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3화 (13/270)

제13화

유제이 연습생들의 곡 커버가 시작되었다.

도입부. 주상현과 서도화가 대형의 앞으로 나서서 전주의 페어 댄스 파트를 분위기 있게 이끌어 나가고 다른 멤버들도 그에 맞춰 천천히 걸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리고 중앙에 선 서도화가 노래를 시작했다.

“……어?”

헤드셋을 통해 들어오는 서도화의 노랫소리.

오대준이 낄낄거리던 그대로 웃음을 멈춘 채 굳어버렸다.

‘아, 아름다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수준의 음색,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대리님?”

옆자리 PD의 의아한 부름에도 오대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헤드셋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얘, 얘 너무 잘 부르는데?”

오죽하면 놀라서 다시 돌려볼 뻔했다. 단순히 참가 지원 영상일 뿐인데 받은 감명은 엄청나게 대단했다.

넋을 놓은 채 서도화의 파트만 집중해서 듣다 보니 눈치채지 못한 사이 어느새 곡은 2절로 넘어가 있었다.

“얘네 통과.”

그제야 정신을 차린 오대준이 툭 던지듯 말하고 씨익 웃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연습생들을 봐서 그런가? 갑자기 피로감이 싹 가셨다.

어쩐지 말똥해진 눈으로 다시 그들을 보니 곡과 그룹의 분위기가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이들이 무대 위에서 이런 대중적인 곡을 부르고 거기에 팬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지는 듯했다.

오대준은 유제이가 보낸 파일을 기획팀으로 전달하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마디 적어 보냈다.

[장난 아닙니다^^]

* * *

김유진이 콧노래를 불렀다.

적어도 모집 기간 끝나고 2주는 기다려야 오지 않을까 했던 밀리언 아이돌 참가 지원서에 대한 답변이 정말 빠르게 돌아와 기분이 몹시 좋았다.

메일로 들어온 피드백이 칭찬 일색인 것을 보아 김유진의 작전이 완전히 통한 듯했다.

일부러 케이가 카메라를 켜게 해서 비주얼을 보여주고, 도입부에 주상현과 서도화에게 페어댄스를 시켜 주상현의 존재를 알렸다.

그리고 첫 파트를 서도화에게 맡겨 PD가 그의 음색에 감탄하며 되려 뒤에 있을 케이, 아덴의 미숙함에 덜 신경 쓰도록 유도했다.

‘미숙해도 괜찮아. 실수만 안 하면 돼. 이틀간 실수만 안 하도록 준비해오자.’

거기다 멤버들에게 이렇게 말해두었더니 정말로 아덴과 케이가 실수는 안 하는 수준으로 연습을 해서 와준 덕에 몰입도가 깨지지 않은 것도 통과에 한몫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완전 괜찮은데?’

무사히 합격 발표를 받은 김유진의 표정이 무척 밝다.

단순히 합격을 위해 달린 이틀간의 노력이었지만 그녀는 이번 지원 영상을 찍으며 이들의 조합이 생각 이상으로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아직 이들만의 확실한 강점은 경연 전까지 찾아봐야 할 부분이지만 분명 오합지졸로 보이던 이 그룹이 스파르타로 가르쳐 전략적으로 내놓고 보니 퍽 괜찮았다. 새삼스럽지만 역시 자신은 보는 눈이 좋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서도화, 주상현, 한야야 말할 것도 없고. 아덴은 빡세게 연습시키며 조금 부담감을 쥐여주니 실력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늘어갔다.

케이는 정말 부족할지언정 이미지만 어떻게 바꿔놓으면 노력파 정도로 꾸며낼 수 있을 법하다.

서도화와 주상현의 실력이 극단적으로 좋아서 그렇지 생각보다 그리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케이, 제발 케이만 협조를 잘해준다면 충분히 기대를 걸어봐도 될-

“그런데 대표님.”

“으엉?”

김유진이 행복한 상상을 하는 와중 한야가 무덤덤하게 물었다.

“멤버는 정해졌는데 저희 그룹 이름은 뭔가요? 혹시 정해두신 거라도 있으신지.”

“아, 음.”

그렇다. 잠시 다른 생각으로 빠졌지만 지금 김유진은 멤버들과 앞으로 진행될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한야의 물음에 김유진을 포함한 직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표정이 상당히 난감해 보였다. 김유진은 머뭇거리다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갑작스럽게 경연 프로 이야기를 들어서. 아직 그룹 이름은 생각 중이야. 너희 이름인데 세련되고 좋은 이름으로 지어야지.”

한야는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변함없이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혹시 저희 의견도 받아주시나요? 그럼 멤버들이랑 이것저것 생각해볼게요.”

“아! 좋지. 여러 가지 생각해서 가져와. 우리가 가져온 거랑 나열해놓고 논의하면 되니까.”

“네!”

“그럼 할 이야기는 다 했고, 다음 주부터 고정 트레이너 선생님이 오셔서 지도해주실 거야. 이제 연습하러 가.”

김유진이 얼버무리듯 대화를 마무리하고 멤버들을 연습실로 보내버렸다.

첫 촬영까지 남은 날은 두 달, 스케일이 큰 만큼 여유로운 시간을 받았지만 지금 멤버들의 상태를 생각했을 땐 무척 모자란 시간이다.

수많은 그룹과 라이브 스트리밍 공연으로 경쟁해서 지지 않으려면 실력을 갈고닦고 단합을 도모해가며 잠 시간도 줄여 연습해야 했다.

* * *

그날 저녁, 서도화는 꽤 비장한 모습이었다.

그의 시선은 케이에게로 향해 있었다.

본격적인 경연 프로 촬영이 시작되기 전 서도화에겐 공연 준비 외에 하나 더 중요한 임무가 있었다.

“케이.”

서도화가 케이를 부르자 케이는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벌떡 일어섰다.

“네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라! 너에게 호명을 허락하지 않았다.”

매섭게 지르는 소리에 주상현이 움찔 숟가락 든 손을 멈춘 채 케이를 힐끔거렸다.

“형…….”

“괜찮아.”

서도화는 케이를 바라보며 태연히 말했다.

“너 이 집에서 쫓겨나고 싶냐?”

“……!”

“협조 안 하면 해고야. 집에서 쫓겨나. 힘도 없는 게 쫓겨나면 어쩌려고? 네 꿈이 뭐였지?”

“세계 정, 아니, ……내 영토에서 숨을 거두는 것이다.”

어쩐지 케이의 눈이 착잡해졌다.

“뭐라는 거예요? 아덴 형, 두 사람 뭐 하고 있는 거예요?”

혼란스러워하는 주상현에게 아덴은 밥을 크게 한 숟가락 퍼먹으며 말했다.

“어, 게임 이야기.”

그렇게 말하라고 서도화가 시켰다. 서도화가 케이를 의자에 앉히고 다시 숟가락을 쥐여주었다.

“쫓겨나서 굶어 죽기 싫으면 점잖게 행동해. 케이. 왕답게.”

케이는 억울한 듯 입을 우물거리다 작게 한마디 내뱉었다.

“이 집엔 내가 먼저 들어왔다.”

“여기가 네 세상이야? 네가 어린애야? 딱 보면 몰라? 누가 쫓겨나기 직전의 상황인지. 다시 해. 케이, 밥 먹기 전에 뭐라고 해야 한다고?”

케이는 머뭇거리다 안색이 새파래진 채 띄엄띄엄 말을 꺼냈다.

“잘… 먹겠습니다.”

“잘했다. 먹어.”

촬영이 시작되기 전 연습과 더불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 바로 마왕의 주제 파악과 사회화 교육이었다.

* * *

“안…녕하세요.”

일주일 만에 다시 멤버들을 회의실로 불러들인 김유진과 유제이의 직원들은 일동 경악했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설마 방금 케이가 인사한 건가?

진짜로?

케이가 분명히 회의실에 들어오면서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김유진을 포함한 직원들은 케이가 입사한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에게서 인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천지가 개벽할 일인가. 케이가 인사를 하다니.

물론 표정을 보아 멤버들이 강제로 시킨 게 분명하지만 원래 같았으면 모두 무시하고 직원들의 눈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을 거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케이의 인사에 멍하니 있던 직원들은 뒤이어 들려오는 멤버들의 활기찬 인사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케이가 인사해주니까 너어무 좋다. 웬일이야?”

김유진의 물음에 서도화가 케이 대신 대답했다.

“이제 방송에도 나가는데 예의 바르게 행동할 때도 됐죠.”

“그래, 너희끼리 데뷔를 향한 의지를 불태우고 열심히 하는 건 너무 좋은 일이지. 그럼 회의 시작할까? 우선 컨셉에 대해서.”

“우리 애들은 다들 잘생겨서 무슨 컨셉을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A&R팀 직원이 노트북을 돌려 화면을 보여주었다. 폐허가 된 건물, 건물을 타고 올라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들, 오염된 공기.

어째 익숙한 풍경의 그림이었다.

“스토리 하나를 만들어볼까 싶어. 이번 경연 프로그램이 우리에게는 정말 좋은 기회인 게 새로운 곡, 새로운 뮤직비디오를 뽑지 않아도 기존의 곡으로 너희들의 세계관이나 분위기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대형기획사가 아닌 이상 처음부터 큰 투자를 받아 시작할 수 있는 그룹은 몇 없다.

유제이는 이번 밀리언 프로그램의 모든 무대를 통해 스토리의 전개까진 아니더라도 그룹만의 이미지를 구축해놓을 생각이었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우승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차피 방송은 멤버들의 데뷔를 위한 사전 작업이니까.

그때 서도화가 물었다.

“그럼 저희 컨셉은 아포칼립스인가요?”

“왜 별로야?”

“아니요. 별로는 아닌데…….”

그게 다야? 싶긴 했다. 이 정도 컨셉은 굳이 스토리 세우지 않더라도 아이돌들이 이따금 하는 컨셉 아니던가.

무려 100팀이 누가 누가 더 튀냐, 더 잘하냐 겨루는 판국에 조금 더 독특함, 유니크함, 임팩트를 찾아야 할 때다.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돌 중에 판타지, 아포칼립스 컨셉 가진 그룹 하나쯤은 무조건 있다.

그런데 만약 컨셉이 겹치는 아이돌이 유제이보다 자금력이 있다면 어지간히 특이하지 않은 이상 그대로 이들은 묻힐 텐데.

“거기서 하나 더 내세울 만한 점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아포칼립스는 스토리, 컨셉이고 그룹만의 특색이요.”

“그룹의 특색… 음, 테리 씨. 의견 있으세요? 애들이랑 연습하면서 느꼈던 장점이라거나.”

그룹의 특색? 트레이너 테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더니 짜증스레 한숨을 쉬었다.

그가 이 그룹의 특색을 생각해봤을 리 없었다.

그래서 그는 무턱대고 짜증을 냈다.

“대표님 애초에 시간제 트레이너로 애들 가르쳐서는 얘네 매력이 뭐고 강점이 뭐고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아요.”

“아니 그래도 같이한 세월이 있는데.”

“도화 같은 경우는 겨우 일주일 전에 만났고 그 외에도 하루 한두 시간 보는 게 고작이라. 말할 만한 건 아덴이 굉장히 근육을 잘 쓰고 유연하다 정도? 크게 내세울 만한 장점을 찾고 개발하기엔 상당히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요.”

“고정 트레이너분 오시면 그분한테 물으시는 게 더 도움이 될 거고요.”

김유진이 한숨을 쉬었다. 콧대 높고 말을 생각 없이 해도 유명한 트레이너라 한두 시간이나마 배우라고 데려왔더니 이렇게 무책임하게 말을 할 줄이야.

테리는 미안함은커녕 김유진을 가르치듯 말했다.

“다른 애들은 그래도 다른 소속사에서 실력 쌓고 온 애들이지만 아덴이랑 케이는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거든요? 애초에 기본기 없는 연습생들은 저 같은 사람한테 배우게 하면 안 돼요.”

“아 네, 일단 알겠고요.”

더 이상 테리와 대화하기 싫어 고개를 돌리던 김유진의 시야에 번쩍 손을 든 서도화가 보였다.

“도화 왜?”

“대표님, 아덴이랑 케이 아크로바틱 잘해요.”

“뭐?”

서도화가 아덴과 케이를 가리켰다. 김유진이 아덴과 케이, 테리를 번갈아 보자 테리는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춤 기본기가 엉망이라 아크로바틱 시켜볼 생각은 전혀 못 했죠.”

“아덴이랑 케이는 아크로바틱 할 줄 알았으면 할 줄 안다고 말을 하지.”

김유진의 말에 아덴이 물었다.

“아크로바틱이 뭡니까?”

“…….”

할 수 있는 거 맞아? 의구심 가득한 김유진의 눈빛에 서도화는 확신을 가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덴이 춤은 잘 못 춰도, 케이가 아무리 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유약해져도 저들은 영웅들의 리더, 용사였고 마왕이었다.

이 세계로 와서 아무리 유약해졌다고 해도 매일매일 상상도 못 할 전투 속에서 유사 아크로바틱 하며 살았던 놈들인데 쓰던 기술 어디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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