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33화 (33/270)

제33화

“……네. 됐습니다. 여기까지 할게요.”

감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곧 연습생들의 힘찬 인사가 이어졌다.

“수고하셨습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장 7시간의 고행에 연습생들은 물론이고 촬영을 진행한 제작진들과 그들을 지도하는 선생, 스태프 모두가 지친 기색이었다.

“출연자들은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차례대로 무대에서 내려오세요.”

제작진이 말했고 연습생들은 각자의 소속사 스태프들을 따라 메인 스테이지의 연습생들부터 무대에서 내려왔다.

‘힘들긴 힘들다.’

서도화는 달달 떨리는 무릎에 손을 짚어 무게를 실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연습생들도 서도화와 별반 다를 바 없이 지쳐 주저앉거나 후들거리는 다리를 손으로 주무르고 있었다.

7시간 동안 쉬지 않고 촬영하는 건 아무리 전장과 도망 등에 익숙해진 그라도 꽤 벅찼다. 물론 그 세계에서도 힘들게 몸을 쓴 적은 손에 꼽았지만.

‘아니 힘든 게 아니고… 죽겠다.’

몸만 힘든 게 아니고 시종일관 미소 짓던 입가도 아릿한 게 금방이라도 경련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아이고…….”

서도화가 무심결에 침음을 흘렸다. 그 순간 그의 어깨에 툭 아프게 손이 올라왔다.

“부축해줘?”

아덴이었다.

“죽겠냐? 못 걷겠냐?”

그는 일반 사람들의 체력을 가늠하듯 서도화를 보며 고민하다 제 어깨를 쳤다. 힘들면 부축해주겠다는 의미였다.

“오 고맙다.”

서도화는 냉큼 아덴의 어깨를 붙잡고 무대 아래로 걸었다.

아덴의 괴력과 지치지 않는 체력은 무섭지만 이따금 이렇게 지지대로 삼기엔 무척 좋았다.

“고생했다. 얘들아. 다들 괜찮아? 연습할 수 있겠어?”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 매니저 이병수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와 물을 건네주었다.

멤버들은 한결 더 핼쑥해진 눈빛을 그에게 보내며 고개를 저었다.

“연습… 못 해요…….”

평소 강박적인 연습량을 가지고 있던 멤버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다들 쉬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아덴이 엄지로 멤버들을 가리켰다.

“얘네 여기서 더 하면 죽어요.”

“죽… 아덴, 또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하지? 그러면 안 된다니까?”

이병수의 꾸지람에 아덴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반인들은 약하다. 툭 치면 어딘가 부러지고 조금만 달려도 탈진해 쓰러진다. 그걸 감안해 진심으로 말했을 뿐인데.

그리고 정말로 곧 탈수와 근육파열로 죽겠다 싶어서 말한 건데 이병수는 참 겁이 많은 사람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렇다고요. 쟤 봐요.”

겁많은 사람에게 자극적인 말을 할 필요는 없지.

아덴은 대충 말을 얼버무리고 케이를 가리켰다.

전직 마왕이 하찮고 평범한 인간인 한야와 주상현보다 지쳐선 두 사람에게 양쪽으로 부축받아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케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이병수는 빠르게 납득하며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죽을 것 같네.”

나는…… 괜찮다…….

어째 나는…… 괜찮다……. 하는 케이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착각일까?

너무 아련해서 잘 들리지 않았다.

케이를 보는 이병수의 눈빛이 짜게 식기 시작하자 주상현이 그를 두둔하듯 서둘러 말했다.

“열심히 해서 그래요! 열심히. 케이 형 뒤에서 진짜 열심히 했어요! 제가 봤어요.”

한야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병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멤버들을 차로 이끌었다.

“어휴, 너희 열심히 하는 건 내가 알지. 가자. 오늘은 연습하지 마. 좀 쉬어야 내일 또 힘내서 열심히 하지.”

“네, 알겠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멤버들은 잠시 신발장 앞에 멈춰 섰다.

“안 들어오냐?”

아덴은 그 행동이 의아한 듯 먼저 신발 벗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지만 그럼에도 멤버들은 부동자세로 서서 한참이나 허공만 바라보았다.

‘힘들다. 움직이기 싫다.’

조금의 걸음조차 걷기 싫은 귀찮음, 극한의 피로감 등이 쌓여 마치 고장 난 것처럼 생각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우리 조금만 쉴까?”

“네.”

한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세 명의 인간 멤버들이 주섬주섬 신발을 벗고 기어들어 가 바닥에 뻗어버렸다.

그에 움직이지 않는 멤버들에 의해 길이 막혀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던 케이가 황당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보았다.

“이것들 왜 이러는가.”

“낸들 알겠냐?”

아덴이 성가시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서도화는 엎드린 채로 자신들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덴과 케이를 흘겼다.

‘좋겠다. 너네는.’

아까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지쳐있던 케이가 꼴에 마왕이라고 어느샌가 완전히 피로를 회복했다.

저런 인외, 그리고 인간 같지 않은 녀석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보통의 인간들은 피곤함을 견디는 것도 회복도 더디다.

일주일 가까이 진행된 도로시의 하드 트레이닝.

거기다 7시간가량의 촬영.

한계까지 버텼던 피로감이 폭발하는 바람에 2라운드 연습 전 잠시라도 쉬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었다.

“하아.”

한야가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며 힘겹게 미소 지었다.

“도로시 선생님 촬영장에서도 장난 아니시더라.”

주상현이 여전히 엎어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데스티니는 연습 되게 하드하게 한다더니 진짜였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연습해요?”

“원래는 더 해.”

서도화는 한야와 주상현의 말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도로시는 결국 끝까지 서도화에게 말을 붙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 누그러진 건 맞는 듯한데 그렇다고 괘씸한 게 사라지진 않았는지 대화 한번 나누지 못했다.

그래도 도로시는 보아하니 밀리언 아이돌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 트레이너로 참여하는 모양이던데.

그렇다면 56번 그룹이 탈락하지 않는 한 만남이 잦을 것이다.

‘……찝찝하네.’

아무래도 한때 존경했던, 만약 5년간 제2세계에 흘러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존경했을 사람과 이런 사이로 있는 건 좀 괴롭긴 했다.

‘다음에 만나면 내가 먼저 말 걸어보자.’

정식으로 사과도 드리고.

서도화는 도로시와의 다음을 기약하며 몸을 일으켰다.

“저부터 씻을게요. 내일 몇 시에 일어나요?”

“7시. 내일은 안무 연습 영상 찍어야 하니까.”

한야도 몸을 일으켰다.

“다들 근육 잘 풀고 자야 해.”

“네!”

일단 지나간 일은 나중에. 지금은 막상 눈앞에 닥친 2라운드부터 준비해야 했다.

* * *

다음 날 멤버들은 2라운드 연습을 위해 연습실로 향했다.

“일단 안무는 다들 완벽히 익혔으니까 영상 찍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맞춰보자.”

“네!”

우나나의 말에 따라 멤버들이 대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오늘은 진짜 무대에 선 것처럼 해보는 거야. 표정 다 살리고.”

“네.”

이번 2라운드의 컨셉은 정글.

한 영역을 두고 싸우는 멤버들의 이야기다. 일명 케이 팀과 아덴 팀은 곡의 초반부부터 끝까지 치열하게 공격적인 안무를 선보인다.

이 그룹의 강점인 아크로바틱을 최대로 살리면서도 비교적 무대 표현력이 약한 아덴과 케이의 몰입도를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컨셉.

워낙 많은 인원수가 참여하는 데다가 우나나도 처음 시도해보는 컨셉이라 이리저리 완성되기까지 고생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라운드보다 훨씬 완성도가 좋았다.

우나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대형의 한구석에서 속닥이는 서도화와 아덴을 바라보았다.

특히 케이와 아덴의 부족한 표현력을 살리는데 서도화가 큰 도움을 주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한편 서도화는 아덴에게 연속해서 상기시키고 있었다.

“들었지? 오늘은 실전처럼이래. 너 예전에 했던 것처럼 알지? 그런 표정. 케이랑 싸울 때.”

“어.”

아덴은 듣는 둥 마는 둥 대답했다.

서도화는 아덴이 제 귀를 후비며 심드렁해도 괘념치 않고 조언을 계속했다.

“살벌하게 싸우는 것처럼 춤춰. 너 그런 거 잘하잖아. 근데 또 너무 살기는 띠지 말고. 무서우니까.”

“아 진짜 말 많네. 어쩌라는 거야.”

아덴은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그냥 싸우라고 하지? 그게 훨씬 편해.”

“누가 너희 편하라고 이런 말 하냐? 표현이 중요한 공연이니까 하는 말이지.”

아덴은 서도화를 한심하게 쳐다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어쨌든 싸울 때의 그 느낌으로 있으면 된다는 거잖아.”

“그렇지 근데 진짜 싸우는 건 아니고 춤으로 싸우는 그런-”

“아오! 알았다고.”

아덴은 귀찮다는 듯 대답하며 서도화의 입을 막아버렸다.

음유시인 이 녀석은 어째 이 세계에 온 뒤로 성가시도록 말이 많아졌다.

서도화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아덴이 자신을 성가셔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대놓고 귀찮아하긴 해도, 이렇게 미리 말해두면 아덴의 표정과 표현력이 확연하게 좋아지는 터라 말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럼 시작할게. 다들 준비됐어?”

“네!”

멤버들이 큰 소리로 대답했고 댄서들 또한 우나나의 지시에 맞춰 멤버들 사이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들이 자리한 곳곳엔 여러 크기의 철봉들이 불규칙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노래 틀겠습니다.”

이병수가 말했고 곧 연습실 가득 미리 녹음해둔 AR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로 안무가 시작되었다.

가장 잘 날뛸 수 있는 아덴과 서도화, 그들 편에 선 댄서들로부터 시작한 전주의 댄스 브레이크.

언뜻 지저분해 보일 정도로 제각각이지만 그게 하나의 멋으로 보이는 스트릿 안무들이 계속되었다.

건들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녀

누가 우릴 비웃어도

It won't stop

서도화의 파트가 끝난 뒤 반대쪽에서 튀어나오는 케이 팀 멤버들과 댄서들.

최대한 많이 배치한 댄서들이 멤버들의 파트에 맞춰 공격적으로 안무를 이어갔다.

딱히 설명 없이 봐도 하나의 무언가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듯한 컨셉이었다.

무척 공격적이고 전투적인 안무다.

멤버들의 안무 연습을 지켜보던 우나나의 입가에 스르륵 미소가 맺혔다.

그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미소였다.

멤버들의 실력이 늘고 무대 구성이 짜임새 있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춤만으로도 표현력과 몰입도가 상당해졌다.

마치 3분간 숨 막히는 액션 씬을 보는 것처럼.

이번엔 케이의 비주얼과 서도화의 노래에만 의지하지 않아도 그들만의 개성이 확실히 보였다.

이건 엄청난 발전이었다.

‘애들이 전체적으로 기가 세서 그런가?’

“이야, 너무 잘하는데?”

이들의 강점과 개성을 보여주기 위해 우나나와 스태프들이 얼마나 머리를 쥐어짰던가.

어느 정도 케이의 비주얼로 편법을 쓰던 1라운드와는 비교가 안 되었다.

이 컨셉이 이 그룹의 정체성인 듯, 이제야 맞는 옷을 찾은 듯 저 난장판, 오합지졸 그 자체이던 그룹이 완벽하게 이 컨셉의 분위기를 이끌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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