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1화 (21/270)

제21화

아덴은 서도화와 케이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툭 내뱉곤 저들을 노려본 뒤 돌아섰다.

“아덴 혹시 쟤네랑 눈 마주쳤냐?”

“아니. 눈은 안 마주쳤는데.”

“그럼 됐어.”

아유, 속 시원해.

서도화는 아덴에게 조용히 엄지를 추켜들어주고 한야에게로 향했다.

그나저나 참 놀랄 일이 아닌가.

우리네 아덴과 케이도 이곳에서는 꽤 얌전히 잘 있는데 멀쩡히 생긴 연습생 놈들이 촬영장에서 뒷담화라니.

‘아덴과 케이보다도 문제 있는 놈들이 꽤 있네.’

저런 식으로 경계하는 걸 보면 다행히 겉으로 봤을 때는 딱히 꿀리지 않는 모양새라는 것이니 좋아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아덴이 서도화에게 작게 물었다.

“아는 사람들이냐?”

서도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아니, 무시해. 무시해. 원래 이래.”

원래 경쟁 상대가 우세해 보일수록 더 공격적으로 까 내리며 자기방어 하는 법이다.

아덴은 혀를 차면서도 서도화의 말을 따라 그들을 노려보던 것을 멈추었다.

“……대단하네.”

한편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던 한야가 중얼거렸다. 아덴과 서도화 둘은 도대체 무슨 관계일까?

케이 버금가게 말썽을 부리던 아덴을 저렇게 얌전히 만들다니.

그가 데스티니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서도화는 아덴과 케이처럼 형들의 보살핌을 받던 존재였는데.

‘그새 철이라도 들었나.’

한야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이 알던 서도화와는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무슨 이유에서인지 저 감당 불가였던 두 사람을 동시에 아주 잘 케어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얼마 뒤 한참이나 소곤거리던 55번의 리허설이 시작되었고 김유진과 매니저가 돌아와 멤버들의 이들을 데리고 무대 뒤로 향했다.

무대 뒤에서 55번 그룹의 리허설을 보며 조금 더 기다리자 드디어 구겨진 종이 더미를 손에 쥔 제작진이 다가왔다.

“56번 그룹이죠?”

“네 맞습니다.”

한야가 똑부러지게 멤버들을 모아 일렬로 세웠다.

“인사하겠-”

“아니 아니 됐어요. 나한테는 인사 안 해도 돼요.”

그녀는 무척 바쁜지 손사래를 치곤 이들이 설 무대를 가리켰다.

“앞 그룹이 끝난 다음에 반대편 무대에서 바로 시작할 거예요. 카메라가 55번 엔딩이 끝나고 이-렇게 크게 돌아서-”

스태프의 손이 오른쪽 무대에서 천장을 향해 크게 돌아 중앙 무대를 가리켰다.

“방향을 틀건데 저기서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 보내면 56번이 바로 시작하면 돼요.”

“넵.”

“리허설은 실수 있어도 한 번만 하니까 잘해주세요.”

서도화는 그녀가 가리킨 무대를 무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래도 작은 기획사치곤 주상현을 보유한 그룹이라는 등 화제성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설치된 무대 중 가장 크고 조명이 잘 들어오는 무대를 받았다.

적어도 무대 비주얼은 더할 나위 없이 찍힐 수 있는 꽤 좋은 기회였다.

기다림 끝에 선 무대는 서도화가 처음으로 마을을 구하고 올라선 단상보다 훨씬 높았다.

그는 아래에서 뚫어지라 이곳을 바라보는 연습생들의 시선을 모른 척하고 리허설 중인 55번 그룹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다 있는 곳에서 견제하고 욕하는 등 인성이 그리 좋진 않은 것 같지만 실력은 꽤 좋았다.

55번도 서도화의 그룹과 마찬가지로 댄서들을 십분 활용한 무대다.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다른 기획사에서 데뷔조까지 갔던 멤버들만 모였다는 것 같은데 그런 만큼 완성도 있는 공연을 가져왔다.

얼마나 웅장한지 저들의 뒷 순서는 웬만큼 스케일 큰 공연을 가져오지 않고서야 임팩트를 주기 힘들 것이다.

‘물론 우리 팀은 이야기가 다르지만.’

서도화는 김유진이 약속했던 화려한 무대세트를 생각하며 흐뭇하게 케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케이가 무척 불쾌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곤 시선을 피해버렸다.

왜 저럴까? 카메라 안 돌 때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그래도 괜찮다. 서도화에게는 비주얼 담당 말고도 셋이나 더 남았다.

부족한 점은 많지만 특기는 확실한 멤버들 뿐이다.

곧 55번 무대가 끝이 났다.

“56번 바로 들어갑니다.”

감독님의 말에 무대 위가 신기해 주변을 둘러보던 멤버들이 시작 자세를 잡았다.

곧 커다란 스피커를 통해 곡이 흘러나오고 그들은 언제 긴장했냐는 듯 눈빛을 달리하며 리허설을 시작했다.

그룹의 얼굴 담당이던 케이는 센터에 서서 강렬하게 정면을 노려보다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자리를 비켰다.

빈자리는 주상현이 채우며 도입부부터 수많은 댄서들과 함께 군무가 이어졌다.

FPS게임 OST답게 초반부터 강렬하면서도 위압적인 전주가 울려 퍼졌다.

전 시즌 댄스로 수많은 레전드 무대를 만들어냈던 주상현, 그의 뒤로 서도화와 아덴이 자리 잡고 힘 있는 몸짓으로 군무의 무거운 분위기를 확실히 이끌어냈다.

“오…….”

여기저기서 작은 감탄사가 내뱉어졌다.

편곡도 댄서 배치와 안무도 전부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도록 신경 쓴 게 보였다.

몰입도가 엄청났다. 심지어 트레이닝복에 이름표까지 붙인 연습생들의 무대인데 딱딱 맞아떨어지는 발소리 수많은 인원에 이따금 소름이 돋기도 했다.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네?’

무대 아래서 지켜보던 연출팀 박중현이 감탄하며 씨익 웃었다.

이들의 안무 영상을 얼마나 돌려봤는지 내심 정이 붙은 그다.

“형님이 저번에 잘한다고 했던 그룹이 얘네죠? 저 그룹 기획팀에서도 난리 났었대요. 오대준 대리가 극찬했-”

“쉿.”

박중현은 후배 이강현의 입을 재빨리 다물게 했다.

지금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이 그룹의 가장 큰 매력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그래, 저기 저 유순하게 잘생긴 놈. 메인보컬이 첫 소절을 불렀을 때부터.

때마침 서도화의 첫 파트가 시작되고 있었다.

서도화가 힐끔 제 앞에 떠오른 텍스트를 확인했다.

[패시브 : 정화] 발동!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그저 감탄만 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놀람, 놀람을 넘어선 경악, 그러다 점점 자신이 무슨 얼굴로 이들을 보고 있는지조차 잊은 듯 흐리멍덩한 눈을 했다.

‘이게 무슨…….’

‘도대체 이 무슨 느낌이야.’

바삐 움직이던 모든 사람들이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무대 위 연습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무대 아래, 리허설을 끝낸 55번 그룹이 인상을 구긴 채 자기들끼리 속닥이고 있었다.

낄낄거리며 비아냥대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축 처진 모습이었다.

‘어우 너무 잘했나 본데?’

서도화는 만족스레 웃으며 제 파트를 끝마치고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은 마치 아덴이 이끌던 용사 파티의 전투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이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피로에 찌든 상태라 그런가? 예상보다 훨씬 좋은 반응이다.

멋대로 정화하고 멋대로 상처를 치료하니 가수 생활 내내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능력과 아덴, 케이의 전투술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연습생 리허설에는 조금도 관심 없고 오히려 질려 보이던 제작진들이 이 정도 반응이면 이 방송을 관심 있게 지켜볼 시청자들 반응도 기대해볼 만하다.

문제는 서도화가 노래를 부르는 내내 같은 팀 멤버인 케이가 무척 고통을 받는다는 거지만.

서도화는 안무를 맞추며 눈을 돌려 케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잘하네.’

하도 연습을 많이 했더니 이제 내성이라도 생긴 건지 꿋꿋이 잘 견디고 완벽히 안무를 구사하는 중이다.

곧 아덴과 케이의 기술도 펼쳐질 거고.

이 정도면 보여줄 건 충분히 보여주었다.

리허설 전까지만 해도 내심 너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연습하던 나머지 그냥 자연스레 실력을 타협해버린 게 아닐까 걱정했더니 전혀 아니었다.

자신 있던 만큼 아주 잘했다.

* * *

리허설이 끝이 났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감독은 서도화 그룹의 인사를 듣고서야 정신을 차린 듯 보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를 봐왔겠지만 이런 오묘한 느낌을 들게 하는 건 또 처음일 거다.

서도화와 멤버들은 다시 한번 힘차게 인사하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들을 바라보는 연습생들과 제작진들의 시선이 한결 달라졌음을 서도화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밑으로 내려온 멤버들에게로 빠르게 카메라가 따라붙었다.

“리허설 어땠나요?”

카메라맨은 주상현에게 물었고 주상현은 능숙하게 질문에 대답했고 그의 곁으로 한야가 슬쩍 끼어들어 무대와 컨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분량을 얻어갔다.

그 이후 이들이 할 일은 없었다. 미어터지는 인원들에 밀려 쫓겨나듯 주차장으로 향했다.

매니저 이병수는 차에 오르는 순간까지 벅차오르는 듯 들떠서 말했다.

“너희 진짜 너무 잘하더라. 감독님께서 처음으로 인상을 피셨다니까? 사람들이 다 너희만 봤어!”

신나게 주접을 떠는 이병수의 말에 빈말이라도 겸손을 떠는 이는 없었다.

“제가 생각해도 오늘은 좀 잘한 거 같아요! 하면서 다들 우리만 보는 거 봤어요?”

신나서 방방 뛰는 주상현에 아덴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멈춰서서 우리만 보더만?”

겸손을 떨 필요가 없는 게 정말로 잘했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에 성공했고 결과적으로 감독의 관심을 끌었다.

서도화뿐만 아니라 멤버 모두 느꼈을 것이다.

“모두 너무너무 고생했고, 리허설은 아주 잘했지만 그래도 곧바로 연습실로 직행할 거야. 알지?”

“그럼요!”

다들 들떠서 유쾌한 분위기 속 사람들이 좋아하든 말든 체력이 다해 조용하던 케이에게 주상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굴을 디밀었다.

“형! 제가 그룹 이름 케이파이브로 건의해볼까요?”

주상현의 말에 피곤해 반쯤 죽어있던 케이의 눈이 반짝였다.

“진짜인가?”

서도화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주상현에게 자세를 바로 하라 손짓했다.

“상현아 너 그 말 한숨 자고 일어나면 분명 후회한다?”

56번 그룹의 시무룩 전문 주상현 아닌가.

‘제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너무 신났었나 봐요…….’하며 시무룩할 게 눈에 빤히 보였다.

“으음.”

주상현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민망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다시 말했다.

“근데 정말로 형 너무 잘하셨어요! 고생한 보람이 있죠?”

서도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에겐 안 좋은 감정뿐이지만 그래도 그가 이번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안다.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심장과 같은 핵이 없는 몸으로 이 악물고 했던 그를 보았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주상현의 칭찬에 동의해주었다.

물론 ‘케이파이브’라는 목적이 있는 노력이었지만.

이유가 어쨌든 열심히 했으니 그건 칭찬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럼 나도 그룹 이름 케이파이브로 하는 거 한번 건의해볼게.”

“……으, 음유시인?”

물론 당연히 기각당하겠지만. 그냥 말이라도 이렇게 하는 거다.

서도화의 빈말에 케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네가, 너는…….”

“뭐. 왜.”

“…아니다.”

케이는 획 그의 시선을 피해버리곤 꿈틀거리며 서도화에게서 더 멀어졌다. 왜인지 몰라도 무척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목적이 있어 한 것뿐이다.”

“어. 그래.”

“이딴 일… 나에게는 무척 쉬운 일이니.”

“뭐래냐. 쟤. 좀 닥쳐라 케이. 잠 좀 자자.”

뒷좌석에서 아덴이 투덜거렸다. 서도화가 아덴을 보며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해.’

적은 적이었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동료. 너무 몰아세우지 않는 게 앞으로의 경연에도 도움이 될 터.

“케이 형 되게 열심히 했는데 왜 그래요?”

“뭐?”

“에이 형, 케이 형이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봤으면서.”

서도화가 하려던 말을 주상현이 대신해줬다. 주상현은 아덴을 흘기며 케이를 두둔했다.

“너희… 날 싫어하던 게 아니었나…?”

케이의 말에 보조석에 앉아 있던 한야가 뒤돌아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너희들 나를 짐짝 취급하지 않았더냐.”

앗. 들킴.

“케이 네가 그렇게 말하면 너랑 같이 새벽에 남아서 연습한 도화가 섭섭해해.”

한야가 말했다. 케이가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도화를 바라보자 서도화는 부정하듯 시선을 피해버렸다.

주상현이 이어서 말했다.

“형이 이렇게 열심히 해줄 줄은 몰랐어요. 솔직히 저는 형이 아이돌에 관심 없는 줄 알았다니까요?”

그리고 그제야 서도화가 입을 열었다.

“협조 잘하는 동료를 짐 취급할 사람은 여기 아무도 없어.”

“동료.”

케이가 고개를 획 돌렸다. 마치 우리는 동료가 아니다 하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에 턱을 손에 괸 채 대화를 지켜보던 아덴도 심드렁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서도화는 아덴이 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대충 알 것 같았지만 모르는 척하곤 말했다.

“아무튼 본 무대에서도 이렇게만 해.”

서도화가 시선을 돌렸을 때 케이는 다시 그를 쳐다보았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음유시인 서도화.

저주받을 용사의 동료.

그리고, 지금은 같은 그룹의-

‘진짜 동료 노릇이라도 하겠다는 셈인가.’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자신의 노고를 인정해준단 말인가. 그저 그룹 이름을 바꾸고 싶었을 뿐이거늘.

정말 이상했다.

기분이 좋아질 리 없을 터인데.

하찮은 인간의 감정이 드리울 리 없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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