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Keep your eyes open and watch the country we're going to build
그대가 비웃은 우리가 어떻게 강해지는지
The crown at the top is mine
[패시브 : 정화] 발동!
서도화의 목소리가 현장 가득 울려 퍼지는 순간 이번에는 빠르게 올라가던 반응들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마치 채팅창이 고장 난 것처럼, 아니면 누군가 슬로우라도 건 것처럼 완전히 동결되었다.
프로그램에 오류라도 난 것일까?
그러나 오류처럼 고장 난 건 채팅창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의 사람들이 멈춰버린 채팅창의 이유를 알려주듯 일제히 넋이 나간 채 무대 위 멤버들을 보고 있었다.
‘아아, 이 느낌은.’
‘이미 한번 경험했는데도.’
정말 이상한 현상이었다.
* * *
비주얼 멤버로 시작, 메인보컬인듯한 멤버가 intro를 끝내자마자 곧바로 주상현이 센터를 차지하고 군무 시작.
수많은 댄서들의 가운데서 추는 군무의 난이도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자비 없이 높다.
주상현의 댄스 실력을 아는 안무가가 원래 그에게 바라는 수준은 이 정도였다. 난이도를 낮추지 않고 선보인 댄스를 양쪽에 선 아덴과 서도화가 무난히 잘 보조해주었다.
모두가 힘 있게 동작을 펼치며 이루어지는 무대는 중심을 잘 잡아 무척 위압감 있게 느껴졌다.
주상현이 센터에서 제 존재를 제대로 드러내며 춤추고 있는데도 주상현만의 그룹 같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실력도, 끼도, 비주얼도 너무나 특출났기 때문이다.
거기다 중소기업답지 않게 돈 냄새 나는 편곡과 안무.
서도화의 노랫소리에 절절하게 몰입하고 있으면 방심한 사이 케이의 비주얼이 치고 들어온다.
한야의 아덴의 안정감에 만족하고 있으면 그보다 힘 있는 주상현이 댄스로 흥을 돋운다.
왜 이렇게 감명 깊지?
이 무대가 왜 이렇게 좋지?
정화 스킬에 영향을 받은 줄 모르는 사람들은 이들의 무대에 얼마나 집중했는지 채팅을 치거나 마음 점수를 올리는 것도 잊고 그저 감탄할 뿐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비주얼과 노래 실력, 군무를 적절히 이어나가던 와중 아덴과 케이가 동시에 뛰어올랐다.
“응?”
“미친…….”
채팅 대신 육성의 감탄사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거의 묘기에 가까운 기술. 그 아래 한야가 댄서들과 센터에서 춤을 추는 동안 주상현과 서도화 또한 백텀블링을 하며 뒤로 넘어갔다.
전력을 끌어내
있는 힘껏 달려도 넌 올려다볼 수밖에 없을걸
Feel resentment. Find a position that you can’t overcome.
프로젝트 그룹 유니드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주상현.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천재라 일컫는 게 맞을 법한 멤버들.
정신 차릴 틈이 없도록 몰아치는 볼거리들.
이렇게 가슴 깊이 와닿은 공연이 있었던가.
“…….”
언제부터 손이 멈췄을까.
……아마도 메인보컬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 거다.
* * *
어느새 공연은 후반을 향하고 있었다.
길어지는 이상 현상에 정작 멤버들은 관객들의 반응을 몰라 집중력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서도화는 조금 기가 죽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혹시 ‘정화’가 사고 친 거 아니야?’
생각하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자신이 노래를 시작함과 동시에 돛을 단 듯 연타되던 하트 아이콘이 미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될만한 싹이 보이는 그룹들이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더 빠르게 점수를 올리던 것과 확연히 다른 상황이었다.
‘망했나?’
원인은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다. 하나는 이 현장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가 생각보다 피폐해져 있다는 것.
정화 스킬에 단순히 기분이 좋다만 느끼는 게 아니라 좀 더 깊게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는 그냥 자신이 못했다거나.
사실 서도화는 자신의 실력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그럴 리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하트 아이콘이 매정하리만치 안 올라가니 별생각이 다 들었다.
하트 아이콘의 동결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역대급 망신이라고 할 만큼 계속되었다.
진짜 망했다.
무대를 끝마친 멤버들은 처참한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무대가 그렇게 별로였나.
우리 이제 뭐로 먹고살아야 하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려던 순간 자신들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뒤늦게 멈춰 있던 하트 점수가 폭발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게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와… 이게 연습생이냐 당장 데뷔해라 56번
-마음 겁나 올라갘ㅋㅋㅋㅋㅋㅋㅋ
-헐ㅋㅋㅋㅋ 2초 만에 3000명이 마음 누른 거임???
-진짜 깜짝 놀랐닼ㅋㅋ노래 들으면서 멍 때림;;
사람들은 늦은 만큼 아까보다 더 큰 성원을 보내주었다.
뭐 하나 부족한 게 없는 무대였다.
-아닠ㅋㅋㅋㅋㅋ이런 무대를 1라운드에서 보여준다고???
예선부터 너무 힘을 준 게 아니냐는 말이 줄을 이었다.
최고의 호조였다.
“……와.”
반쯤은 예상했으면서도 아까의 미동도 없던 마음 점수에 당황했던 탓이었을까?
진짜 다행이다.
서도화는 울컥 알 수 없는 기분이 치밀어 올랐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이내 제작진의 목소리가 현장에 울려 퍼졌다.
“감사합니다.”
그들이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 하트 아이콘은 계속해서 연타되었다.
* * *
공연 직후 56번은 빠르게 화제가 되었다.
[‘밀리언 아이돌’ 주상현의 56번 무대 천재들의 등장]
[‘밀리언’ 무대를 뒤흔든 56번 주상현의 재등장 멤버들도 심상치 않다?!]
[‘밀리언 아이돌’ 56번 메인보컬이 노래를 부르자 일순간 채팅창 멈춰]
[56번 만능아이돌 천재만재 등장!]
마치 56번 그룹이 프로그램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우후죽순 기사가 업로드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마음 안올라가서 애들 얼마나 당황했을깤ㅋㅋㅋ
-저 56번 못 봤는데 영상 어디서 보나요ㅠ
└공식은 없고 너튜브에 클립으로 돌아다녀요
└너튜브에 검색만 해도 나오겠다..좀 찾아보고 물어봐
-중반부 순서 진짜 56번 외에는 전멸ㅋㅋㅋㅋㅋㅋ
└56 아니었음 그냥 끄고 댕댕이 산책하러 감
└연습생들끼리 이렇게 수준 차이 나면 어캄 진짜
-근데 거기 메인보컬 완전 더티상 아님? 나만 글케 생각함?
└역시 그렇게 생각하니? 데스티니상들 나 못 버려…
-탈락자 없으니까 이번에 못 누른 만큼 다음엔 손가락 부서지도록 하트 누름
*더티 = 데스티니 엔터테인먼트 줄임말
각 아이돌 커뮤니티와 SNS는 밀리언 아이돌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처음의 이미지는 그냥 주상현이 있는 그룹이었다.
주상현이 경연에 재도전한다는 등 주상현이 소속된 그룹이라는 것으로만 언급이 되었지만 지금은 좀 다르다.
사람들은 멤버 하나하나의 재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주로 많이 언급되는 인물은 주상현을 포함해 서도화, 케이. 세 명이다.
지금 당장 데뷔해도 손색없을 정도의 실력에 외모 좋고, 멤버 조합도 무척 괜찮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경연이라 보통은 초반부, 중반부, 후반부 나뉘어서 통틀어 평가하거나 그럭저럭 기대해볼 만한 연습생들을 나열해놓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음에도 56번만은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써진 게시글이 생겨났다.
-공홈에서 56번 이름 찾아옴! 비주얼 쩌는 걔=케이, 노래 잘 부르는 걔=서도화
-근데 노래 ㅈㄴ 잘 부르더라;;
-다른 멤버 이름도 알려줘ㅠㅠ
-붉은 머리 핫한 걔=아덴, 훈훈한 검도청년처럼 생긴 래퍼=한야. 주상현은 알테니 패스
-전체적으로 비주얼 괜찮은데 서도화 너무 내 취향임. 확신의 더티상
-아아 다 치우고 얘네 춤도 봐. 왜 춤에 관한 이야기는 없음?
스트리밍이 진행된 직후부터 입소문을 타며 56번의 팬 유입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럴 수밖에. 모든 그룹을 통틀어도 멤버 하나하나 확실히 각인될 정도로 충격적인 무대였으니.
* * *
드디어 길었던 라이브 스트리밍에 끝이 보였다. 경연이 끝난 후 한껏 누그러졌던 멤버들이 감정을 추스린 건 또 한 번 수많은 경쟁자들 틈에 자리하게 되었을 때였다.
아직 공연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바깥에서부터 연습생들이 숨죽여 들어오며 빈 의자를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팀의 공연이 끝나갈 때쯤 무대 위로 진행자 서영이 등장했다.
잠시 후 마침내 저들의 경연이 끝나고 스트리밍 화면이 서영을 찍는 카메라로 전환되었다.
첫날 들었던 BGM과 함께 서영에게로 스포트라이트가 떨어졌다.
서영은 활기찬 목소리로 오프닝 멘트를 시작했다.
“드디어 백 팀의 연습생들이 준비한 1라운드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긴 시간 스트리밍을 지켜봐 주신 글로벌 K-POP 팬 여러분! 어떻게 보셨나요?”
서영의 입가에 활짝 미소가 지어졌다.
“기꺼이 마음을 주고 싶은 그룹이 생기셨나요? 저는 개인적으로 앞으로 K-POP의 미래를 짊어질 수많은 인재 모두에게 마음을 주고 싶을 정도로 무척 즐겁게 보았는데요. 그럼 이제 슬슬 1라운드 결과를 공개할 때가 되었습니다.”
서영의 말에 채팅창은 시청자들이 응원하는 그룹의 번호, 그리고 연습생들의 이름으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서영의 큰 화면에 금빛의 숫자가 떠오르며 카운트다운이 올라왔다.
“앞으로 10초 후 모든 점수의 집계가 마무리됩니다. 과연 1라운드의 순위는 어떻게 될지! 밀리언 시청자 여러분들은 어떤 팀에게 가장 많은 마음을 보냈을지! 앞으로 5초.”
서영의 차분한 말을 끝으로 전자 목소리가 카운트를 끝내며 마침내 모든 집계가 끝났다는 안내 VCR이 재생되었다. 힘찬 BGM과 함께 현란한 조명이 빠르게 돌아가며 연습생들을 비추어댔다.
“잠시 후 참여팀들의 순위가 공개됩니다.”
서도화가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과연 이 그룹은 얼마나 올라갈 수 있었을지, 그간 노력의 결과가 곧 발표될 것이다.
천 명 조금 안 되는 연습생들과 그보다 많은 스태프들, 그리고 시청자들이 오직 진행자 서영만을 쳐다보았다.
서영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긴장 어린 시선이 만족스러운지 기분 좋게 웃다가 활기차게 말했다.
“1라운드 최종 순위 발표하겠습니다!”
딴따단! 웅장한 BGM과 함께 삼면의 대형 스크린에 순위를 나타낼 흰 배경이 나타났다.
“먼저.”
서도화는 뜸을 들이는 서영을 보며 순위 발표도 꽤나 오래 걸릴 듯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곧 데뷔할 연습생들을 데리고 하는 경연 프로그램이고 전 시즌 연습생들처럼 후루룩 넘겨버리는 들러리 취급까지는 못 하겠지.
아마 스트리밍으로 진행되는 만큼 매정하게 보이더라도 초반에 공개될 뒷순위들은 제 번호를 확인할 정도로만 조명해주고 빠르게 넘기기는 할 테지만.
‘우린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화 스킬로 인해 마음을 많이 못 받아서 1라운드부터 높은 순위는 아니겠지만 집중 조명받을 30위 내에는 끝자리라도 들어갔으면.
서도화가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첫 번째 순위가 발표되었다.
서영이 해맑게 말했다.
“우선 100위부터-”
열정 넘치는 참가자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 줄 아는가?
“31위까지 한 번에 공개합니다!”
“……뭐?”
“한 번에?”
바로 지금까지의 노력과 일궈낸 성과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무대에 오르지 않는 이상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알려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