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마왕을 찾는 여정 중엔 마을에 잘 들리지 못했고 그로 인해 갓 잡은 짐승이나 풀, 심지어는 몬스터 고기로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
그 특유의 잡내가 싫었던 아덴은 요리기술을 배워 와 길바닥 짐승 요리에 접목하곤 했다.
그 맛없는 고기도 맛있게 요리했었으니 이곳의 식재료는 더더욱 요리하기 쉬웠을 거다.
“먹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 번갈아 가면서 하자고 했는데 싫대.”
“싫을 거예요.”
나름 미식가 기질도 있는 터라 아마 요리 담당을 자처한 건 자신이 먹을 요리를 실력도 모르는 남한테 맡기기 싫어서였을 거다.
“야생에서 재료를 구해다 먹는 것보다 재료가 제한적이니 이것밖에 할 수 없다니까.”
“야생? 아! 마X크래프트요? 저 그건 알아요!”
“…….”
아덴은 어떻게든 어울리려고 노력 중인 주상현의 말을 무시한 채 냉장고에 있는 음식으로 간단한 요리를 준비했고 멤버들은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억지로 끌려온 케이는 여전히 거북한 표정으로 혀를 차며 말했다.
“난 원래 절대로 인간과 동석하지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더럽- 으윽!”
아덴이 케이의 어깨를 꽉 쥐며 툭 말했다.
“주는 대로 처먹어.”
“케이, 혹시 멤버들한테 불만이 있으면 같이 밥이라도 먹으면서 대화로 푸는 게 어때?”
한야가 끝까지 숟가락을 잡지 않는 케이에게 말했다. 서도화는 이 상황을 지켜보다 강제로 케이에게 수저를 들려주었다.
“먹든지 안 먹든지 네 마음대로 해. 근데 안 먹으면 진짜 치우고 안 줄 거야.”
그래도 밥 굶기는 싫었는지 그제야 케이는 머뭇거리며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서도화에게는 주상현의 질문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오디션 어디 어디 봤어요? 형 정도면 오라는 곳 많을 것 같은데. 저 전에 다니던 곳에서 형 이름 되게 많이 들어봤거든요.”
“그래?”
“유명하잖아요. 데스티니가 밀어주는 연습생으로. 진짜 부러워하는 사람들 많았어요.”
쉽게 울적해지다 쉽게 들뜨는 게 꼭 대형견 같았다.
낯을 엄청 가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멤버 중 가장 말이 많다.
유제이는 한동안 연습생들이 들어오지 않았고 워낙 회사 규모가 작아 들어올 리도 없다고 생각하는 와중 한야에 이어 대형기획사 출신이 들어왔으니 궁금한 점이 많은 건 이해하지만.
‘그럼 뭐하나. 이젠 대형기획사 연습생도, 기대주도 아닌데.’
현실은 아무도 모르는 소속사의 환영받지 못하는 연습생일 뿐이다.
서도화는 대답 대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서도화의 표정이 좋지 않자 한야가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아덴은 도화랑 어떻게 아는 거야?”
“도화와의 관계라…….”
한야의 질문에 아덴은 진지하게 고민하다 말했다.
“도화와 나는 아주 특별한 관계다. 도화라면 내 목숨을 맡길 수 있지. 우린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험을 함께한 동-”
서도화가 빠르게 아덴의 입을 막고 말했다.
“그냥 소꿉친구예요.”
생사고락을 함께했으니 대충 소꿉친구와 맞먹는 사이지 않겠나. 적어도 함께 이상한 취급 받는 것보단 대충 얼버무리는 게 나았다.
“우와, 소꿉친구!”
“생각보다 더 오래된 사이였네.”
“그럼 케이 형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주상현이 묻자 흥미 없이 현관 쪽을 바라보고 있던 케이가 움찔하며 주상현을 바라보았다.
“뭘 그런 걸 묻지?”
“아니 그냥, 솔직히 케이 형이랑 도화 형은 같은 반이라도 안 친해질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두 사람 성격이 상극처럼 보이긴 하지.”
한야가 최대한 좋게 포장해 말했다. 며칠을 지켜본 결과 서도화와 케이는 누가 봐도 남들보다 서로 아는 건 많아 보였지만 절대로 친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지인이거나 되려 사이가 안 좋은 관계 정도? 그런데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는 무척 특이한 사이.
‘뭐라고 말해야 하지?’
서도화가 필사적으로 얼버무릴 단어를 생각하던 찰나 케이는 눈에 힘을 준 채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음유시인, 언젠가는 죽일 것이-”
퍼억!
서도화가 소리가 날 정도로 케이의 입을 세게 막곤 한야에게 고개를 저었다.
“게임에서 만났어요. 제 게임 속 직업이 음유시인이요.”
대충 그런 걸로 치자.
케이는 불쾌한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서도화의 손을 내팽개쳤다.
“네놈! 내가 핵만 되찾으면 음유시인 네 녀석부터 찢어 발겨주지! 감히 네깟 게 내 말을 막아? 분노가 차오르는군.”
서도화가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저었다.
“보시다시피 중2병이에요. 이해해주세요. 데뷔 전까지는 고쳐놓을 테니까.”
곁에 있던 아덴이 서도화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끄덕였다.
“도화랑 같이 고쳐놓을게요.”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싸우지 말고 잘 지내보자.”
“네, 걱정 마세요.”
서도화는 시끄럽게 소리치는 케이의 등을 토닥였다.
“케이. 이제 진짜 그만해.”
네 핵 밟아 터트려버리기 전에.
서도화의 작은 속삭임에 칼부림이라도 할 듯 화를 내던 케이는 창백해져선 덜덜 떨다 밥그릇 뺏는 시늉을 하고서야 마지못해 자리에 앉았다.
“밥 굶기는 싫은 모양이야. 밥 하나에 자존심이 좌지우지된다니 누가 더 미개한지 모르겠네.”
아덴이 서도화에게 소곤거리는 사이 한야는 제 휴대폰을 확인했다.
“밥 빨리 먹어야겠다. 대표님께서 할 말 있으시다네.”
“할 말이요?”
“응, 팝넷에서 올해도 경연 프로그램 내는데 그거 관련해서. 출연이 고려되고 있나 봐.”
“아…….”
멤버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아덴은 영문 모름, 케이는 무관심, 한야는 꽤 반가운 기색인 반면 주상현과 서도화는 복잡미묘했다. 복잡미묘함을 넘어 어두웠다.
‘팝넷 경연 프로그램이면…….’
매년 데스티니 엔터테인먼트가 투자자로 참여하는 그 방송일 것이다.
몇 년에 걸쳐 시리즈로 방영되는 경연 프로그램들은 모두 데스티니 엔터가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매 시즌 데스티니 연습생이 높은 확률로 선발 멤버가 되는 게 실력이 좋아서만은 아니라는 건 업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상황에 이름도 없는 소속사 출신 연습생들이 프로그램에 도전한다? 거기다 그중 일부가 데스티니를 등지고 나온 연습생이다?
어떻게든 분량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할 고생길이 너무 훤히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서도화는 알고 있었다.
그룹 자체는 크게 걱정이 없다.
아무리 작은 기획사라도 유제이는 평범한 곳이 아니다. 한야가 이곳에 있을 때 깨달았다.
강 실장이 다른 곳도 아니고 서도화를 유제이에 소개해준 이유. 데스티니 대표가 가장 예뻐한다는 막내아들 한야가 하필 시스템도 잘 갖추어져 있지 않은 유제이에 있는 이유는 이곳도 데스티니와 깊은 연관이 있는 소속사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데스티니 소속사 대표 후배라는 김유진이 기획사를 차리며 유사 데스티니의 계열사 혹은 자회사 같은 관계가 되었을 터.
데스티니가 투자자인 방송에 데스티니 대표 아들과 함께 출연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악편은 비켜 갈 수 있다고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
다만 서도화의 표정이 어두운 건 그곳에서 만날 연습생 외의 출연진들, 그리고 물론 착한 편집이라도 아슬아슬하지 않을까 싶은 멤버 구성이다.
데스티니가 지원한 방송이라면 출연하는 트레이너, 심사위원 등등 데스티니에 연관된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크니까 테리처럼 서도화를 안 좋게 보는 출연진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
“다들 되든 안 되든 강제 참가고, 상현이는…….”
한야가 말을 멈추고 주상현을 바라보았다. 경연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주상현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한야는 주상현을 위로하듯 등을 두드렸다.
“상현이는 명단 넣기 전에 대표님께서 잠깐 보자시네.”
“아… 네.”
사실 서도화만큼이나, 아니 서도화보다 훨씬 곤란한 사람이 주상현이었다.
주상현은 이미 한번 서바이벌 프로 경험자에 프로젝트 그룹으로 한번 데뷔까지 한 멤버.
다시 연습생으로 돌아가 경연 프로그램에 참여하기엔 부담도 부담이고 스스로 자존심도 무척 상할 터다.
주상현과 같은 프로젝트 그룹 출신 멤버들은 이미 각자 다른 그룹, 또는 솔로 가수로 데뷔했는데 혼자 진전없는 소식을 팬에게 들려주는 셈이니 더더욱.
“뭐…….”
주상현은 한야를 보지 않고 괜히 스트레칭을 하다 눈썹을 으쓱하고 입꼬리만 옅게 올렸다.
“해야죠. 어쩌겠어요. 지금 제가 상황 가릴 처지인가.”
“네 상황이 뭐. 상현아 왜 기가 죽어서 그래. 우리 중 제일 잘하고 있으면서.”
“근데 형, 저도 전데요. 진짜로 멤버 모두 강제 참가인 거예요?”
“어? 응.”
주상현이 아덴과 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시선이 완전히 케이에게로 옮겨갔다.
밥 잘 먹고 또 난리를 치려다 서도화가 급하게 제압해서 서도화의 밑에 깔린 상태였다.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는 주상현은 아덴과 케이가 상처받을 걸 걱정하고 있었다.
과연 케이를 악편의 성지, 팬덤 싸움과 치열한 순위 경쟁의 도가니탕, 칼같이 지적하고 울리고 굴리는 서바이벌 프로에 내보내도 되는가.
두 사람에게 악의적인 감정은 없지만 경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악편의 희생자가 되고, 했던 말이 와전되어 시청자들에게 욕먹고 고생하던 수많은 연습생들을 봐왔기에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아아 그거?”
주상현의 소심한 발언을 찰떡처럼 알아들은 한야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사실 처음엔 걱정 많이 했는데 괜찮을 거야. 다 같이 서로 도와가면서 하면. 물론 두 사람이 협조도 잘 해줘야겠지만. 그리고 지금은….”
한야의 손이 서도화의 어깨에 무겁게 올라갔다.
“도화도 있잖아? 아덴이랑 케이가 그래도 도화 말은 잘 듣더라고. 친구라서 그런가.”
서도화가 입꼬리만 올려 억지로 미소 지었다.
언제부터 자신이 용사와 마왕 보호자 노릇을 하게 된 건지. 음유시인은 뒤에서 묵묵히 하프 띵땅거리고 있어야 정상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기도 뭐한 포지션이긴 해서 그냥 대답 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아, 그렇구나. 그렇네요! 도화 형이 있으면 괜찮겠네요!”
그러자 주상현도 깔끔히 납득하며 시무룩하던 표정이 밝아졌다.
서도화가 온 뒤로 아덴도 굉장히 온순, 협조적으로 되었고 케이는 어쩐지 좀 더 맛이 가긴 했지만 그나마 강제적으로라도 협조시키는 게 가능해졌다.
“어쨌든 자세한 건 나중에 알려주신대. 기왕 참여하게 된 거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해보자.”
싫든 좋든 실력이 있든 부족하든 이 소속사의 연습생들은 기회에 선택권이 없다.
데뷔해서 성공 문턱이라도 넘보려면 무조건 출연해서 최선을 다해 성적을 만들고, 성적이 안 된다면 하다못해 이슈라도 되어야 했다.
“으윽.”
그때, 서도화의 몸에 깔려 있던 마왕 케이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깜박했다. 미안.”
서도화가 서둘러 몸을 치우자 케이가 인상을 팍 찌푸리며 서도화를 노려보았다.
“음유시인 네놈, 나를 눌러 죽일 셈이지!”
“아니 그런 거 아닌데. 아팠어?”
애초에 서도화는 능력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었던 제2세계에서조차 마왕을 죽일 힘은 없었건만.
서도화가 묻자 케이가 멈칫 눈을 키우더니 시선을 피했다.
“…신경 쓰지 마라.”
그때 이미 밥 다 먹고 그릇을 싱크대로 옮기던 아덴이 슬쩍 다시 어깨를 눌러버렸다. 케이는 누르는 대로 찌그러져 몸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아파, 아프다! 아덴. 오금이 당긴다.”
“평소에 얼마나 연습을 안 했으면 몸이 이렇게 뻣뻣하냐. 어?”
“역시 케이도 친구들끼리 있으니까 좀 얌전해지는구나. 이제 데뷔까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케이도 열심히 하자.”
흐뭇한 한야의 말에 서도화와 케이, 아덴이 동시에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저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