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8화 (18/270)

제18화

최종적으로 선정된 곡은 서도화가 추천한 트리온의 First crown.

선곡이 정해지자 편곡과 녹음, 안무 등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갔다.

편곡은 한야의 부탁으로 데스티니 소속사의 프로듀서가 기꺼이 개인적으로 맡아주었고 우나나는 자신의 팀원들과 멤버들의 장점을 최대로 살린 안무를 만들어냈다.

연습은 쉼 없이 이어졌다. 밤까지 새어가며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방송국 제출용 안무 비디오를 촬영하는 날.

이맘때쯤 각 기획사 연습생들 사이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몇몇 회사 연습생들은 1라운드 주제 공개할 때 카메라 왔었다던데 진짜예요?”

주상현의 물음에 멤버들의 고개가 일제히 한곳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매니저 이병수는 당황하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누가 그래?”

“친한 연습생들이요. 소문이 자자해요.”

그의 말에 한야도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기획사 연습생들이 1라운드 주제 카드를 전달하는 장면을 촬영했다는 소문이지만 소문 아닌, 카더라지만 사실이 확실한 이야기들이 연습생들 사이 불만스레 돌고 있었다.

그래도 설마설마 벌써 분량 파이를 가져간 그룹이 있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병수의 창백해진 표정이 모든 걸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병수는 입을 꾹 다물고 멤버들의 눈치를 살피다 결국 이실직고 했다.

“그, 그랬다네.”

“그런 게 어딨어!”

“그, 근데! 본방에 들어갈 건 아니고 주제 예고에서나 쓰인대…….”

서도화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참 태평한 소리 한다.

그렇게 예고편에 나왔던 애들이 카메라에 대고 윙크라도 하면? 멤버들이랑 티키타카가 퍽 보기 좋으면?

사소한 것이 입덕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걸 이병수가 모를 리 없을 텐데 설마 저 말로 씩씩거리는 꼬맹이 주상현을 달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우리는 그냥 우나나 쌤이 말해주던데!”

주상현도 당한 게 있어서 저렇게 분통 터트리는 걸 텐데. 이병수가 회피하듯 너털하게 웃었다.

“하하! 진짜 그렇게 중요한 거 아니야. 상현아. 아무래도 데스티니 같은 곳은 높은 순위에 들 게 뻔하니까 좀 찍어두고 한 거지. 그-”

그러다 이병수가 입을 다물었다. 아이 젠장! 뭐 더 위로 또는 변명할 게 없다.

주상현을 보유하고 있는 그룹이 주제 공개에 촬영 요청이 없었던 건 그냥 소속사에 힘이 없기 때문이다.

혼자 분해하는 주상현이나 표정이 안 좋은 멤버들도 뼈저리게 알고 있겠지만 이들이 조금이라도 분량을 가져가고 대우받으려거든 소속사 빨이 없으니 열심히 해서 순위를 올리는 수밖엔 없다.

김유진이 암만 커피 사 들고 가서 인사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더라.

이병수가 씁쓸히 말했다.

“얘들아 미안해. 우리 순위 열심히 올리자. 이런 특별대우는 못 받지만 대신 우리가 너희 공연하는 데 최선을 다해서 지원할 거야. 그건 믿어도 돼.”

나름 진지하게 멤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는데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누군가의 눈치 없는 대화들이 들려온다.

“……우리 특별대우 못 받은 거였냐? 아, 설마 차별당했다고? 우리가?”

“……! 누가 감히 나를 핍박하는가!”

“좀 제발. 아덴, 케이. 입 닫아.”

서도화가 질색하며 두 사람의 입을 막을 때 한야가 가볍게 웃곤 말했다.

“병수 형이 뭐가 미안해요. 저희도 어쩔 수 없는 거 알아요.”

그리고 주상현에게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

“상현이도 그냥 분해서 그런거지? 차별받아서.”

“네에…….”

“그럼 우리가 열심히 해서 보여주면 돼. 무시할 그룹이 아니라고.”

“한야야…….”

“한야 형…….”

서도화가 탄식했다. 한야는 저런 말 할 거면 표정부터 풀고 했으면 좋겠다.

다정함과 부드러움, 그리고 빡침 사이에 인지부조화가 온 표정과 말투다.

“그러니까 이제 이 얘기 그만하고 할 거 할까? 우리 시간 별로 없어. 연습하러 가야 해.”

쿨하게 또 부드러운 말투로 말한 것치곤 한야의 뒤로 검은 아우라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한야 형, 저번에 나 걷어찰 때 딱 저랬어. 야 꼭 너 같다.”

아덴이 케이를 툭 치며 말했다. 케이는 점잖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제 저 정도는 아니다. 핵이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화에 듣고 있던 주상현의 인상이 애매하게 일그러졌다.

“형들 또…….”

한야는 벌떡 일어나 멤버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럼 촬영 시작하죠.”

순위야 올리면 된다.

이들은 이제 두각을 드러낼 무기가 참 많다.

어떤 걸 생각하든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훌륭한 아크로바틱 실력. 그리고 서도화의 말도 안 되는 노래까지.

처음엔 이 멤버 구성을 가지고 뭘 하나 걱정이 많았지만 지금은 촬영본을 볼 <밀리언 아이돌> 제작팀에게 보여줄 것이 너무나 많았다.

* * *

벌써 열두 시가 넘어가는 늦은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팝넷의 건물은 여전히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오…아직 반도 못 봤어……. 시발…….”

팝넷 연출팀 과장 박중현은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 켜며 습관적으로 욕을 지껄였다.

그는 자신이 오늘도 역시 서울 야경에 한몫하고 있다는 게 그렇게 짜증이 날 수가 없었다.

평소에도 야근이야 밥 먹듯이 하기는 하지만 이번 일만큼은 좀 억울했다.

탁- 타닥- 탁!

10초 뒤로, 10초 앞으로- 키보드 방향키를 두들기는 손가락이 무척 신경질적이었다.

그에 맞춰 영상 속 연습생들은 버벅여 가며 계속해서 안무를 선보였다.

그 모습을 퀭한 눈으로 보며 박중현은 가져온 노트에 휘갈기듯 무언가를 메모했다.

“허! 또 이 곡이야?”

물론 당연히 공연할 아티스트들의 안무를 확인하고 연출을 고민하는 건 박중현의 일이 맞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 며칠 밤낮을 지새우며 야근한다는 건 뭔가 잘못되어도 상당히 잘못되었다.

“하아! 어떤 새끼야. 이딴 기획 올려보낸 게.”

그가 짜증을 한껏 담아 소리치자 뒤에서 재기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성한 형님 기획이라던데요?”

피곤에 찌든 박중현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였다. 박중현은 인상을 팍 쓰며 들어오는 이를 노려보았다.

그의 한 기수 후배 이강현이 히죽거리며 편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형님 퇴근 안 하세요?”

“뭐야. 너는 퇴근 하냐?”

마치 이강현을 상당히 고까워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강현은 능글맞게 웃었다.

“예. 흐흐.”

“요즘 놈들은 빠져 가지곤! 선배들 싹 다 야근인데 감히 퇴근을 해?”

“에이 형님 오늘은 봐주세요. 저 진짜 오랜만에 퇴근하는 거란 말이에요.”

일찍 퇴근하는 게 그렇게나 좋은지 이강현의 얼굴이 반들반들 광이 났다.

박중현이 짜증을 담아 기획서를 들어 타앙! 책상에 내리쳤다.

“이거 성한이 기획이라고?”

“예에. 거기 안 적혀 있어요? 성한 형님 이름 대문짝만하게 적혀 있을 텐데.”

이강현의 말에 박중현은 기획서를 신경질적으로 넘겨보더니 인상을 팍 구겼다.

“이 자식 나한테 욕 들을까 봐 지 이름 빼고 전달했네? 그 새끼는 꼭 지 같은 기획만 올려.”

그 말에 이강현이 미친 듯이 웃어댔다. 하여튼 도성한과 박중현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웃긴 콤비다.

“지가 올렸으면 연출, 편집도 지가 하던가!”

“에이……. 형님 그건 좀.”

이강현이 툭- 그를 위로하듯 팔을 가볍게 쳤다. 박중현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욕이 튀어나오고 있다.

이건 지금 그의 스트레스가 한계에 치닫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이강현은 그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후배는 그냥 고개나 끄덕이며 짜증에 공감해주는 게 구닥다리 세상의 사회생활이니까.

”저희 회사 병신같이 일 굴리는 거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 우리가 참아야지 어쩌겠어요.”

이강현이 의자를 끌어와 박중현의 곁에 앉았다. 박중현이 커피를 홀짝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일은 가성비가 안 좋아.”

박중현의 손이 어느샌가 다시 마우스로 올라가 딸깍거렸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싫든 좋든 이 방송 <밀리언 아이돌>의 공연 연출 담당은 박중현이니 제 눈으로 직접 연습생들의 안무를 확인하고 연출을 구상해야 했다.

“중현 형님이 그렇게 말하면 제가 미안해서 어떻게 가요? 좀 도울까요?”

“거, 총각은 좋겠다. 집에 기다리는 가족이 없으니까 저런 말도 하지.”

박중현은 투덜거리며 커피를 수혈하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하아, 더는 못하겠다. 나 한 대만 하고 올게. 너도 갈텨?”

“아뇨. 저 담배 끊은 지 좀 됐습니다. 오실 때까지 얘네 영상 봐도 돼요?”

이강현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엔 각 소속사들에게서 보내온 참가 연습생 그룹들의 안무 영상들이 폴더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박중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기만 해. 따로 건드리지는 말고.”

“옙!”

특이한 놈.

박중현은 신나서 영상을 트는 이강현의 모습에 치를 떨며 편집실을 나왔다.

일분일초도 이곳에 있기 싫은 자신과는 사뭇 다른 이강현의 행동이 어처구니없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 빌어먹을 기획이 통과되어 대형 프로젝트가 되는 바람에 며칠간 방송국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가족들도 보고 싶고 이제 슬슬 모니터 화면을 썩은 눈으로 구경하는 게 질리기도 한다.

“하아…….”

평소 관심도 없던 공기가 상쾌하다 느껴지고 볼 것도 없는 하늘과 좀 쌀쌀한 바람마저 기분 좋게 느껴지니, 폴폴 올라가는 담배 연기가 참 묘하게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시발.”

집에 가고 싶다.

박중현은 욕을 지껄이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터덜터덜 편집실로 향했다.

유독 길게 느껴지는 복도를 지나 편집실 문을 아주 천천히 열었을 때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박중현이 걸음을 멈추었다.

Every moment is legendary

후회하지 않을 걸. 지켜봐

The brightest moment-

‘무슨 목소리가 이렇게…….’

맑으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였다. 가사만큼 당차고 건방지면서도 어딘가 느껴지는 슬픔은 마치 오늘까지 기깔나게 야근한 박중현의 마음을 비추는 것 같았다.

단순히 잘 부른다고만 말하기엔 뭔가 그의 표현이 부족했다. 요즘 노래 실력 좋은 아이돌이 널리고 널렸다지만 그들과 무언가 결이 다름을 느꼈다.

그래. 무언가 달랐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수리 끝부터 털이 곤두서는 기묘한 설렘.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가수에게도 단순히 목소리만으로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 없었으리라.

“뭐야? 누구야? 그리고 이어폰 끼고 봐야지. 자식이 이제 기본적인 것도 까먹으면 어떡해?”

박중현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어색한 웃음을 띠고 제 자리에 앉아 있는 이강현에게 다가갔다.

이강현은 멍하니 화면을 보다 제 어깨 뒤로 들려오는 박중현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예? 어… 그…. 유제이에서 내놓은 연습생들이요.”

“지금 노래 부른 애 누구냐고.”

“어…… 아, 이름표 매달고 있잖아요. 서도화요.”

이강현이 다섯 명의 연습생 중 가장 사이드에 있는 멤버를 가리켰다.

서도화, 서도화.

박중현이 서도화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유제이면… 김유진 대표였나?’

데스티니에서 열심히 구르더니 연습생 데려오는 눈 하나는 잘 배웠나 보다.

외모도 괜찮다. 이 그룹 자체가 아이돌 그룹 기준 평균 이상의 외모 수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카메라에 담기면 순한 이미지로 꽤 팬을 끌어모을 상이다.

“아! 서도화!”

그때 이강현이 갑자기 큰 탄성을 내뱉었다. 덕분에 까무러치게 놀란 박중현은 제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강현을 노려보았다.

“뭐 왜! 놀랐잖아! 아는 연습생이야?”

이강현이 머쓱하게 웃었다.

“아뇨. 아는 연습생은 아니고 소문은 익히 들었어요.”

직업 특성상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다 보면 딱히 안 궁금한 소문까지 깊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몇 년간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맡아 하다 보니 연습생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까지도 귀로 들어오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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