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음유시인이 왜 여기에?”
“마왕…….”
서도화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나온 단어의 이질감에 흠칫했다.
입사하자마자 다른 연습생을 마왕이라고 부르는 신규 연습생이라니 너무 중2병 같지 않은가?
물론 진짜 마왕이긴 했지만…….
그러나 아덴과 마왕을 제외한 연습생들, 그리고 매니저는 이 이상한 분위기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지나쳤다.
“뭐야 형, 아는 사이에요? 그나저나 와- 도화 형 진짜 왔네.”
“그러니까. 대표님 진짜 섭외에 성공하실 줄이야.”
왜… 다들 아무렇지 않아 하는 거지?
서도화의 머릿속은 빠르고 강렬하게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입에서 ‘마왕’, 마왕의 입에서 ‘음유시인’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왜 아무렇지 않아 하지?
그때 지나가던 연습생 중 하나가 서도화의 어깨에 손을 툭 올리곤 말했다.
“너도 두 사람이랑 같은 게임 해?”
“아. ……어? 형?”
“오랜만이다. 도화야.”
더더욱 서도화의 머릿속이 어지러워지고 있다.
아덴과 마왕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미처 한 번에 발견하지 못한 익숙한 얼굴이 한 명 더 있었다.
“한야 형?”
무뚝뚝하고 낮은 목소리, 큰 키와 표정 하나 없는 무덤덤한 인상과는 달리 무척 다정한 말을 건네는 이 사람은 서도화가 대형기획사에 있을 때 연습생들의 리더를 맡고 있던 사람 한야였다.
그는 또 왜 여기 있는 걸까.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어떤 의미로는 가장 이유를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서도화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한야가 머쓱하게 미소지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대표님의 부탁으로 몇 달 전부터 여기서 연습하고 있어.”
김유진이 소속사를 차리며 함께 데려온 직원들이 몇 있는데 한야는 그중 하나였다.
김유진이 보유한 첫 연습생으로 그는 이곳에서도 연습생들을 통솔하는 역을 하고 있었다.
“아! 그렇네, 한야는 아는 사이겠구나. 잘됐네. 그럼 빨리 친해질 수 있겠네. 도화라고 편하게 불러도 되지? 난 너희 매니저 이병수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매니저 이병수가 친밀하게 다가와 인사하곤 연습생들에게 서도화를 소개했다.
“이쪽은 어제 말했던 서도화.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실력이 좋거든. 다들 긴장하고 서로 도와가면서. 어, 알았지?”
“네.”
“각자 통성명은 알아서 하고.”
매니저의 말에 연습생 무리 중 가장 어려 보이는 연습생이 서도화의 눈치를 보며 어색한 말투로 인사했다.
“도화 형?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는 주상현이라고 합니다. 올해 17살이구요.”
표정을 보아 낯가림이 심한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나름 용기를 낸 주상현의 인사였지만 안타깝게도 서도화의 시선은 잠시 주상현에게 향했다가 짧은 인사만 마치고 다시 아덴과 마왕에게로 고정되었다.
‘쟤네가 왜 여기서 연습생으로…….’
얼마 전까지 죽자고 달려들어 싸우던 마왕과 다신 만날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동료. 그런데 그들이 각자 무기를 버리고 뜬금없이 이곳에서 함께 연습생을 하고 있으니 잠깐이라도 신경을 끄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뭐야 너네 왜 조용해? 도화가 내가 알기론 너희랑 동갑이거든? 괜히 기 싸움 하지 말고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 좀 해봐.”
이병수의 말에 아덴이 슬쩍 그의 눈치를 보더니 결국 먼저 걸음을 뗐다.
“저희 원래 아는 사이에요. 도화, 잠시 이리로.”
그러곤 도화의 팔과 마왕의 멱살을 각각 양손에 잡은 채 연습실 밖으로 이끌었다.
그들의 뒤로 심려가 잔뜩 낀 주상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들 또 싸우러 가는 거 아니죠…?”
* * *
마왕이 살아있다. 그런데도 불구 아덴과 마왕이 죽고 죽이지 않는 것도 우스운 일인데 그놈들이 이 세계에서 사이좋게 기획사 연습생을 한다?
거기다 이미 기획사와의 계약을 끝냈다고? 데뷔조라고?
서도화는 이미 복잡해질 대로 복잡해져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팽팽 굴리며 그나마 현실성 있는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알고 보면 평행우주였다던가. 요새 영화에서도 멀티버스가 유행하더만.’
아니. 그러기엔 그 세계와 이 세계는 너무도 다르다.
‘내가 그 세계를 너무 그리워하고 있었다거나.’
그것도 아니다. 물론 떠들썩한 새벽이 조금 생각나 울적하긴 했었지만 아직 그리워할 단계까진 아니었다. 거기다 그 세계 화장실은 최악이다.
“도화?”
서도화가 한참이나 말이 없자 아덴이 툭- 그의 팔을 건드렸다.
“괜찮냐?”
한구석에선 마왕이 이를 박박 갈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네놈, 드디어 찾았군.”
“……우와 미치겠네.”
마왕 특유의 말투를 듣는 순간 다시 서도화는 그 세계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어 빠르게 소름이 돋아났다.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아직 이 세계에 완전히 적응한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너희가 왜 여기에…….”
“역시 여긴 네 세계가 맞았군.”
서도화가 혼란스러워하든 말든 아덴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서도화가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걸 아덴만은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 세계로 넘어온 순간 자신이 서도화의 텔레포트에 휩쓸려 들었다는 걸 빠르게 눈치챘다.
그래서 지금까지 서도화를 찾고 있었다.
“아니 왜 여기 있냐고.”
“내가 알겠냐? 정신 차려보니 저 새끼랑 이곳에 있었거든.”
아덴은 깊게 한숨을 쉬더니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로 엄지로 마왕을 가리켰다.
“일단 힘 못 쓰는 것 같아서 주워서 감시 중이다. 모르는 곳이라도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또 날뛰면 곤란하니까.”
“힘을 못 쓴다고?”
서도화가 마왕을 쳐다보자 마왕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힘을 못 쓰는 건 서도화가 그의 핵, 힘의 근원을 빼앗았기 때문일까.
“이 회사엔 어떻게 들어온 거야?”
“그것도 이 새끼가.”
아덴이 또 한 번 엄지로 마왕을 가리켰다. 대충 어떤 방법을 썼는지 알 것 같았다.
역시 마왕은 마왕. 핵을 뺏겼어도 약한 고유 마법을 사용할 정도의 마나는 있었나보다.
“…일단 알았다.”
서도화는 더 이상 그들이 왜 이곳에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세계로 넘어오기 직전 아덴과 마왕이 그에게 다가오는 걸 보지 않았던가.
사실 원래의 텔레포트 마법 또한 일정 공간 내로 들어오는 것들은 죄다 이동시켜버리므로, 스케일이 차원으로 확대되었어도 그들까지 넘어온 게 생각보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열받는 일일 뿐이지.
“일단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말해줘.”
그보다 서도화가 궁금한 건 이들이 대체 어쩌다 아이돌 연습생이 되었는지다.
즉, 그들이 이곳에 온 이후의 생활이었다.
* * *
재앙이라 불리던 마왕을 처치한 날, 세계 최고의 음유시인이자 치유사인 서도화가 마왕의 핵을 손에 쥐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동료들은 아마도 그가 여정이 끝났다는 생각에 여운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덴만은 알고 있었다.
이제 곧 서도화는 사라진다. 저 핵을 손에 쥔 이상 그와 마주하고 대화할 시간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서 팀의 리더로서, 서도화의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친우로서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려 할 때였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 발밑에 있던 마왕이 순식간에 그를 날려버리고 사라졌다.
“도화!”
“뭐해! 얼른 붙잡아!”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방심한 찰나였다. 아덴이 간신히 상황을 파악했을 땐 이미 마왕이 사력을 다해 서도화에게로, 자신의 핵을 되찾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아덴도 움직였다.
서도화는 최고의 치유력을 가졌지만 그뿐이다. 아무리 죽어가는 마왕이라 한들 서도화에게 그와 직접 대적할 전투력은 없었다.
그렇게 아덴과 마왕의 손이 동시에 서도화에게로 뻗어진 순간.
“얘들아, 행복해라. 잘 있어.”
아쉬움과 후련함이 뒤섞인 목소리와 함께 서도화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 세계였다.
재앙도 오염도 없이 평화로운 또 하나의 세계. 사람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으며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녔다.
아덴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이 서도화가 언젠가 말해준 적 있던 그의 원래 세계라는 걸 알아차렸다.
‘내가 어째서 여기에, 차원 텔레포트에 휩쓸려온 건가?’
아덴이 한 발짝 내디뎠다. 그 순간 텔레포트에 휩쓸린 사람이 자신 외에 더 있다는 걸 깨달았다.
“으윽…….”
일어날 힘조차 없는지 간신히 눈을 뜬 채 누워 말없이 겨우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마왕이었다.
마왕을 내려다보는 아덴의 눈은 한없이 싸늘했다.
‘이 벌레 같은 새끼.’
지금 죽여버려야지.
아덴이 허리춤을 만지작거리다 ‘응?’ 이상함을 눈치채고 몸을 더듬었다.
무기가 없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힘을 쓸 수 없었다. 분명 몸 안의 마나는 충만한데 그게 형태로 표출되지가 않았다.
“뭐지?”
“죽이려면 죽여라.”
“어, 지금 그러려고. 잠깐만.”
세계가 다르니 그럴 수도 있지 뭐.
아덴은 대충 납득하고 마왕의 몸 위로 올라탔다. 그러곤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커억!”
“반송장 새끼 힘 못 쓴다고 못 죽이는 것도 아니고.”
마왕이 아덴의 팔을 붙잡았다. 목이 꺾일 듯 조여들고 숨이 막혀왔다. 분명 살아가기를 포기했을 터인데 숨이 막혀 오니 본능적으로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아덴의 팔을 잡은 마왕의 양손에 검은 마나가 감돌기 시작했다. 아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넌 뭔데 마법 사용이 가능하냐? 빡치네.”
죽어가는 게 마력만 분에 넘치게 많아서는.
아덴이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마왕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아이고! 뭐 하시는 거예요! 여기서 이러시면! 그만해요 학생!”
“……뭐?”
“이 사람 진짜 죽어요! 그만해! 아니 친구끼리 이렇게 심하게 싸우면 안 되지! 그만! 경찰 부른다?!”
귀족 같은, 아니 귀족보다는 수수한 차림의 여자가 헐레벌떡 달려와 아덴을 잡아당겼다.
“제발 이러지 말고 말로 해! 아이고 세상에, 친구는 벌써 죽사발이 됐네! 이게 얼마나 나쁜 행동인지 몰라?!”
“누구지?”
여자는 아덴을 마왕의 위에서 끌어내리려 애쓰는 모양이지만 수년간 단련했던 아덴이 누가 당긴다고 당겨질 작자는 아니었다.
아덴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여자의 팔을 쳐냈지만 일단은 순순히 마왕의 위에서 내려왔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에게 잔인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숨을 헐떡이며 안심하고 있는 이 여자. 다 죽어가는 마왕보다 도움이 될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