유가 무엇이든 내가 유별나고, 정상의 범주에서 조금 빗겨가 있다는 건 바뀌지 않는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건 내가 아닌 내 주위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생각해 보세요.”
“뭐?”
“아이가 아끼는 인형이 하나 있어요. 너무 소중해서 매일 껴안고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품에서 인형을 빼앗아서 바닥에 던지는 거예요.”
손바닥으로 시선을 가린 채로 영문 모를 말을 하는 도현에 두 사람의 얼굴에 당혹이 떠올랐다.
“아무리 울어도 돌려주지 않아요. 결국 아이는 직접 인형을 주웠어요. 그런데 주워서 품에 안으면 또 버리고, 또 버리고, 또 버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손이랑 인형이 모두 흙투성이인 거예요. 완전히 엉망이 되어서.”
어느 날 아이는 인형을 주우러 가는 걸 포기했대요. 또 버려질 테고, 그땐 더 엉망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리고 깨닫는 거예요. 인형이 품에 없으면 빼앗길 일도 주우러 갈 일도 없다는 걸.
높낮이 없는 목소리는 잔잔했다.
“이제 혼자인 게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누가 와서는 고의가 아니었다는 거예요. 이미 솜이 터지고 흙투성이가 된 인형을 품에 안겨 주고선 그걸 다시 소중히 여기래요.”
“…….”
“그럴 수 있을까요?”
묵직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렇게까지 분위기가 가라앉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부러 가벼운 예시를 든 게 소용없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가렸던 손바닥을 내렸다. 이쪽을 보는 두 쌍의 눈이 시야에 들어온다.
항상 도현을 가해자로, 피해자로 만드는 눈이.
‘알아, 안다고.’
부모님도 피해자인 거. 나를 사랑하는 거. 나를 대하는 모든 태도가 진심인 거.
다 아는데도.
“깨끗하게 빨고, 솜을 다시 채우고, 헤진 곳을 꿰매 줘도 도저히 예전처럼 소중히 여길 수가 없는데….”
아이라고 왜 그 인형을 다시 품에 안고 싶지 않을까?
주우러 가길 포기한 순간부터 그 인형은 사라진 셈이다. 아무리 버려진 걸 주워들고 와도 그때 그 인형은 될 수 없다.
그런데 왜 자꾸 내 품에 안겨 주고 기대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지 모르겠어. 나는 원하는 걸 줄 수 없는데.
부모님이 정말 나쁜 사람이었다면 나았을까. 명확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를 수 있었다면 지금보단 명료했을까.
온통 상처 입은 피해자뿐인 이곳이 숨 막히도록 답답했다. 누가 숨통을 압박하는 것처럼 먹먹하고, 또 아득해서….
“차라리 화라도 냈으면 좋겠어요.”
툭, 말을 내뱉은 후 입을 한번 꾹 다문 도현이 제 분에 못 이겨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눈매를 뾰족하게 세웠다.
“제가 답답하지도 않으세요? 너무하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도현아.”
“솔직히 그렇잖아요. 그렇게 노력하는데 한 번도 제대로 봐주지 않고, 계속 뒷걸음질만 치고, 그러면서 제멋대로 굴고. 답답하고 화나는 게 맞잖아요. 안 그래요?”
서혜나는 도현이 하는 말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깨달았다. 도현이었다.
“왜 자꾸 죄지은 사람처럼 굴어요?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기분이에요. 나는 다 아는데. 나는 정말 다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혼자만 알고 있는 건데.”
원하던 일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아 잔뜩 심통 난 아이처럼 보인다고 말한다면 화를 낼까.
좀, 그냥 두면 안 돼요? 물음인지 한탄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이 숨결과 함께 흘러나온다. 두 사람은 뻣뻣하게 굳어버리고 말았다. 도현의 말간 뺨을 타고 흐르는 물기 탓이었다.
…운다고?
두 사람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연기에서 우는 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슬픔이 아니라, 답답해서 분통이 터진 거라도 연기 외적으로 도현이 우는 일은….
그들이 완전히 얼어붙어 있는 사이 도현은 소매로 대강 왼쪽 뺨을 문질렀다. 거친 손짓에 면에 쓸린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도현은 그것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검은 눈을 사납게 치뜨고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짓씹듯 문장이 튀어나온다.
“어디까지 저를 봐주시려고요?”
“아마도 평생.”
그리고 여전히 정신이 나가 있던 서혜나는 거의 무의식중에 답해 버렸다.
“…하?”
도현의 눈빛이 변했다. 어이없음과 황당함이 섞인 눈빛이었다. 그녀 또한 정신을 얼추 차리고선 큼, 헛기침했다.
“네가 우리를 완전히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한은 평생, 평생 그럴 거야.”
“…왜요? 질리지도 않아요?”
“지금도 보고 또 봐도 예뻐 죽겠는데 어떻게 질려?”
네가 원하는 건 다 들어주고 싶지만, 그래도 가능한 걸 말해주면 좋겠어. 태연하게 덧붙이는 말에 조금 당혹스러워하던 검은 눈이 곧 가라앉았다. 거짓말.
“그럴 리 없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해?”
“저도 제가 지겨운데 두 분에겐 어떻겠어요. 저한테 완전히 질려서 정이 떨어져 나갔다 해도 이해해요.”
아이는 날카로운 화살을 갈아서 자신의 살갗을 찌르고 있었다. 지겹다. 저게 도현이 그 자신에게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을까. 그토록 알고 싶던 아들의 생각을 일부분 알게 되었는데 기쁘다기보단 서글펐다.
문득, 서혜나는 도현이 한 말을 이해했다. 한 번도 우리를 제대로 본 적 없다고 했지. 그런 거 같았다.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지옥 같았다. 도현이 병원에 홀로 있었던 8년. 그 기간은 그녀에게나 그에게나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자신을 좀먹는 자괴감과 자책감, 죄악감….
모순적이게도 그녀를 지옥 속에 떨군 게 도현이라면, 그녀를 그곳에서 건져 올린 것도 도현이었다. 그녀는 도현에게서 죄를 갚을 기회를, 그리하여 다시 지옥이 아닌 세상을 살아갈 기회를 얻었다.
퇴원하는 순간은 도현에게 전혀 다른 세계로 발을 딛는 순간이었겠지만, 그나 그녀에게도 비슷한 의미였다.
‘여태껏 노력한다 했는데.’
역시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건 들어줄 수 없어.”
도현아. 그녀가 아이를 다정히 부른다.
“우리한테 너는 삶이고, 기쁨이야. 그런데 어떻게 너한테 질려서 등을 돌릴 수 있겠어? 세상을 등지라는 거랑 똑같은 소린데.”
“그게, 똑같을 리가 없잖아요.”
“똑같아.”
“제가….”
“도현아. 아가.”
뱃속에 품었을 때 말고 부른 적 없는 호칭에 도현이 흠칫했다. 아가라니. 그 떨리는 눈을 읽은 서혜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왜 이제 알았을까.
아무리 똑똑하고 강해도, 혼자서 잘하는 것 같아도 아직 아이였는데. 감정이 치받으면 분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화를 내다가도 부모의 반응에 전전긍긍하는 아이.
“봐주는 게 아니야, 도현아.”
본디 아이가 모르는 걸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동안 손 놓고 방치해온 세월이 너무 길어서, 그런 간섭이 아이에게 부담으로 느껴질까 봐. 필요 없는 참견이 성가시게 다가갈까 봐.
“우리가 네 옆에 있고 싶어서 있는 거야.”
그렇게 해야 할 일을 방치해놓고 아이에게 정을 달라 애원하니 아이가 난감해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답답한 속을 티 내지 않으며 말했다.
“너와 함께하지 않는 게 너무 불행해서. 행복하려고 네 곁에 있는 거야.”
“제 곁에 있는 게 행복해요?”
“응.”
“사실은 그 불행조차 저 때문이었다고 해도요?”
아이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다.
불안정하게 태어난 영혼, 그리고 망가져 가는 육체. 우연히 만난 신적인 존재. 듬성듬성 빈 이야기는 현실성이 없었다. 그러나 거짓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건.
환상 같은 몇몇 순간들이 있어서.
바닷가를 거닐 때 아이의 주변에 몰려드는 것 같던 바람, 가끔은 산책하다가도 유독 아이의 머리카락을 반짝여주는 햇살, 혹은 때때로 멀게 느껴지며, 무언가 다른 것을 보는 듯한 아이.
항상 궁금했다.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그녀의 눈에는 그냥 도로나, 지나가는 차, 건물밖에 보이지 않는데 도현의 눈은 너무 아름다운 빛을 담고 있어서 대체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알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아이는 언제나 특별했다. 병원에 있던 그 순간에도 사람들은 도현을 싫어했을지언정 무시하진 못했다. 그 존재를 어떻게든 시야에서 치우고 싶어 하면서, 한편으론 또 시야에 두고 싶어서….
그녀는 아이의 뒤로 다가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손끝에 온기가 닿는 동시에 환상 같은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
사실은 특별하지 않아도, 매 순간 그녀에게 귀했을 아이가 고요한 얼굴로 바라본다. 어제의 격한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정돈된 낯이다.
하지만 서혜나는 더는 그 표정을 믿지 않았다. 않기로 했다.
툭, 팔꿈치에 부딪힌 색연필 케이스가 바닥에 떨어진다. 잘 정리해 두었던 색연필 몇 개가 충격으로 튕겨 나와 바닥을 나뒹굴었다.
검은 눈이 평정이 깨진 채 크게 뜨인다. 도현은 제 몸을 감싼 팔을, 온기를, 그리고 이내 전해져 오는 부드러운 심장 박동을 느끼고 얼어붙었다.
“태몽이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어. 넌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내 아들이니까.”
쿵, 쿵. 심장이 뛰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소리에 도현이 천천히 손을 말아 쥐었다. 비웃거나 하다못해 거부라도 해야 하는데, 이 온기가 사라지면 빈자리가 너무 추울 거 같아서.
결국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