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역부터 월드스타-539화 (540/582)

제539화. 가족의 의미 (9)

몇 해 전.

출시하자마자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부상해 이제는 하나의 유행이자 신세대를 대표하는 문화가 되어버린 동영상 플랫폼이 있었으니.

전 세계 이용자 수 10억 명.

전 세계 웹사이트 방문자 수 1위.

새로운 선두주자에 선 어플, 티톡(TeaTok)이었다.

차 마시는 것처럼 간편한 문화 공유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잘 먹혀들어 갔는지, 이제는 세계 각국의 많은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어플이 되었다.

그리고 새디 로스는, 말하자면 미국의 10대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출연한 시트콤 는 지금은 종영했으나, 지난 몇 년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간 모인 관심은 시트콤이 종영한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새디 로스가 티톡에 계정을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몇십만 팔로워가 모였다. 그녀는 그것을 기반으로, 탁월한 감각을 발휘해 티톡 내의 유행을 주도하며 그 수를 몇 배, 몇십 배 불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띠롱!

“응?”

미국 펜실베니아에 사는 열여섯 살의 소녀, 리비아는 핸드폰 상단에 떠오른 창을 보고 무심결에 소리를 내었다.

새디가 영상을 올렸나?

그녀는 티톡의 열정적인 사용자로, 그녀 자체도 영상을 생산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셀러브리티를 팔로잉해둔 상태였다.

그중 새디 로스는 그녀가 좋아하는 티토커였다. 그녀는 남들이 하는 걸 따라 올리기보다 새로운 걸 만들어서 유행시키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구독해 놓으면 다른 친구들보다 유행에 한발 빠르게 앞설 수 있었다.

톡, 화려하게 네일아트가 된 리비아의 손끝이 화면을 눌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디가 올린 영상이 재생되었다.

화면에 후줄근한 차림의 새디가 나오며 풋풋함이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화면 밖으로 치고 나왔다.

- 그녀는 열세 번째 분침이 지나기를 기다렸어

‘처음 듣는 노래인데?’

노래 가사에 따라서 새디가 불만스러운 낯으로 손목에 시계를 보는 척을 하고, 괜히 안경을 한번 추어올렸다. 전 시트콤 출연자답게 굉장히 자연스럽고 익살맞은 연기였다.

- 그녀는 여전히 방에 있고 시간은 여전히 흐르고 있어

변화가 생긴 건 그 순간이었다.

- what the hell?

노래 가사의 뒷부분을 그대로 따라서 말한 새디가 갑자기 화면에 주먹을 날렸다. 화면이 위로 뒤집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와우.”

리비아가 저도 모르게 탄성을 뱉었다.

방금까지 학교에 있는 흔한 여자애처럼 보였던 새디가 머리카락부터 화장, 옷까지 완벽하게 세팅한 채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새침한 눈매와 날씬한 몸을 보니 새삼 새디 로스가 예쁘긴 예쁘구나 싶었다.

아까와 달리 자신감에 찬 얼굴을 한 새디가 노래 가사를 마저 따라 불렀다. 별것 아닌 눈짓과 고갯짓, 그리고 손의 제스처 따위가 상당히 중독성 있었다.

- 그러니 이건 열세 번째 분침이 지난 후의 이야기야

씩 웃은 새디가 오른손을 둥글게 말아쥐고 무언가 닫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그다음엔 일렉기타를 치는 것처럼 시늉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다, 자연스럽게 박자를 타며 춤을 추었다.

‘그녀는 창문을 내렸대’와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서’라는 가사가 나왔기에, 새디가 가사를 따라가고 있다는 건 쉬이 알 수 있었다.

- 넌 상상할 수 있니?

코러스 같은 마지막 가사가 나오기 전, 다시금 카메라를 바로 응시한 새디가 이번엔 주먹이 아닌 손바닥으로 화면을 쳤다. 동시에 비트가 빵빵하던 노래도 끊겼다.

그렇게 영상이 끝이 났다.

“오.”

짧은 감탄도 잠깐.

“리비아! 방에 있니? 할 거 없으면 잠깐 엄마 좀-.”

“할 거 생겼어요, 엄마!”

큰 소리로 대답한 리비아는 방문을 꼭꼭 닫은 채 화장대 앞에 섰다. 꾸미지 않은, 수수하다 못해 뒷머리가 잔뜩 엉킨 열여섯 살의 소녀가 거기에 비쳤다.

“…좋아, 리비아. 넌 이대로도 예쁘지만, 조금만 씻고 찍자.”

스스로와 타협한 리비아는 화장실에 들어가며 핸드폰을 톡톡 두드렸다. 쏴아아- 샤워기에서 물이 나오는 소리 위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소리가 얹어졌다.

흠흠, 흠. 소녀는 소년을 봤대-.

샤워실 밖,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수증기와 함께 소녀의 흥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그 비슷한 풍경은 미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리고, 조금씩 주춤하던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가 변하기 시작했다.

* * *

“도현아!”

반에 가자마자 희운이 상기된 낯으로 달려왔다. 도현이 어제 집에 가는 길에 본 갈색 푸들을 떠올린 건 불가항력이었다.

“이거 봤어!?”

표정과 목소리에 흥분의 기색이 역력했다.

“뭐길래 그래?”

“모르는 거야?”

“보여줘야 알지.”

오늘도 누구보다 빠르게 등교한 도현은 교실 열쇠를 교무실에 도로 가져다 놓고 온 참이었다. 그사이 아이들이 등교했는지, 반은 그가 왔을 때처럼 텅 비어 썰렁한 풍경이 아니었다.

“뮤비 조회 수가 하루 만에 엄청나게 늘었어…!”

“어?”

도현은 희운이 신이 나 건넨 핸드폰을 보았다. 과연. 그의 말대로 며칠간 200만 초입에서 꿈쩍도 않던 조회 수가 하루 만에 몇십만이 늘어나 있었다.

‘새디인가.’

그녀가 의뭉스러운 문자를 보냈길래 대체 무엇을 했나 싶어서 찾아보았다. 요즘 연예인답지 않게 티톡을 하지 않는 도현은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그녀가 무엇을 올렸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도현은 그때의 감상을 떠올렸다.

‘신기했지….’

그런 식으로 새로운 영상을 만들 줄은 몰랐다. 조금 오글거릴 법도 한데, 새디의 표정 연기가 워낙 능숙해서 그런 것도 별로 안 느껴졌다.

그다음은 고마움이었다.

그녀가 하고 싶어서 올린 거라고 하지만, 그 기저에 도현을 향한 호의가 있음은 분명하니. 도현은 오랜만에 인별에 들어가, 그녀가 티톡을 올린 날 업로드한 것으로 보이는 피드에 하트를 눌렀다.

[영상 봤어. 재밌더라. 밴드부도 아주 좋아할 거 같아. 고마워, 새디.]

[새디 로스 : 로즈라고 부르라니까!]

물론 문자도 보냈다.

그러나 딱 그 정도였다. 그 외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랬는데….

“생각보다….”

“어? 뭐라고 했어?”

가만히 눈을 깜빡이던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계속 이 추세이려나?

“아무것도 아니야.”

진이 좋아하겠네. 새디한테 다시 고맙다고 해야겠어. 그때까지만 해도 도현은 꽤 가볍게 생각했다.

“도현아! 이거 봤어!?”

엄청난 데자뷔와 함께 다음 날 백만이 훌쩍 뛰어버린 조회 수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 * *

“이거 좀….”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 그 사이에서 금발을 위로 높게 올려 묶은 소녀가 말끝을 흐리자, 다른 아이들이 냉큼 말을 얹었다.

“심상치 않은데?”

“심상치 않죠?”

클라인과 조니의 낯은 벌게진 상태였다. 그러나 다비드는 두 사람 보고 멍청하다고 욕할 수가 없었다. 그 또한 술렁거리고 손에 땀이 나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나 꿈을 꾸나….”

아까부터 멍하니 있던 캐서린이 어물어물 말했다. 제정신이 아니란 건 확실했다.

새디 로스가 티톡에 영상을 올린 지 삼 일 차.

조금씩 퍼지던 Thirteenth 챌린지는 어린 소녀 사이에서만 유행하는가 싶더니, 한 유명 뷰티 크리에이터가 본인의 메이크업 영상으로 변주하면서 뷰티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한번 기세를 타고 나니 어디 손쓸 도리가 없었다. 이미 메일함에는 자신이 에이전시 담당자라며, 유튜브 관리를 맡겨볼 생각이 없냐는 메일이 두 통이나 와 있었다.

그들은 전문적인 관리뿐만 아니라 채널 확장과 광고 등등, 여러 가지 제안을 하며 그로 인해 얻을 이득을 설파했다. 마치 에이전시에 소속되기만 하면 몇백만 유튜버가 될 수 있을 거 같은 내용이었다.

“우리, 이러다가….”

꿀꺽, 클라인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아이들의 머릿속에 무럭무럭 상상이 자라났다. 카페에서 그들의 노래가 나오고 어딜 가든 사람들이 알아보고 벤츠에서 내려 선글라스를 벗으면 환호가….

저마다 머릿속에 슈퍼스타가 되는 상상을 떠올릴 때, 다비드는 상상이 아닌 눈앞의 진을 보았다. 처음,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이던 진은 어느 순간부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떨어졌다.

“얘들아.”

그 부름에 아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우리 목적이 뭐지?”

“목적이라니.”

“이 밴드부를 만들고 들어온 이유 말이야.”

“그야 재밌게 연주하기 위해서?”

클라인이 무심결에 답한 말에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거야. 그러니까 이 곡이 얼마나 인기를 얻든, 정말 감당 불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면 우리는 본래 목적에 집중하자.”

클라인은 뭔 당연한 소릴 하고 있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캐서린은 진의 말에서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잠깐, 진. 너 그 말은….”

“에이전시니, 뭐니.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원래 우리가 하던 대로 하자는 말이야. 유튜브 운영은 브라운이면 충분해.”

“왜?”

캐서린은 납득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우리는 어려. 게다가 준비되지도 않았지. 이게 정말 오래갈 인기라고 생각해? 그리고 난 인플루언서가 되려던 게 아니야. 밴드를 만들고 싶었던 거지. 그건 에이전시가 없어도, 스타 같은 유명세가 없어도 할 수 있어.”

“그러면 도현은 왜 섭외한 거야?”

“그건 받을 수 있는 도움이었잖아? 친구니까. 도현을 데려오는 것까진 친구들끼리 밴드를 즐기는 선을 넘어가지 않아.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 진, 내 공주님. 뭐든 네가 현명한 결정을 내리리라 믿지만…. 이건 알아두렴. 자본에 얽히는 순간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단다.

- 특히 예술가는 그래. 자유롭게 재능을 펼치는 일도 분명 있지만, 극히 드물지. 나는 네가 성공보단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했으면 좋겠구나. 넌 그만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니까.

진이 또렷한 눈으로 아이들을 보았다. 다비드는 때때로 그녀의 눈동자가 찬란한 금발보다 더 환하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편의나 이득을 얻을 땐 제약이 동반한다고 했어. 난 자유롭고 싶어. 무엇보다, 혼자서 성장한 밴드가 더 멋있지 않아?”

그녀의 눈동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그 색이 특별하지 않아도, 유별나게 아름답지 않아도. 그 안에 존재하는 단단한 심지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혹시 자신이 없어, 얘들아?”

“…그럴 리가!”

“하? 저는 클라인처럼 겁쟁이가 아니라고요.”

“뭐? 너!”

다투기 시작하는 둘을 한심하게 보던 캐서린이 진을 보았다. 탐탁지 않은 표정을 하던 캐서린은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인정해. 순간적으로 욕심이 났나 봐. 하지만….”

캐서린이 팔짱을 꼈다.

“대체 누가 자신이 없다는 거야?”

그녀의 새침한 대답에 진이 유쾌하게 웃었다. 역시 자신이 모은 애들다웠다. 웃음기 가득한 진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닿은 곳은 다비드가 있는 곳이었다.

다비드를 보는 진의 눈은 한 치의 불안도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또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보면 굴러들어 온 복을 발로 뻥 찬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이상한 애들-Freaky Child-이 모인 곳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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