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용사 파티부터 시작하는 아이돌 생활-37화 (37/270)

제37화

“팝넷 사상 최대 규모의 라이브 프로젝트. 밀리언 아이돌. 지금 시작합니다.”

서영의 똑부러지는 멘트와 함께 지난 라운드와 같은 웅장한 BGM이 울려퍼졌다.

빠르고 화려하게 돌아다니는 형형색색의 조명. 서도화는 하이넬의 마법 못지않은 눈갱에 덤덤히 눈을 감고 오프닝 퍼포먼스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꽉 감은 눈. 그와 달리 짝짝짝 성실하게 박수 치는 손.

“연약하다. 연약해.”

아덴은 그런 서도화를 보며 낄낄거렸다. 잘하다가 쓸데없는 곳에서 몸 사리는 것은 여전하다.

한편 채팅창도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수리샷~

-노래방 조명도 이렇게 화려하진 않을 듯

-소래담49번소래담49번무대할 때 화면 아래 ★마음연타★마음연타★마음연타★

-??아 제발 채팅관리 좀요

-???1라운드는 그팬들이 ㅈㄹ하더니 이번엔 소래담임?

-응~채팅관리해봤자 우리 빼곤 채팅치는 사람 없어~

-뭐 어때 어차피 우승은 49번임ㅋㅋㅋ

지난 라운드 스트리밍 때보다 한층 더 격앙된 분위기.

주로 지난 라운드에서 1위를 한 너튜버 그룹 49번의 구독자들이 채팅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조명이 사그라들고 서도화는 채팅창을 힐끔거렸다.

가히 백만 너튜버의 화력답다. 초반부터 엄청난 기세로 이루어지는 응원과 점령되다시피 한 채팅창이 위협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서도화는 그로 인해 위축되지 않았다.

주상현 팬들의 도배로 조바심 내봐서 아는데 저것도 얼마 못 간다.

특히 이번 라운드처럼 이미 두각을 드러낸 연습생들이 있는 경우엔.

서도화의 시선은 자신의 바로 옆에 배치된 카메라로 흘렀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카메라를 둔 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잠시 후 정수리샷만 보여주던 화면이 전환되어 몇몇 연습생들의 클로즈업이 차례대로 비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승이 어쩌니 49번이 어쩌니 도배되던 채팅창은 클로즈업된 연습생들에 대한 이야기로 점차 채워지기 시작했다.

-ㅋㅋㅋㅋ방금 뭐임ㅋㅋㅋㅋㅋ

-포스트잇ㅋㅋㅋㅋㅋ

-방금 나온 연습생 몇 번임? 귀여운데 왜 난 첨 봄?

-네가 보다 졸았나 봄

1라운드 스트리밍을 경험한 연습생들이 이젠 클로즈업을 준비하고 대처하기 시작했다.

준비한 자세를 취하거나 포스트잇에다가 간단한 어필을 적어 보인다거나 등등.

무려 백팀에 달하는 수많은 연습생들 중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잠깐의 기회조차 놓치지 않고 어필하는 연습생들 덕분에 49번 도배가 줄기차게 이어지던 채팅들은 금방 리젠되었다.

“다들 엄청 열심히 하네요. 우리도 뭐 준비해올 걸 그랬나?”

주상현이 서도화에게로 몸을 기울인 채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설마 카메라 바로 옆에 자리를 할당받을 줄은 몰랐기에 다른 그룹들에 비해 뭔가 준비한 게 없었다.

“저희도 화면 한 번은 받을 거 같은데.”

주상현의 말에 서도화는 카메라를 힐끔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냥 손으로 6이나 만들어.”

“6이요?”

주상현이 얼떨결에 양손으로 6을 만들었다.

서도화는 주상현의 손을 케이 얼굴 옆에 가져다 놓고 케이의 얼굴 반대편에 제 손바닥을 쫙 펼쳐 5를 표현했다.

“오십……육?”

서도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가 돌아간 방향을 보라.

역시 팝넷은 화제가 될 만한 인물을 잘 안다.

이들 그룹 중 클로즈업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주상현일까 했더니 카메라 감독의 선택은 주상현이 아닌 비주얼 담당 케이었다.

얼굴 양쪽으로 뻗어진 손들에 케이가 질색팔색하며 고개를 뒤로 뺐다.

“이게 무슨 짓인가.”

그래도 이젠 빽 소리 지르지 않고 나름 작게 말했지만, 당황했는지 은근슬쩍 마왕 말투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서도화는 미소 지으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야, 웃어.”

숨소리와 같은 소리였지만 케이는 귀가 좋으니 또렷이 잘 들었을 것이다.

서도화의 말에 케이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리더니 이내 뻣뻣하게 앞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도 케이파이브, 밥, 협력 등등을 들먹이며 웃는 연습을 시켜놨더니 뻣뻣해도 곧잘 그럴듯한 미소를 짓는다.

“형 쟤네 뭐해요? 이상한 짓 하는데요.”

아덴이 셋을 가리키며 한야에게 묻자 한야는 고개를 저으며 아덴의 등을 토닥였다.

“클로즈업 준비하는 거야. 기특하네. 아덴도 가서 준비할래?”

한야의 말에 아덴은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동료들에게 도움이 될지라도 마왕의 바로 곁에 서는 건 사양이었다.

그때 스트리밍 화면에 떡하니 케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러자 채팅창도 현장도 크게 술렁였다.

-와ㅠㅠㅠ드디어내새끼나왔어ㅠㅠㅠ케이ㅜㅜ

-이건 진짜 반칙 수준 아니냨ㅋㅋㅋ

-와 잘생기기는 ㅈㄴ 잘생겼다

-ㅅㅂ그림체가 다르네...

서도화가 씨익 웃었다. 그래, 케이는 반칙 수준의 외모였다. 따로 PR을 준비할 필요 있나. 우리에겐 케이의 비주얼이 곧 돌아다니는 PR이다.

서도화는 자랑스러움을 담아 쭉 뻗은 손을 조금 더 들어 올렸다.

이들이 바로 56번이었다.

그러자 뒤늦게 제 손동작의 의미를 알아차린 주상현이 킥킥 웃으며 서도화와 손 높이를 맞췄다.

그 모습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찍혀 스트리밍으로 송출되었다.

-상현이 왜케 신났엌ㅋㅋㅋ

-우리 막둥이 새로운 형들 사이에 적응 잘하는 것 같아서 기쁘다ㅠㅠ

-주상현 옆에 메보임?

-이 그룹은 뭐 다 잘생겼냐...

-이분들은 몇 번 그룹이에요?

-56번이요

아주 짧은 시간 세 멤버가 화면에 비치는 동안 채팅창 내 관심의 대상은 케이에서 주상현으로 이윽고 서도화에게로 향했다.

-ㅋㅋㅋㅋ도화 웃는 거봨ㅋㅋㅋ케이가 잘생겨서 뿌듯해하는 거야?

-귀여워ㅠㅠㅠ

-멤버가 잘생겨서 자랑스러운 메보

-저 손은 56번이라는 건갘ㅋㅋ

-웃는 거 진짜 너무 뿌듯해 보여서 개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도화가 봤다면 당장 미소를 거둘 만한 채팅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채팅을 보지 못한 서도화는 미소에 제 야망을 그득그득하게 담아내며 웃었다.

어차피 얼굴 빼고는 볼 거 없는 녀석이다. 비주얼이라도 단단히 뽑아먹자.

그러나 아쉽게도 스트리밍 화면을 독차지할 수 있는 시간은 무척 짧았다.

화면은 전환되어 또 다른 그룹의 연습생들을 담았고 곧 서영에게로 옮겨갔다.

그와 함께 서도화의 표정은 탁 풀려버렸다. 그러곤 케이에게서 떨어졌다.

“고생했다. 이제 안 웃어도 돼.”

“……예에?”

신나있던 주상현이 어리둥절하게 되묻는 동안 케이의 입가에서도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난 제대로 협조했다.”

“어, 잘했다. 너 오늘 저녁은 안 뺏기겠다?”

“……협조요?”

주상현이 입술을 삐죽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어쩐지 케이가 평범히 아이돌처럼 생긋생긋 잘 웃어 주더라니 서도화와 모종의 약속을 한 모양이다.

자신의 멤버들이 콩가루 같은 사이였음을 아주 잠시 잊고 있었다.

그때 다시 서영이 진행을 시작했다.

“스트리밍을 시청하고 계신 전 세계 K-POP 팬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어느덧 밀리언 아이돌의 제2라운드, 키워드 경연의 날이 되었습니다.”

서영은 시청자들에게 한 번 더 키워드 경연의 규칙과 투표 방법을 설명했다.

키워드 경연은 A, B, C로 나뉘어 총 3일에 걸쳐 라이브가 진행된다.

탈락자는 각 키워드 별 50프로이며 패자부활전 없이 남은 50팀만이 다음 라운드를 치를 수 있다.

다시 들어도 너무한 탈락률이었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30팀으로 하라고ㅋㅋㅋㅋ

라던 1라운드에서 봤던 채팅이 다시 한번 생각나는 서도화였다.

“그럼 본격적으로 2라운드를 시작해볼 건데요. 그전에!”

최소한의 미소만 머금고 있던 서영의 입꼬리가 조금 더 올라갔다.

“사전에 저희가 연습생 전원을 대상으로 질문을 했었죠?”

……음? 질문을 했었나?

서도화가 멤버들을 돌아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영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56번뿐만 아니라 다른 연습생들도 사전에 질문이나 설문조사를 받은 이는 없는 걸로 아는데?

서도화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다른 연습생들을 살피자 아덴이 말했다.

“느낌상 다들 모르는 분위긴데?”

역시 말하지 않아도 참 동료의 생각을 잘 파악한다.

그러자 케이도 서도화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는 협조한다. 다들 질문을 받은 적 있는지 모르는 눈치군.”

“어허, 남의 말 함부로 엿듣지 마.”

이 새끼, 저번에 엿들으랄 땐 언제고.

케이의 표정이 썩어들었다.

기껏 연습생들의 대화를 듣고 전달했더니 음유시인의 반응이 영 시원찮다.

케이는 인상을 구기곤 정면을 바라보았다.

좋은 마음으로 협조할랬더니….

아니 잠깐, 좋은 마음? 마왕에게 좋은 마음이 웬 말인가.

케이는 서둘러 잡생각을 지워버렸다.

그때 서영이 제 뒤의 화면을 가리지 않도록 조금 비켜서며 스크린을 가리켰다.

“다들 모르시는 눈치인데요? 바로 1라운드가 끝난 후 기억에 남는 연습생은? 이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아아~!”

여기저기서 깨달음의 탄성이 들려왔다.

“여기 있는 백팀 전원에게 물었던 질문인데, 이제 기억이 나시나요?”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제작진이 스치듯 물어보던 질문이었다.

서도화와 멤버들은 연습하느라 스트리밍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크게 기억에 남는 그룹을 꼽기는 힘들기에 케이의 대답으로 뭉뚱그려 퉁쳤었다.

그리고, 그때 케이의 대답은 너튜버 그룹 49번이었다.

“저희가 질문을 토대로 순위를 집계해봤는데요. 일단 한번 보실까요?”

서영의 말에 맞춰 커다란 화면 속 흰 배경에 순위별로 10개의 슬롯이 나타났다.

“과연 연습생들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심어준 팀은 누구일지. 10위부터 공개해볼까요? 먼저 10위부터!”

천천히 공개되는 각 순위의 그룹들. 떨려서 무덤덤하게 앉아있던 서도화의 눈빛이 미미하게 빛났다.

그때 가볍게 대답했던 걸 이렇게 거창하게 발표하는 걸 보면 순위에 든 그룹에게 추가적인 배네핏이라도 베주려는 모양인데.

‘기대해볼 만한데?’

어쩌면 추가점수를 받을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다른 연습생들도 자기들 연습하느라 바빠 스트리밍을 잘 보지 못했을 거고, 그렇다면 그냥 가장 언급률 높았던 그룹을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

눈치가 있지, 서도화도 자신의 그룹이 공연 직후 시청자들 사이 상당한 화제가 되었음을 알고 있다.

물론 정화 스킬의 덕을 단단히 보긴 했지만 너튜브에 올라간 영상의 조회수도 너튜버 그룹, 몇몇의 인기 많은 그룹과 더불어 독보적이라고 했다.

순위도 그럭저럭 괜찮고 현장에서 직접 느낀 반응도 있으니 인상적이라고 56번 그룹을 언급한 연습생들도 꽤 있지 않을까?

‘높이 올라가면 5, 6위 정도?’

생각해놓고 너무 김칫국을 들이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생각하는 건데 뭐 어떤가.

아직 보상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무엇이든 베네핏을 받을 좋은 기회다.

10위, 9위, 8위의 아래 순위부터 차례대로 공개되는 그룹들.

‘어라? ……없네.’

예상했던 최고로 높은 순위였던 5위 슬롯마저 다른 그룹이 차지하자 서도화의 자신감이 슬그머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설마 이보다 위의 순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한다.

그러기엔 56번보다 높은 순위에 언급률까지 많은 그룹이 무척 많았다.

‘에이.’

내가 너무 희망적이었네.

생각하며 깔끔히 체념하려던 차 3위의 슬롯이 채워진 이후 아덴의 손이 빠르게 서도화의 어깨를 짓눌렀다.

“으윽, 무거-”

아덴의 손을 치우려던 서도화의 행동과 말이 멈췄다.

아덴이 놀란 눈을 한 채 화면을 보고 있었다. 흔치 않은 표정이라 서도화도 놀란 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굳었다.

“…….”

턱 막힌 목구멍 밖으로 목소리가 튀어나오지 못한 채 사라졌다.

진짜? 정말? 왜? 진짜?

머릿속으로 의문을 가득 띄운 서도화의 눈이 3위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3위 [56번(유제이 엔터테인먼트)]

김칫국조차 마시지 못할 정도로 높은 순위에 그룹의 번호가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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