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화
이 열정 많은 회사는 되도록 경연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생각을 지지해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고로 서도화가 추천한 트리프린스의 룰은 곧장 확정 후보군에 올라섰다.
김유진이 자신의 휴대폰 음원사이트 어플을 켰다.
“일단 이 곡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 여기서 한번 들어볼게요. 더 좋은 의견 있으면 말하고.”
“네.”
김유진이 트리프린스의 룰을 재생했다.
이 곡의 가장 큰 장점은 유명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히트곡 없이 케이팝 팬들만 아는 정도의 적당한 인지도를 쌓다 해체한 그룹의 수록곡인지라 관심받지 못한 비운의 곡.
너튜브 그들의 공식채널(이었던 것)엔 콘서트, 팬 미팅 등에서 부른 이들의 라이브 공연 영상이 있지만 이것보다 서도화의 학교 축제 장기자랑 영상이 훨씬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을 지경이었다.
“음……잘 모르겠다. 난.”
가만히 곡을 듣던 직원들에게서 드디어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좀 심심하지 않아?”
“가사는 괜찮은데 가사만 보고 가기엔 전혀 정글이 아닌데.”
사실 이 곡을 비운의 곡이라고 하기도 좀 그런 게 그룹 인지도가 없어 유명해지지 않았다가 아니라 그냥 곡 자체가 심심했다.
왜 그런 곡 있지 않은가?
느낌은 너무 좋은데 탁 마음을 치고 들어오는 부분이 없어 묘하게 아쉽고 심심한 곡.
분명 괜찮은 곡이긴 한데 어디가 포인트인지, 어느 파트를 따라불러야 좋을지 정확히 집기 애매한 곡.
딱 그런 곡이 ‘룰’이란 곡이었다.
그러나 서도화가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 곡을 추천한 이유가 있다.
“확실히 편곡이 빡 들어가긴 해야 할 것 같긴 해요. 특히 보컬 살릴 부분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음, 근데 그런 리스크를 안고 이 곡을 선택할 이유가 있을까?”
“다들 별로라고 하시면 어쩔 수 없지만 저는 이 곡 편곡만 잘하면 정말 유니크하고 좋은 무대 만들 수 있다고 보거든요.”
일단 상당히 상대를 깔보는 듯한 가사가 아직 감정 살려 노래를 부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덴과 케이에게 도움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이 곡은 정말 이 그룹의 장점을 크게 살려줄 수 있는 마법의 곡이다.
“대표님 저 노트북 좀 빌려도 돼요?”
“어 그래. 써.”
서도화는 너튜브를 틀어 트리프린스의 룰 라이브 공연 영상을 재생시켰다.
그와 동시에 너튜브 창을 추가해 안쪽엔 트로피컬 하우스 풍 사운드를 재생했다.
“편곡하면 진짜 곡 느낌이 달라지는 게 원곡 베이스 빼고 비트만 다르게 해줘도 완전히 바뀌어요.”
“……오.”
oh- oh- ah- aya-
거리를 좁히고 눈을 부딪쳐
넌 올려다볼 수밖에 없을걸
분명 같은 곡과 멜로디임에도 깔리는 반주가 달라지며 새로운 곡처럼 들려왔다.
특히 댄스 파트로 들리는 추임새 부분은 반음씩 올라가는 멜로디와 더해 말 그대로 정글 풍 노래가 되어버렸다.
“확실히 그렇네. 보컬 파트 자리 만들고 사운드 바꾸면 진짜 쓸만하겠는데?”
“거기다 이 그룹 곡은 댄스 브레이크 부분이 항상 좋았어요. 멤버들 특기 보이기도 좋을 겁니다.”
5년간 음악 믹스 작업 대신 하프만 띵땅거리고 있었더라도 서도화는 한때 데스티니에서 천재라 불리며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몸이다.
천재 소리가 아깝지 않을 만큼 음악적 센스가 뛰어났다.
“평소에도 각종 월말 평가에 이 곡 저 곡 믹스해서 가져오곤 했었어요. 도화는.”
한야가 슬쩍 말을 얹어 서도화를 칭찬했다.
서도화는 민망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연습생 되기 전부터 학교 댄스팀 활동 때문에 이것저것 해봤어요.”
거기다 데스티니에서 본격적으로 작곡과 편곡을 배우기도 했었고.
데스티니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과거의 영광을 좇는 느낌에 기분이 더러워져서 굳이 이야기하지 않기로 했다.
김유진은 한 번 더 곡을 동시에 재생시켜보더니 직원들에게 물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해요?”
물론 이 곡을 선택하면 다른 곡들에 비해 상당이 손이 많이 간다는 단점도 있다.
원곡이 무척 애매한 만큼 무지막지하게 뜯어고쳐야 할 거다.
또한 편곡에 맞춰 안무도 새로 만들어내야 할 거고 보컬을 살리기 위해 추가적인 파트를 만들어야 했다.
한마디로 곡 하나 새로 만드는 것만큼 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제대로 만들면 누구보다 독특하면서도 개성 있는 무대가 탄생할 거다.
남들과 다른 독창적인 무대가 얼마나 잘 먹히는지 이들은 지난 라운드에서 1위를 한 너튜버 그룹의 무대를 보며 알았다.
그때 아덴이 갑자기 말했다.
“전 찬성이요.”
뭘 알고 찬성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찬성표 하나가 나왔다.
치열하게 싸워 oh
모두 무릎 꿇어라
I am the king 여긴 나를 위한 영역
그 와중 아직 끄지 않은 노래가 2절의 코러스 파트 이후 하이라이트 댄스 파트에 들어섰다.
댄스 하나는 끝내주던 그룹답게 후렴에도 존재하지 않던 임팩트를 댄스 파트가 몰아 가져갔다.
“저도 좋아요.”
댄스 파트를 듣자마자 주상현도 찬성표를 던졌다.
“편곡은 도화 형이 의도한 대로 나오면 되게 좋을 것 같고 방금 그 파트 장난 아니게 좋지 않았어요? 안무 되게 잘 나오겠어요.”
댄스 파트의 임팩트에 넘어간 모양이다.
유제이의 기대주이자 사랑받는 막내 주상현이 서도화의 의견에 찬성하고 나서자 그제야 직원들도 하나둘씩 찬성표를 던졌다.
그리고 아직 애매한 듯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 몇 사람.
서도화는 그들의 결정을 돕기 위해 한 마디 얹었다.
“어쨌든 저희는 일단 눈에 튀어서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무려 100팀. 그중에 살아남는 건 반절.
수많은 그룹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튀어야 한다.
여기서 도전을 하지 않는다고? 모험이라도 해서 임팩트를 남기지 않으면 단 50그룹만 살아남는 합격자 명단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 우리 한번 해봅시다.”
그 말에 과반수 이상이 찬성표를 던지며 2라운드의 곡은 ‘룰’로 결정되었다.
“시간 없으니까 편곡해줄 스튜디오 빨리 섭외해야겠네요.”
김유진의 말에 한야가 손을 들었다.
“대표님. 편곡자 섭외는 저한테 맡겨주세요.”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역시 우리 그룹 대표 재벌다웠다.
* * *
곡이 정해지자 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준비되기 시작했다.
무대 컨셉이 정해졌고 이틀 만에 편곡이 완료되었다.
한야가 누구한테 부탁했는지는 모르지만 돈 냄새가 폴폴 나는 곡엔 심심했던 부분이 완전히 보강되었고 서도화의 보컬을 살릴 수 있는 파트가 마련되었으며 댄스 브레이크가 훨씬 파워풀해졌다.
서도화는 편곡된 곡을 끝까지 듣고 일어났다.
“완벽하다. 이제 연습하자.”
서도화는 곡을 들으며 어떠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첫 파트는 보컬을 길게 살렸으며 1절의 후렴구 또한 묘하게 반주를 줄이고 목소리를 살리도록 만들어놨다.
딱 봐도 서도화가 부를 만한 부분들을 길게 끌어놨다.
서도화는 이게 기선제압 제대로 하라는 압박으로 들렸다.
1라운드 이후 회사에서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배로 늘어난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
물론 커뮤니티에서도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다곤 하지만 아직 그들의 기대가 아직 신인 나부랭이에겐 조금 부담이 되긴 했다.
과연 내가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열심히 하기는 하겠지만.
“흠흠.”
서도화가 소심한 걱정을 하며 크게 목을 풀고 있을 때였다.
“와 진짜 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주상현이 갑자기 큰 소리를 냈다.
덕분에 조용히 혼자만의 고민에 해답을 내던 서도화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미간에 깊이 주름을 만들었다.
“놀래라……. 뭔데?”
주상현은 들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서도화에게 매달리려다 멈칫 그보다 편한 더 먼 거리의 아덴에게 매달렸다.
서도화에게 매달리기엔 아직도 좀 어색한 모양이었다.
“1라운드 5위권 멤버들은 따로 뭐 촬영 했다는 거 들었어요? 도화 형이나 한야 형은 들었으려나?”
서도화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못 들었는데? 따로 촬영했대?”
이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1라운드는 오프닝 곡 녹화 때의 어드밴티지 말곤 따로 베네핏에 대한 언급은 없지 않았던가?
황당함에 되묻자 주상현이 분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니 저는 데스티니 아는 형한테 들었거든요? 5위까지는 오프닝곡 연습하러 펜션까지 갔다는대요? 우리는 그냥 연습실에서 합동 연습하잖아요.”
주상현이 말하기를 상위권 팀들은 키워드에 대한 회의와 연습 장면을 촬영하고 그 이후 여러 아티스트들을 선생님으로 모셔 5위권 팀끼리 모여 숙박을 하며 2박 3일간 오프닝곡 및 2라운드를 준비 하며, 놀고 자기들끼리 추억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아마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나올 테지.
이야기를 듣던 서도화의 눈가가 미세하게 떨렸다.
숙박?
아티스트 선생님을 모시고 촬영?
팬들이 좋아할 만한 서사를 한가득 쌓으러 갔다고?
“여러모로 부럽다. 그죠.”
5위권 멤버들의 소식을 멤버들에게 전한 주상현이 뾰로통해졌다.
“……그렇네. 하아, 연습하자.”
서도화는 대충 대답하며 멤버들을 일으켰다.
“별로 안 부러워 보이는데요. 저만 이러는 거예요? 전 엄청 부러운데.”
“걔네들 소식 알아봐야 마음만 안 좋잖아.”
서도화의 다정한 목소리. 그러나 케이가 움찔거렸다. 아덴이 서도화를 힐끔거렸다.
‘이 악물었는데.’
아덴이 심드렁하게 생각하고 눈치껏 주상현을 일으켜 자리에 배치했다.
안 부럽다던 서도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형?”
솔직히 말해서 그는 되게 부러워 보였다.
“…….”
사실 부럽다.
비단 방송을 탄다, 차별적인 콘텐츠 촬영을 한다는 게 부러운 건… 기본이고 인기 많고 경험 많은 아티스트들에게 본인들이 준비한 공연을 보여주고 피드백 받을 수 있다니.
분명 그들에게 좋은 경험, 배움이 되었을 거다.
그들에게는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들보다 열정이 없거나 꿈이 허접한 건 아니다.
조금 더 유명해지고 싶고 더 높은 순위를 받아 한 번이라도 더 카메라에 찍히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아티스트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다면 가뜩이나 순위 높은 연습생들이 더 완벽해져서 2라운드를 치를 테지?
후에 방송이 나가면 팬층도 더 탄탄해지고.
‘1위부터 5위까지는 라운드마다 이런 보상이 있는 건가?’
질투심이 불타올랐다.
조용히 그러나 무섭게 활활 열정을 불태우는 서도화를 보며 한야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부러운 만큼 우리도 열심히 하면 돼. 다음 라운드엔 순위 더 오르겠지.”
부드럽게 멤버의 부러움을 연습에 대한 열정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가히 리더다운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