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32화 (32/270)

제32화

도로시는 쉬는 시간을 반납한 연습생들에게 보상하듯 한 명 한 명 꼼꼼히 가르침과 피드백을 이어갔다.

덕분에 아덴과 케이는 오프닝의 안무를 외우는 데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다.

쉴 사람은 쉬고 연습할 사람은 연습하고. 이렇게 조금의 시간이 흐르니 언젠가부터 상황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쉬겠다고 잠시 자리를 이탈한 연습생들이 이젠 쉴 만큼 쉬었는데도 연습에 참가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른 채 도로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도로시가 완전히 그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미리 서 있던 멤버들의 피드백만 이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모습, 아마 방송에 나가면 선생이 제자들을 차별하는 상당히 자극적인 장면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 연습을 이어나가는 이들이 되레 나쁜 놈들로 편집되어 나갈지도 모르겠다.

아침까지만 해도 정말 화기애애하고 다들 으쌰으쌰하는 분위기였는데.

어느새 연습생들 중 일부가 큰 잘못도 없이 벌을 받는 듯한 분위기가 되었다.

서도화가 그들을 힐끔거렸다.

땀도 닦지 못한 채 복귀해서 눈치보며 울먹이는 연습생들을 보니 참 안타깝다 못해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다.

참고로 도로시란 트레이너는 이런 살벌한 분위기를 정말 잘 유도하는 사람이다.

데스티니에서 연습 시작과 동시에 잡담 금지라는 규칙을 만든 게 바로 이 사람이다.

때문에 데스티니 연습실 풍경이 한풀 삭막해졌고 덕분에 소속 아이돌들의 댄스 실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연습생들이 늘어지지 않고 바싹 군기가 들어서 연습에 악착같이 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매정하리만치 가차 없고 무척 힘든 연습에 다들 괴로워하지만 일단 견뎌내면 효과는 상당하다.

살얼음이 잔뜩 낀 것 같은 상황. 아덴 또한 불만스레 도로시를 힐끔거렸다.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 조용히 있기는 한데 용사로서 이런 불합리한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냥 다 같이 하면 안 되냐고 물어볼까?’

생각하며 서도화를 보자 서도화는 그의 생각을 어떻게 눈치챈 건지 빠르게 고개를 젓곤 눈빛으로 말했다.

‘가만히 있어.’

‘아 왜! 이건 불공평해.’

‘역효과만 나! 입 다물고 연습이나 해. 이건 경쟁이야.’

용사 파티 시절 가락을 살려 눈빛으로 대화하고 있으니 그걸 거울을 통해 목격한 한야와 주상현의 인상이 미묘하게 바뀌어 갔다.

그래도 다행히 얼마 후 서 있는 연습생 모두에게 피드백을 끝낸 도로시가 그들을 불러들임으로써 아덴이 눈치 없게 나서기 전 이 긴장감 가득한 상황은 마무리되었다.

“그럼 다시 다 같이 연습 시작해보자. 오늘 안 맞는 건 적어도 내일모레까지는 완벽해져야 해. 모처럼 주목받는 건데 책임감 가지고 잘해야지?”

“네!”

한 번의 위기가 지나간 이후 연습생들은 한결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었다. 도로시는 만족하며 연습을 마무리했다.

“허억……헉.”

연습이 끝난 이후 여느 연습생들은 모두 지쳐서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서도화 또한 드러누운 이후부턴 눈앞이 깜깜할 지경이라 그냥 숨만 쉬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무려 다섯 시간을 쉬지도 않고 연습했으니 당연하다. 아직도 팔팔한 건 아덴뿐. 그는 이렇게 오래 연습하고도 체력이 남아 콧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고 케이는 기절해있다 아덴이 일어나자 상체를 일으켜 버텼다.

‘와 진짜 죽겠다.’

도로시의 성격을 알고, 그에게 밉보이는 바람에 뭐라도 흠잡히지 않으려고 너무 빡세게 움직였다.

말도 못 할 정도로 지쳐버린 서도화는 꿈뻑거리다 완전히 눈을 감았다.

그때 서도화의 머리를 누군가 툭툭 투박하게 두드렸다.

“잘해라. 한야도. 내일 보자.”

서도화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머리를 건드린 건 도로시였다. 도로시는 서도화와 한야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대로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서도화와 한야가 누운 채 마주 보았다. 그리고 한야가 미소 지었다.

“선생님 화 풀리신 것 같은데?”

아까까지만 해도 뼈 아픈 소리 한번 하고 완전히 손절할 것처럼 행동하던 도로시가.

“그러게요.”

서도화는 도로시가 쓰다듬었던 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래도 죽도록 버티며 연습한 게 통하긴 한 건가?

도로시는 카메라가 있다고 해서 말투를 달리한다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방금 도로시가 스치듯 하고 간 말은 작은 응원. 서도화가 상체를 일으켜 도로시가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그는 진짜로 화가 풀린 것일까?

아무래도 그건 내일 다시 만나봐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잠시 후 연습실의 카메라가 철거되고 드러누워 있던 연습생들도 하나둘씩 연습실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유제이의 연습생들 또한 이병수와 함께 연습실을 나섰다.

아덴은 내심 더 연습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멤버들의 체력이 한계까지 바닥나버려 추가 연습은 진행할래야 진행할 수가 없었다.

“회사 연습실에서 연습 더 하자. 아직 체력 남은 사람?”

아덴이 멤버들을 둘러보았지만 선뜻 연습 더 하겠다 손을 드는 이는 없었다.

멤버들은 패잔병처럼 차에 널브러져 있었다.

“어우 더는 못하겠다.”

아무리 도로시의 트레이닝에 익숙한 한야와 서도화라도, 체력과 열정이 가득한 주상현이라도 다섯 시간의 고행 후엔 아무래도 좀 쉬고 싶었다.

“형은 어떻게 그렇게 체력이 좋아요? 아까 보니까 땀도 안 흘리더라고요?”

“아덴이 운동 많이 하는구나?”

멤버들의 지친 목소리에 아덴은 어깨를 으쓱이며 아쉬운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어쩔 수 없나. 다들 지쳤으면 혼자 연습하고 올게요. 자꾸 틀려서 또 민폐 끼칠라.”

“하하! 나약한 인간 놈들!”

그때 뒤에서 케이가 세 멤버보다 훨씬 핼쑥해진 모습으로 이상한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쟨 또 뭐야. 힘들어서 미쳐버렸나.

서도화가 심드렁하게 생각할 때 케이가 몸을 일으켰다.

“나도 아직 체력이 남았으니 연습을 더 하겠…… 오웨엑!”

“으어! 으아, 앗 형! 봉지 봉지!”

케이의 옆에 있던 주상현이 당황하며 봉지를 찾기 시작했다.

케이의 구역질에 일동이 경악하며 차 안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이고 이놈아! 힘들면 가만히 있지 뭐하러 말을 해!”

“봉지는 없는데, 빈 생수병이라도 줄까?”

서도화가 잔소리하고 아덴이 빈 생수병을 주상현에게 건넸으며 한야는 조용히 케이의 손에 찬물을 쥐여주었다.

“케이는 제발 좀 쉬어.”

이병수가 한소리 하고서야 케이는 뾰로통해진 채 얌전해졌고 차가 숙소에 도착했다.

* * *

이후 며칠간 연습생들의 오프닝 공연 연습이 이어졌다.

연습생들의 합은 시간이 갈수록 잘 맞아가기 시작했지만, 첫날 이후 도로시가 서도화에게 따로 말을 걸어온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맹렬하게 서도화를 노려보던 눈빛은 없어졌고 옛날 가장 뛰어난 제자를 대하던 그대로 서도화를 대할 뿐이었다.

며칠 후 오프닝곡 의 촬영 날.

서도화는 꽤나 아련한 모습으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메인 스테이지를 바라보았다.

“거리가 좀 멀기는 하네요.”

씁쓸한 주상현의 목소리가 서도화의 심정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연습을 계속하며 그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들이 오르는 곳은 C 스테이지.

암만 그래도 무대 아래에 있는 연습생들보다는 형편이 낫지만 그래도 그리 좋은 대우를 받는 자리는 아니었다.

유제이의 멤버들이 서는 곳은 스크린 바로 아래. 그러니까 메인 스테이지와 서브 스테이지에서 한참 떨어진 별도의 스테이지였다.

이곳은 무대 아래 연습생들과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따로 이곳을 조명하지 않는 이상 곁다리로도 찍힐 일 없는 구석 중의 구석이었다.

그나마도 이곳에서 카메라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찍힐 그룹은 가장 앞에 선 21위 그룹 외엔 없을 듯하다.

“우리 모습 한 번이라도 찍혔으면 좋겠다. 그쵸?”

유제이의 연습생 중 가장 앞에 선 주상현이 말하자 서도화는 무덤덤하게 그를 보았다.

“너는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서도화의 말에 주상현도 부정은 하지 않고 머쓱하게 입꼬리만 올렸다.

“저 말고 멤버 전부요. 한 번씩이라도 찍히면 우리 멤버들 다들 잘생겨서 엄청 인기 많아질 텐데.”

아덴이 주상현의 어깨에 턱 손을 올려 아프게 주물럭거렸다.

“예전부터 생각했는데 상현이는 되게 걱정이 많네.”

“네? 제가요?”

“어.”

아덴이 씨익 웃었다.

“네 말대로 다들 잘생겼으면 알아서 찍어주겠지. 걱정 그만해. 동료를 믿어.”

주상현이 조금 놀란 눈으로 아덴을 바라보았다. 아덴이 스스로의 웃는 얼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렇게 웃으면 되지?”

완벽한 아이돌 미소였다. 그동안 억지로 연습시켜놓은 미소가 몹시 익숙해지다 못해 몹시 자연스러워졌다. 아덴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주상현을 보다 제 옆에 선 케이를 툭 쳤다.

“너도 웃어 허접아.”

……그럴듯한 아이돌 미소랑은 별개로 말은 여전히 험악하지만.

만약 지금 마이크를 달고 있었다면 크게 논란이 되었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듣고 있던 서도화가 쌀쌀맞은 눈으로 아덴을 쳐다보았고 아덴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내가? 네 앞에서? 헛소리를!”

“한야 형 듣고 있다.”

케이 또한 서도화의 말에 입을 다물고 대신 아덴이 말한 것처럼 어색하게나마 미소 지었다.

주상현이 픽 웃었다.

이 그룹도 나름대로 성실히 발전해나가고 있었다.

“저는 당연히 형들 믿죠. 이젠 믿어요. 진짜로요.”

실수 없이 잘 치렀던 1라운드와 멤버 모두 포기하지 않았던 도로시 선생님과의 연습. 그리고 방금 보여주었던 아덴과 케이의 미소까지.

이들은 여전히 여러모로 불안한 구석이 있지만 그럭저럭 좋은 이미지만 잘 챙겨가며 경연을 치러가고 있었다.

오히려 불안하기에 더더욱 조심하고 있으니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단 채로 말실수를 하거나 표정이 안 좋거나 하는 일이 없었다.

주상현의 머릿속 이들은 이제 단순한 오합지졸들이 아니었다. 할 일은 확실히 잘하는 재밌는 멤버들일 뿐이었다.

걱정하는 건 멤버들이 아니고 이들에게 돌아올 콩알보다 못할 분량이었지만, 그 또한 새삼 다시 멤버들의 얼굴을 보니 고민이 말끔히 사라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멤버들의 외모를 밀리언 아이돌 팀이 눈여겨보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예전부터, 프로젝트 그룹 유니드 시절부터 주상현은 걱정이 너무 많아 탈이었다.

이번에는 멤버들을 믿고 56번 그룹의 선봉에 선 만큼 그냥 열심히만.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그때 때마침 감독이 촬영의 시작을 알렸고 그로부터 몇 시간 동안 길고 긴 오프닝 촬영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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