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2화 (22/270)

제22화

드디어 <밀리언 아이돌>의 본방송 촬영일.

다시 현장에 발을 딛은 멤버들은 사뭇 달라진 분위기에 걸음을 멈추었다.

꽉꽉 들어찬 연습생과 스태프들, 활기찬 공간, 몇 배는 화려해진 무대 세트.

내부는 상당히 소란스럽고 복잡해 자칫 잘못하면 멤버들을 놓치거나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다들 떨어지지 않게 잘 따라와!”

“네!”

이병수는 모든 게 신기해 주변을 둘러보는 멤버들을 정신없이 챙기며 앞으로 향했다.

이들이 지나갈 때마다 따라붙는 시선이 몇 배는 늘었다.

당연하게도 참가자들의 최대 이목 집중 대상은 단연 주상현이었다.

“쟤 주상현 아니야?”

들으라는 듯 선명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도화가 고개를 돌렸다.

“주상현 또 참가해?”

“아……. 주상현…….”

속닥거림을 빙자한 비아냥에 묘하게 주변 공기가 조금 불편해졌다.

“관심은 쟤가 다 가져가겠네.”

카메라가 멀뚱히 있는데 이곳이 촬영 현장임을 까먹고 대놓고 들으라는 듯 지껄이는 놈들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멤버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힐끔거리며 소곤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주상현은 민망한지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유치하게 뭐 하는 건지.’

서도화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하고, 지는 게 두려워서 하는 행동이라도 무척 무례한 짓이다.

“쟤네 뭐야. 뒤질라고.”

아덴이 말을 던지며 매서운 눈으로 그들을 흘겼다. 그러곤 제 몸으로 주상현을 바라보는 시선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소곤거리던 녀석들의 말소리가 쏙 들어가 버렸다.

‘만만치 않은 건 너희들의 시선뿐이 아니란다.’

이 그룹에도 한 성깔 하는 연습생들이 있다. 만약 싸움을 건다면 무조건 쟤네가 질 거다.

아덴의 말에 주상현이 눈을 크게 뜨곤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작게 중얼거렸다.

“형… 저는 괜찮아요.”

내심 감동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예전부터 동료가 다른 이에게 욕보이는 걸 자신의 일처럼 싫어하는 그인지라 아덴의 표정은 풀릴 줄 몰랐다.

걸음을 계속하는 동안 아덴은 마치 주상현을 욕한 그들을 잡아먹기라도 하듯, 예전 마왕의 수하를 보던 것처럼 살벌하게 노려보며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아덴.”

아덴은 한야가 조용히 눈치를 주고서야 그들을 노려보던 행동을 멈추었다.

아덴의 포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덕분에 더 이상 주상현과 멤버들을 두고 평가하거나 소곤거리는 목소리는 없게 되었다.

로비를 지나 보이는 길다란 복도, 중간중간 설치해놓은 카메라들이 보였다.

“와 카메라다!”

카메라에 익숙한 주상현이 멤버들에게 이를 알렸고 멤버들은 카메라를 보며 어색하게나마 인사했다.

카메라가 있다는 건 여기서부터 이미 서바이벌은 시작되었다는 거다.

주상현이 카메라가 있다고 언질하자마자 아덴과 케이의 입은 꾹 다물렸고 대신 내내 연습한 방송용 미소가 올라갔다.

멤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히 공연장 안으로 향했다.

촬영이 진행될 관객석으로 들어가자 로비, 복도를 거닐 때와는 확연히 다른 긴장감이 맴돌았다.

관객석 가득한 의자에 차례대로 앉아 있던 연습생들이 호기심과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이들을 바라보며 무언가 한마디씩 말을 얹고 있었다.

마이크는 달지 않았지만 카메라 앞이라는 인지를 하고 있어 리허설 때만큼 대놓고 제 인성을 티 내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많기는 많다. 도화야.”

한야가 서도화에게 다가오며 공연장 한가득 들어찬 연습생들을 둘러보았다.

“이게 아직 반절도 안 온 거래.”

“아 그래요?”

서도화도 한야를 따라 공간을 크게 둘러보았다. 말이 100팀이지 한 그룹에 5명이라고 쳐도 500명이다.

그러나 5명도 최소로 쳤을 때고 멤버 수는 그 이상으로 뭉치는 경우가 많으니 그보다 훨씬 많을 테지.

왜 리허설 하는 스태프들이 하나같이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이해 가는 인원이다.

아마 이 방송을 기획한 사람도 이 광경을 보고 스케일이 너무 커서 망했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참가한 그룹도 다양하다. 개중엔 이미 데뷔한 아이돌 아닌가 싶을 만큼 눈에 띄는 그룹, 어째 너튜브에서 자주 본 듯한 그룹, 인터넷에서 산 건지 의상부터 허접한 이들이 있는 한편, 순위 넘기기조차 쉽지 않을 것 같은 그룹도 상당수 보였다.

“우주 속 먼지가 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요?”

“응?”

한야가 되묻자 서도화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튀기 힘들 것같다는 말이었다.

서도화가 아덴을 툭 쳤다.

“너는 긴장 안 되냐?”

“엉?”

아덴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긴장 안 했는데.”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아덴은 세상의 영웅이니만큼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익숙했다.

그 덕에 졸지에 서도화도 함께 서서 부끄러운 퍼레이드를 했어야만 했지.

같이 퍼레이드에 서고 같이 영웅 행세를 했는데 왜 자신만 긴장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역시 이 사이코 용사에겐 인간의 마음이 없는 게 틀림없다.’

아덴에게 전혀 공감받지 못한 서도화는 한숨을 푹 쉬곤 제 뒤에 선 마왕에게 물었다.

“넌 긴장 안 되냐?”

“내가? 긴장?”

그래 너도 긴장 안 되겠지 당연히. 얘는 원래 인간도 아니었다.

게다가 틈만 나면 아덴에게 도발하겠답시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나 엄포를 놓는 관종이었으니까.

케이는 말했다.

“긴장… 허,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게 긴장이라면, 긴장을 했다고도 할 수 있겠군.”

“…긴장했다고?”

“그러니까,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게 긴장이라면 긴장을-”

“했다고?”

…케이의 귀가 붉어진 거 같은데 서도화는 차라리 조명이 어두워 잘못 본 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케이는 믿을 수 없다 반응하는 서도화에 자존심이 상한 듯 그를 노려보았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내가 하찮은 인간이 된 느낌이군.”

“긴장해서?”

“……그렇다.”

마왕이 긴장을 했다고? 진짜? 긴장할 정도로 경연에 진심이 되었다고? 서도화는 알을 잇지 못하다 나지막이 물었다.

“케이야… 케이파이브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마, 마음에 들다마다!”

케이는 울컥해 말하다 한야의 눈치를 보고 작게 말했다.

“내가 그것 외에, 무엇을 위해 열심히 하겠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아덴이 씨익 웃으며 끼어들었다.

“우리 케이가 긴장했구나? 너도 사람은 사람이다. 절대 긴장 안 할 줄 알았는데.”

얼마나 활짝 웃으며 말하는지 멀찍이 떨어진 카메라로 보면 화기애애하게 노는 걸로 보이겠다.

아덴의 말에 케이는 무척 기분이 안 좋아졌는지 입을 다물었다.

마왕이어도, 인간을 하찮은 취급 해도 결국 마왕 또한 인간이라는 걸 비꼬아 말한 것이었다.

“아덴.”

이번만큼은 서도화도 정색하며 아덴을 질책했다. 아덴이 마왕에게 쌓인 게 많고 보기만 해도 싫을 정도로 원망스러운 건 알지만 지금은 감정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

카메라 앞이 아니라 평소에도 이들이 이 세계에 있는 이상 아덴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이니 감정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

마왕 일당에게 워낙 희생된 동료가 많으니 쉽지는 않겠지만 몇 년, 몇십 년이 될지도 모르는 이 세계에서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마왕을 향한 대책 없는 악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더군다나 이제 본격적으로 서바이벌이 시작될 텐데 멤버들의 관계에 흠이 있는 건 아무래도 좀.

“아덴, 제자리에 앉아.”

한야가 아덴을 떼어내 무력으로 자리에 앉히곤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이는-”

무척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한야가 다정히 미소 지었다. 자신 외엔 아무것에도 관심 없어 보이던 그였지만 역시 무대는 잘하고 싶겠지.

한야가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케이가 화들짝 놀라며 한야를 보다 조금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곤 중얼거렸다.

“절대 짐은 안 될 것입니다.”

서도화가 한숨을 쉬었다. 짐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건 좋은데, 저런 말, 방송을 통해서 보면 딱히 듣기 좋은 말은 아닐 텐데.

서도화는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너무 부담 가지지 마. 아무도 네가 짐이 된다거나 생각한 적 없어.”

음, 양심이 좀 아프다.

“……음유, 도화.”

케이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 부족한 점은 나나, 아덴이나 멤버들이 메꿔, 반대로 우리가 부족한 부분은 네가 메꾸는 거야.”

이를테면 부족한 실력도 묻어버리는 얼굴이라던가 얼굴 같은.

“적어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한 어쩔 수 없이 동료니까.”

“동료…….”

케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동료란 게 이런 것이었나. 아덴이 그렇게 목숨을 걸던 동료라는 게 이런 커다란 안심과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던가.

케이가 어느새 시선을 돌린 서도화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

음유시인. 수백 번 적으로 부딪히던 가장 성가신 힐러.

아덴을 죽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처치하려 했던 자.

그런 그가 동료들에게 보여주던 온화함을 자신에게 보였다.

어쩐지 케이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의 긴장은 사라졌다.

결코 인간들은 믿을 족속이 못 된다.

인간들을 믿을 바엔 강함을 섬기는 마족을 믿을 테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부족함을 알고 있으니.’

또한 이들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있으니.

과거 아덴과 그의 동료들이 서도화에게 제 목숨을 맡기고 싸웠던 것처럼.

‘동료 행세를……!’

케이가 비장하게 마음을 다잡을 때 서도화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마음 편하게 가져. 편하게. 어차피 오늘 무대 안 해.”

“……뭐라…고?”

“아직 연습할 시간 있다고. 수두룩빽빽한 사람들을 봐. 우리 차례는 내일인데.”

“허, 허무하다…!”

“…뭔 소리야.”

“쟤도 점점 웃겨지는 것 같아. 아니 원래 웃겼지.”

어쩐지 케이의 얼굴이 붉어졌을 때 무대 뒤 스피커를 통해 제작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10분 뒤 라이브 스트리밍 시작합니다. 연습생들은 모두 착석해주세요.”

드디어 연습생들이 모두 공연장에 들어왔고, 진행자인 가수 서영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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