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8화 (8/270)

제8화

서도화의 입사 신고식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케이는 병원에 실려 갔다.

어수선한 분위기는 금방 진정되었다. 직원들이 말에 의하면 케이는 워낙 체력이 약한 터라 자주 쓰러진다는 모양이었다.

수십, 수백, 수천 명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던 마왕이 이곳에서는 병약 미소년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참나… 그래도 데뷔할 생각이 있기는 한가 보죠? 아파도 연습실은 나온 걸 보면.”

트레이너 테리는 케이가 나간 연습실 문을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그는 서도화만큼이나 케이를 싫어하는 게 티가 났다.

그러나 케이나 서도화에게뿐만 아니라 원래도 불만이 많은 사람인지 그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자, 아무튼 이제 진짜 연습 좀 하자.”

테리는 짝짝 손뼉을 치며 냉랭해진 연습실 분위기를 풀었다.

트레이너와 연습생 담당 매니저를 제외한 김유진과 직원들이 나가고 진짜로 연습이 시작되었다.

불안할 정도로 시종일관 태평하고 여유롭던 이들은 트레이너가 오고서야 비로소 연습생다운 연습을 보여주었다.

“하나, 둘, 셋! 아니 아덴! 어제랑 똑같은 걸 연습하는데 또 틀리냐!”

“죄송합니다.”

“한야! 아덴이 돌아보지 말고 거울 속 네 모습을 봐!”

“네.”

케이를 제외한 첫 단체 연습은 그럭저럭 할 만했다. 테리는 베테랑 트레이너답게 짧아도 영양가 있는 시간으로 레슨을 채워나갔다.

오랜만의 그룹 연습은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서도화는 혼자서나마 이미 연습했던 거고 연습생 짬밥이 있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더구나 함께 연습하는 이들의 과반수가 전투로든 댄스로든 이미 호흡을 맞춰본 사람들이라 처음치고는 합도 무척 잘 맞았다.

문제는 케이가 다시 연습실로 돌아온 직후 새로 시작하게 된 두 번째 곡부터였는데 서도화가 오기 전부터 연습하던 첫 번째 곡과는 달리 처음 추는 안무에 연습생들의 동선이 꼬이기 시작했다.

“케이야 뭐하냐! 동작 순서 바뀌었잖아. 아덴!”

“네?”

“집중 안 해?! 도화 시선 거울 보라니까?”

지금 배우는 것이 댄서들의 창작 안무로 그에 맞게 어려워서 더 그런 면이 있었다. 사실 처음 맞춰보는 안무에 곧잘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

이들 중에선 그나마 주상현 정도뿐이었고 아덴은 따라가는 것도 벅차하는 수준이었다. 케이는 논외.

그래서 서도화의 시선은 자꾸 아덴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아덴의 특기인 따라 하기, 흉내 내기가 전혀 안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좋은 능력을 안 쓰고 트레이너에게 혼이 나고 있는 거지?’

물론 트레이너가 영혼을 갈아 교육을 시켰는지 춤을 추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들고 있긴 하지만…….

“참나, 잘하는 애들도 이러면 어떡해? 주상현, 서도화. 너희도 정신 똑바로 차려. 그리고, ……하아.”

테리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덴과 케이를 보고 있었다. 이 연습생들 전체가 실력이 없는 게 결코 아니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5위까지 갔던 주상현과 데스티니 기대주였던 그 유명한 서도화, 7년이나 연습생 생활을 해온 한야의 조합이다. 실력이 부족할 리 없었다.

문제는 이 세 사람의 실력을 압도할 정도로 시선을 뺏어가는 ‘주요 폭탄’들의 부족함이다. 보통은 구멍이라고 하겠지만 이들은 폭탄이라고 함이 옳았다.

‘김유진 대표는 왜 폭탄을 둘씩이나 데려와선…….’

이 업계에서 비주얼은 최우선 순위로 중요한 취급을 받는 게 맞지만 요즘엔 얼굴만 잘생겨서는 데뷔해도 욕만 먹는다.

사실 아덴은 한참 헤매다가도 나중엔 어느 정도 따라잡으니 참작이 되지만 케이에 이르러서는 답이 없다.

테리는 한숨을 쉬며 지적을 이어나갔다.

한편 서도화의 입사신고식쯤 도착했던 보컬 트레이너 서리는 레슨을 구경하며 시종일관 함박웃음이었다.

‘복덩이가 들어왔네!’

지금까지의 모든 고민이 춤추며 대충 흥얼거리는 서도화의 노래를 들은 이후 씻은 듯이 싹 사라졌다.

지금까지만 해도 시종일관 예민하게 구는 테리보다 서리의 고민이 더 심각했다. 댄스는 댄스가 특기인 멤버라도 있지 보컬은 내세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야, 주상현은 평균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었지만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메인보컬은 없었다.

그로 인해 골머리를 싸매다가 김유진과 논의한 끝에 서도화의 캐스팅이 결정된 것이었다.

‘잘 부른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목소리, 감정, 테크닉 전부 완벽하다. 지금까지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봤지만 노래를 들으며 경이롭다, 소름 돋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느낀 건 처음이었다.

이런 노랫소리에 홀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솔직히 이쯤 되니 그룹으로 데뷔하는 게 아까울 정도다.

‘이제 됐어! 걱정 안 해도 돼!’

아덴과 케이만 노력해주면 이제 이 새로운 그룹은 최소한 보컬 실력으로 욕은 안 먹는, 아니 욕을 먹기는커녕 보컬이 가장 큰 장점인 그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곡 연습이 한창일 때 다시 연습실로 돌아온 김유진은 희비가 갈린 두 선생님들의 표정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선생님들 표정이 왜 저래?”

날이 갈수록 핼쑥해졌던 지금까지와 달리 매우 흡족한 듯한 보컬 트레이너 서리, 그에 반해 똥 씹은 표정으로 지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댄스 트레이너 테리.

매니저 이병수가 김유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메인보컬이 복덩이라고 좋아하고 계십니다. 테리 씨는 뭐, 네. 아시잖아요.”

연습생들을 한참 지켜보던 김유진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갔다.

“잠깐, 휴식. 그래도 한야랑 케이, 아덴은 쉬지 말고 계속 연습해. 쉴 수 있는 놈들은 잘 따라오는 애들 뿐이야. 서운해? 그럼 열심히 해서 잘하든가.”

김유진은 무슨 생각인지 연습 내내 근심 가득한 얼굴이다가 결국 휴식 시간이 되자마자 매니저와 트레이너를 연습실 밖으로 불러내었다.

* * *

“뭐지? 대표님 표정 되게 안 좋지 않았어요?”

주상현의 물음에 아덴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너무 못해서 그런가.”

김유진이 심각한 표정인 경우는 무척 드물다. 특히 연습생들 앞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불안해하는 두 사람에게 한야가 고개를 저으며 케이와 아덴을 끌고 연습실 가운데에 섰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우리 상황 어떤지 물어보시려는 거겠지. 아덴, 케이는 나랑 연습하자.”

한야가 말하자 아덴은 연습실 문 한번, 서도화를 향해 한번 시선을 두더니 잠자코 대답했다.

“네.”

서도화는 감탄했다.

저 사이코한테 사회성이 생겼다.

제 잘난 건 알아서 초면에 반말부터, 적에겐 일단 칼부터 박고 보는 아덴이 아니었던가. 아덴이 첫 대화를 시작하면 어디서든 쫓겨나기 일쑤라 언제나 정보수집과 숙소 구하기는 서도화, 그리고 대마도사 하이넬의 몫이었다.

‘예의범절을 가르친 건 역시 한야 형이겠지.’

저런 불량청소년, 아니, 그냥 불량배를 휘어잡을 만한 사람은 한야밖엔 없었다.

한야와 아덴, 케이가 다시 연습을 시작하자 주상현이 힐끔힐끔 서도화의 눈치를 보다 가까이 딱 붙어왔다.

프로젝트 그룹일 당시 멤버들에게 무척 사랑받는 막내, 낯가림 심해도 친한 형에게는 잘 달라붙는 막내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던데 방송에서의 이미지 그대로의 성격인 모양이다.

서도화에게 쉽게 말을 붙이진 못했지만 친해지려 애쓰는 게 눈에 보였다. 서도화가 그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상현아. 아덴이랑 케이,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

“아! 음…….”

주상현의 커다란 눈이 위로 향해 굴러가다 ‘아!’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낯을 많이 가리면서 혼자 생각할 때는 묘하게 소란스러운 성격 같다.

“그래도 한 4-5개월은 됐을 거예요. 제가 여기 온 지 3개월 째니까.”

“너보다 두 사람이 먼저 들어왔어?”

“네, 처음 보고 깜짝 놀랐어요. 무슨 판타지 영화에서나 볼법한 사람들이 둘씩이나 있어서.”

가만히 있으면 졸려 보일 법한 눈매, 주상현의 옅은 쌍꺼풀이 수시로 올라갔다가 내려가길 반복하며 자신이 아덴과 케이의 미모에 얼마나 놀랐는지를 표현해주고 있었다.

“응… 잘 생기긴 했지. 저 둘이.”

판타지 영화는 아니고 실제로 판타지 세계에서 튀어나오긴 했다.

“들어보니까, 아덴 형이랑 케이 형 이번이 연습생 처음이라면서요? 저런 얼굴로 유제이 들어온 것도 신기해요. 분명 대형기획사도 노려봄 직한 비주얼인데.”

“그러게. 데스티니에서도 저 정도로 잘생긴 애들은 못 본 것 같아.”

데스티니 엔터테인먼트는 ‘데스티니상’이라는 말도 대중화되어있을 정도로 더럽게 얼굴을 밝힌다.

그런 곳에서도 아덴과 케이 정도의 외모는 찾기 힘들었다.

“특히 아덴 형은 힘이 좋고 몸도 좋아서 춤출 때 뭔가 간지 나요. 아직 많이 헤매긴 하지만…….”

한번 말이 트이자 쉼 없이 말하던 주상현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얼굴도 시무룩해졌다.

실드를 치고 싶지만 아덴과 케이가 헤매도 너무 많이 헤매고 있는 모양이다.

“또 유연하고…….”

일단 꺼낸 말을 마무리하기는 해야 하니 애써 칭찬을 이어 가지만 점점 우중충해지는 목소리에 서도화가 말했다.

“기본적으로 몸은 좀 쓸 거야.”

마왕 케이는 이곳에서 완전히 병약 미소년이 되어 어떤지 몰라도 아덴은 기본적으로 몸을 잘 쓰고 근육이 무척 유연하다.

“지금은 헤매더라도 감만 잡으면 점점 잘하게 되는 녀석이니까 걱정하지 마.”

전투에서 생사의 기로를 거치며 자연스럽게 관찰력이 좋아지고, 선천적으로 눈이 좋아 몸을 쓰는 거라면 뭐든 흉내를 잘 낼 수 있다. 아직 춤을 추는 것에 대한 테크닉은 없어도, 시간만 주면 안무를 완벽히 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원래 아는 사이라고 했었지.’

주상현은 아덴에 대한 실드 아닌 실드를 쳐 주는 서도화를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근데 형,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주상현이 이번엔 연습 중인 아덴의 눈치를 힐끔 보더니 서도화에게 더욱 가까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곤 조심스레 속삭였다.

“아덴 형이랑 케이 형이요. 무슨 게임 하는 거예요?”

“뭐?”

서도화가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인상을 찌푸리자 주상현은 토끼 눈이 되어 어버버거렸다.

“아니, 그게…… 평소에 형들 말하는 거, 무슨 게임에서 따라 하는 건가 궁금해서요…….”

딱히 두 사람의 흉을 보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서도화는 두 사람과 친구라고 했었으니 말투를 지적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화가 났으면 어쩌지 하고 주상현이 주저주저하고 있을 때, 서도화는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게임 컨셉이야.”

“네?”

“게임 같은 컨셉으로 노는 거라고.”

컨셉이라는 것 외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이 세계에서는 일상에서 쓰이는 말투가 아니라서 딱히 변명할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대충 대답했다.

그런데 주상현은 그걸 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덴 형이랑 케이 형이 생각보다 죽이 잘 맞는 거였구나. 항상 죽도록 싸워서 몰랐어요.”

“평소 둘이 싸울 땐 어떻게 해결해?”

“한야 형이 걷어차요.”

“……뭐?”

“무슨 이야기 중이야?”

두 사람의 소곤거리는 소리에 한야가 다가오며 물었다.

“아덴 형이랑 케이 형 싸울 때 어떻게 해결했냐에 대해서요.”

주상현이 서도화 대신 대답하자 한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태연히 말했다.

“말 잘 듣던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