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24화 (24/270)

제24화

다음 날 저녁 유제이의 멤버들이 다시 공연 현장으로 향했다. 방송을 시작했던 당일 꽉꽉 들어찼던 주차장과 그 주변이 오늘은 텅텅 비었고 다만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 긴장감은 카메라 앞에 서야 한다거나 경쟁자들끼리 서로를 견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그룹 내에서의 긴장감이었다.

그러나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완전무장 한 병사처럼, 17 대 1로 싸우는 인원 중 17에 속한 자들처럼 이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연습을 많이 했는데, 디테일까지 챙겼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나! 말하자면 이 긴장감은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들 이렇게 꾸며놓으니까 여기서 제일 우승 후보 같다! 비주얼들이!”

김유진의 말에 주상현이 히죽 웃었다.

“준비한 무대도 우승 후보에 들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태산이던 주상현의 표정이 이제야 밝아졌다.

지난 경연을 통해 수많은 무대를 치러본 주상현도 이젠 절대 탈락 안 하지 않겠냐는 서도화의 말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준비한 무대에는 레전드로 일컬어지던 지난 경연에서 봤던 무대들과 견줄수 있을 정도로 멋진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방송 출연 정도의 순위권에는 들 수 없겠지만.’

지난 경연 때의 일을 생각하면 이미 순위권에 들 그룹은 정해져 있을 테지만, 탈락만은 하지 않을 것이다.

‘잘하면 30위 안에 들지도!’

“이제 들어가자.”

한야가 들뜬 주상현과 멤버들을 챙겨 김유진과 함께 대기실로 향했다.

* * *

“56번 그룹, 무대 뒤로 이동하겠습니다.”

“네!”

멤버들이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무대 뒤로 향했다. 텅텅 빈 관객석에 비해 무대는 무척 넓었고 그 조용함과 웅장함으로 인한 경직이 있었다.

이미 화제의 대형기획사 소속 그룹들은 1일 차에 모두 끝난 뒤고 그 많던 시청자들도 어느새 조금 줄어있었다.

그나마 팝넷에서 홍보를 계속해주는 덕분에 유입이 늘어 채팅창의 화력이 줄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초반의 그 열기는 죽었다.

지금까지 태연했던 서도화도 슬슬 입술이 마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VCR과 진행자 서영의 목소리를 통해 55번 그룹과 유제이의 56번 그룹의 공연이 이어진다는 안내가 들려왔다.

“형 저 갑자기 센터 정면이 어딘지 까먹었어요.”

긴장을 풀기 위해서인지 반 농담조로 말하는 주상현의 중얼거림에 한야는 친절하게 센터 정면을 알려주곤 서도화에게 다가왔다.

“넌 괜찮아? 아까부터 조용한데.”

“컨디션은 괜찮아요. 시청자 수를 보고 있었어요.”

서도화의 말에 한야의 고개가 올라갔다.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현장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였다.

연습생들은 최선을 다해 무대를 선보이고 있었고 그의 앞엔 흰 천으로 가려진 다섯 명의 평가원이, 오른쪽 옆엔 참가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스트리밍 시청자 수와 실시간 투표(일명 ‘마음’)의 화력을 간접적으로 알려주는 하트 아이콘과 채팅창이 세워져 있다.

하트 아이콘. 저게 가장 중요하다.

스트리밍 사이트와 공식 홈페이지에는 일명 ‘마음’이라고 불리는 투표 아이콘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참가팀의 경연이 진행될 동안 원하는 만큼 마음을 누를 수 있고 그 수만큼 참가자의 마음 점수가 집계된다.

마음 점수는 참가자의 순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냥 버튼만 누르면 되는 쉬운 투표 방식이기 때문에 내가 마음에 드는 연습생이 있거나 뭐 하나라도 감명이 있거나 혹은 너무 못해 우스운 장면이 연출되어도 사람들은 마음 버튼을 연타해 점수가 쉽게 변동한다.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연습생들은 마음 점수가 얼마나 모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저 아이콘의 하트가 유체이탈 하듯 화면 뒤로 올라가는 속도와 수를 보고 대충 화력이 어느 정도이겠거니 예상이 가능하다.

참고로 지금 올라가 있는 54번 그룹은…….

‘처참하네.’

서글플 정도로 하트 아이콘에 변동이 없었다. 가끔 하트가 올라가기도 하는데 동정표에 가까웠다.

무난한 실력과 비주얼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래도 앞서 53개 그룹이나 거쳐 간 상황이다 보니 초반보다는 시청자들의 마음 연타 기준도 많이 올라갔다.

‘안타깝지만 탈락이려나.’

거기다 더 안타까운 건 채팅창의 상황이었다.

-아 언제 나와ㅡㅡ

-이 그룹 끝나고 나올 듯

-이걸 위해 내가 이틀을 모니터에 머리 박고 있었음

-울막내상현이가최고얌★울막내상현이가최고얌★울막내상현이가최고얌★울막내상현이가최고얌★울막내상현이가최고얌★울막내상현이가최고얌★울막내상현이가최고얌★

-아 도배 어제부터 ㅈㄴ난리네 개민폐 다른 그룹 팬도 있는데 그만좀요;;

-꼬우면 무시하세요

아무도 지금 무대 중인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스트리밍이 길어지며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54번의 경연이 조용히 끝나고 55번 그룹이 스테이지로 올라가 곧바로 무대를 시작했다.

그들은 인성에 비해 담력은 없었는지 긴장하다 못해 툭 치면 울 것 같은 얼굴로 덜덜 떨며 자기소개를 이어가 54번 그룹보다는 많은 마음 점수를 얻었다.

서도화의 그룹 또한 안내된 메인 스테이지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들 또한 공연 전까지 부족한 점을 보충해서 왔다. 괜한 측은함이 들었다.

‘그래 쟤네나 우리나 이곳에서 아득바득 살아남아야 하는 건 마찬가지지.’

물론 경쟁자지만 저들은 큰 라이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저들도 유제이와 마찬가지로 힘없는 소속사의 힘없는 그룹인 뿐이니.

그때 제작진이 공연을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내왔고 멤버들은 일제히 대형을 맞춰 섰다.

드디어 이들의 차례였다.

* * *

56번 그룹이 등장하자마자 마음 점수가 빠르게 반응했다.

프로젝트 그룹의 막내로 활약하던 주상현의 등장. 그것만으로도 반응이 올 만한데 함께 등장한 멤버들의 비주얼들이 하나같이 눈에 띄게 화려했다.

채팅창에 오랜만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주상현 그는 어떤 그룹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멤버들의 실력은 어느 수준일까?

만족스러울 정도로 좋은 그룹일지 아니면 차라리 솔로로 데뷔시켰으면 좋았다고 생각할 무대일지.

애매한 순서, 모르는 기획사, 알려지지 않은 정보로 그의 팬들이 기대와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때 멤버들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56번 그룹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도화는 자기소개를 하며 하트 아이콘을 힐끔거렸다. 역시 주상현이 있으니 주목을 많이 받기는 하나 보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앞선 참가자들보다 시작 점수가 엄청 좋았다.

아까부터 계속된 주상현 팬 또는 어그로들의 도배로 채팅창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지만.

-별거 없는데? 별거 없는데? 별거 없는데? 별거 없는데? 별거 없는데? 별거 없는데?

-근데 비주얼은 괜찮은 듯?

-이 그룹은 주상현 그룹 안 되는 것만 해도 성공임

-진짜 불쌍하다...다른 멤버들은 뭔 잘못임? 그멤 팬들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비호감됐네

서도화는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불안감 조성하는 채팅창 말고 하트 아이콘을 보자.

마음 점수를 나타내는 하트 아이콘은 승천할 듯 빠르게 연타되고 있었다.

서도화의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멤버들이 준비했던 대로 대형에 맞춰 자세를 잡았다.

곧 어둡던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고, 실루엣이 눈에 보이려는 순간 곡이 시작되며 화면엔 케이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스트리밍 화면에 영혼을 쏟아부어 꾸민 케이의 얼굴이 잡히자마자 이들을 고깝게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면에 가득 찬 케이의 얼굴이.

-와 머 저렇게 생겼냐

누군가 말했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비아냥들이 일시적으로 싹 사라졌다.

아무리 덕질을 많이 해봤어도, 잘생기고 예쁜 연예인을 많이 봤어도 케이의 외모는 적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전 처음 보는 수준의 비주얼이다.

무척 깨끗하고 청량하다는 말이 딱 맞을 정도로 하얀 피부, 뚜렷한 쌍꺼풀과 깊게 파인 눈은 게임 혹은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초반부터 얼빡샷 미친

-연습생들 이름 언제 알려주는지 아시는 분?

-ㅋㅋㅋㅋㅋ회사가 머리 잘 썼네 갑자기 몰입도 확 올라감

-개잘생겼네...

새로운 그룹을 향한 견제, 주상현만을 외쳐대던 팬들,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입을 모아 그의 비주얼을 칭찬했다.

한편 반응이 얼마나 뜨거운 줄 모르는, 아니 관심도 없는 케이는 그저 한야가 시키는 대로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볼 뿐이었다.

‘케이. 56번의 얼굴다운 모습을 마음껏 보여줘. 저기 카메라 보이지? 무대 위에 올라가면 춤 시작하기 전까지 뚫어질 듯 응시하면 돼.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빤히 쳐다봐.’

또한 케이는 리허설 때 서도화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이던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근데 또 너무 노려보면 안 돼. 저 카메라 너머에 네 마족 부하들이나 아끼는 소환수가 있다고 생각하고.’

설마 자신이 하찮은 음유시인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지만 분하게도 김유진과 스태프, 멤버들이 몇 번을 설명해도 못알아들은 감정 표현을 서도화의 비유로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카메라를 보라. 그리고 나를 숭배하던 귀엽고 멍청한 수하들을 생각하라. ……제길.’

세상을 지배하고자 명령만 내리면 자신만만하게 갔다가 영웅 아덴과 그의 동료들에게 당하고 돌아와 한심하고 꼴 보기 싫던 놈들이었는데.

지금은 어찌 그마저도 그립단 말인가.

케이의 눈가가 절로 내려갔다. 그의 눈빛엔 늘 스미던 경계 대신 그리움과 애틋함이 드리웠다.

‘지배자’였던 마왕 픽케이로스톤이 죽으며 그들은 어찌 되었을지. 인간들에게 사냥당하거나 마나 고갈로 죽진 않았을지.

핵을 뺏겨 그들이 살던 마세계 케이클랍스도 지금은 무너져내렸을 것을.

케이가 살포시 눈을 내리깔았다.

-눈빛 지렸다

-우리 애기 뭐가 그렇게 슬프니...?ㅠ

-뭐야 채팅창 분위기 갑자기 너무 바뀐 거 아님?ㅋㅋㅋㅋㅋ

-얘들아 봤냐 ‘우수에 찬 눈빛’이란 바로 이런 거다

-오ㅓㅏ와ㅏㅏ이미 휘어잡혔ㄷㅏㅏㅏ마음간다ㅏㅏㅏㅏㅏ!!!!!!

채팅창이 빠르게 올라갔다. 전주가 시작되었다. 케이를 시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화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케이, 아덴, 팬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주상현, 한야, 그리고 서도화.

서도화는 확실히 먹힌 멤버들의 비주얼에 흐뭇하게 미소 짓다 곧바로 표정을 바꾸며 제 파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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