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화
서도화의 어깨가 움찔 작게 떨리다 내려갔다.
띠링띠링띠링!!띠링!띠링!!
코인 소리와 함께 스크린 위로 콩알만 한 크기의 이름들이 코인 소리와 함께 우르르 공개되었다.
가장 아래 순위인 100위부터 아슬아슬하게 무대에 오르지 못한 31위가 한 번에 공개되었다.
순위별 차등도 없이 70그룹의 번호와 순위가 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크기로 화면을 빼곡하게 채웠다.
마치 무대에 못 올라갈 놈들은 조명해주기도, 시간 소모도 아깝다는 듯 말이다.
너무하다. 매정하다 못해 악랄하다. 악랄한 공개 방식이다.
결국 70그룹의 연습생들은 그간의 노력도 격려받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를 30그룹의 들러리가 되었다.
조용하던 현장이 크게 소란스러워졌다.
“와 진짜…….”
“우리 번호 보여?”
서도화는 미간을 찌푸린 채 빼곡한 숫자 중 56번이 있는가 찾기 시작했다.
한 화면에 얼마나 욱여넣었는지 작아서 이름을 찾기도 힘들다.
‘없나? 아니 못 찾는 건가?’
채팅으로 올라오던 말이 맞다. 이럴 거면 그냥 처음부터 30팀 가지고 촬영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 진짜 개악질이다
-이건 좀 아니지 않냐ㅋㅋㅋㅋ
-그래도 40위까지는 아쉽다고 코멘트라도 넣어주지
-이게 재밌냐 팝넷아...
-ㅋㅋㅋ팝넷 이번엔 대놓고 나쁜놈이네
당연하게도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빠르게 올라가는 게 대충 보였지만 서도화는 56번을 찾는다고 내용까진 보지 못하였다.
“번호 찾은 사람 있어?”
“아니요.”
“아덴, 케이! 번호 찾고 있는 거 맞지?”
“네.”
“찾고 있다, 습니다.”
아 모르겠다.
서도화는 멤버들의 대화를 들으며 찾기를 포기했다.
이름 찾다가 눈이 빠지는 것보단 앞으로 나올 순위들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확인하는 게 훨씬 빠를 듯하다.
서도화는 여유를 되찾고 표정을 풀었다. 악독하긴 한데 스크린 전체를 참여자들의 숫자로 꽉꽉 채워두니 새삼 얼마나 많은 연습생들이 참여했는지 한눈에 들어오긴 한다.
팝넷은 이걸 노렸겠지.
자극적인 공개 방식과 더불어 우리가 이렇게 규모가 크다! 를 보여주기 위해.
……는 무슨. 그냥 악질이다.
아직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제작진은 연습생 모두가 제 이름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연습생들이 제 그룹의 번호를 확인하고 울고불고 착잡해하는 모습들이 이곳저곳에서 보이기 시작하니 이 정도면 됐다 싶었는지 서둘러 진행을 넘겨버렸다.
서영이 다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아직 순위를 확인하지 못한 시청자 여러분들께서는 밀리언 아이돌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은 C스테이지에 설 16위부터 30위까지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띠링띠링띠링!
코인 소리와 함께 아래 순위부터 차례대로 그룹들의 번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턴 순위에 따른 각 그룹의 번호가 확실하게 보였다.
아까처럼 극명하게 연습생들의 반응이 갈리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울적한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서도화는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에서 시선을 거두고 화면에서 제 그룹의 번호 56번을 찾기 시작했다.
만약 ‘권외’ 70팀에 속하지 않았다면 이번에 공개된 순위를 받을 확률이 가장 높지 않을까?
메인 스테이지에 올라가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론 마음 점수 못 받은 것도 있고, 주상현 혼자 견인할 수 있는 인기도 한계가 있을 것이니 딱 이 정도쯤.
그렇게 천천히 하나씩 순위가 발표되는 동안 서도화의 표정은 미묘하게 변해갔다.
‘……어라?’
진짜?
아직 전부 드러나진 않았지만 공개된 그룹의 이름 중 56번은 없었다.
……이건 더 높은 순위라는 걸까, 아니면 권외 순위를 받았다는 걸까?
서도화가 아덴에게 물었다.
“혹시 아까 31위부터 100위 사이 우리 번호 있었어?”
아덴이 고개를 저었다.
“몰라. 근데 없던 거 같은데.”
아덴이 그 좋은 눈으로도 못 봤을 정도면 전자일 확률이 높다.
서도화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어라 진짜? 정말?
서도화는 경외가 깃든 눈빛으로 주상현을 바라보았다.
“상현아…….”
주상현의 인기가 이 정도로 어마어마했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주상현은 순위에 집중하느라 서도화의 애정 어린 부름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러든 말든 서도화는 주상현을 존경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우리를 살렸다.’
서도화의 정화 스킬로 빠진 표 수, 기반이 없어 못 받는 표수 는 주상현의 팬들이 아득바득 올려줬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러던 와중 심각하게 전광판을 보던 주상현이 갑자기 화색이 되었다.
“아……!”
작게 탄성을 내뱉는 소리에 서도화가 화면을 바라보았다.
22위에 이들의 번호 56번이 적혀있었다.
“와악!”
“오, 22위? 엄청 높은 거 아니냐?”
“엄청, 엄청 높은 거지.”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를 질렀다.
주상현이 제일 신났고 그 뒤로 아덴과 서도화. 한야도 감격한 표정이었다.
“우리가……해낸 것이냐.”
“네! 형! 우리 해냈어요!”
케이도 주상현에 의해 일으켜 세워졌다.
그는 놀란 듯하다 곧 의기양양해졌다.
“당연한 것이다! 내가 있는 팀이 못할 리가 없으니.”
“그럼요!”
“얘들아 정말 고생 많았어.”
그간의 노력, 낮았던 기대치, 완전한 승리. 물론 메인 스테이지에 오를 수 있는 TOP 5는 아니었지만 상관없다. 그저 무척 기뻤다.
주변의 몇몇 그룹도 이들과 같이 크게 환호하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아이고, 기쁜 건 이해하지만 아직 순위 발표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두 조용히 착석해주세요. 그럼 다음, 서브 스테이지에 오를 6위부터 15위까지의 순위 공개하겠습니다.”
상위권의 순위로 갈수록 ‘역시’ 싶은 그룹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대형기획사, 원래부터 유명했던 그룹, 재데뷔를 준비 중인 그룹, 리얼리티 예능 촬영 경험이 있는 그룹 등, 다들 유력한 우승 후보들이다.
“드디어 대망의 방송 출연권을 획득한 1위부터 5위까지의 순위를 공개하겠습니다.”
혼란과 웅성거림 속에 서영이 카메라를 보며 조금 더 들뜬 목소리로 말했고 그와 동시에 잔잔하게 깔렸던 BGM이 조금 더 화려하고 비장하게 바뀌었다.
또한 스크린 속 화면도 고급스러운 배경으로 바뀌었다.
마치 명예의 전당을 연상시키는 것 같은 붉은색과 금색으로 도배를 해놓은 화면 속에 5개의 금박으로 둘러싸인 빈 상자가 뱅글뱅글 돌며 나타났다.
1위부터 5위까지의 그룹에겐 이렇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다니.
역시 될 놈들은 확실히 밀어주는 팝넷답다.
“첫 방송 오프닝의 메인 스테이지 자리를 가져가게 될 5위의 그룹은 어떤 그룹일지! 5위 공개합니다.”
여기서부턴 서영이 한 그룹씩 소개해주며 공개가 시작되었다.
아직 순위가 공개되지 않은 그룹의 팬들은 난리가 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그룹이 조금이라도 늦게 불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채팅창에 염불을 외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차례대로 공개되는 순위. 그중 3위는 데스티니에서 내놓은 그룹이, 2위는 마케팅 잘하기로 소문난 꽤 탄탄한 중견 기업의 그룹이, 1위는 재미로 나왔다며 상당한 임팩트를 남긴 너튜버 그룹이 가져갔다.
-ㅋㅋㅋㅋㅋ다음에도 1위 가즈아~
-개웃기넼ㅋㅋㅋㅋㅋ
-연습생들 : (개뻘쭘)
-근데 솔직히 잘하기는 제일 잘하지 않음? 킹심 빼고 봐도
너튜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인 만큼 1위 이후 채팅창이 그들의 구독자들에게 점령당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최선을 다해도 저들을 이기기는 꽤 힘들겠지.’
서도화는 한바탕 뒤집힌 채팅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흠…….’
철옹성 같은 팬층이다.
아무리 실력과 재능,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한들 우승까지 기대해보기엔 꽤 고난이 예상되었다.
한차례 순위 발표로 인한 소란이 끝났다.
“이로써 1라운드가 모두 끝이 났습니다. 총 백팀의 연습생들은 이제부터 순위대로 배정받은 자리에서 오프닝 공연을 연습하게 됩니다. 다들 어떻게 원하는 성과를 거두셨나요?”
서영은 연습생들을 향해 묻곤 다시 카메라를 보았다. 딱히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시청자 여러분들은 응원하는 연습생이 만족스러운 순위를 받으셨는지요?”
서영은 웃고 있었지만 현장과 채팅창의 반응은 몹시 좋지 않았다. 신난 건 1위 너튜버의 구독자들 뿐이었다.
시작과 같은 자리, 같은 BGM이 깔리고 있음에도 연습생들이 앉은 관객석엔 이따금 꾹꾹 슬픔을 눌러 담은 훌쩍임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들의 슬픔을 누가 헤아려줄까.
이곳은 조명을 받는 이들의 눈물과 기쁨만 위로받고 축하받는 자리인 것을.
“그럼 연습생 전원에게 심심한 축하와 위로 그리고 응원을 드리며 이제-”
한동안 밝았던 공간이 다시 어두워졌다.
모든 이의 시선이 서영에게로 주목되었다.
순식간에 엄중해진 분위기 속에서 서영이 말했다.
“다음 2라운드의 주제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영이 손을 활짝 펼쳐 자신의 뒤 대형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와 함께 서영을 비추던 조명이 사라졌고 스크린엔 새하얀 배경 속 <밀리언 아이돌> 로고가 도트로 박힌 카드 세 장이 돌아다니다 나란히 멈춰 섰다.
카드엔 각각 Type A, B, C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 주제는 세 가지로 나뉩니다. 각 그룹은 공개되지 않은 세 가지 키워드 중 하나를 선택해 공연을 하게 되며 같은 키워드를 선택한 그룹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서영은 차분히 다음 라운드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설명을 정리하자면 같은 키워드를 선택한 그룹끼리 경쟁해 살아남는 시스템.
아마 방송의 재미를 위해 인기 키워드와 살리기 힘든 키워드가 있을 것이다.
인기 키워드는 서로 차지하기 위해 박 터지는 데다 상위권 그룹들이 몰린다는 단점이 있겠고 아닌 키워드는 엔간해선 좋은 무대 구성이 힘들 거고.
그래도 서도화는 한결 편한 모습이었다.
‘오늘처럼만 하면 뭐. 10위권까지는 오르겠어.’
어떤 주제든 나날이 발전하는 좋은 무대를 보여주면 될 것이다.
……하지만, 원래 용사 파티의 아이덴티티는 시련과 역경이다.
그러니 용사가 있는 파티는 언제나 일이 편하고 단순하게 풀리지 않는 법이다.
이어지는 서영의 말에 높은 순위를 받고 희망에 차 있던 서도화의 눈이 다시 팍 죽어버렸다.
“키워드별 공연의 균등함을 위해 각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팀은 34팀으로 제한하며 1라운드 1위 팀부터 순서대로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순위별 어드밴티지를 반영하여-”
“어드…밴티지?”
“1위부터 5위까지의 그룹에겐 각 주제의 키워드를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와나, 이 나쁜 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