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4화 (4/270)

제4화

“당신 이름은?”

“당…신?”

아덴의 물음에 여자는 그를 아래위로 훑었다.

“어려 보이는데…….”

“그게 왜? 이름이 뭐냐니까?”

“흠, 그건 학생이 알 필요 없고. 그것보다 친구랑 잠시 휴전하고 일단 부축해 일으켜봐. 저 정도면 병원 가야 해. 돈은 있어?”

“…….”

“쓰읍! 진짜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얼른!”

상당히 오지랖 넓은 여자다. 자기가 뭔데 싸우지 말라느니…….

하지만 오지랖이 넓기 때문에 오히려 도움받기 쉬울지도 모른다.

아덴은 순순히 마왕을 부축했다.

“무슨 짓이냐 이 건방진 놈….”

마왕이 강력히 거부하며 발버둥 쳤지만 이미 힘이 빠진 그의 몸부림은 아덴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일단 치료부터 받으러 가자. 부모님한테 전화는 나중에 하고. 아니다. 구급차를 부르는 게 빠르려나? 아니야, 일단 타.”

어쩐지 굉장히 당황해선 횡설수설 혼잣말을 내뱉던 여자는 두 사람을 자신의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뭐야 이 이동 수단은?’

마치 말 없는 마차 같기도 하고 연금술사의 작품 같기도 했다. 속도는 무척 느려터졌지만.

아덴은 애초에 급한 이동이면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텔포 값이 비싼가 보지.’

어쩐지 귀족치고는 수수한 차림이라고 생각했더니 가난한 가문의 여자인 모양이었다.

아덴이 마왕을 쳐다보았다. 핵이 사라진 게 크긴 했는지 그의 상처가 치료되지 않고 그대로였다.

“아니, 싸운 거야 괴롭힌 거야? 말로 하고 주먹다짐 없이 잘 지내면 얼마나 좋아? 지금이야 내 말이 잔소리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회 나가면 너 분명 지금 한 행동 후회한다? 어? 내 말 꼭 새겨들어야 한다. 어떻게 애를 죽사발로 만들어 놓냐? 어휴, 너 학교 어디야?”

아덴은 여자의 잔소리를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차가 병원에 도착하고 마왕은 아덴의 부축을 받아 치료를 받았다.

마왕이 치료를 받는 사이 아덴의 곁에 앉은 여자가 힐끔거리며 그를 보았다. 그러다 움찔거리더니 몸을 아덴에게로 완전히 돌리고 본격적으로 그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아덴이 불쾌한 얼굴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뭐야.”

“또 반말. 너는 그게 멋있다고 생각하니?”

“뭔 소리야. 왜 쳐다보냐고.”

“흠, 음, 아이 미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무리 급하기로서니.”

동급생을 죽사발로 만든 꼴을 보아 사고도 충분히 친 것 같은데. 여자는 무슨 이유에선지 아덴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구겼다.

그러다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다……. 아무것도.”

혼자 중얼거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씁쓸해 보이는 건 아덴의 착각일까.

그러나 그녀의 씁쓸한 표정은 치료가 끝난 마왕을 만난 뒤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학생 괜찮아? 부모님 전화번호가 뭐야? 경찰에 신고해줄까? 세상에 얼굴을 완전히……!”

케이가 그녀를 힐끔거렸다. 그러자 여자가 말을 멈췄다. 걱정스럽던 그녀의 표정이 영문 모름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내가 여기 왜…….”

“귀찮게 하지 마라. 인간.”

여자의 뒤에 서 있던 아덴이 인상을 구겼다.

마왕의 주특기 정신조종.

이 여자의 머리에서 자신에 대한 기억을 날려버린 모양이었다.

여자는 눈앞에 죽사발이 된 마왕을 보곤 흠칫하더니 그대로 뒤로 물러섰다.

그러곤 병실을 나서려다 움찔 그들에게서 멀찍이 서 있는 아덴을 발견하곤 한참 얼굴을 뚫어지게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덴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마왕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기억이 지워진 이상 저 여자는 아덴과 인연이 없어진 셈이다.

“나와. 네가 무슨 인간한테 치료를 받아?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때였다.

“저기요.”

멀찍이서 다른 일을 하는 척 아덴을 힐끔거리던 여자가 아덴에게 말을 걸어왔다. 분명, 기억이 사라져 제 갈 길을 가야 할 텐데?

“제가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요.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여자가 아덴의 앞으로 무언가를 내밀었다.

손바닥 반 정도 되는 뻣뻣한 종이에 글씨가 적혀있었다. 신기하게도 분명 아덴이 모르는 글자인데 읽을 수 있었다.

유제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김유진

그러나 글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한들 그 의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유제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김유진.

원래 있는 말인지부터 의심되었다. 이런 단어는 평소 특이한 말을 많이 쓰던 서도화에게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암호인가?’

김유진은 머쓱하게 웃으며 목덜미를 쓸었다.

“저는 이런 사람인데요! 아, 들은 적 없겠지만, 하하 신생이라. 그런데 절대 사기는 아니에요. 내 이름 인터넷에 쳐 보면 나오니까 한번 쳐봐도 되고.”

“……인터넷?”

“너무 잘생기셨는데 혹시 몇 살이세요? 아이돌에 관심 있어요? 음, 지금 입고 있는 건……혹시 연극배우?”

그 순간 아덴의 눈이 빛났다.

아이돌.

평소 동료들끼리 ‘모든 일이 끝났을 때’에 대한 대화를 나눌 때마다 서도화가 입에 올리던 단어였다.

‘도화, 넌 마왕이 죽으면 뭐 할 건데?’

‘아이돌 할 거야.’

‘아이돌? 그게 뭔데?’

새로운 동료가 생길 때마다 이런 대화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었다.

그리고 방금 눈앞의 여자가 ‘아이돌’에 관심 있냐고 물었다.

그럼 당연히 긍정의 대답을 꺼낼 수밖에 없다.

“관심 있다.”

“있…다?”

“아이돌에 대해 알고 있나?”

김유진은 무턱대고 나오는 반말에 조금 짜증이 치밀었지만 웃었다.

저 싸가지 없는 태도는 일단 데려와서 고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아무튼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저 본래의 색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붉은 머리카락, 반항적인 눈매와 날렵한 턱선, 큰 키와 다부진 몸, 깨끗한 구릿빛 피부.

그냥 보내기엔 비주얼이 너무 아깝다.

너무나 돈 되는 아이돌 페이스였다.

“알고 있죠 당연히!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알죠. 관심 있어요? 그럼 따라와서 얘기 좀 들어볼래요? ……아, 혹시 저기 저 환자분 일행이세요? 그럼 다음에라도 연락 줘요.”

김유진의 말에 아덴은 경계하는 듯 보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야기를 듣겠다. 물어볼 게 많겠군. 그리고 저자는 내 일행이 아니다.”

아덴은 그렇게 말하곤 케이를 힐끔거렸다. 마나는 사용이 가능하고 입은 여전히 살아있지만 당분간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도망치는 것도 못 할 정도로 조져놨기에.

그로부터 반나절, 김유진은 아덴을 교묘하게 구슬려 카메라 인터뷰와 간단한 노래를 시켰고 이후 자신의 소속사 연습생으로 들어올 것을 권유했다.

아덴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지, 아니 적어도 자신의 동료 서도화를 찾을 때까지 춤과 노래, 다른 인간과의 사교를 조건으로 숙식 제공을 하겠다는 김유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주일 후, 김유진은 마왕의 비주얼에서도 또 하나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어둡고 침침하고 우울한 분위기, 창백한 피부에 인형같이 또렷한 이목구비, 연약해 보이는 얼굴과 마른 몸.

김유진은 그 또한 놓칠 수 없었다.

“친구야 너는 연예계에 관심 없어?”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군. 죽고 싶나? ……크윽 젠장, 나에게 핵만 있었어도.”

마왕이 제 왼손을 만지작거렸다.

음…. 아덴과는 다른 의미의 강적이었다. 어쩌면 좀 더 심각할지도 모르겠다.

치사량의 중2병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연습생 부족에 시달리는 김유진에게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녀는 똑같은 방법으로 병원에서 퇴원한 마왕 또한 꼬드겼고 힘을 쓰지 못하는 마왕은 싫은 내색을 하면서도 한참을 고민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따르겠다.”

그도 아덴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파악해야 했다. 살아남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재기를 도모하는 동안 최소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이 세계에서 자신이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그도 연습생이 되었다.

마왕은 힘을 쓰지 못했고 아덴은 인간을 해하지 않는다.

전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에서의 생활은 매우 고되었지만 두 사람은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럭저럭 적응해갔다.

이 세계의 예의범절과 규칙들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갈 때쯤 두 사람의 앞에 서도화가 나타난 것이다.

* * *

“이곳에 온 뒤로 계속 널 찾았어. 찾아서 다행이다.”

아덴은 어째서인지 말투가 바뀌어있었다. 이곳에 적응한 탓인가 예전보다 좀 더 가볍고 부드러운 말투였다.

“그래, 별일 없었냐?”

갑작스런 아덴과 마왕의 등장에 숨 쉬는 걸 까먹을 정도로 놀랐던 서도화는 자초지종을 듣고 어떻게든 납득할 수 있었다.

텔레포트에 휩쓸리는 일이야 저쪽 세계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상황이 급작스럽기도 했으니까.

또, 아덴의 외형과 마왕의 인간화된 모습은 이 세계의 사람들이 보기엔 퍽 잘생긴 모습이었다.

“나보고 노래 부르고 춤춰보라고 하길래 너 따라 해봤어.”

“아, 오디션도 봤구나.”

“그래서 네가 자주 부르던 거 불렀지. 난 노래 그런 거 모르니까.”

아덴은 오디션이 끝나고도 한참 지나서야 자신이 오디션 때 부르고 서도화가 늘 흥얼거리던 노래가 이 세계의 노래라는 걸 알았다.

사실 아덴이 부른 노래는 서도화가 제2세계로 넘어가기 전 월말 평가 곡으로 준비하던 곡이었다.

“차라리 잘 됐어.”

서도화가 말했다. 아덴이 텔레포트에 휩쓸렸다면 이런 방식으로라도 빨리 만나는 편이 나았다.

물론 이들이 연습생이 된 건 정말로 뜬금없었지만 그 덕분에 자신과 빨리 만나게 된 건 틀림없었다. 특히 이 세상에 대한 상식이 없을 둘이 큰 사고를 치기 전에 자신을 만난 건 실로 다행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상황에 대해 납득은 했어도 서도화에겐 아직 두 가지 의문점이 더 남았다.

첫 번째는 별거 아닌 궁금증.

굳이 말로 꺼내 질문하진 않겠지만 마왕도 연습생이라는 말은 오디션을 봤다는 말인 걸까?

아덴이야 원래부터 부끄럼 없는 성격이긴 했다. 원래 용사라는 게 수줍음을 타서는 해먹기 어려운 직종이다.

그렇지만 마왕 저 녀석은 중2병 아니었던가. 실제로 이세계에서 마왕을 처음 봤을 때는 정말 신세계였다.

‘하등한 인간’이니 어쩌니 저런 낯부끄러운 말을 눈도 깜빡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었다.

아무튼 그런 놈이 하등한 인간들의 앞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며 오디션을 봤다는 게 영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마왕이든 아덴이든 이 회사에 있다는 건… 안타깝게도 이 회사는 아티스트의 인성을 그리 신경 쓰는 곳이 아닌가 보다. 혹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거나.

‘혹시 그래서 나를 데려온 건가?’

무단 잠수, 연락 두절은 했지만 실력은 있으니까! 라는 마음으로 캐스팅했다거나…….

서도화는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아덴, 너 그래서 결국 아이돌이 무슨 직업인지는 알아?”

그러자 아덴이 활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모르지? 그냥 춤추고 노래 부르면 되는 거 아니야?”

서도화의 얼굴이 형편없이 찌그러졌다. 아니, 일단 이건 연습이 끝난 후 이야기해보기로 하고.

아직 두 번째 궁금증이 남았다.

왜 두 사람이 싸우지 않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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