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19화 (19/270)

제19화

서도화에 대한 소문을 떠올린 이강현의 표정이 긴가민가하게 바뀌었다.

“근데 들리는 소문은 그렇게 좋지는 않던데요. 얘. 원래 데스티니 출신일걸요?”

“데스티니? 대형에서 뭣 하러 나왔대. 아까운 짓 했네.”

아니면 데스티니 대표가 후배 김유진을 위해서 기꺼이 양보를-

아니다. 박중현이 아는 데스티니 대표는 아끼는 후배라고 해서 제 인재를 선뜻 나눠줄 인물은 아니었다.

이상한 놈이네. 중얼거리는 박중현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이강현이 말했다.

“지가 스스로 나온 게 아니고 데스티니가 내놨다던데요? 데뷔 내정된 상태에서 갑자기 잠수 타서 개빡쳤었다던데요?”

“데뷔도 확정된 놈이?”

“지는 데뷔하는 줄 몰랐겠죠. 아니면 상습이었거나. 아무튼 한 달 뒤에 갑자기 나타나서 계속 연습생 하겠다는 거 강 실장이 그냥 돌려보냈다고 그러던데?”

박중현이 인상을 구기며 영상 속 서도화를 쳐다보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막상 내놓고 다른 회사에다 그렇게 눈치를 줬다고 하더니 결국 김유진 회사로 보냈나 보네요.”

“……음, 뭐 그렇구만.”

흥미롭게 반짝이던 박중현의 눈이 이내 피식 죽었다.

실력은 경이로울 정도로 좋지만 인성이 안 좋다는 점에서 박중현에게는 일단 아웃이다.

잘 보니 몇몇 실력 부족한 멤버도 좀 보이고.

서도화와 주상현의 존재만으로 어느 정도 화제를 불러 모을 것이라는 건 의심치 않았다.

더구나 케이라는 이름을 가진 연습생은 어느 위치에 있든 시선을 끌어당길 정도로 잘생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아쉬웠다.

실력 있는 멤버도 비주얼적인 부분도 확실한데 뭐가 그렇게 부족하냐고?

‘임팩트가 부족하지.’

서도화와 주상현을 빼고 보면 이 그룹, 그냥 잘생겼긴 해도 별반 다른 것 없는 그저 그런 그룹이었다.

“그래도 1라운드 탈락은 안 하겠네.”

다시 무기력한 모습으로 돌아온 박중현이 중얼거렸을 때였다.

타앙!

화면 속 가장 사이드에 위치해 있던 두 명의 연습생.

그러니까 잘생기긴 했는데 실력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던 ‘아덴’과 ‘케이’ 두 사람이 큰 소리로 발돋움하며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오, 어?”

표정도 없이 가볍게 뛰어오르는 아덴과 케이를 보며 좀 하네 하던 박중현의 감탄은 이내 놀람을 담은 벙찜으로 바뀌었다.

뛰어오르는 줄 알았던 두 사람은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멀리 그리고 높이.

“……!”

아니, 저 높이가 과연 안무에 이어서 하던 짧은 도움닫기로도 가능한 높이란 말인가!

가능하다고 해도 어지간히 노력하지 않고선 절대 할 수 없을 것인데.

박중현이 제 수염을 쓸었다.

이 그룹 참 특이하다. 진짜 특이하다.

특이하다는 게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는 박중현 자신도 모른다.

춤을 잘 추는가? 딱히 모르겠다. 물론 중심에서 추는 몇몇은 눈에 띄게 잘 추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살펴보면 몇몇은 허접하기 짝이 없다.

그럼 노래를 잘 부르는 그룹인가? 다들 평균 이상은 하지만 처음 노래를 불렀던 서도화를 제외하면 눈에 들어올 만한 보컬은 없다.

그 외엔 딱히 볼 게 없어 지루하던 차 비주얼 담당이자 실력 구멍인 두 사람이 뛰어올랐다. 아니 날아올랐다.

갑자기 미묘하게 부족하던 이 그룹에 무시못할 개성과 강점이 생겼다.

박중현의 시선은 케이에게로 갔다 다시 서도화, 주상현에 이어 한야에게로 향했다.

이 그룹은 꽤 선방할 그룹이다.

악과 깡, 그리고 역전.

철옹성 같은 대형, 중견 기획사들 사이에 꾸역꾸역 살아남은 이름 없는 기획사의 연습생들.

딱 팝넷이 좋아하는 스토리 아닌가.

‘일단 다른 누구보다 쟤.’

이 그룹의 메인보컬 서도화는 주의 깊게 봐둘 만했다.

외모로만 먹고산다는 사람이 있듯 서도화는 목소리만으로도 먹고살 떡잎이 보이니까.

‘성격 더럽다는 건 내가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박중현이 어느샌가 은근슬쩍 그들의 첫 무대에 기대를 거는 한편 이강현은 그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팝넷에 입사한 지 12년, 음악방송 연출을 맡은 이후로 일명 ‘입덕 담당 PD’로 불리게 된 박중현이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그가 이렇게 아이돌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한 그룹에 흥미를 보이다니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얘네들 운이 좋네요. 카메라에 예쁘게 잡히겠네.”

이강현의 말에 박중현의 들떴던 미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끝까지 다 본 이들의 영상을 닫았다.

“그런 게 어딨어. 그것도 다 지네가 잘해야지.”

“아 뭐, 그건 그렇죠. 그럼 뭐.”

이강현이 다시 짐을 챙겨 들고 일어났다.

“선배님 도와주려고 온 건데 됐다고 하시니. 먼저 퇴근할게요. 쉬엄쉬엄하세요.”

“뭐 늦게 퇴근하라고?”

“아이 뭘 또 그렇게. 갈게요.”

이강현이 편집실에서 나가자 박중현은 힐끔 그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다시 유제이 그룹의 영상을 클릭했다.

정말,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왜일까?

지금 무척 바쁘고, 시간도 없음을 인지하고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듣고 싶어진다.

서도화의 노래를 말이다.

마치 그 목소리에 홀려버린 것만 같았다.

없던 호감도 생길 지경이다.

그날 밤 편집실 복도엔 한참이나 서도화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시간은 흘러 <밀리언 아이돌>의 단체 리허설 날이 되었다.

“형 사탕 줄까요? 이번에 새로 나온 건데 장난 아니게 시원해요.”

“…나는 되었다. 네가 주는 사탕은 거북하다.”

“어어…….”

이동하는 차안 서도화는 케이의 말에 할 말을 잃은 주상현을 힐끔 보곤 말했다.

“누가 그렇게 말하래.”

서도화의 차가운 말에 케이가 잽싸게 말을 바꾸었다.

“네 소중한 용돈으로 산 것이 아니냐. 아까울 테니 나는 되었어. 무엇보다 네가 주는 사탕은 목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라서…….”

“어어… 네?”

서도화가 체념하곤 고개를 돌렸다. 오늘은 케이의 말투가 조금 이상해도 괜찮다.

너무 심하지만 않다면 그간의 성과를 참작해서 오늘만큼은 넘어가 줄 수 있다.

그는 오늘 무척 기분이 좋았다. 서도화뿐만 아니라 멤버들, 스태프 모두가 오랜만에 컨디션이 좋았다.

왜냐고?

‘더 이상 부끄럽지 않으니까!’

케이와 아덴이 드디어 실수 없이 완곡할 수 있게 되었다. 안무는 물론이고 라이브 또한 무척 안정적으로 되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두 사람은 이제야 겨우 시선 처리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들은 리허설을 준비하며 혹시나 미숙함이 티가 날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미숙함이 이젠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1라운드도 본 경연에 대한 걱정도 덜어졌다.

트레이너를 고정으로 바꾼 게 정답이었다.

이젠 어떻게 해야 미숙함을 숨길까가 아니라 더 잘하려면, 더 높이 올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한다.

그게 서도화와 멤버들, 스태프들은 너무나 기뻤다.

아덴과 케이, 그리고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끌어올린 멤버들이 기특했다.

만약에, 만약에 이래도 탈락한다?

이 노래 실력에 이 비주얼에 이 기술을 가지고도 탈락한다?

말도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마음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는데…….

‘왜 목이 타냐.’

아주 조금의 불안은 어쩔 수 없고.

“흠흠.”

서도화가 손에 소중히 쥐고 있던 생수를 따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차량은 리허설 현장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다 왔다. 다들 내려.”

먼저 문을 열고 나간 서도화가 주차장을 둘러보았다. 카니발 차량이 이렇게 많이 주차된 건 처음 본다.

“전부 연습생들이 타고 온 차량이겠죠?”

서도화가 주상현을 돌아보았다. 이미 경험이 있으면서도 멤버 중 가장 열심히 떨고 있었다.

“리허설인데도 그렇게 떨려?”

“그렇게 말하는 형도 아까부터 생수 사발로 들이키고 있던데요?”

“…….”

두 사람은 서로를 빤히 쳐다보다 이해한다는 듯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우리 열심히 해봐요.”

“그래.”

서도화와 주상현은 남들이 이해 못 할 동질감을 느끼며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 멤버를 너무 믿지 않는 건 좀 너무하다 싶긴 해도 이런 경우 멤버를 너무 신뢰하지 않는 게 오히려 오히려 실수를 줄이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서도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초에 당사자인 아덴과 케이 스스로도 본인들을 못 믿고 있는데 뭘.

“도화, 현장 들어가서 연습 영상 한 번 더 봐도 돼?”

“몰라 나도. 나중에 대표님께 여쭤봐.”

못내 불안해하는 아덴에게 대답하며 서도화는 앞서가는 매니저 이병수와 한야를 따라 리허설 현장으로 향했다.

리허설 현장에 들어온 서도화는 할 말을 잃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국내 역대 최대 규모라고 했으니 그 크기를 대충 가늠하긴 했지만 이건 뭐.

체육관을 채운 거대한 무대와 그보다 크게 퍼져있는 관객석이 시선을 압도했다.

조명 또한 얼마나 형형색색인지 눈앞에 있는 무대 장치가 CG로 보일 정도로 모든 것이 화려하고 이질적이었다.

생각보다 리허설 대기 중인 연습생들은 많지 않았다.

‘이 정도 인원이면 한 10팀 정도이려나?’

보아하니 인원이 너무 많아 시간별로 나눠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그보단 제작진의 수와 무대의 위압감이 엄청났다.

서도화가 멈춰 서선 현장을 둘러볼 때 뒤에서 주상현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저번보다 훨씬 커.”

그는 이제야 주상현이 왜 이렇게 긴장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이런 큰 무대면 긴장할 수밖에 없긴 하지.

흡사 연말 시상식을 연상케 하는 무대였으니까.

이들이 입구에 멀뚱히 선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바쁘게 돌아다니던 제작진 중 한 사람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다가왔다.

“그-, 몇 번이세요?”

“네? 아! 네네. 56번입니다.”

이병수가 활짝 웃으며 멤버들의 그룹 번호를 말했다.

그러자 제작진은 그의 얼굴을 살필 여유도 없다는 듯 획 돌아서며 이들을 안내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