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화 (2/270)

제2화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다.

“하하.”

서도화는 습관적으로 쓴웃음을 내뱉었다. 그냥 그때 죽었다고 생각하고 데스티니에 매달렸어야만 했다.

눈물 콧물 다 빼며 제발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강 실장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아 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하…….”

뭐? 제2세계에서 가능성 없는 일은 빠르게 포기하는 법을 배워?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걸 기가 막히게 구별해?

‘그걸 내가 어떻게 구별해!’

배운 건 구차하게 사람 여린 마음에 파고들어 마음 사는 법밖에 없으면서!

단 몇 달 만에 서도화의 자존감은 땅으로 떨어졌다.

반년 전 자신은 참 감정적이고 오만함이 하늘을 찔렀던 모양이다.

강 실장 성격에 마음이 여려서 바닥에 엎드려 제발 도와줍쇼! 하면 다시 받아줄지도 몰랐을 일인데.

서도화가 다시 한번 실소를 터트렸다.

어라? 웃는데 왜 눈물이 날 것 같지?

대형기획사인 데스티니 엔터테인먼트에서 해고된 이후 서도화가 원래의 실력을 되찾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노래는 음유시인으로 살게 된 이후 오히려 더 잘 부르게 되었지만, 댄스는 어지간히 다시 노력해야 했다.

반년간 머무른 고시원 근처 길바닥을 연습실처럼 사용해 연습한 결과 5년의 공백으로 굳어진 실력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럼 뭐해.’

서도화 인생의 순탄함은 음유시인이 되기 전과 후로 나뉘듯 이번에도 그러했다.

‘소문이 이렇게 빨리 퍼질 줄은 몰랐지…….’

연락을 주겠다던 강 실장은 반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실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혹시나 서도화란 존재를 까먹었나 싶어서 보낸 문자는 처참하게 읽씹 당했다.

아무래도 데뷔 확정 직전 무단 잠수 타이틀을 단 서도화를 집어넣을 만한 소속사를 찾지 못한 듯했다.

당연하게도 개인적으로 온 캐스팅조차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서도화 정도의 연습생이 회사를 나오면 한동안 다른 소속사들의 캐스팅이 솟구친다던데 그의 휴대폰은 심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래서 서도화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영영 없을지도 모르는 답장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내기엔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깝지 않은가.

그러나 슬프게도 오디션을 볼 때쯤 그는 이미 대부분의 기획사에 무단 잠수, 연락 두절 되었다가 한 달 만에 뻔뻔하게 나타나 계약을 해지당한 연습생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그런고로 서도화의 인생은 반쯤 고꾸라졌다.

꿈은 짓밟힌 지 오래고.

아마 데뷔해서 받고 싶었던 환호성은 제2세계 영웅 퍼레이드에서 받았던 게 마지막이 될 듯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월말평가 전날 연습생 주제에 밤샘 안 하고 잠 한번 자보겠다고 나댄 것부터?

음유시인이 되어 구질구질하게 살아남아 보겠다고 뒷생각 안 하고 기연과 스킬을 마구잡이로 끌어모았을 때부터?

제2세계에서의 영웅 짓 못 잊고 이젠 가능성 없는 건 빠르게 포기할 줄 안다며 오만을 떨었던 때부터?

아니. 제기랄 전부 잘못되었다.

서도화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건 칙칙한 고시원 천장이다.

이게 바로 서도화의 현실이고 미래였다.

‘나 이제 뭐 하지.’

물론 오디션은 계속 보러 다니겠지만 아무래도 꿈을 이루기까지 좀 오래 걸릴 듯하다.

그럼 현실적으로 당분간은 뭐라도 일을 해야 할 테고, 꿈에 올인하겠다고 자퇴까지 했으니 검정고시 공부도 하고…….

“일단 알바랑 검정고시인가.’

이게… 맞나?

서도화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껌뻑이던 때였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에 서도화가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번뜩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휴대폰을 들어 확인했다.

[데스티니 실장님]

반년간 깜깜무소식, 손절 당했다고 생각했던 강 실장이었다.

그에게서 드디어 답장이 왔다.

‘드디어! 진짜인가?!’

서도화가 조금 떨리는 손으로 그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어 잘 지냈지. 바빠서 답장하는 거 까먹었다ㅋ

-서도화 아직 포기 안 했지?

강 실장은 간단한 안부 물음과 함께 명함 한 장을 보냈다.

-근데 이제 막 시작한 회사라 장담은 못 한다ㅋㅋ 힘내라

막 시작한 회사든 뭐든 서도화에겐 동아줄 같은 기회였다.

* * *

“잘 부탁한다. 도화야.”

“잘 부탁드립니다.”

서도화는 계약서 사인을 마치며 눈앞의 여자가 내민 손을 마주 잡았다.

눈앞에 여자는 강 실장을 통해 모두가 꺼리는 서도화를 적극적으로 캐스팅한 신생 회사의 대표였다.

“비록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회사라도 우린 도화를 위해 뭐든 최선을 다할 거야. 믿어도 돼.”

“그럼요.”

믿는다. 믿을 수밖에 없다.

서도화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라온 대표에게 있는 힘껏 신뢰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사람이 아니면 데뷔는 물 건너간다. 해볼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눈앞의 대표 김유진은 대형기획사 연습생 시절 몇 번 봤던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회사 자체 레이블 기획팀장이었다가 이날 기준 일 년 전 퇴사했다고 하던가.

천운으로 그 덕에 김유진은 서도화가 소문처럼 성실하지 못한 연습생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게으르긴커녕 밤새도록 연습실에 남아 연습하던 노력파 천재, 실력도 외모도 인성도 뭣 하나 버릴 것 없는 연습생.

그가 소문의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거다!’ 하며 냉큼 데려온 것이었다.

김유진은 뿌듯하게 서도화를 바라보다 호쾌하게 말했다.

“자! 그럼 회사 좀 둘러볼까? 안내해줄게. 연습생들이랑 인사도 하고.”

“네.”

“아무리 작은 회사라도 우리 눈이 워낙 높아서 연습생도 아무나 안 뽑았어. 바로 데뷔할 수 있을 법한 아이들만.”

김유진이 서도화를 가리켰다.

“전부 데뷔조 같은 느낌이니까 몽땅 한 그룹이 될 수도 있고. 너도 이제부터 데뷔조다~ 그렇게 생각해.”

“어, 네.”

대표에 대한 서도화의 신뢰가 한풀 꺾였다.

이 작은 신생 회사가 1년도 안 돼서 즉시 전력감의 연습생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그럴 수 있을 리가.’

거기다 기존의 멤버들과 조화나 호흡이 맞을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방금 들어온 서도화도 바로 데뷔조라니?

데뷔조가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고 너무 즉흥적이고 가볍게 결정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그것보다 연습생이 얼마나 적길래 몽땅 한 그룹이 될 수 있다는 거지?’

이제야 슬슬 은은한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게 무엇이든 따르겠지만.

여전히 김유진 대표는 서도화의 동아줄이지만.

동아줄도 종류가 있지 않은가. 튼튼한 것과 썩은 것. 서도화의 표정이 애매하게 바뀌는 것도 모른 채 김유진이 사람 좋게 웃었다.

“그냥 막 결정한 거 아니야. 난 네 실력 아니까. 어차피 그 회사에서도 데뷔 직전까지 갔었잖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서도화는 짧게 대답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작은 회사지만 건물 한 채를 통으로 쓰는 만큼 갖출 건 다 갖추었다.

1층엔 카페가 입점해 있었고, 2층은 회사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무공간과 미팅룸, 회의실, 작은 작업실, 그리고 3층의 벽을 싹 다 허물어 연습실 하나를 만들어 뒀다.

“지금 휴식 시간이라 연습실에 애들이 없네. 5분 내로 들어올 거야.”

“네, 알겠습니다.”

“매니저 올려보낼 테니까 연습생들 들어오면 매니저 통해서 인사하고. 서도화, 파이팅!”

김유진은 두 손을 힘차게 주먹을 쥐어 보이곤 서도화를 연습실에 데려다 놓고 2층으로 내려갔다.

서도화는 천천히 연습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지금부터 여기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거지.’

그래도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연습실과 작업실의 장비는 데스티니 기획사보다 훨씬 좋다.-어디까지나 연습생 공간의 이야기다-

직원 수도 허무맹랑하게 적지는 않았고 좀 많이 즉흥적이라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어느 정도 아티스트에게 지원할 준비가 되어있음이 보였다.

……그것보다 제대로 연습실 풍경을 보는 게 도대체 얼마 만인지.

서도화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세계로 돌아온 직후 연습실은 들여다보지도 못하고 회사의 해고 통보를 받았으니 약 5년 반 만의 연습실이었다.

서도화가 가만히 서서 멍하니 연습실을 둘러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더니 연습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어?”

“매니저 형! 여기 누구 있는데요?”

서도화는 자연스럽게 구석으로 자리를 이동하며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새로 들어온…….”

그러다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굳어버렸다.

……어라?

이곳으로 돌아온 직후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았더니 드디어 미치기 시작한 걸까.

“너는…….”

한편 상대 연습생들, 그 중에서도 유독 이질적으로 잘생긴 외견의 두 사람 또한 그와 마찬가지로 놀란 눈을 한 채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아아 새로 누구 들어온댔어. 그으… 도화 씨?”

매니저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멈춰선 그들을 뚫고 들어와 서도화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여전히 서도화와 연습생 둘의 시선은 서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마치 이 세상에 서도화와 두 사람 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축축한 빗속에서 지랄맞게 싸우고 헤어진 전 연인을 만난 것처럼.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을까. 서도화를 맹렬히 노려보던 연습생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음유시인.”

이어 또 다른 연습생도 말했다.

“도화?”

“이…….”

이런 제길!

저들이 자신을 알고 있음이 분명해지자 서도화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왜 저것들이 여기에…….’

서도화를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제2세계의 영웅인 아덴, 그리고 서도화와 아덴이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웠던 마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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