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서도화를 제외한 연습생들이 연습실 가운데를 비우고 구석으로 물러섰다.
“오디션 보러 다니고 했다며. 준비해뒀던 곡 있을 테니까 그거라도 한번 해봐. 아니면 자신 있는 다른 곡으로 해도 되고.”
“그럼, Hello, My Berry로 부탁드릴게요.”
그의 입에서 망설임 없이 선곡이 나왔다.
Hello, My Berry는 소울 R&B 장르의 팝송으로 매우 느린 곡이지만 리듬이 좋아 댄서들이 자주 쓰는 곡이었다.
이 곡에 춤을 추는 사람은 많았지만 소울 알앤비인 만큼 보이스와 테크닉이 무척 능숙해야 하는 어려운 곡이라 보컬로 커버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서도화의 신청곡을 들은 한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외의 선곡이네.’
서도화의 목소리는 말하자면 무척 청명하고 깔끔한 보컬, 소울 알앤비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서도화 또한 제 목소리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는지라 월말 평가 등에서 소울 알앤비를 부른 적은 없었다.
아무리 중요한 평가가 걸린 상황은 아니라도 모두가 보고 있으니 나름 신중하게 고른 곡일 텐데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반년 동안 새로운 테크닉이라도 생긴 걸까?
그러나, 서도화는 별생각이 없었다.
‘얼른 끝내고 연습하자.’
갑작스럽게 실력을 선보이는 자리가 생겨 딱히 떠오르는 곡도 없었고 트레이너의 행동을 보아하니 무슨 곡을 하든 평가가 안 좋을 것 같아서 가장 최근 연습했던 곡을 말했던 것뿐이다.
진짜 잘하는 곡은 아껴두고, 댄스트레이너의 퀘스트, 아니, 요구니까 춤추기 좋은 곡으로.
대신 이 곡이라면 서도화의 창작 안무까지 준비되어 있어 나름 애쓰고 있다는 어필도 될 거란 계산도 깔려 있긴 했다.
“부끄럼 없는 건 좋네.”
트레이너가 말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는 칭찬할 건 하는 사람이었다.
보통 다른 기획사에서 연습하다 온 연습생들도 새로운 기획사에서 대뜸 혼자 춤을 춰보라고 하면 머뭇거리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연습생들을 지적하던 트레이너에게 빠릿하게 선곡을 말하고 준비하는 서도화의 행동은 칭찬할 만했다.
연습생이든 이미 데뷔한 가수든 어디에서도 부끄럼 없이 노래하고 춤추는 게 업인 사람들이 아닌가.
그나마 데뷔한 가수가 부끄러워하면 일종의 수줍은 매력으로 포장이라도 할 수 있지 연습생들에겐 무조건 마이너스다.
물론 칭찬을 해도 별 감흥 없어 보이는 건 건방지게 느껴졌지만.
“한야야 곡 좀 찾아줘라.”
“네.”
트레이너와 한야가 노트북으로 곡을 찾고 있는 사이 서도화는 거울을 통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트레이너가 온 뒤에도 확실히 다른 기획사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스태프가 몇 명이야.’
이 회사는 적당히가 없다. 아깐 처량하다 싶을 정도로 사람이 없더니 트레이너가 온 뒤론 연습실 안에 들어온 스태프 수가 대형기획사의 배는 많았다.
유제이의 대표 김유진부터 매니저 이병수, 소개조차 받은 적 없는 직원들까지, 연습생 수보다 지켜보는 스태프 수가 더 많았다.
연습생들에 대한 회사의 관심이 엄청난 것, 이건 보유한 아티스트가 없는 신생 기획사만의 특징일까?
어쨌거나 이 회사의 희망은 스케줄도 없는 이들 다섯 명이 전부였으니까.
서도화는 마치 뒤늦게 오디션을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연습실 내 모두의 시선이 서도화를 향해 있었고 아덴과 마왕 또한 서도화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아덴이나 마왕은 서도화가 피 터지는 전투 속에 홀로 유유자적하게 하프 뚱땅거리며 흥얼거리는 모습이나 많이 봤지 제대로 춤추고 노래 부르는 모습은 처음 보기에 유독 관심을 가지는 듯했다.
“그럼 음악 틀겠습니다. 도화야 MR 없어서 그냥 틀게.”
“네.”
한야가 노래를 재생시켰다.
AR를 틀었기에 원곡자의 노랫소리가 그대로 나오는 상황, 원곡자가 워낙 굵은 저음의 소유자라 서도화의 목소리가 자칫 허술하게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서도화는 굴하지 않고 댄스와 함께 힘차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패시브 : 정화] 발동!
더는 볼 일 없을 거로 생각했던 텍스트창이 서도화의 눈앞에 나타났다 빠르게 사라졌다.
“……어어?”
그리고 연습실 내에 있던 사람들은 서도화가 노래를 부르는 순간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착각이 아니고 무척 잘 부른다는 걸 돌려 말한 것도 아니고 그걸 넘어서 진짜 이상한 기분, 현상 말이다.
실내임에도 불구하고 상쾌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드럽게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은은하게 퍼지는 아침 이슬과 싱그러운 풀잎 향기.
마치 이른 새벽 보성녹차밭을 홀로 거니는 듯한 이 느낌은!
밤샘 업무와 무한 퇴짜에도 굴하지 않는 줄서기 영업으로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이 고운 목소리는!
이 느낌은 뭐라고 해야 할까, 마치…….
“피톤치드…?”
누군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서도화의 캐스팅을 반대했던 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어라?”
트레이너 테리 또한 멍하니 소리를 내며 자신의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손목 통증이 사라진 것 같은…….”
‘왜지?’
오래전부터 고질병처럼 자신을 괴롭혀왔던 손목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 순간 서도화가 노래와 춤을 멈췄다.
“선생님, 준비한 건 여기까지입니다.”
서도화가 노래를 멈춘 순간 피톤치드를 온몸에 들이붓는 듯한 이상한 경험도 끝이 났다.
“…어? 아…버, 벌써?”
“네? 한 곡 더 할까요?”
“아니! 아, 아니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도대체 뭐였지? 도무지 이해되진 않았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댄스트레이너가 댄스 말고 노래에 집중할 만큼, 집중하다 못해 이상하고 엄청난 감명을 받을 만큼 서도화의 보컬 실력이 무척 뛰어나다는 것.
유제이는 절대 서도화를 놓쳐선 안 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한편 서도화는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치유술이 발동될 줄이야.’
노래와 춤을 추는 와중 트레이너의 손목이 치료되고 있다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음유시인 서도화의 패시브 스킬 ‘정화’.
그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악한 감정이 껍질 벗겨지듯 한 겹씩 정화되며 그 영향력은 타락의 강도가 심할수록 커진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와 노래 좋다’, ‘기분이 맑고 편안해진다’, ‘감명깊다’ 정도의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는 수준에 그치지만 타락한 자, 이를테면 마왕과 그가 이끄는 마족의 경우 육체적인 타격은 없어도 일시적으로 기절할 만큼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이 스킬은 전투 시 때때로 광역 스턴 용, 시간 끌기 용 등등으로 유용하게 쓰였었다.
몇 번 듣다 보면 내성이 생겨 일정 기간 정화가 통하지 않는 단점이 있는 대신 확률적으로 마나 소모 없이 치유술이 발동되기도 한다.
이 능력은 노래로 감명을 줘야 하는 직업 특성상 이곳에서도 쓰기 참 좋은데 쓸데없이 치유술이 발동될 때가 있어 문제다.
노래를 부를 때마다 발동되는 패시브 기술 ‘정화’는 대충 착각이라고 모르쇠로 잡아뗄 수 있지만 상처 치료는 정말 곤란하다.
‘상태창…….’
돌아온 이후 시스템 창 또한 볼 수 없게 되어 어떻게 해야 랜덤 기술을 바꿀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확실히 보컬은 죽이네요.”
넋이 나간 얼굴로 말하는 테리에 서도화가 생각을 지우고 그를 마주 보았다.
그는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자신의 고쳐지다 만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연습실 내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노래에 경험한 적 없던 깊은 감명을 받았다.
따단따단따다단~
마치 요리왕 비룡의 BGM이 크게 울려 퍼지는 듯했다.
충격적으로 맛있는 음식을 맛본 것처럼 이 신비로운 경험의 여운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음색도 좋고 실력도 무척 좋았다. 그러나 단순히 음색과 실력이 좋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도화만의 장점이 있었다.
노랫소리만으로 이렇게 감명을 주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흔한 일인가?
그것도 아직 데뷔도 안한 연습생이?
‘데스티니는 이런 애를 내놓은 거야?’
……대박인데?
“확실히, 기대주였을 만하네요!”
“저런 게 바로 재능이지!”
서도화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은 불과 몇 분 만에 그에 대한 편견이 싹 사라졌다. 오히려 이런 천재가 들어오다니 박수라도 크게 쳐 주고 싶었다.
“잘하네!”
노래와 춤을 끝낸 뒤부터 멀뚱히 서 있던 서도화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준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이, 이렇게 묶어서 픽스되면 도화가 메인보컬 하면 되겠네!!!”
“와, 와아아아!”
아니 서도화밖에 할 사람이 없다. 더 이상 서도화의 데뷔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마음이 서도화의 정화 스킬이 발동되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줄기차게 이어지는 칭찬에 서도화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데스티니 엔터테인먼트의 기대주, 세계를 구한 영웅, 최강의 음유시인답게 그는 칭찬에 몹시 익숙한 인간이었다.
한편 서도화의 노래에 놀라지 않고 여운 또한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미 그의 정화에 내성이 있는 아덴.
대신 그는 서도화의 노래보단 그의 마나 사용에 더 주목했다.
‘역시 도화도 능력 사용에 제한이 없군.’
이전 마왕을 치료했던 치유뿐만 아니라 서도화 고유의 능력, 정화마저 문제없이 발동되었다.
‘그럼 마나 사용이 불가능해진 건 나 뿐인가.’
서도화는 방금 제2세계에서 사용하던 것과 거의 동일한 힘을 사용했고, 마왕 또한 핵을 빼앗겨서 그렇지 마나 사용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똑같이 텔레포트를 했건만 아덴만 마나 사용이 막혔다. 아덴은 그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아아…… 으윽!”
그때 갑자기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신음에 아덴이 생각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마왕 케이가 앓는 소리를 내더니 제 심장을 부여잡고 주저앉아 덜덜 떨고 있었다.
“어어! 케이?”
“케이 형! 왜 그래요!”
그러더니 식은땀을 흘리며 풀썩, 세상 가녀린 몸짓으로 쓰러졌다.
아덴과 서도화를 제외한 멤버와 직원들이 당황하며 케이에게 모여들었다.
“진짜 기절했어?”
“괜찮아? 케이!”
“얘 갑자기 왜 이래? 아예 정신을 잃었어!”
“구급차 불러! 얼른!”
“구급차 부르는 것보다 저희가 병원으로 옮기는 게 빨라요. 제가 업을게요. 병수 형, 차 좀 앞에 대기시켜주세요.”
“어, 그래!”
케이를 두고 모두가 난리 난 사이 조금 놀란 얼굴로 멀뚱멀뚱 상황을 지켜보기만 하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한야의 등에 업힌 케이의 창백한 몰골을 보며 아덴이 중얼거렸다.
“연약한 놈.”
서도화도 중얼거렸다.
“아차차.”
깜빡했다. 생각해보니 케이는 마왕이었다.
재앙 덩어리, 타락한 인간, 부정한 자.
제2세계에서도 서도화의 정화 능력은 마왕에게 일시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
그런 강력한 힘을 핵을 빼앗겨 상당히 약해진 케이가 정통으로 두들겨 맞았으니 속절없이 정신을 잃는 건 당연했다.
마치 아까 전 치유를 받았을 때와 같이 상처 난 부위에 빨간약을 들이붓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