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화
순위가 존재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당연히 어드밴티지는 있어야 하고 그게 좋으면 좋을수록 연습생들의 반응이 다양해지며 방송의 재미도 올라가는 건 맞다.
하지만 어드밴티지가 단순한 보상을 넘어 반칙 수준이 되면 문제가 되는 거 아닌가?
“1위부터 5위까지의 그룹은 키워드 선택 시 세 가지 키워드를 모두 공개합니다. 선택할 때 많은 도움이 되겠죠?”
도움 수준이 아니고 반칙이라니까 그냥.
서영의 말에 현장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주변에 배치된 카메라가 그중 유독 리액션이 큰 몇몇 그룹을 콕 찝어 촬영했다. 그들의 반응을 보아 선택권이 없다고 해도 될 만큼 낮은 순위의 그룹과 최상위권 그룹인 듯하다.
서도화가 멀뚱멀뚱 그들을 쳐다보자 한야가 그의 팔을 툭 쳐 시선을 돌리라는 눈치를 줬다.
“너무 쳐다보지 마. 견제하는 줄 알아.”
“아, 네.”
서도화가 정면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20위권 그룹한테도 뭐 어드밴티지 있을까요?”
하다못해 키워드 하나 정도만 알게 되어도 22위면 키워드 선택 순서에 관해선 불리한 게 없을 건데.
한야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주면 좋겠네.”
한편 멤버 중 가장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주상현은 멤버 모두에게 돌아가며 달라붙어 묻고 있었다.
“형들은 뭐 뽑고 싶으세요? 케이 형은요? 아덴 형은요?”
“아무거나? 어차피 뭐가 뭔지 모르는 거 아니야?”
“그거야 그런데. 그래도 감이라는 게 있잖아요. 이게 좋겠다! 뭐 이런 거.”
그러자 한야가 미소를 지으며 주상현에게 물었다.
“상현이는 뭐 고르고 싶어? 아무래도 최소한 마음에 드는 알파벳으로 골라야 할 것 같아. 다른 멤버들도 의견을 말해줄래?”
“도화 형은요?”
주상현의 물음에 서도화가 말했다.
“저는 B.”
이유는 없다. 주제를 모르니 그냥 아무거나 찍은 거다.
“케이 형은요?”
주상현의 물음에 오늘 칭찬을 잔뜩 받아 위풍당당해진 케이가 말했다.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나는 그것으로 하지!”
“…….”
뭐가 뭔지도 모르는데 좋은 게 뭔지 어떻게 알아.
주상현이 당황하며 한야를 쳐다보자 그는 태연히 케이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럼 가장 첫 번째 카드 A로 할래?”
“좋다!”
케이가 대답했고 한야의 시선이 아덴에게로 향하자 아덴은 도화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나도 도화가 하자는 걸로. 쟤가 고르는 선택은 대체로 괜찮았거든요.”
서도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텍스트 창이 선택에 대한 힌트나 조건부로 미래 예측을 할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거참 편하긴 했었는데….
하다 하다 제2세계가 그리워질 듯하여 가슴이 먹먹해지는 도화였다.
아무튼 서도화와 멤버들이 어느 정도 차등에 납득하며 어느 키워드를 뽑을지 속닥이고 있을 때 서영이 한 번 더 연습생들을 주목시켰다.
“5위까지의 그룹에게만 어드밴티지가 있으면 좀 치사하죠?”
헉! 멤버들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설마 정말 추가 어드밴티지가 있는 건가?
서영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의미로 6위부터 15위까지의 그룹에게도 어드밴티지를 제공하겠습니다. 6위부터 15위는 원하는 하나의 키워드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공개된 키워드를 선택할지 말지는 당연히 팀의 자유의사고요.”
멤버들의 표정이 금방 착잡해졌다.
슬프게도 이마저 22위인 유제이의 연습생들에겐 해당하지 않았다.
하여튼 팝넷. 연습생들은 물론이고 팬들 이 갈리게 하는 건 잘한다.
편의를 얻지 못한 다수의 연습생들로 우중충해진 현장. 하지만 다행히도 서영은 이들에게 어느 정도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16위부터는 안타깝게도 키워드 공개 없이 선택권만 주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예 힌트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니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화면을 잠깐 봐주시겠어요?”
서영이 화면을 가리키자 촤르륵 소리와 함께 화면 속 A, B, C가 적힌 카드 세 장이 뒤집혔다. 뒤집힌 카드엔 각각 다른 색으로 0표라고 적혀 있었다.
“실시간으로 키워드별 선택 수를 공개합니다! 이로써 키워드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해도 가장 인기 많은 키워드는 유추할 수 있겠죠?”
선택 수를 알려주면 그걸 통해 무엇이 어려운 주제겠거니 유추할 수 있다.
우울해하던 대부분의 그룹들은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납득한 건지 아니면 체념한 건지 현장은 그럭저럭 진정되었다.
어쨌든 이런 랜덤식 주제는 가장 어려운 것만 안 고르면 되니까.
서영이 진행을 이어갔다.
“자, 이제 주제 선택에 대한 설명은 끝났고 우리 밀리언 시청자 여러분들도 연습생분들도 가장 궁금해하실 부분을 말씀드려야겠죠?”
서영은 큐 카드를 넘기곤 싱긋 웃었다. 화가 잔뜩 난 채팅창과는 상반된 연륜 있는 미소였다.
“바로 2라운드의 탈락비는 얼마나 될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연습생들이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녀가 자신의 뒤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 화면 속 A, B, C가 적힌 카드들의 가운데 붉은 선이 그려졌다.
그리고 붉은 선을 기준으로 위쪽엔 파란색, 아래쪽엔 검은색이 칠해졌다.
화면의 배경이 검은색이라 언뜻 보기엔 세 장의 카드 모두 반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흐억!”
연습생들이 놀라며 한층 심각해졌다.
연습생, 시청자 할 것 없이 그들은 설명 없이도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인원 중 반은 탈락이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정답이었다.
“각 키워드당 50%에 해당하는 그룹이 탈락하게 됩니다.”
이로써 100팀 경연은 자극을 위한 어그로임이 확실해졌다.
100팀 중 반 이상이 탈락.
한 라운드만에 단 50팀만이 남아 3라운드를 치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반절이 탈락자가 된다는 것뿐이 아니었다.
“……지금 키워드당 50%라고 하지 않았어?”
서도화의 중얼거림을 아덴이 알아서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들었어. 그게 왜?”
키워드당 반절이면 무작정 좋은 키워드, 인기 많은 키워드를 가늠해서 들어가는 것도 힘들어지지 않나?
잘하는 팀들이 인기 많은 키워드로 몰린다면 암만 잘 해봐야 탈락의 위험이 있을 수 있으니까.
또 반대의 경우도 있을 거다.
무작정 다른 팀이 많이 선택하는 키워드를 골라선 안 된다는 말이었다.
관객석에 혼란이 가득해도 서영은 꿋꿋하게 진행을 이어갔다.
“그럼 지금부터 키워드 선택을 시작하겠습니다.”
키워드 선택은 설명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었고 1위부터 5위까지의 각 그룹 리더가 서영의 호명을 받아 무대 위에 마련된 비밀 선택 방으로 향했다.
멤버들끼리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자마자 앞쪽에 앉아 있던 주상현이 획 몸을 돌렸다.
“우리 뭐 선택해요? 도화 형 말대로 B 해요? 아니면 케이 형이 말한 A?”
“너희가 원하는 거 선택하고 올게. 상현이는?”
“저는……. 일단 사람들 선택하는 것 좀 보고요.”
“저도 다시 좀 생각해볼게요.”
서도화가 말했다. 아무거나 찍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그 사이 키워드를 모두 확인한 1위부터 5위까지의 리더들이 각자 원하는 주제를 선택하고 내려왔다.
A가 2표, B가 3표, C가 0표였다.
‘A랑 B는 취향이나 이미지에서 갈리는 정도인가?’
C는 건드리기 쉽지 않은 주제인 모양인데 아직 몇 그룹 더 거쳐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6위부터 10위까지 각 그룹의 리더들은 무대로 올라와 주세요.”
호명된 리더들은 부담 가득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이들이라고 표정이 다르지는 않았다.
1위부터 5위까지의 리더들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와 자신의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키워드가 뭐였다느니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당연하겠지만 여기까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서도화가 케이를 툭 쳤다.
“야, 쟤네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들리냐?”
그러자 케이가 혐오스럽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귀가 무슨 만능인 줄 아느냐!”
“쉿! 제발 조용히. 아 그래, 미안해. 미안해. 그냥 혹시나 해서 한 말이지.”
아덴이 케이를 힐끔 보더니 굳이 또 한 마디 얹었다.
“마왕 별거 없네.”
케이는 심통이 잔뜩 난 표정이었지만 더 말이 없었다. 아쉽지만 정말로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선택을 끝낸 출연진들이 역시나 애매한 표정을 짓곤 내려왔다.
현재까지 A가 3표, B가 6표, C가 1표였다.
B가 가장 반응 얻기 쉬울 키워드, C는 다른 두 가지보다 애매하거나 실험적인 키워드.
이렇게 생각하면 되려나.
다음 팀, 그다음 팀을 거치며 C 키워드도 어느 정도 고르는 그룹들이 생겨나긴 했지만 여전히 다른 두 가지에 비하면 선택률이 적었다.
특히 B는 조기 마감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인기가 무척 많았다.
“흐음.”
뭐가 좋을까.
키워드도 모르는 걸 가지고 이렇게 고민할 줄이야.
그때 툭- 케이가 소심하게 서도화의 옆구리를 찔렀다.
“왜.”
“들었다.”
케이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짧게 말했다.
“뭘?”
“……네가 아까 가리킨 인간이 말하더군. ‘C도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고.”
“……그래?”
서도화가 귀 기울여 듣는 듯하자 케이는 아주 약간 우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마왕 별것 없다던 아덴의 말을 지금까지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서도화는 드물게 케이에게 활짝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너 대단하다.”
“흥, 별것 아니다. 딱히 듣고 싶어서 들은 건 아니지만 내 귀가 워낙 좋아 들리더군.”
“그래 잘했다.”
서도화는 케이의 입꼬리가 묘하게 씰룩거리다 빠르게 가라앉는 걸 확인하곤 다시 고민에 잠겼다.
‘C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다만 다른 키워드가 더 좋기에 뽑았다. 인가.
케이의 말대로라면 A와 B가 매력적인 주제였을 뿐 C가 너무 도전적인 키워드는 아니라는 것.
그리고 A와 B는 앞선 그룹들의 선택 때문에 높은 순위의 그룹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다.
‘그렇다면 뭐.’
서도화가 잔잔히 미소 지었다.
한 케이 열 어드밴티지 안 부럽다.
“…….”
서도화는 까무러치게 놀라며 생각을 접었다.
세상에, 감개무량하게도 케이를 이렇게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개똥도 약으로 쓴다더니.
서도화가 한야와 주상현에게 제안했다.
“A랑 B는 너무 잘하고 인기 많은 그룹이 많아요. 좀 어렵더라도 C로 해봤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의 말에 한야의 표정은 미묘해졌고 주상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형 말대로 A, B는 경쟁이 너무 세요. 같은 키워드로 경쟁하는데 상위권 팀 너무 많으면 좀 부담이 커서…… 저는 좋아요.”
이미 경연프로를 경험해봤기에 이런 경우 차라리 주제가 어려운 게 낫다고 생각했다.
‘초반이니까.’
주상현이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초반에는 무엇보다 살아남는 게 제일이다.
상위권 그룹, 멤버들의 인기는 생각보다 훨씬 단단해서 비집고 들어가기 쉽지 않으니 열심히 준비한 무대를 인기에 밀려 탈락하는 것보단 경쟁력 낮은 키워드로 안정적으로 통과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덴이 주상현을 힐끔 보다 툭 말했다.
“난 도화 말에 동의해요.”
“그래?”
그러나 곧 선택을 위해 올라가야 하는 한야는 여전히 고민이 많은 눈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정체도 알 수 없는 인기 없는 키워드를 선택하는 건 좀.
원래도 워낙 모험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때 케이가 대담하게 한마디 했다.
“C도 괜찮다고 한다. 한야 형, 내가 귀가 너무 좋아서 C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어요.”
케이의 말에 한야가 미소 지었다.
“알았다. 그럼 C로.”
본인은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멤버들이 C를 하겠다는데 어쩌겠는가.
사실 뭘 해도 돈을 가져다 부어버릴 생각이라 상관없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