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7화 (17/270)

제17화

우나나가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하늘 위로 그림자가 졌다.

“응?”

우나나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들려 연습실 천장을 보았을 때, 케이가 날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허공에 붕 떠 있던 케이가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자 이번엔 아덴이 케이의 등을 밟고 하늘을 날아올랐다.

‘이게, 테리가 말하던 텀블링?’

“쳇, 아덴 따위에게 내 등을 밟게 하다니! 이건 굴욕이다!”

“뭐, 한두 번 밟히는 것도 아니면서 거참.”

우나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문으로만 듣던 케이와 아덴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

그사이 헉헉거리며 아덴을 지켜보던 서도화와 주상현도 타이밍에 맞춰 공중제비를 돌았다.

서도화와 주상현 또한 며칠 새 아크로바틱 실력이 크게 늘었다.

그 순간 우나나는 깨달았다.

‘아, 이거구나.’

테리가 케이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던 이유, 이 급조된 그룹이 패기 좋게 100그룹 서바이벌에 참전하겠다는 이유.

이건 아크로바틱인가 파쿠르인가 혹은 묘기인가.

세상에 이런 일이.

아무튼 다른 그룹과는 확실히 다른 수준의 내세울 만한 게 있기 때문이었다.

* * *

유제이 엔터테인먼트 회의실.

주제를 전달받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회의에선 그룹 예선 선곡을 두고 직원들끼리 의견이 갈렸다.

특히 우나나와 보컬 트레이너 서리가 서로의 의견을 내세우며 긴 시간 동안 버티고 있었다.

“많은 그룹이 참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시선을 사로잡는 겁니다. 당연히 댄스를 잘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죠? 그게 컨셉인 애들인데.”

우나나의 말에 서리가 그를 언짢게 쳐다보며 코웃음 쳤다.

“아니 우나나 쌤, 제가 댄스를 안 살리자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우나나 쌤이 내놓은 곡은 애들 보컬을 살릴 수가 없다고 했지.”

“그럼 서리님 선곡은 댄스 잘 살릴 수 있고요?”

좀처럼 두 사람 사이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이 그룹의 장점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도화 노래 잘 부른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그래도 일단 저희 애들 컨셉이 아크로바틱이라고 하는데 가장 큰 특기부터 내세워야지, 노래는 회차 거듭할수록 차차 보여주면 되고요.”

“아니, 그냥 잘 부르는 게 아니라니까요? 숨 막힐 정도로 잘 부른다니까요? 완전 미쳤다니까요? 도화 보컬 실력도 그룹의 큰 특기고 정체성이에요.”

“그보다 댄스가 더 미쳤다니까요? 100그룹이나 나오는데 그 와중에 보컬 누가 신경 써요?”

“그건 보컬 무시하는 우나나 쌤 같은 사람이나 하는 말이고. 요즘 아이돌 팬들을 너무 모르시네. 애들 노래하는 거 들어보긴 하셨어요?”

“흥얼거리는 건 많이 들었죠?”

우나나는 아덴과 케이의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아크로바틱과 주상현의 댄스 실력을, 서리는 소름 돋을 정도로 사람을 홀리는 서도화의 보컬 실력을 제대로 살렸으면 했다.

“자자, 그만들 하세요. 어차피 두 가지 다 살려야 하는 거 아시죠? 거기다 요즘 K-POP은 대부분 댄스, 보컬 양쪽 다 잘 살립니다.”

김유진이 A4용지로 두 사람의 시선을 막았다.

“두 분 다 애들 장점 제대로 보여주시려는 욕심은 대표로서 너무 감사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너무 극단적인 선곡을 해오셨어요.”

“맞아요. 어차피 우리는 춤, 노래 같이해야 하잖아요.”

김유진과 직원들의 지적이 있고서야 두 사람은 겨우 입을 닫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싸움을 멈춰도 김유진의 찌푸려진 인상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흠, 근데 사실 오늘 의견으로 나온 곡 중에선 딱히 눈에 들어오는 건 없다.”

최대한 안 겹치는 곡, 아예 안 겹칠 수는 없지만 안 겹치도록 곡을 고르려니 영 이거다 하는 곡이 없다.

첫 무대에 어울릴 만한 유명한 아이돌 곡들은 많은 참가 그룹들이 선택할 테고 콘서트에서 자주 불리는 곡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그래도 좋은 곡은 다 겹치긴 하겠지.”

“그냥 곡을 만들면 되잖아요.”

한야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가히 유제이 최고의 부자다운 생각이다. 그러나 김유진의 표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굳이?”

“너무 초반부터 자본을 들이는 건 좀. 가면 갈수록 규모도 더 커질 테고 지금은 애써 곡을 만들어봐야 허무할 정도로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없을 거야.”

“거기다 시간도 없고.”

어떻게 하면 겹치지 않을 만한 좋은 곡을 가져올 수 있을까. 그런 곡이 과연 있기는 할까? 다들 회의적이었다.

정적이 이어지는 찰나 아덴이 서도화를 가리켰다.

“얘 잘해요.”

“뭐를?”

“노래 잘 만들어요.”

“…갑자기?”

아덴의 입장에선 갑자기가 아니었다. 노래를 직접 만드는 것에 동의한다고 에둘러 말했을 뿐.

곡을 찾기가 힘들다면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서도화가 재빨리 아덴의 옆구리를 찌르며 작게 말했다.

“말했잖아. 시간이 없다니까?”

“너한테 시간이 필요해? 하루면 되잖아.”

“조용히 해.”

“도화 곡도 만들 줄 알아?”

하여튼 아덴, 낄 때 빠질 때 구분 못 한다. 아덴은 지금 서도화의 음유시인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음유시인이었던 시절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게 일이었다. 때문에 꽤 좋은 곡도 많이, 그리고 빨리 만들어내며 즐긴 적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스킬을 사용해야 하니까 어린애 장난 수준으로 지어낸 곡일 뿐이었다.

물론 옛날 데스티니 연습생 시절 잠시 작곡을 배운 적은 있고 나중에라도 제대로 배울 생각도 있지만 아직은 기계를 다룰 줄 모르고 심지어 악보를 볼 줄도 모른다.

“도화한테 그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네?”

“그냥, 아니에요. 진짜 아닙니다. 전문적인 건 아니라서요.”

갑자기 화제가 왜 이리로 튀었냐. 서도화는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을 황급히 피하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빨리 곡을 정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합니다.”

“아, 그래. ……도하는 조금 있다 자세히 말해줘. 알겠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넵.”

“이제 다들 쉿, 한 십분 간 떠들지 말고 한번 생각해보자고. 이렇게 머릿수가 많은데 그럴듯한 생각 하나쯤은 나오겠지.”

습관적으로 한숨만 퍽퍽 쉬어대던 직원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경연에 나오는 첫 번째 곡, 아무에게도 관심받지 않을 수도 있지만 처음인 만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서도화 또한 생각에 잠겼다.

‘경연 주제인 한국 아이돌 곡을 차용하되 연습생들도 생소한, 히트곡이나 콘서트 등에서 주로 쓰였던 곡은 피하는 게 좋을 듯하고.’

아주 겹치지 않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아 또 이 곡이야?’ 하는 소리는 안 들을 만한.

음유시인 시절엔 나름 머리 쓰는 역할로 활약하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잘만 냈었는데 판타지 세상에서 이곳으로 돌아오며 머리까지 같이 굳었나.

서도화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뭐든 일단 조합해보기 시작했다.

아이돌 곡, 생소한, 음유시인, 판타지.

‘…어라?’

그 순간 스쳐 가는 한 가지 생각.

“게임 노래는 어때요?”

“…게임 노래?”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게임들은 출시될 때 아이돌 콜라보를 많이 하잖아요.”

원래의 세계로 돌아와 오디션용 곡을 선정하는 동안 생각보다 아이돌이 게임 주제가를 많이 불러서, 심지어 그게 또 너무 듣기 좋아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특히 AOS나 FPS게임의 곡 같은 경우 대체로 트렌디하고 비트가 빠른 게 많아서 편곡이나 댄스브레이크 만들기도 쉽다.

“게임 OST 중에서도 잘 알려진 히트곡이나 가수가 자기 앨범으로 정식 발매한 곡들 은근히 많아요.”

“오오, 그렇네요. 게임 곡이면 잘 겹치지도 않을 거고.”

직원 중 일부가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심지어 가수가 직접 발매한 곡 같은 경우 게임 관련 용어를 싸그리 없애고 나오기도 해 게임 노래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 가사가 난해하거나 이해가 잘 안 되는 일도 거의 없고.

‘아니라면 뭐, 회사가 알아서 하겠지.’

아무튼 서도화는 의견을 냈다.

어쨌거나 최대한 신선한 곡으로 이목을 끌어야 한다면 괜찮은 선택이 아닌가.

“예를 들면 이런 곡이요.”

서도화가 휴대폰을 뒤적여 오디션용으로 예전에 눈여겨봤던 게임곡 하나를 재생시켰다.

FPS게임 노래인데 인기가수 트리온이 불렀다. 게임 노래이지만 중독성이 강해 여러 너튜버들이 커버하며 유명해진 곡.

트리온이 이후 가사를 바꾸고 자신의 앨범을 통해 정식 발매를 해서 게임 주제가라는 걸 모르고 듣는 사람도 꽤 있을 거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곡. 역시 언제 들어도 몸이 저절로 움직여질 만큼 신나는 음악이다.

서도화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동시에 케이는 제 귀를 막았다.

Keep your eyes open and watch the country we're going to build

그대가 비웃은 우리는 어떻게 강해지는지

The crown at the top is mine

“대충 요런 느낌으로 부르면 좋지 않을까요? 영어 가사가 좀 많기는 하지만…”

“…….”

서도화의 말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서도화가 당황하며 직원들을 두리번거리는 차, 뒤늦게 “어.” 아덴만 간단한 대답을 꺼내놓았다.

눈을 껌뻑이며 3초, 겨우 직원들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우, 또 정신 놨네. 도화 노랫소리가 참 좋아. 자꾸 넋 놓게 된다니까?”

“그러니까요. 매번 들을 때마다 감격스럽다니까요. 이렇게까지 사람 감정 휘어잡기 쉽지 않은데. 도화야 네 목소리는 정말 엄청난 재능이다. 목 관리 잘해.”

“서리 쌤 또 시작이다.”

“아니 진짜 진짜! 예사롭지 않아. 난 진짜, 얘네 잘 될 거야. 이런 노래 실력에, 물론 다른 애들도 잘하는데 얘네가 잘 안 되잖아? 나 이 업계 뜨려고. 말도 안 돼.”

한편 서리가 극찬을 날리는 한편 우나나는 여전히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라…? 왜 눈물이…….

‘쟤 무슨 목소리가…….’

생각해보면 다른 멤버들이 흥얼거리는 건 들어봤지만 서도화의 노래는 들은 적이 없었다. 이렇게 잘 부르는 줄은 정말 몰랐다.

아니 잘 부르는 걸 넘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무언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고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자신감이 생기고 활기가 돌기도 하는.

아니, 이미 그는 케이와 함께 울고 있었다. 케이는 아파서 우는 거였지만.

“천상의 목소리…….”

“네?”

“…왓더, 내가 무슨 말을.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2병 걸린 학생도 아니고 이상한 말을 내뱉어버렸다. 우나나는 제 이마를 탁 치곤 활짝 웃으며 엄지를 추켜들었다.

“노, 노래 좋네! 확실히 편곡하기 좋겠어. 서리 쌤도 이 곡 좋지 않아요?”

“그렇네요. 보컬도 잘 살리겠고, 댄스 들어갈 부분도 확실히 들리고. 괜찮네요.”

주제가가 쓰였던 게임이 총 게임이라서 락앤롤스럽고 액션이 무척 잘 어울리는 곡이다.

“그럼 일단 곡은 이걸로 하고, 팝넷에 한번 물어볼게요. 게임 주제가 써도 되는지. 엄연히 말하면 주제가랑은 다른 가수 앨범 수록곡이지만 그래도 혹시라는 게 있으니까요.”

“네!”

“내일까지 답변받아 올 테니까 너희들은 이 곡 연습하고 있고. 아직 픽스된 곡이 아니니까 더 좋은 곡 있으면 그때그때 의견 줘요.”

“네, 알겠습니다!”

모두가 희망을 찾아 화기애애한 분위기. 오직 한 사람만이 웃지 못하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지?’

이세계에서 느꼈던 것의 배로 음유시인의 힘이 강하게 느껴졌다.

핵이 없기 때문일까? 이곳에 온 뒤로 유독 서도화의 노래를 들으면 몹시 마음이 아프고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지는 않지만,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서도화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드는 이 기분은….

그래, 죄책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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