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36화 (36/270)

제36화

“안녕하세요! 56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무대 위로 올라온 이들은 힘차게 인사하고 감독의 지시에 따라 곧바로 대형을 잡았다.

댄서들과 함께 반으로 나뉘어 양쪽에 갈라선 모양새다.

서도화가 무대 아래를 힐끔 쳐다보았다.

수많은 스태프들 그리고 방금 리허설을 끝마친 30번 그룹,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번호도 모를 그룹 둘.

우선 서도화와 멤버들의 목표는 저들 모두를 벙찌게 만드는 것이었다.

실력으로.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잠시 후 감독님의 무기력한 목소리와 함께 준비한 곡이 재생되었다.

그에 맞춰 멤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원곡자 트리프린스, 곡 이름 룰.

솔직히 아는 사람만 아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곡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누구인가.

음악, 아티스트, 아이돌이라면 모르는 게 없는 사람들, 음악이 좋아 가수가 되고자 꿈을 꾸는 사람들이 아닌가.

“와 이 곡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다.”

“그니까. 트리프린스도 추억이다.”

모르는 이보다 아는 이가 더 많았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라도 56번이 이 곡을 선곡했다는 것에 감탄하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다들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이걸 경연에 쓴다고?”

“이게 트리프린스 타이틀이었나?”

“몰라요? 근데 경연에 쓸만한 건 아니지 않아요? ……도입부 편곡은 좋네.”

각 소속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작은 웅성거림이 있었다.

좋은 웅성거림은 아니었다. 트리프린스의 룰이란 곡은 그룹이 인기 없어 뜨지 못한 비운의 명곡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노래 자체가 큰 매력이 없어 뜨지 못한 곡이다.

그런데 임팩트도 없고 살리기도 힘든 노래를 굳이 굳이 경연장에 가지고 왔다고?

‘작은 회사라 그런가?’

아직 경연 경험이 부족해 사리분별을 못한 걸까? 가끔 너무 욕심냈다거나 자금의 문제로 선곡 미스를 내는 회사가 있는데 유제이가 딱 그 짝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선택은 아닌 것 같은데.

멀쩡하게 그럴듯한 성과를 내던 연습생들이 선곡 미스라니.

딱히 안타까운 건 아니지만 궁금하긴 했다. 무슨 공연을 하고 싶어서 이 곡을 고른 것인가.

이들은 몰랐다. 이런 곡이기 때문에 아덴과 케이를 필두로 둔 연출이 더더욱 산다는 걸.

가사에 맞춰서, 무대 구성에 맞춰서 돈만 쏟아부으면-대부분 김유진의 사비와 인맥, 한야의 재력으로- 원곡을 뛰어넘는 편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참 나. 이 팀은 좀 기대했는데 선곡이-”

기분이 안 좋은 건지 아니면 경연 상대의 선곡 미스가 기쁜 건지 모를 말투로 비아냥거리던 누군가의 목소리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쏙 들어갔다.

둥- 두둥- 둥-

공간을 사정없이 흔드는 무거운 북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곤 무대 한가운데 댄서 한 사람이 기묘한 춤을 추며 들어오더니 커다란 뿔피리를 입에 댄 채 위로 들어 올렸다.

뿌우-

뱃고동 소리와 같은 뿔피리 소리.

이후 서도화와 주상현이 자리 잡았던 오른쪽 진영이 앞으로 나섰다.

그와 동시에 서도화가 노래를 시작했다.

* * *

1라운드 때의 리허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정적 속 리허설이 끝났다.

참으로 뻘쭘할 만한 침묵이지만 이제 멤버들은 이 반응의 의미를 잘 안다.

침묵의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이 무대에 가지는 감명이 깊었다는 뜻이리라.

“……네, 좋습니다.”

감독은 멍하니 무대를 보다 서도화와 눈이 마주치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허억, 헉…….”

그제야 멤버들이 자세를 바로 하고 나란히 섰다.

“감사합니다!”

모두가 힘차게 인사하고 무대 아래로 향했다.

리허설을 마쳤으니 이제 무대 아래에서 기다리는 카메라 앞에서 간단한 인터뷰만 마치고 다시 연습실로 돌아가면 될 터였다.

당연하게 움직이려던 그들의 걸음을 붙잡은 건 감독이었다.

“엔딩 하고 케이, 잊지 말고 카메라에 시선.”

케이는 감독의 말에 뭔 개소린가 하며 가만히 듣고 있다 그의 뒤쪽 ‘대답’이라고 혼신의 힘을 다해 벙긋거리는 김유진을 보곤 뒤늦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덴, 위에서 철봉 타고 내려올 때 조금 더 앞까지 나와줘야 해. 그래야 다음 파트에 한야를 안 가려. 지금 다 가려지거든?”

“네? 아, 네.”

아덴은 드물게 당황하며 대답했다.

감독은 멤버들에게 간단하지만 구체적인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곤 설렁설렁 허공에 볼펜을 굴렸다.

“한 번 더 갈게요.”

“……예!”

얼른 준비해. 서도화가 아덴과 케이를 서둘러 자리에 데려다 놓고 자세를 잡았다.

긴장으로 가득했던 멤버들의 입꼬리가 어느새 씰룩거리고 있었다.

실수를 하거나 말거나 단 한 번의 리허설로 끝이었던 게 지난 1라운드였다. 그러나 2라운드의 리허설에는 드문드문 때에 따라 리허설을 한 번 더 진행하는 그룹들도 생겨났다.

주로 1라운드에서 두각을 드러냈거나 PD픽을 받은 그룹들이었다.

감독이 리허설을 한 번 더 한다는 건 이 그룹을 화면에 제대로 담아줄 마음이 생겼다는 의미와 같았다.

감독에게 충분히 화제가 될 만한 그룹이라고 인정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멤버들이 빠르게 두 번째 리허설을 준비하는 동안 이병수와 함께 그들을 지켜보던 김유진 또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참 나 리허설 한 번 더 하는 게 뭐라고 이렇게 기쁘냐.”

김유진은 멤버들에게 쏟아지는 주목들이 퍽 기분 좋았다.

백날 커피 사 들고 인사 다녀봐야 작은 기획사라고 경연 프로그램에 자리 마련도 힘들었지만, 기어코 참가 지원으로 뚫고 올라온 아이들.

1라운드 전까지만 해도 무시에 갖가지 소문에, 심지어 소속사마저 걱정시키던 그들이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기대받고 누구에게나 견제받는 중이다.

믿을 구석도 기댈 구석도 없이 순전히 재능만 넘치는 연습생들이 짧은 시간에 이만큼이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저게 내 새끼들이다!

김유진의 말에 이병수도 뿌듯하게 말했다.

“우리 애들 잘하니까요.”

이들이 주목과 함께 처음부터 높은 순위를 받은 건 운이 아니었다.

지금의 리허설을 보라.

비록 카메라 무빙에 대한 대처는 아직 조금은 미흡했지만 무대는 그 어떤 공연보다 완벽했다.

솔직히 이병수가 보기엔 프로의 세계를 놓고 봐도 연말 무대에서 볼법한 무척 재밌는 공연이 틀림없었다.

물론 춤이 격한 고로 라이브가 좀 흔들리긴 했지만 강박적으로 연습하는 멤버들이라면 경연 전까지 무조건 고쳐놓을 수 있을 것이다.

“벌써부터 대중 반응 너무 궁금해지지 않으세요? 전 순위가 벌써부터 기대되거든요.”

이병수의 말에 김유진이 씨익 웃었다.

“잘할 거예요. 누구 애들인데.”

아무리 우나나가 힘썼다지만 어떻게 이런 구성을 짰는지 기특할 지경이었다.

* * *

다음 날 멤버들은 2라운드 경연이 치러지는 체육관으로 향했다.

현장의 입구, 서도화는 잠시 멈춰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역시 많아도 너무 많아.’

이 커다란 체육관이 어김없이 연습생, 그리고 그들의 스태프로 가득 채워졌다.

고작 1라운드 만에 자진 하차한 그룹들이 꽤 많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많았다.

‘어느 세월에 전부 탈락시키나.’

서도화는 무심결에 생각하곤 픽 웃었다. 전부 탈락이라니 이번 라운드가 얼마나 자신 있던지 저도 모르게 우승까지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이병수가 가만히 멈춰 서 있는 서도화의 등을 밀며 멤버들을 이끌었다.

“자, 이제 들어갈까?”

멤버들이 배정받은 자리를 향해 이동했다. 이번엔 세 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경연하는 만큼 자리도 키워드별로 세 묶음으로 나뉘어 있었다.

같은 키워드끼리는 서로의 리허설을 모두 보았기 때문일까? C키워드 좌석에 도착하자마자 이전보다 더한 견제 어린 시선들이 사방에서 내리꽂혔다. 이따금씩 리허설이 어땠느니 라이브가 어땠느니 하는 수군거림도 들렸다.

그러나 노려보든 째려보든 이를 신경 쓰는 멤버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아덴조차도 지금은 얌전했다.

신기할 정도로 이런 시선에 익숙한 멤버들만 모여있는 56번 그룹이었다.

평소 같으면 있는 대로 위축되거나 긴장할 법한 주상현도 든든한 아덴과 서도화 사이에 딱 붙어 형들을 등에 업고 해맑게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멤버들은 주변의 시선보다 무대와 한층 더 가까워진 자신들의 좌석에 좀 더 관심이 있었다.

“우리 바로 앞에 카메라 있어요. 형!”

주상현이 신나서 말했다.

“우리 많이 찍힐 거 같아요!”

“그렇네. 상현이 클로즈업 받았으면 좋겠다.”

신난 주상현에게 한야가 자상히 대답해주었다.

서도화의 입꼬리도 미미하게 올라갔다.

주상현의 말대로 이들의 자리는 서영이 서 있을 진행석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있을뿐더러 바로 앞에 카메라가 배치되어 있었다.

키워드별 순위별로 자리를 배치한 모양인데 비교적 앞 순위인 덕에 이 카메라로 화면 전환만 되면 멤버 다섯의 모습이 스트리밍 화면에 아주 대문짝만하게 비춰질 것만 같았다.

“상현이.”

“네?”

한야는 말없이 주상현과 서도화, 케이 순으로 카메라와 조금이라도 가까운 쪽에 자리를 배정해주었다.

그나마 클로즈업 받을 가능성이 있는 멤버들이었다.

한야의 배려에 이번엔 케이가 신이 났다. 그의 눈이 케이파이브 이후 모처럼 초롱초롱해졌다.

“이 자리는, 상석이 아닌가닙니까!”

“……뭔, 반말이냐 존댓말이냐 둘 중에 하나만 하지? 상석? 진짜 꼴값 떨고 앉았네.”

아덴의 태클을 들으며 서도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덴, 케이에 대한 화를 자제하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어.”

서도화가 말하자 아덴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어버렸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겠나 보다.

서도화가 케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참나.’

나란히 앉았는데 상석이 어디서 생겼나 했더니 가운데에 앉았다고 그게 상석이란다.

하도 하찮은 대우를 받다 보니 이젠 대우에 대한 기준도 몹시 낮아진 모양이다.

“연습생들은 조용히 착석하세요.”

그때 스피커를 통해 제작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연습생들의 자리가 빠르게 채워졌다.

웅성거리던 현장이 제작진들의 지시에 따라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곧 2라운드 스트리밍 라이브가 시작된다.

진행자인 서영이 무대 위로 등장하였고 잠시 후 곳곳에 배치된 화면을 통해 스트리밍 대기 화면과 채팅창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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